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신경계를 통합하는 최고의 중추 뇌. 작은 충격만으로도 생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민감하지만 무게는 1.4kg에 불과하다. 지난 14일 국내 최초로 뇌 과학을 소재로 한 드라마가 방영됐다. KBS 2TV 새 월화드라마 <브레인>은 성공에 집착하는 젊은 의사 이강훈(신하균 분)을 중심으로 한 이야기라는 점에서 많은 사람이 MBC <하얀거탑>과 장준혁(김명민 분)을 떠올렸다. 주요 배경이 일반외과에서 신경외과로 이동하면서, 의학 드라마에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수술 장면이 뇌를 대상으로 한다는 점에서 좀 더 자극적이고 신선하다는 차이점이 있다. 이강훈 라인의 <브레인>과 장준혁 라인의 <하얀거탑>을 비교해보자.

 KBS 새 월화드라마 <브레인>과 종영한 MBC 의학드라마 <하얀거탑>.

KBS 새 월화드라마 <브레인>과 종영한 MBC 의학드라마 <하얀거탑>. ⓒ MBC, KBS


용서받을 수 있는 악인인가

이강훈은 촉망받는 신경외과 전임의지만 집안이 가난하다는 자격지심 때문에 성공에 집착한다. 마음을 움직이는 유일한 장기인 뇌 치료 분야에서 대단한 실력을 갖췄지만 정작 환자와 자신의 마음속 병을 고칠 줄 모르는 의사인 셈이다. 야망과 권력에 눈멀어 의사로서의 본분을 망각하지만, 나름의 철두철미함과 강박증으로 흠 없는 전문의를 추구하는 모습들은 <하얀거탑> 장준혁을 떠올리기 충분하다.

두 사람에겐 아들의 성공을 위해 헌신적으로 뒷바라지한 어머니가 있다는 점도 닮았다. 비뚤어진 욕망의 근원에는 남루한 어머니가 있지만, 이를 대하는 태도는 다르다. 장준혁이 희생적인 어머니와 가족들에 대한 연민과 애처로움 때문에 성공에 집착했다면, 이강훈은 자신의 성공에 도움이 되지 않는 가족을 오히려 외면한다. 이 지점에서 같은 악역이지만 시청자의 공감과 태도 역시 나뉜다. 악행의 동기 측면에서 장준혁이 용서받을 수 있는 악인이었다면, 지금까지 드러난 이강훈은 아니다.

 <브레인>에서 이강훈은 성공에 눈 먼 신경외과의사다.

<브레인>에서 이강훈은 성공에 눈 먼 신경외과의사다. ⓒ KBS



 <하얀거탑>에서 성공에 집착하던 외과의 장준혁은 드라마 후반부에서 의사 본연의 역할을 깨닫는다

<하얀거탑>에서 성공에 집착하던 외과의 장준혁은 드라마 후반부에서 의사 본연의 역할을 깨닫는다 ⓒ MBC


성공을 위해서라면 우리도 변할 수 있다는 설득력

이런 차이는 두 드라마의 결말에서 서로 다른 효과를 발휘한다. <하얀거탑>에서 성공에 대한 욕망에 사로잡힌 주인공이 제대로 된 의사로 변모하는 계기가 장준혁 본인의 파괴라면, <브레인> 이강훈에게는 어머니의 상실이다. 드라마 후반부 장준혁은 치료불능 상태의 암을 선고받으면서 악역이지만 그의 삶에 일정부분 공감하고 동조했던 시청자가 마지막까지 감정이입하도록 했다. 장준혁의 멸망이 권선징악의 결말이라기보단 그의 '어쩔 수 없었던 악행'에 대한 면죄부 역할을 하는 셈이다. 죽음을 앞둔 쓸쓸한 그의 모습에서 시청자는 오히려 연민을 느낀다.

 KBS 새 월와 드라마 <브레인>

KBS 새 월와 드라마 <브레인> ⓒ KBS


반면 <브레인>은 이강훈의 어머니 김순임이 뇌 질환에 걸리면서 진정한 의사로 거듭나는 것으로 예고되어 있다. 어머니 대한 미안함과 후회를 극대화하는 효과를 위해서라도 설정상 지금의 이강훈은 가족을 '더 매몰차게' 외면해야 할 필요가 있다. 다만 어머니의 상실이 의사 이강훈의 터닝포인트라는 설득력을 갖기 위해선 좀 더 세밀한 장치가 필요하다. 1, 2회에서 막연하게 드러난 것처럼 단순히 자신의 성공과 체면에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유로 가족을 외면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이강훈의 내면에 어머니의 존재감이 좀 더 세밀하게 표현될 필요가 있으며, 그럼에도 어머니를 박대할 수밖에 없는 결정적 무엇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그의 뼈저린 후회에 시청자가 공감하고 이를 계기로 변화한다는 줄거리가 매끄러워질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야 단순히 '수치'의 대상으로만 여긴 어머니를 잃는 것이 이강훈에게 뭐 대수겠는가.

멘토의 역할이 막중하다

"저의 진단은 틀리지 않았다는 걸 알아주셨으면 좋겠습니다."
"틀리지 않은 진단이라는 건 없어."

이강훈과 뚜렷한 대립각을 세우는 인물은 신경외과 최고 권위자 김상철 교수(정진영 분)다. 그는 강훈과 끊임없이 부딪히며 결국 '왜 의사가 되려고 했나?'라는 근원적인 질문에 스스로 답하도록 하는 주요 축이다. <브레인>의 중심은 이강훈이지만 <브레인>이 던지려고 하는 메시지의 중심은 김상철 교수에게 있다. 뇌를 치료하는 것이 곧 마음의 병을 치료하는 것이라는 신경외과의 철학을 대변하는 인물이자, 뇌 의학에서의 실력과 달리 자신의 마음을 돌볼 줄 모르는 이강훈을 변화시킬 임무를 가지고 설정된 캐릭터다.

 <브레인>주인공들.

<브레인>주인공들. ⓒ KBS


우리가 왜 성공에 대한 욕망에만 휘둘려선 안 되는지 김상철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한다면 이강훈 뿐만 아니라 시청자 모두의 공감을 잃게 된다. "이 바닥이 실력만으로 돼?"라고 반문하면서도 "내 힘으로 달려서 나한테 맞는 날개를 고를 겁니다"라고 말하는 이강훈의 모습에서 시청자는 완전한 선인도, 악인도 아닌 우리 모두의 모습을 본다.

결국 <브레인>과 <하얀거탑>은 의학을 소재로 한 전문 드라마로 최대한 리얼리티를 살려 새로운 볼거리를 제시하지만 이는 도구일 뿐, 근원적인 질문은 다른 드라마와 궤를 같이한다. 사람 속에서 사람답게 살아가는 것이란 도대체 무엇일까.

 <브레인>은 인간 신경계를 통합하는 최고 중추인 뇌를 다루는 신경외과의 이야기다.

<브레인>은 인간 신경계를 통합하는 최고 중추인 뇌를 다루는 신경외과의 이야기다. ⓒ KBS


15일 '2014 FIFA 브라질 월드컵 3차 예선경기' 중계가 편성돼, 14일 1, 2회를 연이어 방영한 <브레인>은 8.6%(AGB닐슨미디어리서치 전국 기준)의 시청률을 기록했다. 월화 드라마 최강자로 꼽히던 SBS <천일의 약속> 16.2%에 비하면 아직 역부족이지만, 이 역시 지난주 19.2% 시청률보다 3.0%P 하락한 수치인 점을 미뤄본다면 승산이 있다. 연일 화제가 되고 있던 <천일의 약속>이 비련의 여 주인공과 남자 주인공이 재회하면서 이제 남은 것은 시한부 사랑의 '비극'뿐이라는 판단 때문인지 이탈한 시청자의 폭이 작지 않다.

<브레인>의 이강혁이 제2의 장준혁이 될 수 있을지는 좀 더 두고 봐야 하지만, <하얀거탑>의 영광을 누리려면 악인 장준혁에게 공감할 수 있었던 동기가 이강혁에게도 필요한 것만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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