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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 속 화자인 나 오현정은 무명작가다. 얼마 전, 우연히 모 출판사의 장르문학상 공모전에 <사자들>이 당선되어 학원 강사를 때려치우고 말았다.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하겠다는 찬란한 꿈을 안고서. 그리하여 소설 쓰기에 전념하고 있건만, 베스트셀러는커녕 판매보다 반품이 많아 구석에 처박히는 책이 되고 말았다.

'자살 소동이라도 벌여? 그럼 <사자들>이 세상에 알려져 좀 팔릴지도 몰라.'

<삼악도> 겉그림
 <삼악도> 겉그림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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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넷에 익명의 독자가 되어 서평도 쓰고 추천을 해봐도, 별별 궁리를 다 해봐도 서광이 비칠 기미조차 없다. 그렇게 하루하루, 각종 공과금 고지서와 체납통지서로 지옥이다. 이렇게 있다간 딱 굶어 죽을 판이다. 어느새 주변 사람들에게 나는 '제발 전화 좀 하지 말았으면'의 존재가 되었다. 와중에 1백만 원 때문에 친구에게 멸시받기도 한다.

그런 어느 날 어느 영화사의 각색 제안 메일 한통을 받게 된다. 주로 호러 영화를 제작하는, 매스컴을 통해 알고 있던 '메피스토'란 영화사였다. 어느 정도 나와 있는 <흡혈귀>의 대본을 좀 더 리얼하고 섬뜩하게 각색해달라는 것. 대가는 1천만 원. 계약금은 오백만 원.

생활고에 내몰려 노예계약이나 다름없는 계약을 한 현정은 감독과 스텝과 함께 출판사가 '작품 몰두에 좋다'고 추천한 삼악도로 떠나게 된다. 현정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섬 주민 김씨와 폐교. 그리고….

"빈곤은 영혼을 낭떠러지로 내몬다. 그래서 나는 만나지 말아야 할 사람을 만났고, 하지 말았어야 할 계약을 했고, 가지 말았어야 할 곳에 갔다."-<삼악도>에서 현정

"삼악도에는 우리 일상의 극단이 난무한다. 일상에서 발견되는 온갖 욕망이 삼악도라는 공간 안에서…."-<이끼>, <내부자들> 작가 윤태호

<삼악도>(황금가지 펴냄) 그 대략이다. 3년 전 작가의 <손톱>이란 소설을 읽었는데, 생생한 묘사에 소설을 읽은 후 한동안 움츠렸다. 소설을 통해 만났던 '사람의 고통을 즐기는 사이코패스'가, '못생겼다는 이유만으로 친구를 죽이는 가출청소년'이, 사람 좋은 얼굴을 하고 있지만 이 여자 저 여자 마구 건드려 놀아나다가 헌신짝처럼 버리거나 죽이는 두 얼굴의 사나이가 내 생활 주변 어딘가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그런 두려움과 비애 때문에.

종종 <손톱>이 떠올랐다. 장르문학을, 공포소설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아 일부러 찾아 읽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래도 '스티븐 킹'만은 좋아했던 관심을 이 작가에게로 돌리게 되었다. 그런 작가의 신간이다. 때와 계절을 가려 책을 읽을까만, 공포소설은 여름 나기에 도움이 된다. 그러기에 매체들마다 '올 여름 읽을 만한 공포소설' 같은 것을 기획하기도 하리라. 올 여름 단 한권이라도 몸서리치도록 공포스럽고 울림이 깊은 공포소설을 읽고 싶어 하는 독자들을 위해 공포소설 작가 김종일에게 <삼악도>와 그 주변에 대해 물었다. 

김종일 작가
 김종일 작가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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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고 시달린 무명작가의 이야기, 내 이야기도 있다

- <삼악도>는 어떤 소설인가?
"생활고에 시달리던 한 무명작가가 어느 영화사로부터 각색 제의를 받고 미스터리한 감독 일행과 삼악도라는 남도의 외딴섬에 작업을 하러 갔다가 겪게 되는 '서글프고도 서늘한' 이야기이다."

- 무명작가 현정의 비참한 현실과 함께 어떤 작가의 죽음이 나온다. 5개월 전에 죽은 시나리오 작가이자 감독 혹은 2008년도엔가 자살한 모 방송 작가가 떠올랐다. 혹시 그들의 이야기인가? 혹은 본인의 이야기인가?
"'아니다'라고 할 순 없지만…, 100% 내 이야기도 그들의 이야기도 아니다. 장르문학 작가의 고충을 묘사한 대목에 내 현실이 어느 정도 녹아들기는 했지만, 이 소설은 어디까지나 '현실에 있을 법한 이야기'를 그린 허구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지론대로 소설은 현실을 모방할 뿐이다. <삼악도> 역시 그렇다. 소설을 쓰다 보면 소설 내용이 작가 본인의 경험담이 아니냐? 는 오해를 종종 받곤 한다. 소설이 내 영혼의 분신인 만큼 나 자신의 경험이나 철학이 내포되지 않을 수는 없지만 그 자체가 오롯이 작가 본인의 이야기일 수는 없다."

- '이 소설 참 악랄하다'는 표현이 맞을지 모르겠다. 너무 잔인한 것 아닌가?
"내가 속한 공포문학 창작집단 '매드클럽'의 한 동료 작가가 그러더라. 잔인하다는 의견은, 좋게 해석하자면 소설 속의 묘사가 그만큼 생생하다는 반증이 아니겠냐고…. 적잖이 위안이 되더라. 하지만 솔직히 털어놓건대, 출간 전에는 전혀 예상치 못한 반응이다. 사실 2007년에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 1권이 한국간행물윤리위원회에서 청소년 유해간행물 판정을 받은 후로 잔혹 묘사에 굉장히 조심스러워졌다. 쓰다가도 멈칫멈칫한다. '이대로도 괜찮을까? 이 정도는 괜찮겠지?' 싶어서 그렇다. 일종의 자기 검열이다.

이 소설도 내 나름으로 문제가 될 법한 묘사는 의식적으로 자제하거나 생략했다. 그런데 출간 직후 어느 블로거가 가장 잔인한 두 장면을 발췌해 놓고 '이 장면이 마음에 들면 이 작품에 호감을 가져도 좋고 그렇지 않으면 리뷰만 읽고 끝내라'는 서평을 썼더라. 그제야 독자에 따라서는 특정 대목이 너무 잔인하다고 받아들일 수도 있으며, 나아가 소설 전체 이미지로 굳어질 수도 있겠구나 싶어 안타깝더라. 독자의 그런 오해가 작가의 역량 부족 때문이란 생각도 하지만, <삼악도>라는 소설이 하나의 유기체라면 그런 장면은 어디까지나 '발가락'에 불과하다. 부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닌, 달을 봐주었으면 좋겠다.

내가 소설에서 집요하게 파고드는 현실의 어두운 면들은 오히려 그런 일들이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의 역설적 표현일 뿐이다. 독자들 또한, 오현정을 궁지로 몰아넣는 감독 일행의 행각에 치를 떨고 분노하지, 그네들의 행각에 공감하거나 동조하지는 않으리라고 본다. 사실 그래야 마땅하지 않은가. 사실 난 제아무리 잔인한 소설도 TV 뉴스에 보도되는 우리의 안타까운 현실을 따라가지 못한다고 생각한다. 소설은 아무리 잔인해도 허상일 뿐이지만, TV로 보도되는 사건들은 우리 주변에서 실제로 일어난 사실 아닌가!"

- <삼악도>를 통해 무엇을 말하고 싶었는가?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는 세상이다. 돈이면 지옥문도 열 수 있는 세상이다. <삼악도>는 그런 세상의 단면을 그리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인간이 창조해낸 돈이라는 도구가, 그 돈에 기반한 갑과 을의 관계가 힘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추락시키는지. 영혼을 얼마나 끔찍한 지옥으로 내몰게 되는지 말하고 싶었다. 공포스릴러라는 외피를 두르고 있지만, 자본주의에 관한 풍자소설이요, 블랙코미디다."

김종일 작가가 황금드래곤상을 받은 <몸>과 독자층을 두껍게 다지게 한 <손톱>과 해마다 참여하고 있는 <한국공포문학단편선>
 김종일 작가가 황금드래곤상을 받은 <몸>과 독자층을 두껍게 다지게 한 <손톱>과 해마다 참여하고 있는 <한국공포문학단편선>
ⓒ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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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르문학, 이 바닥에서는 '척박'하다

- 장르문학은 어떤 문학인가?
"장르문학은 읽는 재미가 있는 문학이 아닐까. 순문학이든 장르문학이든 재미라는 미덕을 무시해서는 안 되지만, 특히 장르문학은 그 재미를 우선시해야 한다고 본다. 책을 펼친 순간부터 그 속에 빠져들어 주위의 모든 외적인 요소들을 잊게 해주는 소설이야말로 최고의 장르문학이라고 본다. 같은 맥락에서 내게 최고의 칭찬은 '책을 앉은 자리에서 단숨에 읽었다'는 평이다."

- 우리나라에서 장르문학이 힘들다던데?
"척박하다. 아시는 것처럼 출판계 전반 불황이다. 장르문학 쪽은 훨씬 심각하다. 책을 출간해도 잘 팔리지 않으니 작가들이 하나둘 등지게 되고, 출간되는 작품이 드물어지니 독자가 외면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순문학 분야에서도 <7년의 밤>처럼 장르문학적 성격을 띤 소설이 나와 독자에게 호평을 받더라. 장르문학도 모종의 변화를 꾀할 필요가 있다.  

언론도 장르문학에는 그리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특히 공포 같은 비주류 장르는 아예 관심 밖이다. 미스터리나 스릴러에는 관대한 독자들도 공포라는 장르는 애써 외면하는 경우가 많다. 오죽하면 <삼악도>도 출간 과정에서 편집자에게 공포물이라는 정체성을 드러내지 않는 표지로 가자고 간곡히 건의했을 정도다.

작가 입장에서 자식 같은 작품이 세인들에게 제대로 평가 받기도 전에 외면당하는 현실이 안타깝고 서글프다. 하지만 듬직한 작가군이 형성되고 독자의 관심을 끌어낼 만한 역량을 갖춘 양질의 작품들이 지속적으로 출간되면 인식도 차차 나아져 독자층이 튼실해 질 거라 믿는다. 

영화 '짝패'에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라는 대사가 나온다. 그 대사에 절감한다. 어떻게든 오래가면 강해질 수 있다. 우리나라의 장르문학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한다. 내가 장르문학을 놓지 않는 이유다."

- 사실 소설은 결국 허구에 불과하다는 계산을 너무 현실적으로 하고 읽기 때문인지 어지간한 소설은 감동하지 못하는 편이다. 내가 작가님의 작품을 좋아하는 이유는 허구적인데도 허구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작품 속 주인공들이 내가 사는 곳 골목에서 언제든 마주칠 수도 있다는 그런 현실감 때문이다. <손톱>이나 <삼악도>는 여름특집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하면 참 좋겠다는 생각도 들더라.
"과분한 칭찬이다. 영화를 워낙 좋아하는 성향이 작품 속에 반영되어서 그런지, 소설 속의 장면들이 독자의 머릿속에 영상처럼 그려지는 장점이 있는 모양이다. 때문인지 출간한 대부분의 소설이 영화화 판권 계약을 맺었다. 영화 관계자들도 소설을 읽다 보면 저절로 '그림이 그려 진다'고들 하더라.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까지 제작이 완료되어 대중에게 선보인 작품은 없다. 영화 쪽은 제작 준비 과정에서 무산되는 경우가 많더라. 작품 대부분이 영화 판권 계약을 맺는 경우는 드문 걸로 안다. 그러기에 언젠가는 내 소설들이 드라마나 영화로 만들어져 또 다른 독자들과 만날 수 있으리라 기대해 보기도 한다."

- 이런 표현 어떨지 모르겠는데, 솔직히 장르문학을 고집하는 사람들 대단하다는 한편 걱정 된다. 어떻게 밥은 먹고 사나 싶어서 말이다. 괜한 걱정인가?(웃음)

작가 '김종일은...'
작가 김종일은 <몸>으로 '제3회 황금드래곤문학상 대상을 수상하며 한국 장르 문학계의 무서운 신인으로 떠올랐다. 2006년부터 척박한 공포문학의 발전을 위해 결성된 '매드클럽' 멤버들과 매년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2011년 6권 출간 예정)을 기획, 해마다 참여하고 있다. <판타스틱>과 <파우스트>에도 참여했다.

2008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손톱>으로 '책을 덮는 순간까지 이어지는 긴장감과 흡입력으로 독자들의 큰 호평을 받으며 이름이 많이 알려지기 시작했는데, 2009년, 2010년 네이버 '오늘의 문학'을 통해 소개된 단편 <도둑놈의 갈고리>와 <놋쇠황소>가 각기 네이버 조회수 10만을 넘으며 '김종일 마나아'까지 생겼다는 소문도 있다.

<몸>과 <손톱> 등, 그의 작품들은 우리 현실을 깊이 반영하고 있어서 더욱 울림이 큰 것 같다. 2011년 현재 '김종일의 경계문학' 카페(http://cafe.naver.com/kimjongil)를 운영하고 있다. /김현자
"무엇보다 좋아해서 그렇다. 현실적 여건이 아무리 힘들어도 진정으로 사랑하는 연인과는 헤어질 수 없지 않은가. 힘든 것을 함께 이겨낸 사람이 더 소중하지 않은가. 내게 장르문학도 그렇다. 사람관계도 일도 내가 좋아하지 않으면 지속하기 힘들 것이다. 후기에 남긴 것처럼 <삼악도>는 내 성장기에 알게 모르게 영향을 준 무수한 장르물을 향한 내밀한 연서이기도 하다. 소설 속에서 기존의 영화나 소설을 유독 많이 언급하는 이유도 그 때문이다.

내 소설에 기꺼이 지갑을 열고 책값을 지불해주는 독자들이 있고 그네들이 내가 소설에서 표현하고자 한 바를 정확히 받아들인 감상을 읽노라면 교감에 성공했다는 희열감에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하다. 그런 희열이 다시 키보드를 두드리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다음 소설에서는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줄 독자가 한 명이라도 더 늘어나리라는 희망, 그 희망이 샘솟을 때마다 장르문학을 붙든 손에 힘이 들어간다." 

- <삼악도>는 2008년에 완성한 작품을 수정해 출간한 것으로 안다. 공백이 큰 것 같다.
"'Daum-문학 속 세상'에 연재했던 <개미지옥>이란 역사소설 출간(올 하반기 출간 예정) 작업과  '매드클럽 중편 컬렉션' 작업으로 바쁘다. '매드클럽 중편 컬렉션'에는  <칼이 울고 피가 뛴다>는 제목의 스릴러를 실을 계획이다. 올해로 6권째가 되는 <한국 공포문학 단편선>에 단편을 낼 생각이고,  <도둑놈의 갈고리>라는 단편을 원작으로 한 시나리오도 쓰고 있다.

내년(2012년)에 <괴물이 눈 뜬다>라는 장편 스릴러를 출간할 예정인데, 출간되기도 전에 영화화 판권 계약이 되는 바람에 4년이 넘게 발이 묶여 있던 작품이다. 그동안 소설의 미진했던 부분을 파악하고 이야기를 더 옹골지게 숙성시킬 수 있었다.

그런 부분을 보완해 내년 초 영화 계약 만료가 되는 대로 출간할 예정이다.  연애소설도 한편 준비 중인데 공포소설을 주로 쓰는 내가 연애소설을 쓴다니까 다들 의아하다는 표정이었다(웃음). '김종일만이 쓸 수 있는 그런 지독한 연애소설이니 기대해 달라. 이제까지 써온 공포라는 장르에만 국한하지 않고 좀 더 다양한 장르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덧붙이는 글 | <삼악도>(三惡島) l 저자:김종일| 황금가지 | 2011.7.1 l 정가 :12,000원



삼악도 - 三惡島

김종일 지음, 황금가지(2011)


태그:#공포소설, #장르문학, #공포문학, #한국공포문학단편선, #황금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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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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