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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거리를 찾기 위해 새벽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

"집사람이 한을 품은 것 같더라고… 미안하다고 하면서도 더 이상은 참을 수 없다고 하니 뭐 할 말도 없고."

 

착잡한 듯 힘없이 말을 내뱉는 K형의 목소리 중간 중간 한숨이 새어 나왔다. 자신의 신세가 처량하게 느껴졌기 때문인 듯했다.

 

"형수님은 그렇다 치고 애들은 뭐래요?"

"돈을 못 받아서 가정이 깨진 건데, 아직도 못 받고 있으니 답답하기만 해."

"휴가 땐 뭐하셨어요?"

"그냥 교육 받았지 뭐"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선문답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일하는 도중 질문에 답하는 그의 말을, 전후 사정을 알고 있는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임금 체불과 생활고, 잦은 부부싸움에 집에서 나온 K형

 

K형 구형석(46, 가명). 10년 전 일 관계로 알게 된 지인이고, 내가 형님이라 부르는 분이다. 한 공장의 생산직 노동자다. 최근에 그는 이혼을 했다. 조금 꾸며서 말하면 돌싱(돌아온 싱글)이다. 사실 엄밀히 말하면 쫓겨난 것이지만.

 

나름 성실하게 기계 만지는 일을 꾸준히 해왔던 그는 가는 직장마다 임금이 체불되면서 집에서 나왔고 혼자서 산다. 영세한 회사들이지만 나름대로 괜찮은 곳에서 일하던 그에게 먹구름이 끼기 시작한 것은 대기업 2차 협력업체로 있던 회사가 문을 닫으면서 부터다.

 

단가를 자꾸만 낮추려는 대기업과 현금대신 어음을 돌리고 대금 결제를 지연하던 1차 협력업체에 기술력을 갖고 있던 회사 사장은 불만이 점차 늘어났다. 성깔이 만만치 않았던 젊은 사장은 납품 거부라는 강수를 뒀다. 웬만한 배짱이 아니고서는 쉽지 않은 행동이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참담한 패배. 대기업이 거래선을 바꾸는 것은 일도 아니었다.

 

오기가 발동한 사장은 출원한 특허 기술 침해에 대한 소송도 제기했다. 그렇지만 대기업을 이기는 것이 어디 쉬운 일이던가. 덕분에 창고에 쌓아두었던 재고 부품(3억 원 가량)은 끝내 돈을 주고 버려야 할 쓰레기로 바뀌었다. 새로운 거래처를 확보하는 것도 쉽지 않았다. 임금이 체불되는 것은 기본. 1년여를 견디다 직원들은 결국 하나둘 회사를 떠났고, 그도 그만뒀다. 퇴직금도 못 받은 채.

 

운이 나쁘려니 이번에는 가는 회사 마다 임금 체불이 이어졌다. 노동부에 신고도 하고 여기저기 하소연도 해봤지만 회사 사장들은 자신들도 물품 대금을 못 받고 있다며 일부러 안 주는 것은 아니라고 하니 깔끔히 해결되지 못했다. 빚만 계속 늘었고 가정불화도 심해졌다. 연일 부부싸움이 벌어졌다. 참다 못한 집사람이 "밀린 월급 받아올 때까지는 집에 들어오지 말라"고 했다. 졸지에 무능한 가장이 돼 버렸다. 집에서 나온 그는 여관과 기숙사를 전전했다.

 

간혹 괜찮은 직장에 생산책임자로 들어갔지만 오래 가지 못했다. 사장들과 일하는 방식에 대한 견해 차이로 그만두는 경우도 있었으나 주로 구조조정이 이유였다. 부천에서 일하고 있다고 연락이 와 한번 찾아갔더니 회사가 좋은 곳이라고 했다. 대금 결제가 제대로 안 돼 월급주기 어려운 상황이 되니 사장이 자기 차를 팔아 월급을 주더라는 것이다.

 

하지만 그 후 한 달 정도가 지나서 K형은 그 회사를 그만 뒀다. 납품업체에는 대금 결제를 계속 지연했고, 경영 사정이 어려워져 기계를 팔아야 하는 상황에 까지 처하게 됐다고 한다. 사장이 미안하다면서 양해를 구하더라고 했다.

 

"생각할수록 속상하잖아... 소주 한 병 마시고 자"

 

 인천의 한 공단 전경. K형의 잠자리가 있는 곳이다

그가 전에 다니다 임금을 못 받고 나온 인천의 회사에 다시 들어갔던 것은, 조금이라도 못 받은 돈을 받아 보겠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임대료도 제때 못 내는 회사에 오래 있기는 힘들었다. 일은 해도 임금은 계속 체불됐다. 언제 다 받을 수 있을지 기약이 없었다. 그래서 사장에게 절충안을 제시했다. 밀린 임금 받을 때까지 기숙사로 쓰고 있는 아파트형 공장의 옥탑방에 계속 머물겠다고. 사장은 그렇게 하라고 했다. 그의 숙소는 공단 한복판에 있다.

 

"그만 둔 회사에서 기숙사만 계속 쓴다는 게 우습네요?"

"그런데 방법이 없잖아. 방 얻을 돈도 없는 데다 꼬박꼬박 방값 내기도 힘들고."

"출퇴근 흐름이 반대시네요. 저녁 시간에는 공단이 조용하지요?"

"응. 다른 사람들이 퇴근할 때 공단으로 들어가고, 출근할 때 나오는 거니까. 저녁에는 고요해"

"밤중에는 뭐 하세요. TV는 있어요?"

"그냥 소중 한 병 까고 자는 거지 뭐. 생각할수록 속상하잖아. 그냥은 잠도 잘 안 오고"

 

그리고 다시 직장을 구했다. 쉽게 자리가 구해지지 않자 노느니 아르바이트라도 하겠다며 시흥의 예전 거래처에서 일을 시작했다. 직원은 K형까지 2명. 인천에서 시흥으로 몇 달간 출퇴근하며 일자리를 알아보던 그는 "당분간 있기로 결정했다"고 말했다.

 

"월급은 적지만 어떻게 하냐. 사장이 제발 도와달라는데… 그래서 있기로 했어"

"주야 2교대 하는 데라도 찾으시지 그랬어요. 그런 데는 많은 것 같은데"

"내 나이에 2교대 하면 건강 금방 나빠져. 그리고 후배들이 욕해. 나이가 드니까 2교대는 그만 하고 싶어"

 

그가 일하는 시간은 오전 8시~오후 9시. 2교대를 안하는 대신 늦게까지 일해야 한다. 토요 휴무가 있냐고? 그런 것은 먼 나라의 이야기일 뿐이다. 잠시도 기계를 세울 수 없어 점심·저녁도 일하는 도중 짬을 내 순식간에 먹어 치워야 한다. 다행히 월급은 밀리지 않고 나온다고 했다. 하지만 빚이 많은지라 생활비를 빼면 남는 돈은 없다.

 

엎친데 덮친격, 이혼당하고 면허정지 당하고

 

그러다가 지난 7월 부인으로부터 이혼소송을 당했다. 그러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법정에 나갈 수밖에 없었다.

 

"그날 내 속이 좋았겠냐. 뭐라 할 말도 없고. 너무 속상해서 마셨는데, 바로 걸리더라고."

 

엎친데 덮친격이었다. 음주운전으로 90일간의 면허 정지. 벌금이 많아 걱정이라던 어두운 표정은, 그래도 휴가 기간에 4일 교육 받고 50일로 줄었다며 미소 짓는 순간 살짝 밝아졌다. 

 

"애들은 만나 보셨어요?"

"집사람 말이 애들이 나 안 보고 싶어 하고,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찾아오겠다고 한대."

"그럼 다른 곳으로 이사 갔겠네요?"

"응. 대략 어디쯤으로 간 지는 들었어."

"형수님이 생활이 어렵다보니 많이 속상하셨나 봐요?"

"한을 품은 것 같더라고. 여자들이 한을 품으면 무섭다잖아"

 

"형, 힘겨운 터널이지만 희망 잃지 마세요"

 

 구조조정으로 인한 정리해고 후 생활고에 시달리다 견디다 못해 극단적 선택을 한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빈소

대기업의 횡포, 체불임금, 구조조정, 신용불량. K형의 삶은 그 모든 것에 얽혀 있다. 직간접적으로 몸에 박힌 파편들은 그의 삶을 엉망으로 만들었다. 옆에서 볼 때마다 안타깝기만 하다. 빚을 갚기 위해 그는 오늘도 하루 10시간 이상의 노동을 마다하지 않는다.

 

노동현장에서 생존권을 위해 싸우고 있는 노동자들을 볼 때면 간혹 K형의 모습이 떠오른다. 대기업의 우월한 지위는 중소기업을 압박했고, 결국 노동자들이 가장 큰 피해자였다. 체불임금과 구조조정은 그의 단란했던 가정마저 파괴했다. 함께 얹혀진 신용불량 딱지 역시 해결되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사실 K형의 사례는 회사에서 잘린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말하는 일반적인 이야기이기도 하다. 생활고에 시달리면서 빚과 함께 부부싸움이 늘어가고, 그러다 극단의 선택을 하는 사람들도 생기지 않던가.

 

그를 찾아갈 때마다 위로를 해주고 싶지만 내 입에서 나오는 말은 단조로울 뿐이다. 같이 소주 한잔 마셔주지 못하는 이상 해줄 수 있는 말이 별로 없다.

 

"힘내세요. 지금은 어려워도 나중에는 좋을 날 올 거예요. 밀린 임금 어떻게든 받으셔야지요."

"그래야지. 그런 일들만 없었으면 내가 이렇게 살고 있지도 않았을 텐데… 노동자들 구조조정하고 임금 체불하는 것은 정말 나쁜 일이야. 넌 나중에 돈 많이 벌게 되도 그렇게 살지 마라. 요즘은 로또라도 하나 당첨됐으면 좋겠어."

 

그러면서 내게 따뜻한 한마디를 덧붙인다.

 

"그래도 잊지 않고 나 찾아와줘서 고맙다. 그런데 밥은 먹었냐 점심 안 먹었으면 자장면이나 한 그릇 시켜줄까?"

 

 터널을 지나고 있는 차량들. 삶에 지친 사람들은 인생의 터널을 빨리 빠져나오길 소망하고 있다.

생존을 위해 아등바등 살아가고 있는 K형에게 지난 몇 년 간은 힘겨운 터널을 통과하는 고난의 행군이었다. 언제 이 터널을 다 지나게 될지도 알 수 없다. 그렇지만 부디 미래의 희망만은 잃지 말기를 바랄 뿐이다. 그게 내가 그를 성원하면서 할 수 있는 유일한 표현 같다.

 

K형의 모습은 일터에서 떠밀리고, 돈을 못 받아 어려움 겪고 있는, 열악한 환경에서 일하는 이 땅 수많은 노동자들의 한 단면이다. 그래서 같은 처지에 있는 모든 노동자들에게도 힘내라고 외쳐주고 싶다.

 

"K형. 저는 당신을 응원합니다. 사실 90일 면허정지가 50일로 줄었다며 좋아하는 모습이 우습기도 했답니다. 그렇지만 계속 그렇게 낙관적으로 생각하면서 작은 희망을 잃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이 어려움 잘 극복해내시길 바랄게요. 밀린 임금도 꼭 받고, 신용불량의 사슬도 끊어내서 어떻게든 가정을 회복하시길 기원하겠습니다. 힘내세요. 화이팅!"

 

 '당신을 응원합니다' 편집자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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