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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초구의회 야당 의원 4명이 18일 오전 구의회 본회의장에서 2차 정례회를 앞두고 의장석을 점거해 손팻말을 들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 "이제 그만, 일 좀 하자" 서초구의회 야당 의원 4명이 18일 오전 구의회 본회의장에서 2차 정례회를 앞두고 의장석을 점거해 손팻말을 들며 침묵시위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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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서초구가 요즘 시끄럽다.

지난 3월 서초동 사랑의 교회 공공도로 지하 사용 특혜 의혹을 시작으로 같은 달 정보사 부지 군인아파트 거짓 해명 논란, 4월 서초동 마권장외발매소 취소에 따른 한국마사회와 소송, 7월 서초동 우면산 산사태, 10월 내곡동 이명박 대통령 사저와 테니스장 의혹, 11월 양재동 구민회관 재건축 문제 등 신문 1면을 장식할 만한 굵직한 사건이 끊이지 않고 있다. 관할 자치단체인 서초구청은 물론 이를 견제해야 할 서초구의회가 제구실을 못하고 있다는 말이 그래서 나온다.

서초구는 한나라당 텃밭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국회의원 2명과 시의원 4명은 물론 구청장도 한나라당 소속이다. 서초구의회는 모두 15석 가운데 과반이 넘는 10석을 한나라당이 차지하고 있다. 구의회에서 야당은 민주당 4석, 국민참여당은 1석으로 고작 5석에 불과하다. 여당인 한나라당이 마음만 먹는다면 야당을 유명무실하게 만들 수 있는 구도다.

이런 서초구가 구청도 모자라 구의회 내부까지 파열음이 나오고 있다. 서초구의회 윤리특별위원회(윤리특위)는 16일 김학진 의원(한나라당)을 혐의 없음으로 처리하는 대신, 이진규 의원(민주당)과 황일근 의원(국민참여당)을 각각 30일 출석정지 징계(찬성6, 반대3) 처리했다. 이 의원은 김 의원의 결산 검사 태만을 지적해 징계를 요구한 일, 황 의원은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 반대 의원 연락처를 인터넷에 올린 일이 죄로 둔갑했다.

징계를 받은 두 의원은 여당인 한나라당의 횡포가 지나치다고 입을 모은다. 이번 일이 논란이 될 수는 있지만 의회 출석을 못하게 할 징계감은 아니라는 게 그들의 주장이다. 2차 정례회에 들어간 서초구의회는 올해 의사일정 중 가장 중요하다 할 수 있는 행정사무감사와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를 앞두고 있다. 두 의원이 30일 출석정지를 당하면 몇 명 되지 않는 야당 의원들의 발언권은 더욱 약해질 수밖에 없다.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단체 소속 20여 명이 18일 오전 서초구의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오른손을 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 "징계 철회하라"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단체 소속 20여 명이 18일 오전 서초구의회 본회의장 입구에서 항의 기자회견을 열고 오른손을 들며 결의를 다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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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고비는 넘겼다. 18일 서초구의회 2차 정례회 1차 본회의에서 징계안에 대한 보류동의안이 통과되면서다. 이 회의를 앞두고 야당 의원 4명은 회의장 안에서 의장석을 점거해 침묵 시위를 벌여야 했다.

회의장 입구에서는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민주당·민주노동당·시민단체 소속 20여 명이 항의 기자회견을 열면서 한때 긴장감이 돌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정왕룡 국민참여당 부설 참여정책연구원 지방자치지원센터장(전 김포시의원)은 "만약 징계가 이뤄지면 한국 지방자치사에 길이 남을 치욕적인 일이 될 것"이라고 힘줘 말했다.

아직 징계를 완전히 거둬들인 건 아니다. 징계를 잠시 멈추는 보류안을 처리해 언제 다시 의회 출석정지 명령이 떨어질지 모른다. 30일 예정된 2차 본회의에서 징계안이 다시 올라올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오는 30일 출석정지 징계를 받을 위기에 놓인 황일근(40) 의원을 행정사무감사를 앞둔 주말인 20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초구의회 의원 사무실에서 만났다. 다음은 황 의원과 나눈 일문일답.

황일근 서초구의원이 18일 오전 서초구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잠시 발언하고 있다.
▲ "안타깝습니다" 황일근 서초구의원이 18일 오전 서초구의회 본회의장 앞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잠시 발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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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징계 보류안이 1차 본회의를 통과했다.
"징계안이 처리되나 싶었는데 의원 간담회 끝에 보류안이 나왔다. 국민참여당을 중심으로 야당과 시민단체의 많은 분들이 기자회견에 나와 힘을 주신 덕분이다. 감사하게 생각한다. 동료 의원들을 믿고 있지만 아직 다 끝난 게 아니다."

- 징계 가능성이 여전히 있다는 말로 들리는데.
"본회의에서 보류안을 채택한 건 징계를 하지 않겠다는 게 아니라 징계안을 잠시 덮어두겠다는 뜻이다. 행정사무감사가 끝나고 30일 2차 본회의나 12월 1일 3차 본회의에서 징계안을 다시 기습 상정할 수도 있다. 일단 상정하면 다수당인 한나라당의 의견에 따라 징계안이 통과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 30일 출석정지는 상당히 무거운 징계 아닌가.

"구의회에서는 제명 다음으로 무거운 징계다. 원래 제명까지도 생각하고 있었고 실제로 그렇게 논의가 된 것으로 알고 있다. 늘 구정에 대해 문제를 제기해 이제 눈엣가시가 됐으니 어쩌면 30일 출석정지 처분을 다행스럽게 생각해야 할 것 같다. 그런데 시기가 묘하다. 지금은 1년 중 가장 중요한 행정사무감사와 예결특위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다. 구의원의 가장 중요한 권리인 예산심의권을 박탈하겠다는 의도가 엿보인다."

- 어떤 일로 징계를 받은 건지 궁금하다.
"친환경 무상급식 조례안에 반대하는 의원들 연락처를 게시판에 올려 의원품위유지 의무를 위반했다는 게 이유다. 누군가가 '통과가 되지 않으면 다음 선거에서 두고 봅시다'라는 문자를 보낸 모양이다. 그런데 이 글은 민주당을 포함해 야4당과 시민단체가 함께 작성해서 각각 게시판에 올린 내용이다. 그렇다면 민주당 의원에게도 똑같은 잣대를 적용해야 하지 않나. 유독 국민참여당 의원에게 징계를 내리려는 건 소수 야당에 대한 탄압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내가 올린 글을 보고 문자를 보냈다는 증거도 없다."

- 그래도 문자를 받은 의원들이 언짢았다면 사과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의원 연락처는 비밀이 아니라 의회 홈페이지에 올라와 모두에게 공개돼 있다. 그래도 '개인적으로 그런 문자를 받은 부분에 대해 미안하게 생각하고 앞으로 그런 일이 없도록 하겠다'고 다섯 차례나 말했다. 이만하면 양보할 만큼 한 게 아닌가. 더구나 서울시장이 바뀌면서 무상급식 반대는 이제 '없던 일'처럼 넘어가게 됐다. 하지만 한나라당 의원들은 끝까지 공개사과를 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응할 수 없다. 혼자 벌인 일이 아니고 공개사과를 할 일은 더욱 아니라는 생각에서다. 지적도 징계도 요구도 상식적이어야 받아들일 수 있다."

- 초선 의원으로 알고 있다. 1년간 겪어본 의회 분위기도 상식적이지 않았나.
"구의회가 한나라당 일색이다 보니 대화와 타협이라는 토론 문화에 익숙하지 않다. 힘이 곧 정의라는 말이 지나치지 않을 정도다. 구청도 그런 분위기에 휩쓸려 관성대로 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처음 의회에 들어왔을 때 좋은 안건이라면 당적을 초월해 동의해 줄 것으로 믿었는데 이제 와서 보니 내가 너무 순진했던 것 같다. 좋은 제안이라며 찬성하겠다고 말하던 의원이 30분 뒤 표결에서 반대표를 던지는 것도 봤다."

- 진보 성향이라서 더 힘들 게 느끼고 있는 건 아닌가.
"난 진보적인 사람이 아니다. 일을 상식선에서 판단하면서 의정활동을 하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기본적인 상식조차도 통하지 않을 때가 너무 많아 안타깝다."

황일근 서초구의원이 20일 서울 서초동 서초구의회 의원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초구 현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 "서초구, 정말 심각하죠" 황일근 서초구의원이 20일 서울 서초동 서초구의회 의원 사무실에서 진행한 인터뷰에서 심각한 표정으로 서초구 현안에 대해 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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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 가지 예를 든다면.
"지난해 동료 의원 한 명과 9박 10일 일정으로 미국 캘리포니아주 얼바인시로 떠났다. 25달러(약 2만8500원) 정도 드는 여관을 이용하고 차량을 빌리는 등 꼼꼼하게 도시를 누비고 기반시설을 살피며 해외비교시찰비 187만 원으로 알찬 해외연수를 다녀왔다. 그런데 한나라당 의원들이 다 같이 가지 않았다며 비용 승인을 못해주겠다고 나와 행정 소송까지 간 상태다. 이번 징계도 어이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한 술 더 떠 밥 먹는 것까지 표결에 붙이기도 했다. 억지로 끌려가기 싫은 야당 의원들은 구내식당으로 피해 식사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 그 정도로 심각하던가.
"지난해부터 다수를 차지한 한나라당은 각종 위원회에서 위원장 자리 하나 야당에게 주지 않았다. 조례안도 여당 의원이 발의하면 무사 통과였고, 야당 의원이 발의하면 그대로 통과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다. 여당에서 수정해 누더기로 통과시키거나 아예 보류하거나 부결시키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러면서도 '야당 의원들에게 끌려가지 않겠다'고 말하는 걸 보면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 근본적인 문제가 무엇이라고 보나.
"공천 방식 때문이다. 하향식 공천으로 의회에 들어온 구의원들은 자신의 뜻을 마음껏 펴기 어렵다. 서초구만 유독 문제가 터지고 수습이 잘 안 되는 이유는 이렇게 공천을 받은 의원들이 '윗선'의 지시와 간섭에서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그런 정황이 속속 포착되고 있다."

- 얼마 전 이 대통령의 내곡동 사저가 큰 화제가 됐다. 서초구 일이기도 한데.
"내곡동이 지역구라 더욱 관심을 갖고 있다. 사저 문제는 이미 취소된 데다 국회 차원에서 처리할 일이라서 크게 신경 쓰지는 않고 있다. 다만 이곳에서 1.5km 떨어지는 곳에 지어지는 테니스장은 문제가 된다. 건축비 13억 원 중 구비 8억4000만 원이 추경 편성을 통해 급하게 들어간 데다 서울시 특별교부금 4억 6000만 원이 불법 전용된 의혹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 서울시 특별교부금이 원래는 어떤 용도로 쓰일 예정이었나.
"처음에는 양재근린공원 분수화 사업으로 20억 원을 서울시에 올렸는데 이 가운데 15억 원이 양재근린공원 노후화 재정비 사업 명목으로 내려왔다. 여기서 6억 원이 양재근린공원 노후화 시설 재정비에 쓰였고 4억4000만 원이 양재근린공원 잔디교체에 쓰였다. 문제는 남은 4억6000만 원이다."

- 내곡동 테니스장에 쓰인 그 돈인가.
"그렇다. 교부금의 용도대로라면 양재근린공원에 쓰이는 게 맞다. 그러나 엉뚱하게 내곡동으로 흘러갔다. 정황상 불법 전용한 게 아닌가 싶다. 목적변경신청을 할 경우 99% 이상 통과가 된다고 하는데 그 과정이 없었다. 게다가 올해 6월과 7월 중 진행한 추경예산심사에서 담당 공무원이 서울시에 변경 허가를 받았다고 거짓 증언까지 했다. 조용히 처리하고 싶었는지 모르지만 절차를 지켰으면 될 일인데 안타깝다. 이 일은 현재 법적 대응을 검토 중이다."

황일근 서초구의원은 서초구청이 더 많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 의원은 "관련 법률을 다 뒤져 꼼꼼하게 자료 제출을 요청했는데 3분의 1밖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 부실한 자료 제출 황일근 서초구의원은 서초구청이 더 많은 자료를 공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황 의원은 "관련 법률을 다 뒤져 꼼꼼하게 자료 제출을 요청했는데 3분의 1밖에 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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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른 심각한 일도 있다고 들었는데.
"가장 큰 문제로 초호화 구민회관 재건축을 들 수 있다. 서초구는 올해 세수가 610억 원이나 줄었는데도 2100억 원짜리 새 사업을 벌이겠다고 한다. 지은 지 20년 된 구민회관이 내진 설계가 반영되지 않아 위험하다는 게 그 이유다. 전문가에게 확인해보니 보강 공사에 40억 원만 들이면 된다고 하더라. 조례안을 바꾸면서까지 추진하려고 하는 이유가 궁금하다. 이 일에 누군가가 개입했다는 말도 돈다."

- 서초구 1년 예산이 3140억 원이라고 들었다. 2100억 원짜리 사업을 추진할 여력이 있나.
"서초구는 청사건립기금 840억 원과 주차특별회계 360억 원을 들이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10년 동안 모은 1100억 원을 한 번에 다 까먹겠다는 것이다. 1100억 원은 1년에 이자만 45억 원씩 나온다. 구에서 자유롭게 쓸 수 있는 1년 예산이 200~300억 원 규모라는 걸 생각해보면 상당히 큰돈이다. 그러면서 1000억 원의 부지매입비는 서울시 체비지라 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 지자체에서 기금에 손을 대는 일은 웬만하면 없는 일인데.
"기금도 기금이지만 확인 결과 부지매입도 구 예산으로 2014년까지 단계적으로 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그렇다면 막대한 돈이 더 필요하다는 계산이 나온다. 18일 공유재산관리계획안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여전히 의석수를 앞세워 처리될 가능성이 있다. 야당 의원 수가 너무 적어 표결에서 막지 못하니 정말 안타깝다."

- 앞으로 어떻게 대응할 생각인가.
"지난해 예결특위가 여당 5명, 야당 4명으로 이뤄졌는데 야당 의원 전원이 불만을 품고 사임했다. 사실상 한나라당 의원 5명이 1년 예산을 심의한 것이다. 올해도 그 전철을 밟아선 안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행정사무감사 준비를 철저히 하고 예결특위도 반드시 들어가겠다. 구청에 자료도 지난해보다 훨씬 많이 요청해 놓은 상태다. 사실 대단한 것을 하자는 게 아니다. 일을 하자, 그리고 할 거면 좀 제대로 하자는 것이다. 이제 서초구청과 서초구의회 모두 변해야 한다. 최소한의 상식도 없이 힘의 논리로 징계가 이뤄져 내년 예산안 심사를 하지 못하게 된다면 서초구 주민들을 뵙기가 정말 부끄러울 것 같다."


태그:#황일근, #서초구, #서초구의회, #국민참여당, #내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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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동작구위원장. 전 스포츠2.0 프로야구 담당기자. 잡다한 것들에 관심이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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