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고지전>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방첩대 중위 강은표 역의 배우 신하균이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배우 신하균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영화<고지전>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방첩대 중위 강은표 역의 배우 신하균이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배우 신하균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이정민


<고지전>에서 신하균의 부재를 상상해봤다. 그러니까 전쟁이 만들어 낸 분열증을 다분히 간직한 김수혁 중위(고수 분)와 함께 영화를 이끌어 가는 축인 강은표 중위 말이다. 방첩대 소속 장교 강은표가 애록고지로 향하는 순간, 그는 철저한 단독자로 내면과 외부의 갈등에 맞서야 하는 운명일 수밖에 없었다.

'적과 내통한 자의 색출'이라는 단 하나의 임무가 전쟁의 포화 속에서 무의미해지는 순간, 관객의 눈은 자연스럽게 강은표의 시선에 높이를 맞추게 된다. 작품 속에 관객이 동화되는 지점이다. 강은표의 눈으로 바라보는 한국전쟁. 그동안 여러 한국전쟁을 소재로한 영화가 있었음에도 <고지전>이라는 또 다른 버전이 존재해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그러니까 강은표 없는 <고지전>이었다면? 영화는 그저 한국전쟁 일부의 상투적 재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것이다.

"처음엔 캐릭터를 잡기가 어려웠다"는 신하균을 영화가 개봉하기 직전인 7월 초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그 역시 이번 영화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을 진중하게 고민해왔음을 털어놨다. 단순한 참전 용사가 아닌 관객에게 전쟁의 의미를 환기시키는 중책을 맡았기 때문이다.

"설레죠. 기대도 되고요. 많은 관객도 상대해야 하니까 부담도 있겠지만 영화에 대한 만듦새와 진정성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감도 있고요. 여러 작품을 해왔지만 가슴 속에 있는 영화가 있는 것 같아요. <고지전>은 제게 그런 영화 중 하나예요."

전쟁을 바라보는 솔직한 시선을 제시하다

 고지전은 단 한 명의 영웅만을 표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고지전은 단 한 명의 영웅만을 표현하는 영화가 아니다. 비극 속에서 전쟁의 참상을 직시하게 하는 시도가 신선하다. ⓒ 티피에스컴퍼니


- 영화를 찍으면서 어떤 생각이 들었나요? 한국전쟁의 영화화가 여러 번 시도됐기에 부담스러울 법 한데요.
"가장 한국적인 전쟁영화라고 생각했어요. <공동경비구역 JSA>의 박상연 작가가 썼는데 시나리오에 힘이 있었어요. 리얼리티 놓치지 않으면서도 의미도 찾을 수 있고요. 새로운 지점이라면 전쟁이 어떻게 마무리 됐는지를 보여주는 영화라는 거예요. 저도 휴전되기까지 2년이 넘는 기간 동안 그렇게 많은 분들이 사망한 줄 몰랐어요. 영화를 하면서 알게 됐죠."

- 방첩대 장교인 강은표 중위는 장교 출신 엘리트로 후방에서 전방으로 투입되는 인물인데요. 스스로 캐릭터에 대한 설명을 한다면?
"기본적으로 원칙주의자면서 충성심도 강한 인물이에요. 하지만 비극을 겪으면서 그것들이 흔들리고 안타깝게 상황을 바라보기도 하죠. 어찌 보면 전쟁을 바라보던 당시 지식인들의 시선일 수도 있어요. 결국 강은표는 관찰자예요. 영화에선 각 인물들마다 다양한 역할이 있었지만 (은표는) 가장 불분명한 캐릭터죠."

- 캐릭터 연기를 위해 고민이 많았을 것 같은데. 어떻게 표현하려고 했나요?
"액션이 많이 필요하지 않고, 동료들 반응에 일일이 리액션을 해주는 역할이에요. 그 존재만으로 이끌고 가야 해 처음엔 감을 잡기가 어려웠어요. 리얼한 액션이 영화의 전체 흐름이라면 거기서 겉돌기도 했죠. 어쨌든 은표는 이들 사이에서 살아있을 뿐 마치 현 시대에 살고 있는 인물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어떡하면 악어중대원들의 리액션을 잘 받을까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 혹시 실제 군대 생활도 전방에서 근무했나요?
"철원에서 포병으로 근무했어요. 155미리 포의 조종수였는데, 그 포가 너무 커서 전방엔 못가지만 나름 포병 중엔 최전방에 속하죠.(웃음) 장비가 비싸고 위험하니까 군기가 엄청 셌어요. 군기반장 타입은 아니었어요. 저도 하도 많이 당해서요. (끔찍하다는 듯)어휴."

- <공동경비구역 JSA>(2000)에서 북한군, <웰컴투 동막골>(2005)에서 국군 역할을 했고 이번에 또 다시 전쟁영화를 찍었는데, 남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아요.
"음. 십년 동안 군대 영화 세 번이 많은 건 아닌데… 워낙 사랑을 많이 받아서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지만, 본격적인 전쟁 영화는 처음이에요. JSA는 병사 이야기, 동막골은 마을 이야기고. 이번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우리 땐 반공 교육이 있었고 전쟁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부분이 있었잖아요. 세월이 지나 다시 알게 됐는데, 요즘은 전쟁에 대해서 교육도 잘 안하고 학생들도 아주 모르는 듯해요. 그렇다고 무언가를 알려주기보단 '영화를 통해서 고민해보자' 이런 의미도 있지 않을까요?"

광기어린 캐릭터? "원래 밝고 유쾌해요"

 영화<고지전>에서 이성적이고 합리적으로 상황을 판단하는 방첩대 중위 강은표 역의 배우 신하균이 8일 오후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오마이뉴스와 만났다. 배우 신하균이 인터뷰에 앞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실제로 만난 신하균은 소탈한 성격의 소유자였다. 카페 밖에서 포즈를 취하는 신하균. ⓒ 이정민


신하균이 그동안 해왔던 작품 목록을 보면, 단지 그가 흥행을 위해서만 달려왔다고 볼 수는 없다. 작품에서 만났던 선해 보이는 그의 얼굴 이면은 광기에 사로잡혀 있거나 분노에 차 있기도 했다. <복수는 나의 것>(2002), <지구를 지켜라>(2003), <박쥐>(2009)의 작품을 통해서 그는 단순한 흥행 보증 수표로서의 배우가 아닌 작품과 캐릭터를 보다 중시하는 배우임을 증명해왔다.

연기 외에 그의 인간적 면모도 궁금했다. <고지전>을 마치고 어떻게 휴식을 취했나 물으니 "집에만 있었다"는 답이 돌아왔다. "촬영 때 피로감이 들 때면 따뜻한 물에 몸을 녹이고 맥주 한 잔을 걸치는 게 낙이었다"던 신하균. 그의 소탈한 면이 돋보였다.

- 그동안 맡아왔던 극중 인물이 반사회적이거나 분열적인 인물이 많았는데 혹시 평소의 모습은 어떤가요? 술도 즐기는 편이라고 들었는데.
"그동안의 캐릭터요? 낯을 좀 가리긴 해도 원래 밝고 유쾌한 편이에요. 그래서 절 처음 보는 사람은 놀라요. 캐릭터는 뭐 사람을 한 가지 성격으로만 규정할 순 없잖아요. 내 안에  여러 모습도 있을 수 있고요. 평범하게 살아왔습니다. 그리고 애주가예요, 전. 소주는 잘 못하고, 나머지 술은 다 좋아하죠. 데킬라까지요.(웃음)"

- 장진 감독(6편)이나 박찬욱 감독(4편)과의 작업은 어땠고, 이번 장훈 감독과는 어땠나요?
"한 감독과 여러 편 하기가 힘든데 장진 감독이야 연극도 같이 했고 학교 선배기도 하고요. 박찬욱 감독도 함께 네 작품을 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니죠. 제겐 스승 같은 분이에요. 배우의 역량을 최대로 뽑아주는 감독입니다.

장훈 감독은 상대적으로 저보다 후배긴 해도 전작들을 워낙 재미있게 봤어요. 나이는 어려도 의지가 되더라고요. 작품을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고 쉬지도 않아요. 그만하면 타협하고 쉬고 싶을 텐데 한 장면도 그냥 넘어가지 않더라고요. 배우들을 스스로 긴장하게 만드는 감독이에요. 제 테이크도 여러 번 갔는데 '이 사람이라면 함께 찍으면서 버틸 수 있겠다' 생각했어요. 액면가로는 저보단 감독님이 더 많아 보이긴 하지만요.(웃음)"

신하균 고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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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메가3같은 글을 쓰고 싶다. 될까? 결국 세상을 바꾸는 건 보통의 사람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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