메뉴 건너뛰기

close

이학영 민주통합당 당권 도전자
 이학영 민주통합당 당권 도전자
ⓒ YMCA

관련사진보기


연초에 '구안와사'가 왔습니다. 입은 삐뚤어졌고 눈은 감기지 않았습니다. 7~8개월쯤 지났을까요. 병마도 엉겨 붙어 있는 게 지겨웠는지 보따리 싸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12월 10일 오후였습니다. 심한 가슴 통증으로 쓰러졌습니다. 119구급차에 실려 응급실에서 수술실로, 수술실에서 중환자실 그리고, 각종 검사를 거쳐 일반 병실에 있다가 나흘 만에 퇴원했습니다. 병명은 변형 협심증이라고 합니다.

벌어 놓은 돈도 없는데 건강까지 무너졌습니다. 수능 본 막내가 대학에 입학하면 대학생 자녀가 3명이나 됩니다. 그 대학들이 털어갈 돈을 마련해야 합니다. 한파가 닥치면서 집안이 너무 추워서 보일러 온도를 올렸다가 아내와 다투었습니다. 아내는 인상된 가스 값에 신경이 예민해졌습니다. 시장 본 지도 오래됐습니다. 가슴 통증과 오한 몸살을 눌러 참다가 한 달 월급 가량의 돈을 병원비로 까먹고 말았습니다. 마이너스 통장은 바닥을 보이고 있습니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었습니다. 인간의 존엄성을 짓밟는 권력에 맞서기도 했습니다. 가난한 이웃과 밥을 나누는 게 인간이 도리라고 믿었습니다. 투표권이 주어진 이후 모든 선거에서 한 번도 빼먹지 않고 주권을 행사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은 희망차거나 기쁘지 아니하고 사채업자처럼 서민의 삶을 벼랑 끝으로 내몹니다. 아비로서 가장으로서 최선을 다하고 싶었는데 힘이 부칩니다. 갈수록 세상은 무섭고 삶은 불안합니다.

지금이 시민정치혁명의 파종기입니까?

남민전 전사?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전사의 모습은커녕 시골학교 국어선생의 순박함을 읽었다.
 남민전 전사?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전사의 모습은커녕 시골학교 국어선생의 순박함을 읽었다.
ⓒ YMCA

관련사진보기

"혼자서 조용히 숲길을 걷거나,
방에 누워서 밀린 책들을 보거나,
놀아주지 못한 아내와 아이들과 함께
하염없이 세상을 떠돌고 싶었던 그런 날들이 아주 멀리멀리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서입니다."

YMCA전국연맹 사무총장 퇴임을 끝으로 40여 년의 시민운동을 마친 당신의 계획은 이처럼 소박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지리산 피아골의 산골집도 고치고 노모와 장모님도 모셨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소박한 길을 선택하지 못하고 십자가의 길을 향해 걸어갔습니다.

문학청년시절엔 유신독재로 인해 긴급조치 위반, 민청학련과 남민전 사건 등으로 5년 넘게 옥고를 치렀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시민정치혁명의 기치를 내걸고 민주통합당 당권에 도전하고 나섰습니다.

당신은 시민운동가보다는 평화-생명사상을 품은 학(鶴)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당신의 변신에 저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놀랐습니다. 언제나 묵묵한 일원이었던 당신이 정치개혁의 주모자로 나서다니요.

남민전의 발각으로 기관원들이 덮치자 당신은 달아나기는커녕 주모자들이 달아날 수 있도록 기관원들을 맨몸으로 막아섰고 그로 인해 체포돼 모진 고문을 당했습니다. 그 후유증으로 겨울이 되면 신음을 앓으면서도 공로를 내세우거나 고문자들을 미워하지도 않는 당신, 자신은 죽고 썩어서 희망의 소산물을 보게 하는 그런 밀알이 당신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이 그때입니까? 당신이 맨몸을 던져야 하는 시민정치혁명의 파종기입니까? 그런데 하필이면 당신이 나서야 합니까?

세상의 아비어미들은 자식들에게 따뜻한 방 한 칸, 밥 한 그릇을 주기 찬바람 부는 거리와 들판을 헤매고, 자식들은 일자리가 없어 전전긍긍하고, 골목과 마을 그 어디든 근심 없는 곳이 없는 세상…. 퇴임 이후의 소박한 행복을 계획했던 당신은 도탄에 빠진 시민들의 삶을 보면서 죄스러워하고 분노했습니다. 부자와 권력자의 지배체제에서 그들의 탐욕에 짓밟힌 사람들의 꿈과 희망을 살려야 한다며 시민정치혁명의 한 복판에 뛰어들었습니다.

당신은 그 가능성과 위험성을 동시에 보고 있습니다. 이명박의 폭압정권과 한나라당의 기만정치에 분노한 청년들과 시민들이 촛불시위와 투표참여로 행동하면서 박원순 서울시장을 당선시켰습니다. 이젠 정치인들만의 정치에서 시민들이 참여하고 주도하는 시민정치혁명으로 정치와 정당을 개혁할 때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됐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많은 운동가들이 정치권력을 바꾸기 위해 나섰다가 실패했고 실망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런데 당신이 무슨 힘으로 이 무모한 과업을 해내시렵니까?

자기희생의 영성을 지지합니다!

순박한 영혼의 시인 이학영
 순박한 영혼의 시인 이학영
ⓒ YMCA

관련사진보기

"지도자란 주변 사람들을 감동시킬 수 있는 힘이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뭇사람들을 감화시켜 자기가 가고자 하는 길에 함께 갈 수 있을 터인데, 어디 그런 일이 쉽게 되겠습니까?"

당신이 밝힌 지도자 상입니다. 지도자란 공동체의 구성원을 위해 자기를 묵묵히 버리고, 자기 욕심을 버리고 헌신하는 사람이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 헌신은 자기가 섬기고자 하는 집단에 대한 측은지심에서 우러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운동가로 살아오면서 겪은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그것을 보상받고자 하는 마음이 솟구치더라도 그 욕망을 잘 견뎌내고 끝내 헌신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그런 지도자로 사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고 당신은 고백했습니다.

당신은 권력이나 권위 따위와는 전혀 상관없는 사람입니다. 운동권 의식화에 따른 평등사상 뭐 그런 것 때문이 아니라 태생 같은 게 아닐까 싶습니다. 20년 전 여수YMCA 사무총장에 부임한 당신이 한 일은 화장실 청소였습니다. 처음엔 만류하던 직원들도 곧 적응했습니다. 가식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자신을 낮추고 직원들을 섬기는 그런 거창한 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당신은 지시하거나 명령하지 않았습니다. 정확하게 표현한다면 직원에게든 누구에게든 지시하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이든 생명이든 자연이든 각자에겐 자기의 빛이 있고, 그 빛을 존중해주면 제 빛으로 서로를 아름답게 한다는 믿음을 가진 당신은 무엇을 하라든지 말라든지 하질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부임했던 여수YMCA, 순천YMCA, YMCA전국연맹은 물처럼 흐르는 원활한 조직이 됐고 일하는 사람들은 꽃처럼 피어났습니다. 특히, 전국연맹 사무총장으로 부임해선 기존 사무총장에게 주어졌던 차량과 기사를 없애고 커다란 집무실을 사무공간으로 트는 등 시골에서 써먹던 화장실 청소 리더십으로 8년간의 임기를 평안하게 마쳤습니다.

YMCA는 시민운동 조직이기도 하지만 경제인과 종교인을 비롯한 기득권층과 의사나 변호사 등 전문가 그룹들도 참여하는 다양한 구성체입니다. 그래서 시민운동 과정에서 다양한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구성원들과 종종 충돌이 벌어지는 것을 봤는데 당신은 묘한 방법으로 갈등을 풀어나갔습니다. 전쟁과 싸움, 갈등과 충돌은 욕망 간의 대립이라는 것. 당신에겐 명예, 권세, 돈, 자식에 대한 욕망이 거의 없습니다. 그러니 싸움이 되겠습니까. 나는 당신에게서 종교인 못지않은 자기희생과 겸손의 영성(靈性)을 보았습니다.

당신의 정치권 진출을 절대 지지하진 않습니다. 그것은 역사와 시대에 대한 복무기간이 충분히 끝났음에도 또 다시 희생될 당신과 가족의 삶에 대한 연민 때문입니다. 당신의 맑은 영혼마저 손상되고 오욕을 뒤집어쓰면 그 누구를 푯대로 삼으며 항해할 것인가? 하는 우려의 마음도 있습니다. 나는 당신의 자기희생과 겸손, 온유함을 통해 인간이 가야할 아름다운 길을 깨달았습니다. 생전의 노무현 대통령이 당신을 좋아했던 것도, 인사수석으로 삼으려고 했던 것도 아마 당신의 그러함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러나 당신은 이미 출사표를 던졌습니다. 그러므로 정치 사역을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욕망의 최고 도가니이자 권모술수의 한 복판인 정치권에서 이학영은 죽고 시민은 사는 십자가 정치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에 매달린 당신의 맨몸에 대못이 박혀지고 못 견딜 아픔과 피 흘림이 있어야 시민정치혁명의 전선은 살아나고 짓밟힌 시민의 꿈과 희망이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당신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십자가 사건은 좌절과 실의에 빠진 모든 사람에게 소망의 부활을 이뤘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는 죽음이 아니라 새로운 살림의 시작임을 고백합니다."

정치 그리고, 희망의 깃발

이학영을 시민정치혁명에 뛰어들게 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폭압정치이다.
 이학영을 시민정치혁명에 뛰어들게 한 것은 이명박 정부의 폭압정치이다.
ⓒ YMCA

관련사진보기


가리봉에도 겨울이 왔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겨울을 두려워합니다. 가리봉은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동네인데 그 중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은 이주노동자들과 다문화가정입니다. 그들의 불안함과 위태로움에 비하면 저의 절망과 두려움은 가짜입니다. 삶의 여유를 잃으면서 마음마저 쫄아버린 탓입니다. 이웃의 밥그릇은 어찌됐든 내 밥그릇만 챙기며 사는 인생으로 전락할까봐 무섭습니다. 

이 겨울을 이겨내려면 희망이 있어야겠습니다. 불을 지피든 피를 흘리든 좀 뜨거워져야겠습니다. 이 삭막해진 가슴으론 혁명은커녕 오는 봄도 맞이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병을 키운 것은 병균이 아니라 절망의 마음이었습니다. 당신의 시민정치혁명의 관중이 아니라 혁명의 일원인 시민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시민정치혁명군은 징집제나 모병제가 아니라 '자발적참여제'이므로 쫄았던 신명을 일으키고 희망을 깨워서 달려가겠습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내가 지지하는 것은 당신의 정치력이 아닙니다. 온 가슴으로 절대 지지하는 것은 어머니의 길을 걸어간 당신의 걸음입니다. 자식이 그리웠던 당신의 가난한 어머니는 차비를 아끼려고 그 먼 거리를 걸어가서 당신을 만났고, 그 어머니의 아들인 당신은 어머니가 걸어오신 그 힘겨운 길을 애써 따라 걸어 귀가해서 어머니의 품에 안겼습니다. 정치 신인이자 무명인 당신에겐 정치력과 자금력, 동원력이 없으며 그 따위로는 시민정치혁명은 어림도 없습니다. 헌신과 희생의 십자가를 메고 그 어머니의 길을 따라 가실 줄을 믿습니다.


태그:#이학영, #시민정치혁명, #민주통합당, #YMCA, #시인
댓글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65,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