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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로화.

유로화는 1999년에 탄생해 2002년부터 전면 통용됐다. 유로화는 지난 10년 동안 독일인의 일상생활에 깊숙이 파고들었다. 독일인들에게 유로화는 프랑스 대표적 할인 매장인 까르푸에서 자국에서 구입하듯 손쉽게 생활용품을 쇼핑할 수 있게 했고, 이탈리아 여행 때 주문한 피자 값을 환전의 불편함 없이 지불할 수 있게 했다. (한국 친구들도 유로화 하나로 유럽 여러 나라를 여행할 수 있음에 얼마나 감탄했던가!)

 

유로화가 가져온 변화는 경제면에 국한되지 않는다. 유로화가 사용되면서 문화예술인들의 교류가 활성화되고, 대학생들이 유럽 내 대학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학업을 하며, 각 나라 연구소의 인적 교류가 활발해지는 등 사회 전반에 걸쳐 변화를 가져왔다.

 

그러나 유로화가 무역, 문화·사회 교류 확대와 같은 긍정적인 효과만 가져온 것은 아니다. 문화·경제·사회적 배경이 다른 17개국이 유로존으로 묶이면서 한편으론 통합력이 높아지고 교류도 활발해졌지만, 다른 한편으론 각 나라의 경제 수준 차이, 문화·사회적 다양성을 어떻게, 어떤 수준에서 통합할 것인가라는 문제가 발생했다. 이는 현재진행형으로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는 문제다.

 

유럽 통합에 대한 기대감과 불안감

 

한쪽으론 통합의 긍정성, 다른 한쪽으론 통합의 수준과 방법을 둘러싼 위기감. 이러한 양면성은 TV나 신문 등 언론 매체의 토론이나 여론조사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파이낸셜타임스>가 2007년에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44%의 유럽인은 "유럽연합이 내 생활수준을 악화시켰다"고 대답했다. 52%의 유럽인은 "유럽연합이 생활수준을 악화시켰지만, 유럽연합이 해체된다면 더 생활수준이 악화될 것"이라고 답했다. 앞의 44%가 유럽연합에 대한 불안감을 드러냈다면, 뒤의 52%는 그래도 유럽연합이 필요하다는 심리를 보여줬다.

 

유럽연합은 '유로바로미터(EUROBAROMETER) 71' 조사를 매년 실시한다. 2009년에 실시된 이 조사에서도 비슷한 양상이 드러났다. 즉 절반가량인 46%의 독일인과 45%의 유럽인만 유럽연합에 대해 긍정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유럽연합이 아직 독일인을 비롯한 유럽인들 사이에 굳건히 뿌리내리 못했음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유럽연합이 지속적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 여전히 적지 않다는 뜻이다. 이러한 의문과 갈등은 그리스, 이탈리아, 포르투갈의 재정 위기로 인해 다른 유로존 국가들이 져야 하는 부담이 눈덩이처럼 불어나면서 더욱 확대되는 양상이다.

 

독일의 주요 방송사는 연일 유로존의 미래와 지속 가능성에 대한 찬반 토론에 대부분의 시사토론 시간을 할애하고 있다. 신문의 각 지면에서도 이 문제를 시리즈로 다루고 있다.

 

 유럽연합은 유럽 내 각국의 지리적인 국경만이 아니라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차이도 좁히고 있다. 이탈리아로 넘어가는 국경에는 관문소도 없다. 덩그러니 건물만 국경임을 표시하고 있다.

엇갈리는 재정 위기 해법... '유로존 구조 변혁' 의견도

 

보수정당인 기민당의 총수인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위기는 기회"라고 언론 매체를 통해 강조했다. 독일을 중심으로 유로존 재정 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는 것이 유럽연합의 공고화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또한 그렇게 하면, 장기적으로 유럽연합을 이끌 주축 국가로서 독일의 위상을 높일 수도 있다는 말이다.

 

산트 갈렌 대학의 쇼더린드 파울 교수 같은 경제학자들도 이에 호응하고 있다. 쇼더린드 파울 교수는 "새로운 화폐가 경제 시스템에 완전히 정착하기 위해서는 30년에서 60년이 걸린다"고 주장했다. 쇼더린드 파울 교수는 이처럼 유로화 위기를 화폐 정착 과정으로 분석하며 메르켈 총리의 정치적 견해를 뒷받침하고 있다.

 

 요슈카 피셔.

이와 다른 의견도 만만치 않다. 대표적인 인물이 녹색당 출신으로 슈뢰더 정부에서 외무장관을 맡았던 요슈카 피셔다. 요슈카 피셔는 그리스 위기가 유럽 전역에 불안감을 조성하던 11월 9일, <디 자이트>에 "유럽연합에 속한 27개 국가가 공동의 개혁을 함께할 것이라고 믿지 않는다"며 "미래의 유럽은 17개국의 변형된 유럽연합이어야 하며 아방가르드적 사고 전환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요슈카 피셔는 지금처럼 유럽연합과 별개로 각국 국회가 예산을 심의하고 의결하면 그리스나 다른 재정 위기 국가처럼 막대한 국가 부채가 생기는 것을 막을 길이 없기 때문에 유럽연합의 구조를 바꾸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각국 국회와 유럽연합을 지자체와 중앙정부의 관계처럼 바꿔야 한다는 말이다. 한쪽에서는 각국 국회가 국민의 대표 역할을 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럽연합이 정책을 관철할 수 있는 구조로 바꿔야만 진정한 유럽통합을 이룰 수 있다는 주장이다.

 

요슈카 피셔는 유로화를 매개로 한 경제 통합만이 아닌 정치 차원까지 통합해야만 아일랜드, 그리스, 포르투갈을 넘어 이탈리아까지 번진 재정 위기를 근본적으로 조절하고 방지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런 견해가 나오는 것은 유로존 재정 위기로 독일이 부담해야 하는 액수가 천문학적으로 늘어나면서 독일인의 불만이 커지는 상황과 관련 있다(<술은 '피그'가 마시고 돈은 독일이 낸다?> 참조).

 

"유로존 재정 위기 악순환 막아야"

 

엔지니어로서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는 람베르트 에디는 "왜 독일인이 다른 나라 사람들의 게으름과 부정부패까지 뒤처리해야 하는가? 유럽연합이라는 정치적 대의를 위해 독일이 일방적으로 부담을 떠안아야 하는 것은 공정하지 않다"고 말했다. 독일이 유럽연합을 지속시키기 위해 감당해야 하는 재정 지출이 불만스럽다는 반응이다.

 

그리스와 같은 재정 불량 국가들이 유럽연합을 탈퇴하고 연이은 도미노 현상으로 유럽연합이 해체될 수도 있다는 우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해 람베르트 에디는 유럽연합의 구조 변화 필요성을 강조한 요슈카 피셔의 생각에 동의하며 이렇게 말했다.

 

"물론 유럽연합이 해체되는 것은 최대한 막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구조에서는 그리스 같은 부채 국가가 또 생기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지 않나. 유럽연합의 존속을 위한 지원만 중요한 게 아니다. 악순환이 되풀이되지 않게 할 구조 변화가 전제되어야 한다. 나는 경제 전문가가 아니기 때문에 잘 모르지만, 그리스가 유로화를 폐기하고 드라크마(예전 그리스 화폐)로 돌아가는 것이 유로존과 그리스에 경제적으로 도움이 되는지를 합리적으로 따져봐야 한다."

 

독일인들은 '유럽연합 해체'라는 극단적 선택보다는, 회원국의 재정 위기를 사전에 방지하고 규제할 수 있도록 유럽연합의 구조를 바꿀 것을 요구하는 이러한 견해에 더 호응하고 있다. 그러나 정치적으로 느슨한 결합체인 유럽연합이 회원국의 예산 관련 권한을 규제·조절하기 위해서는, 회원국이 주권의 일부를 유럽연합에 이양해야 한다. 이는 회원국 주권 침해 논란을 불러올 뿐만 아니라 국민투표로 결정해야 하는 사안이기 때문에 유럽연합 내에 또 다른 갈등과 논쟁을 불러일으킬 가능성이 있다.

 

독일은 왜 재정 부담을 감수하며 유로화를 지키려 할까

 

 유럽 평화를 위해 유럽연합의 존재 의미가 크다고 강조하는 사회복지사 루찌 수산네.

유로존 재정 위기에 관한 기사를 준비하면서 제일 궁금했던 것은 왜 독일인들은 자신들의 세금으로 지출되어야 하는 커다란 재정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유로화를 지키려 할까였다. 주변 독일인들에게 물었다. "여행과 지출의 편리성" 등 실생활에서 피부로 느끼는 장점을 드는 이들이 많았다. 이와 함께 사회복지사로 일하는 루찌 수산네처럼 "유럽 대륙은 그동안 역사적으로 전쟁이 끊이지 않은 곳이다. 그런 면에서 유럽연합은 나에게 유럽의 평화를 위해 중요하다"고 답하는 이도 적지 않았다.

 

독일인들의 이러한 인식은 '유로바로미터 71' 조사에서도 비슷하게 드러난다. '개인적으로 유럽연합이 왜 중요하고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하는가?'라는 '유로바로미터 71' 설문에 독일인의 47%와 유럽인의 42%가 '자유롭고 제한 없는 유럽 여행과 구직' 때문이라고 답했다. 또한 독일인의 43%와 유럽인의 25%가 유럽 평화 유지에 유럽연합의 의미를 두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와 반대로 유럽연합의 부정적 측면으로 독일인의 34%와 유럽인의 20%가 재정 낭비를 꼽았다. 독일인의 20%와 유럽인 11%는 범죄 증가를 부정적 측면으로 거론했다.

 

유럽연합을 통해 얻은 경제적 이익도 독일이 재정 부담을 지면서까지 유럽연합을 지키려 하는 중요한 요소다. 유럽연합은 독일에 실질적인 무역 흑자 확대 효과를 안겨줬다. 유럽연합 특히 유로존 내부의 무역이 활발해지면서 독일은 1990년부터 1998년까지 매년 3% 이상, 1999년부터 2003년까지 매년 6.5%, 그 후 매년 9% 이상 유럽연합 회원국에 대한 수출을 늘렸다. 수출 중심인 독일 경제가 실질적인 경제 블록인 유로존을 통해 활력을 얻었다는 뜻이다.

 

세계 경제를 위협하고 한국에도 많은 영향을 끼치고 있는 유로존 재정 위기는 현재진행형이다. 누구도 명확한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위기가 곧 기회이고 위기 없는 발전은 없다며 독일이 재정 부담을 감당해야 함을 호소하는 메르켈 총리의 주장도, 정치 통합까지 주장하는 요슈카 피셔의 '유로존 구조 변환' 주장도 아직까지는 다른 쪽을 압도하지 못하고 있다.

 

기사를 준비하며 독일 사회에서 각종 언론 매체, 지식인, 정치인은 물론 일반 국민까지 유로존 재정 위기에 대해 열띤 토론과 논쟁을 벌이는 모습을 봤다. 위기가 발전의 밑받침이 될 것인지 아니면 후퇴를 불러올지는 대처 과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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