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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담벼락에 굴렁쇠 굴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재관씨. 현대중공업 노동자 출신으로 귀농한 그는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에 참여, 마을벽화 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마을 담벼락에 굴렁쇠 굴리는 모습을 그리고 있는 이재관씨. 현대중공업 노동자 출신으로 귀농한 그는 아름다운 마을 가꾸기 사업에 참여, 마을벽화 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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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로워야죠. 사람도, 작물도 모두. 저도 그렇게 살고 싶고. 아이들도 그렇게 키울 겁니다. 농작물도 그렇게 재배하고 싶고요."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에 사는 이재관(50)씨. 그는 자유로운 생활, 자연스런 농법을 부르짖는 농사꾼이다. 아이들도 학교생활에 얽매이지 않도록 풀어준다. 농사도 흙을 간섭하지 않고 짓는다.

"흙을 살린답시고 땅을 갈아엎잖아요. 잦은 경운이 오히려 흙의 체계를 무너뜨립니다. 육중한 기계가 들락거리니 갈수록 흙이 단단해지죠. 흙이 죽어간다고 화학비료를 뿌리고. 벌레와 병해충을 잡는다고 농약을 치고. 풀을 죽이겠다고 제초제를 치고. 땅이 숨 막히죠. 이것만으로도 부족해서 비닐까지 뒤집어씌우잖아요. 어떻게 흙이 살겠어요?"

이씨는 땅에 간섭하지 않기로 했다. 흙을 제대로 살리기 위해서다. 실제 그의 '간섭하지 않음'에 흙이 되살아났다. 트랙터 대신 두더지가 밭을 갈아엎는다. 지렁이도 힘을 보탠다. 기계의 힘을 빌리지 않고도 흙이 푸석푸석 살아있다.

그는 이 논에 모내기를 했다. 밭엔 고구마, 감자, 고추, 마늘, 양파, 오이를 심었다. 호박과 가지, 토마토, 콩 그리고 쌈채소와 무, 배추도 심었다. 모두 제 철에 자라는 것들이다.

이재관 씨의 부인 김귀숙 씨가 곡성군 겸면 괴정리 초곡마을 집앞 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이재관 씨의 부인 김귀숙 씨가 곡성군 겸면 괴정리 초곡마을 집앞 밭에서 풀을 뽑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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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김귀숙 씨가 가꾸고 있는 밭. 여기에는 고구마, 콩 등 제 철 작물이 자라고 있다. 풀을 뽑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대비를 이룬다.
 이재관·김귀숙 씨가 가꾸고 있는 밭. 여기에는 고구마, 콩 등 제 철 작물이 자라고 있다. 풀을 뽑은 곳과 그렇지 않은 곳이 대비를 이룬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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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간섭받지 않은 밭에선 작물과 함께 풀이 무럭무럭 자란다. 하지만 그는 무턱대고 풀을 뽑아내지 않는다. 함께 사는 존재로 여기기 때문이다.

"풀은 작물의 적이 아니에요. 공생 관계죠. 고마운 존재이기도 하고요."

그는 풀을 귀하게 여긴다. 농사지으면서 보고 느낀 사실이다. 땅 속 깊은 곳에서 수분과 미네랄을 끌어올리는 게 풀이었다. 벌레를 잡을 수 있는 천적을 숨겨주는 것도 풀이었다. 풀을 없애면 천적도 그만큼 줄어든다. 가물 땐 수분을 잡아주고, 비가 내릴 때 흙의 유실을 막아주는 것도 풀이다.

하여, 그는 밭에서 풀을 뽑되 적대시하지 않는다. 적당히 베어내고 뽑아서 그 자리에 눕혀 놓는다. 이 풀은 땅의 수분을 조절해 준다. 천적의 거처가 되기도 한다. 시간이 지나면 거름으로 변한다. 고마운 존재다.

"생각해 보세요. 풀이 없는 땅을…. 사막이잖아요. 사막을 만들어 놓고 작물이 잘 자라기를 바란다는 건 말이 안 되잖아요."

그의 지론이다. 철학이다.

이재관 씨의 부인 김귀숙 씨가 10살 먹은 딸과 함께 집앞 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따고 있다.
 이재관 씨의 부인 김귀숙 씨가 10살 먹은 딸과 함께 집앞 밭에서 방울토마토를 따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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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중공업 골리앗 파업 앞장

온전한 자연농법을 부르짖는 이씨는 귀농인이다. 6년째 전라남도 곡성에서 살고 있다. 그 전엔 노동자로 살았다. 20여 년 동안. 울산에 있는 현대중공업에서 일했다. 어느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다. 불합리한 구조에 맞서 노동운동에도 적극 참여했다. 이른바 '골리앗 파업투쟁'으로 옥살이도 했다.

그는 이때 겪은 감옥 이야기를 책으로 펴냈다. 출판사 보리에서 낸 <왈왈이들의 합창>이 그것이다. 이 글은 현대중공업 노보인 '민주항해'에 연재돼 큰 호응을 받았다. 제7회 전태일문학상을 받기도 했다.

"치열하게 살았어요. 일도 열심히 하고. 노조활동도 열성적으로 했죠. 사회변혁의 주체가 노동자라고 생각했거든요."

그는 출소 이후에도 줄곧 노동운동을 했다. 노조 홍보용 신문을 펴내고 만평을 그리는 일을 맡았다. 노동운동은 갈수록 힘들었다. 너무나 일이 버거웠다. '이러다가 과로사로 끝나는 건 아닐까'하는 두려움이 밀려들었다.

그러던 중 생산현장에서 산업재해를 당해 목 수술을 했다. 병원 신세를 졌다. 엎친 데 덮친 격이랄까. 사고로 피붙이까지 하나 잃었다.

마을 벽화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재관씨. 20여년 동안 다니던 현대중공업을 그만 둔 이 씨는 거처를 전남 곡성으로 옮겨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마을벽화 그리기를 하고 있다.
 마을 벽화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이재관씨. 20여년 동안 다니던 현대중공업을 그만 둔 이 씨는 거처를 전남 곡성으로 옮겨 자연농법으로 농사를 지으며 마을벽화 그리기를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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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생활에 대한 회의가 몰려왔다. 꿈에도 그리던 귀농을 서둘렀다. 울산토박이었던 집식구(김귀숙·49)도 반대하지 않았다. 오래 전부터 나이 마흔쯤 되면 농촌에 가서 살기로 마음을 모은 덕이었다.

때마침 전북 부안에 살만한 빈집이 있었다. 회사를 그만두고 가족과 함께 짐을 꾸렸다. 10년 전이었다.

부안은 살만했다. 마음도 홀가분했다. 그러나 주변환경이 그를 가만두지 않았다. '싸움꾼한테는 싸움이 따라 다닌다'고.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문제가 지역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보고만 있을 수 없었다. 자연스레 방폐장 반대운동의 한복판에 섰다. 당시 부안은 '하나'였다. 할머니 할아버지까지 이 운동에 적극 참여했다. 당연히 지역주민의 승리로 끝났다. 그에게 부안생활 4년은 방폐장 반대운동이 전부였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재관 씨가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 담벼락에 벽화 밑그림으로 말뚝박기 놀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이재관 씨가 전라남도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 담벼락에 벽화 밑그림으로 말뚝박기 놀이 그림을 그리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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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벽화 그리기로 지역봉사

전라남도 곡성을 정착지로 생각하고 터를 잡은 건 지난 2005년이었다. 1년 동안 터를 찾다가 만난 겸면 괴정리 초곡마을은 그에게 이상향이었다. 20~30년 전으로 거슬러 만난 고향마을 같았다.

이 씨는 여기에 살 집을 지었다. 땅도 한 뼘씩 늘려갔다. 농사 규모는 논 500평과 밭 1000평. 그리 넓은 면적은 아니지만 먹고 사는데 부족하진 않다. 농촌생활이 미래의 경쟁력이란 확신도 생겼다.

"지속가능한 시골살이를 하고 싶어요. 내가 자연의 일부가 되는 거죠. 우리 선조들이 그랬던 것처럼 내 몸 부려서 땀 흘려 일하고. 그렇게 스스로 먹을 것을 해결하는…. 제 철에 난 푸성귀로 맛있는 밥상을 차리고."

이재관(맨 왼쪽) 씨와 그의 아들, 그리고 동료 귀농자들이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에서 마을벽화 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이재관(맨 왼쪽) 씨와 그의 아들, 그리고 동료 귀농자들이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에서 마을벽화 그리기 작업을 하고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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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 씨가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 담벼락에 완성한 마을벽화.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말뚝박기 놀이 장면이다.
 이재관 씨가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 담벼락에 완성한 마을벽화.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말뚝박기 놀이 장면이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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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담벼락에 벽화를 그리는 건 지역사회에 대한 그의 봉사방식이다. 재료비는 농업기술센터에서 댔다. 6~7월 두 달 동안 13개 마을 60여 곳에 벽화를 그렸다. 그림은 풍물놀이와 말뚝박기 놀이, 딱지치기, 굴렁쇠 굴리기 등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것들이다. 마을사람들도 좋아했다.

"시골살이에 큰 어려움은 없어요. 내가 조금 손해 본다는 생각으로 살면 돼요. 옛날 공동체가 그랬잖아요. 앞으로도 그렇게 살고 싶어요."

이 씨는 조만간 시골살이 10년 이야기를 묶은 책을 펴낼 생각이다. 농촌생활을 그리는 도시인들을 부추기기 위해서다. 인터넷 포털 사이트에 카페 '이야기가 있는 산골'을 운영하는 것도 그의 경험을 나누기 위함이다.

"정말 행복해요. 노동하는 삶이. 많은 분들이 시골생활의 이런 행복을 맛봤으면 좋겠어요. 저도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해바라기 벽화. 마을 정자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더해 준다.
 곡성군 목사동면 평리마을 담벼락에 그려진 해바라기 벽화. 마을 정자와 어우러져 멋스러움을 더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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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관·김귀숙씨가 사는 집.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초곡마을에 있다.
 이재관·김귀숙씨가 사는 집. 전라남도 곡성군 겸면 초곡마을에 있다.
ⓒ 이돈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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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재관, #귀농인, #초곡마을, #마을벽화, #곡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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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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