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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용카드 이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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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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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결제 안 되는데요."
"아니, 카드 결제가 왜 안 된다는 거죠?"
"카드로 결제하시려면 수수료 2~3% 부담하셔야 돼요. 일반 판매몰은 다 그래요."

'비교 사이트'를 통해 물건을 팔고 있는 주변 상인들은 하루에도 몇 번씩이나 이런 실랑이를 벌인다. 최저가로 팔면 마진(중간 이윤)이 카드 수수료만큼 남지 않기 때문에 카드결제로는 팔 수 없다는 것이 상인들의 입장이고, "카드 수수료를 소비자에게 떠넘기는 것은 불법이 아니냐"는 것은 물건을 사러온 사람들의 한결 같은 항변이다.

대부분의 손님은 카드 결제시 수수료를 부담해야 된다고 하면 발길을 돌리지만 "신고하겠다"고 언성을 높이며 싸움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종종 있다. 이렇듯 높은 마진을 취하기 힘든 온라인시장이나 도매시장, 영세상인들이 많은 업종에서는 카드 수수료 논쟁이 일상다반사로 일어나고 있다.

210만 원 카드 결제하면, 수수료만 6만6150원

내가 일하고 있는 컴퓨터 전자 상가의 카드 수수료는 매우 높은 편이다. 가장 저렴한 카드사 수수료가 2.7%나 된다. 수수료가 3%가 넘는 카드사도 많다. 지난 8월, KB카드로 300만원의 결제 대금을 받았는데, 5일 뒤 통장에 입급된 돈은 291만9000원이었다. 8만1000원이 카드 수수료였으니, 수수료율 2.7%인 셈이다.

지난 4월 210만 원을 삼성카드로 결제 받았는데 일주일 뒤 203만3850원이 입금됐다. 6만6150원이 카드 수수료로 빠져나갔으니, 수수료율은 3.2%다. 물건 100만 원어치를 팔면, 평균 3만 원을 카드 수수료로 지불한다는 이야기다.


물건을 팔 때 얼마의 마진을 낼 것인가는 상인들이 결정할 몫이지만, 카드 수수료율만 따져 봤을 때 마진이 3% 이하면 손해를 본다는 계산이 나온다. 그럼, 마진에 카드 수수료 3% 정도를 더 얹든지, 현금 판매만 고집해야 하는데, 두 경우 모두 쉽지 않다. 전자는 치열한 가격 경쟁에서 밀리고 후자는 현재의 법률상 엄연한 불법이기 때문이다.

지난 18일 음식점 업주들이 모여 카드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를 연 것도 이 때문이다. 여신금융협회 홈페이지에 게시되어 있는 일반음식점 카드 수수료는 평균 2.6%~2.7%였다. 밥값 1만 원에 260원. 월 1000만 원 매출이면 26~27만원 정도가 수수료가 빠져 나간다는 계산이다.

혹자는 1000만 원 매출에서 26~27만 원 정도의 수수료를 두고 무엇을 그리 호들갑이냐고 반문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재료값 폭등에 불경기까지 겹쳐 손님이 많이 줄어든 식당들의 절박함을 따진다면, 높은 카드 수수료는 날마다 지갑 속에서 만원짜리 지폐 한 장씩 도둑맞는 심정과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음식점 업주들이 수수료 인하를 요구하는 집회를 예고하자, 정부는 서둘러 1만 원 이하 신용카드 결제 거절 방안을 추진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반발과 식당 업주들조차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보이자, 유야무야되고 말았다.

사실, 이런 방안은 제도적 보완 없는 근시안적인 발상이다. 1만 원 이하 결제를 거부할 수 있다고 소비자가 착실히 현금 결제로 돌아설 확률은 높지 않다. 오히려 1만 원 이하 카드 결제가 가능한 식당으로 몰릴 수밖에 없다. 이런 식당은 대형 체인점이나 마진이 높은 식당일 뿐, 오히려 영세 식당은 그나마 있는 손님조차 빼앗길 수도 있다. 문제를 제대로 풀기 위해서는 카드 수수료율을 영세 상인들이 감내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추는 것과 현금 유동성을 높이는 일, 두 가지 정책이 병행되어야 한다.

신용카드사와 자영업자... 공생인가? 기생인가?

'신용카드수수료 1.5% 이하 인하''외국인 근로자 고용정책 개선(고용범위 확대)' 등을 요구하는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전국각지의 외식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신용카드수수료 1.5% 이하 인하''외국인 근로자 고용정책 개선(고용범위 확대)' 등을 요구하는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가 지난 18일 오전 서울 잠실올림픽주경기장에서 전국각지의 외식업체 관계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열리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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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할인점의 카드 수수료율은 1.5% 내외로 알려지고 있다. 이에 비해 일반 음식점 2.6% 내가 일하고 있는 컴퓨터 상가도 2.7%~3.15%로 높다. 카드 수수료율이 대형 할인점에 비해 이렇게 높아야 할 어떤 근거도 없다. 단지, 대형마트보다 매출이 적어 카드사 입장에서는 큰 고객이 아니라는 이유 뿐이다.

대형마트 등은 카드사와 협상의 대상이 될 수 있으나 영세 자영업자는 수수료율을 놓고 협상의 대상도 될 수 없다. 사실, 카드 수수료율만 놓고 보더라도 대형마트와 영세 자영업자는 출발선이 다르다. 대형마트가 낮은 카드 수수료로 상대적으로 높은 마진을 챙기면서, 카드의 각종 편의 혜택(무이자할부, 포인트 적립 등)을 무기로 소비자를 끌어 모으는데 반해, 영세 자영업자는 1만 원짜리 밥한끼, 1만 원 짜리 상품 하나에 260원 정도 돈을 세금 내듯이 꼬박 꼬박 내어야 할 뿐이다. 금융소비자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신용카드사가 가맹점으로부터 챙겨간 수수료는 7조 원으로 올해는 사상 최대치인 8조 원을 돌파할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영세 가맹점은 이래 죽으나 저래 죽으라 마찬가지다. 나 좀 살려달라"는 절규(10월19일 MBC 뉴스)가 이어지고, 폭등한 물가와 임대료·인건비 부담에 자영업 폐업이 속출하는 현실에서, 단지 돈을 대신 받아 며칠 후에 되돌려 주는 신용카드사들이 8조 원대의 사상최대 이익을 만들어 낸다는 것 자체가 1%를 배불리기 위한 99%의 희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이렇게 해놓고 영세 자영업자와 신용카드사를 공생의 관계라 할 수 있는가? 혹시 기생의 관계는 아닌가?

2003년 카드대란 이후에도 정부는 신용카드사의 탐욕을 제어하지 못했다. 신용카드는 개인 신용을 길거리 가판대에서 평가하는 것으로 발급됐으며, 지갑에 현금보다 신용카드가 많아야 잘 적응된 현대인 취급을 받았다. '아버지는 말하셨지 인생을 즐겨라'류의, 소비 문화를 부추기는 신용카드사 광고가 봇물을 이뤘다.

정부는 신용카드사의 탐욕을 제어하기보다는 오히려 부추기는 측면이 강했다. 현금, 신용카드 이중 가격제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카드를 거부하거나 이중 가격을 요구하는 행위를 신고하도록 유도했다. 탈세를 막고 세원을 투명하게 하기 위한 방안이라고는 하지만 국가가 대자본 카드사에 돈벌이 수단을 만들어주고 보호하고 있다는 지적에는 어떤 해명도 없었다.

이중 가격제 금지 조항만 해도 그렇다. 100만 원 짜리 상품을 팔아 마진 2% 남기겠다는데 수수료 3%가 들어가는 카드 결제를 법으로 강제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다. 카드 결제도 결제 수단의 한 방법이다. 판매자가 구매자에게 '외상을 줄 수 없습니다'라고 거부할 수 있듯, 3% 수수료를 당신이 부담하든지 아니면 수수료가 필요 없는 현금으로 구매하라고 권유하는 것은 판매자의 권리가 돼야 한다. 또 이런 구매 조건을 선택할 수 있는 것은 소비자가 되어야 한다.

사기업인 신용카드사와 자영업자, 판매자와 소비자의 결제 관계를 국가가 임의적으로 규정한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 국가가 무슨 권한으로 2~3%의 마진을 사기업인 카드사 수수료로 강제할 수 있다는 말인가? 세원을 투명하게 하고 탈세를 막는 것은 당연히 국가의 할 일이지만 '현금 유통은 곧 탈세'라는 시각은 자영업자 전부를 탈세자로 낙인찍는 꼴이다.

수수료율 낮추고 신용카드 권장 정책 폐기해야

지난 1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서 외식업 경영자들이 카드사들의 신용카드수수료율 1.5% 이하 인하를 촉구하며 솥단지에 신용카드를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지난 18일 오후 서울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범외식인 10만인 결의대회'에서 외식업 경영자들이 카드사들의 신용카드수수료율 1.5% 이하 인하를 촉구하며 솥단지에 신용카드를 버리는 퍼포먼스를 벌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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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사람들 지갑에는 현금이 없다. 불과 몇 년 전만하더라도 만원짜리 지폐나 수표를 지갑에 가득 넣고 다니는 사람이 선망이 대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런 사람은 아둔한 사람일 뿐 신용카드의 종류와 숫자가 부의 표준처럼 되어 버렸다.

현금이 빠져 나간 자리를 차지한 현금 카드는 사람들의 소비의 패턴을 바꿔 놓았다. 재래시장보다는 카드가 우대되는 대형마트를 선호하고 떡볶이 한 접시를 먹더라도 카드 사용이 가능한 업소를 찾게 되었다. 그 결과 영세 자영업자는 점점 더 소비자에게 외면당하고 대형마트, 대형자본은 날이 갈수록 살쪘다. 카드와 현금 이중가격제 금지 등 현금 유동을 억제하고 신용 카드 사용을 적극 권장해 온 국가 정책의 결과인 것이다.

정부는 이 기회에 신용카드사의 수수료율이 적정한가를 제대로 살펴야 한다. 또 이중가격제 금지 조항이 오히려 자영업자와 소비자에게 피해로 돌아가고 있는 건 아닌지 검토해 보았으면 한다.

신용카드와 카트(대형마트 짐수레), 바코드 시스템이 대형마트를 유지할 수 있는 문명의 이기라고 지적하는 사회학자도 있다. 신용카드가 문명의 이기인 것은 분명하지만, 문명의 이기가 자본을 축척시키고 자영업자에서 더 큰 부담을 지우고 있다면 반드시 개선되어야 한다. 신용카드사들은 수수료율 0.2% 인하를 내세워 식당 등 자영업자 달래기에 나섰다고 한다. 그러나 이 또한 미봉책을 뿐 해결책이라 할 수 없다.

자영업자들이 충분히 감내하고 이해할 수 있는 수준의 수수료율 인하와 신용카드 권장 정책의 개선이 필요하다. 신용카드보다 현금이 가장 낮은 시장까지 혈액처럼 돌아다니는, 활력 넘칠 수 있는 시장 정책이 필요하다. 이것이 자영업자가 사는 길이고 불황을 타개할 수 있는 최소한의 조건이다.

최근 1% 탐욕에 대한 99% 분노가 지구를 뜨겁게 달구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는 수수료율 인하 논쟁도 이와 별반 달라 보이지 않는다. 모두가 사는 길. 그것은 1% 탐욕을 적당한 방법으로 제어하는 것이다.
첨부파일
수수료율.xlsx


태그:#신용카드 수수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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