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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민일보> 지면에 실린 아웅산 수지의 연설 모습.
 <국민일보> 지면에 실린 아웅산 수지의 연설 모습.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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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나의 포착과 긴 여운의 직업을 위해

2010년 11월 11일은 미얀마 국민에게 역사적인 날이다. 군부정권에 가택연금당한 민주운동가 아웅산 수지(수치) 여사가 풀려났기 때문이다. 미얀마인들의 존경을 한몸에 받은 국부 아웅산의 딸로 태어나 민주화의 상징이 된 이래 15년간 세상과 단절된 뒤였다. 세계적인 통신사와 언론사의 사진기자들은 세상에 다시 얼굴을 내민 그녀의 모습을 찍어 전 세계에 알렸다. 하지만 <국민일보>의 미얀마 르포기사(11월 18일)에는 한국의 한 대학생이 찍은 사진이 실렸다.

 세계적인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를 꿈꾸는 김성광씨. 그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인터뷰 사진 촬영에 응했다.
 세계적인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를 꿈꾸는 김성광씨. 그도 카메라를 내려놓고 인터뷰 사진 촬영에 응했다.
ⓒ 임희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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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랜서 기자 김성광'. 사진 아래 조그맣게 나온 그의 이름 석자는 당시 긴박했던 순간만큼 짧았다. 그리고 그는 이내 사진이 내뿜는 강렬한 상징성에 가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수지 여사의 사진이 던지는 민주화의 메시지는 민주화 이후에도 여전히 억압과 어려운 현실에 좌절하고 있는 누군가에게 희망의 불씨가 되었으리라.

'88만원 세대', '청년 이태백'(이십대 태반이 백수)이라 불리는 한국의 20대. 김성광(26·경희대 연극영화 3)씨는 아직도 대학생이지만 그들의 처지에 동질감을 느낀다. 대입 재수와 입학 후 전과, 그리고 늦어진 졸업 등은 방황하는 한국 청년들이 살아가는 궤적이다.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의 불안정한 진로 또한 간판을 중시하는 한국 사회에서 '이단아'로 비춰질지 모른다. 하지만 대다수 청년들이 토익과 자격증 등 '취업 스펙' 올리기에 지쳐 있을 때, 그는 카메라 장비만 메고 미국과 멕시코, 미얀마, 태국, 중국, 일본 등의 오지와 현장들을 누비고 다녔다. 그의 내면에서 타오르는 열정을 불사르기 위해.

기성언론이 잘 가지 않는 세계가 내 취재지역

 중국 탄광에서 노동을 하다 양팔이 절단된 청년노동자 류펑씨.
 중국 탄광에서 노동을 하다 양팔이 절단된 청년노동자 류펑씨.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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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대 근처 조용한 커피가게에서 그를 만났다. 얼마 전 중국을 다녀와 촬영한 사진들을 중국인 유학생 유검남(22)씨와 함께 편집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컴퓨터 화면에는 탄광에서 일하다가 두 팔을 잃은 청년노동자 류펑(27)씨가 변변치 않은 생활수당으로 어렵게 살아가는 장면들이 담겨 있었다.

갖고 있는 '스펙'이라고는 일반인도 쉽게 딸 수 있는 사진기능사와 컴퓨터그래픽운용기능사 단 두 개뿐. 하지만 그의 두 눈동자에는 힘든 세상을 직접 체득한 뒤에야 느낄 수 있는 감성의 잔상들이 뚜렷이 비춰졌다.

김성광씨는 멕시코 마약 루트, 군사독재 국가인 미얀마, 결핵 환자들로 가득한 캄보디아 병원, 그리고 최근에는 원전 피해지역인 일본 토호쿠 등 한국의 기성언론들이 들어가기 위험한 지역을 드나들며, 소외된 '타인의 고통'을 이해하고자 사진을 찍어왔다.

그가 찍은 사진들은 신문지면에도 종종 실린다. 앞서 언급한 수지 여사 관련 사진 외에도 스페인 최대 주간지 <엘세메날(XL Semanal)>에는 한국 학생의 일상을 담은 르포르타지, 대한결핵협회에서 발행하는 <보건세계>에는 캄보디아 결핵 실태 관련 사진들이 실렸다.

특히 캄보디아 결핵 실태 관련 사진은 <중앙일보>와 캐논코리아가 공동 주최한 '제8회 대학생 기획·탐사 보도사진 공모전'에서 대상을 받았다.

다음은 프리랜서 사진기자 김성광씨와 나눈 일문일답.

프리랜서는 영혼이 자유로운 직업

- 우선 프리랜서 포토저널리스트의 꿈을 키우게 된 계기부터 말해달라.
"정말 우연히 시작하게 되었다. 대학 1학년 때 학보사 '펜 기자'였는데 모교의 한의학 박람회를 취재하다가 만져본 공용 사진기가 무척 탐났다. 교회에서 받은 장학금 60만 원을 몽땅 털어 기본형 사진기를 마련했고, 처음에는 어설프게 밤하늘이나 노을 등 풍경을 주로 찍어댔다. 그러다가 2010년 초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보내던 중 아이티 대지진 소식을 듣게 되었다. 그때 전 세계 언론사에 사진을 공급하는 '게티 이미지'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 사진들을 보면서 깨달음이 있었다. '아! 바로 저거다. 내가 찍어야 될 장면이 풍경이나 자연이 아닌 현장에 직접 찾아가 타인의 고통을 함께 느낄 수 있는 그런 저널리스트가 돼야겠다.' 그 후 미국 미주리 대학에서 포트폴리오 리뷰를 받기도 했다. 또 멕시코에서 작년에만 2400여 명이 마약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듣고 사우디 후아레즈라는 악명 높은 분쟁지역에 들어가 그곳 주민들의 애환을 사진에 담았다. 첫 포트폴리오 작품이었다."

- 촬영 기법은 어디서 배웠는가?
"아마추어이기에 더욱 전문적인 스승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세계적으로 저명한 프리랜서 저널리스트들의 이메일 주소를 샅샅이 찾아내 100통 이상 메일을 보냈다. 사진 기술을 배우고 싶다고 했더니 여성 프리랜서 저널리스트이자 세계적인 사진대회에서 수 차례 입상한 정은진 기자한테서 의미심장한 답신이 왔다. 성광씨가 이 일을 하고자 하는 이유를 알고 싶다고."

- 그래서 어떻게 대답했나?
"사진 저널리스트로서 공과 사, 두 가지 역할을 하고 싶은데 전자는 역사를 기록하는 사진가가 되고 싶어서, 후자는 타인의 고통을 현장에서 직접 느끼고 싶어서라고 답했다. 이후 블룸버그사에서 취재보조를 하며 그녀로부터 전수받은 노하우와 경험은 매우 값진 것이었다. 통신사가 찍는 사진은 어떤 것인가에서부터 차근차근 가르침을 받았다. 자기는 '날로 부려먹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며 일을 받게 되면 100달러씩 받으며 배웠다. '앙코르(Ancor) 포토워크숍'에서는 올리비에 전 에이피(AP) 포토에디터를 소개해주었는데 그분의 지도를 받아 찍게 된 것이 바로 이번 <중앙일보> 탐사보도 사진전의 대상작이다."

 <중앙일보> 대학생 탐사보도사진전 대상작. 캄보디아 결핵 환자의 실태를 잘 담아내고 있다.
 <중앙일보> 대학생 탐사보도사진전 대상작. 캄보디아 결핵 환자의 실태를 잘 담아내고 있다.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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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웅산 수지를 촬영하게 된 계기는?
"프랑스 정부가 후원하는 앙코르(Angkor) 포토워크숍은 매년 아시아에서 사진작가 30명을 초청한다. 한국인으로는 유일하게 뽑혔다. 캄보디아에서 개최되었는데 출국 직전 스승인 정은진 기자한테서 연락이 왔다. 20년 만에 미얀마에서 선거가 재개되는데 취재해보라는 지령이었다."

- 외신도 찍기 어려운 장면이었을 텐데, 어떻게 찍었나?
"초능력이다(웃음). (기독교를) 믿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하나님께서 내려오는 무엇(영감)이 있다. 초능력이 나올 수밖에 없다. 사실 현장에서는 힘든 점이 많다. 우선 고용한 현지인 통역이 약속 장소에 나타나지 않았다. 미얀마에는 민주화 인사들을 색출해내는 일을 맡는 붉은 견장을 단 경찰이 있다. 불순분자로 의심되는 사람들을 즉결처분할 수 있는 권한, 즉 '살인 면허'를 가진 자들이다. 아마도 가족까지 몰살당할 수 있다는 위험 때문에 통역이 몸을 사린 것 같다.

결국 택시를 타고 허둥지둥 현장으로 가야 했다. 너무 빨리 왔으면 멀리서 찍어야 했고, 늦게 왔으면 아예 들어가지도 못하는 절묘한 타이밍과 거리에서 수지 여사가 차에서 내렸다. 바로 앞에서부터 찍기 시작해 그녀의 이동거리를 쫓아가며 촬영했다. '이때 움직여야 한다'는 영감이 나를 이끌었던 셈이다. 그 찰나의 순간이 너무 기가 막혔다. 나중에는 거리가 너무 멀어져 망원렌즈가 필요했는데 미처 구비하지 못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었던 것 같다. 앞에 서 있던 사람이 망원 렌즈를 쓰길래 강렬한 눈빛으로 쏘아 뺏어서 찍었다. 그런 순간들을 돌이켜보면 말로는 설명하지 못하는 영감이 사진을 찍게 한 것 같다."

 현장에 도착한 순간 김성광씨가 찍은 수지 여사.
 현장에 도착한 순간 김성광씨가 찍은 수지 여사.
ⓒ 김성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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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운 삶, 걱정하지 않아... 믿는 자는 앞서 걱정 하지 않는다"

- 한국에서 프리랜서 기자의 삶은 생계가 어려울 수 있는데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나?
"어려운 삶은 걱정하지 않는다. 믿는 자는 앞서 걱정을 하지 않는다. 부모님도 처음에는 걱정을 많이 했다. 그런데 결국 다른 게 선교가 아니라 타인의 고통을 어루만져줄 수 있는 매개체가 된다면 굳이 반대하지 않겠다고 믿어 주셨다."

- 해외에 많이 돌아 다니는 것 같은데 혹시 집이 부유해서 가능한 것 아닌가?
"전혀 그렇지 않다. 내가 스스로 벌어서 해외 현장에 나간다. 웨딩 촬영으로 매주 들어오는 수입이 쏠쏠했다. 일본 토호쿠 원전 피해 지역 취재의 경우 200여만 원 지출을 했는데 내가 5~6개월 촬영하면서 저축한 돈이다. 해외 나가서 촬영한 사진들 중 일부는 언론사에 연락해 경비를 마련하기도 했다."

- 대학생 청년 실업 문제와 '스펙' 경쟁이라 불리는 취업 전쟁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
"자신의 전공과 관련 없는 분야까지 차별화하려는 세태가 안타까울 뿐이다. (중국 <신화통신>에 낸 자기소개서를 보여주면서) 나는 대학생이 갖춰야 할 가장 기초 '스펙'이라 할 수 있는 토익 점수도 없다. 불과 몇 달 캐나다에서 워킹 홀리데이를 보내면서 배운 '서바이벌 잉글리쉬'로 기본 대화는 한다. 현장에서 그동안 쌓아온 포트폴리오도 모두 '사진'과 관련된 것이다.

학벌은 사실 큰 의미가 없다고 본다. 하고자 하는 분야는 사진보도 쪽인데, 한국에는 전문 양성기관이 없다. 또 이 분야의 일부 외국인 사진기자들도 고졸이다. 결국 좋은 사진 저널리스트가 되기 위해서는 학벌보다는 가슴이 건강해야 할 것이다. 어두운 사진을 찍어도 약해지지 않을 열정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 앞으로 계획은?
"일에 몰입할지 전문적인 실무를 더 배우기 위해 교육기관에서 공부를 더 할지 고민 중이다. 지난번에 실무교육으로 정평 있는 미주리 저널리즘스쿨에서 개최하는 워크샵에 참가했다. 포토저널리스트로서 내게 부족한 점들을 깨닫게 해준 소중한 계기였는데 그 스쿨 교수님으로부터 입학을 권유 받았다. 내년 상반기까지는 포트폴리오를 더 쌓고 그 이후 결정할 예정이다."

소외된 현장의 아픔을 전달하고자 세계 방방곡곡을 둘러보려는 포토저널리스트 지망생 김성광씨. 안정적 일자리를 찾는 데만 골몰하는 한국의 보통 20대와는 확연히 달랐다. 불안정한 직업을 향해 전력질주하는 그의 모습은 어쩌면 '이태백'들에게 기이한 '역주행'으로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그 '역주행'이 '역발상'에 근거를 둔 것이라면 분명히 이루는 것이 있으리라. 스티브 잡스만큼은 아닐지라도.

* 김성광씨의 사진 포트폴리오는 그의 홈페이지(http://www.lightstalkers.org/flysg2
)와 페이스북(http://facebook.com/flysg2)에서 엿볼 수 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세명대 저널리즘스쿨대학원 온라인 미디어 <단비뉴스> (www.danbinews.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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