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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폭우 피해 소식에 오랜만에 하는 서울 나들이가 걱정됐다. '서울 갔다가 발 묶이면 어떡하지. 그냥 안 갈까' 하는 생각이 슬그머니 일었다. 지난 28일 서울 상암동 <오마이뉴스> 본사에서 '스마트 미디어 워크 라이프'(Smart Media Work Life)라는 주제로 열리는 제7회 오마이포럼에 참가해야 하는데 말이다.   

이럴 때 스마트워크 마인드로 원격 포럼을 진행하면 스마트한 포럼이 되지 않을까. 그래도 굳이 포럼을 열어 사람들을 초청한 이유는, 그 무엇도 얼굴을 대면하고 몸을 가까이하고 대화하는 것을 대신할 수 없어서일 것이다.

'대혁명적 변화', 스마트워크

권기재 KT 스마트워킹센터 STO 추진팀장이 '국내 기업의 스마트워크 추진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 스마트워크 발상의 배경 권기재 KT 스마트워킹센터 STO 추진팀장이 '국내 기업의 스마트워크 추진 사례'를 발표하고 있다.
ⓒ 최봉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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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래 나는 스마트워크 쪽 주제는 별 관심은 없었고 그저 <오마이뉴스>가 어떤 모색을 해 갈지를 관심 있게 지켜보고 있어 참가했다. 하지만 4시간에 이어지는 강연을 듣는 동안, 스마트워크 사안이 내 삶과 내 친구들의 삶, 우리 모두의 생활 양상을 크게 변모시키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스마트워크 정책이 최대한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모든 직장인들과 예비 직장인들이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고 의견을 내고 참여할 사안이 아닌가 하는 마음에 귀가 쫑긋해졌다.  

영어로 '스마트워크'(smart work)라 하니, 이 말을 좋은 우리말로 바꿀 순 없을까 싶어 사전을 찾아보았다. '스마트'(smart) 하면 보통 '영리한, 똑똑한'이라는 뜻으로 생각된다. 그래서 '스마트워크'를 '똑똑한 업무' 정도로 해석하는 것도 보았다. 그런데 '스마트'라는 단어가 가지는 차별성은 겉모습도 매력적이고 멋있게 보인다는 함축성에 있다. 여기까지 의미를 풀어야 '스마트워크'가 담아내고 있는 의미를 충분히 살릴 수 있겠다. '똑똑하면서도 매력적이고 멋있는 노동 방식'이라는 뜻이다.

원래 이 말이 지칭하는 사태를 가장 원초적으로 드러내는 표현은 '플렉서블 워크(워킹)'(flexible working, 유연한 노동 업무)나 '텔러워크'(telework, 원격 업무) 등이다. 고정된 시간과 장소로서의 일터에 얽매이지 않고, 필요에 따라 시간도 조절할 수 있고 장소도 바꿀 수 있는 노동 방식이란 뜻이기도 하고, 본 일터에서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탄력적 근무'라는 표현도 익히 알고 있는 바다.

들어보면 별 거 아니다. 진작에 생각할 수 있는 것이었다. 특별히 육아 담당자들 편에서 오래도록 원하던 직업 조건이기도 하지 않은가. 비상시에 출근하기 어려우면 집에서 하면 되는 것이다. 출근이 너무 어려운 상황에서 악착같이 출근하고, 그것을 모범으로 생각해 오던 종래의 직업의식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니, 이 점은 일단 반길 만하다. 일터에 대한 고정관념을 획기적으로 바꾸는 것이며, 고정된 시간과 고정된 장소에 참여하기 어려워 일의 기회가 막혀 있던 사람들에게도 반가운 소식이겠다.

부족한 문화적 인식과 미진한 정책 의지

'스마트워크와 노동 환경의 변화'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박지순 교수
▲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스마트워크와 노동 환경의 변화'에 대해 발표하고 있는 박지순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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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택근무는 유럽에서 이미 80년대부터 되어 온 이야기이고, 우리나라는 2000년대 초반부터 이뤄져 왔다는 것이 한국정보화진흥원 스마트워크 지원부 정병주 책임연구원의 설명이다. 정 연구원은 당시 관련 계획을 발표해 재택 근무률을 10% 높이겠다고 했지만, 현재까지 1%도 채 안 되는 현실이라고 했다. 정책이 없었던 것이 아니라 문화개선 필요성이 공유되지 못했다는 지적이다.

그런데 이제 '스마트워크'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촉진법까지 제정하고, 방송통신위원회가 전략을 짜고, 한국정보화진흥원이 연구한다는 것은 일터의 주류 모델로 가져가겠다는 의미일 것이다. 물론 이는 이제 시작 단계다. 정부 지원을 받아 첫 시작을 하고 있는 KT 경우도 작년에 시범 적용을 했고, 올해부터 본격 적용에 들어가는 단계라고 권기재 KT 스마트워킹센터 STO 추진팀장이 밝혔다.

성석함 방송통신위원회(이하, 방통위) 스마트워크 전략팀장은 정부가 올해 촉진법을 도입할 예정인 데다 부처 간 경쟁이 붙어 더 적극적으로 진행될 것이라 진단했다. 대통령도 "대혁명적 변화이며, 여러 분야에 효과를 가져올 것으로 기대한다"고 했음을 성 전략팀장은 밝혔다.

박지순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지난 4월 12일 한국의 스마트워크 가이드라인이 발표되었다고 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정부의 정책 의지가 얼마나 되는지가 의심스러워지는 대목이다. 

스마트워크 정신 - 위기 대응과 지속 가능 직업 모델

'네들란드의 스마트워크 추진 전략과 현단계'를 발표하고 있는 정병주 연구원
▲ 정병주 한국정보화진흥원 스마트워크 책임연구원 '네들란드의 스마트워크 추진 전략과 현단계'를 발표하고 있는 정병주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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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워크의 첫 발상은 아주 상식적인 조건과 긴요한 필요에서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권기재 KT 추진팀장이 설명하는 스마트워크 도입 배경은 "예측 불가능하고 불가항력적인 자연 재해에도 일이 멈추지 않게 하기 위해서, 기온 상승을 막기 위한 탄소배출량 저감과 기후 변화를 예방하는 방편으로서, 그리고 지속 가능한 성장 모델로 기대되는" 것이었다.

정병주 연구원은 스마트워크를 50% 이상 실행하고 있는 네덜란드의 최초 시작도, 처음 시범 적용이 된 신도시가 교통 정체 문제로 도시 업무가 제약받자 이를 스마트워크 제도로 풀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자신의 일에 맞는 곳에서, 자신의 조건에 가장 적합하고 효율적인 시간과 장소에서 자율적으로 일한다는 장점과 더불어, 기존 육아 담당자들이나 장애인들, 노동 취약 계층도 일만 능률적으로 잘 할 수 있으면 취업 기회가 더 확장된다는 장점도 있겠다. 불필요한 이동을 줄이고 커다란 사옥을 유지하는 데 드는 부동산 및 에너지 비용을 줄인다는 점도 환경 문제가 심각한 현재에 더욱 의미 있는 시도로 보인다.

실제로 정병주 연구원이 발표한 네덜란드의 마이크로소프트사(MS) 사옥은 스마트워크 추진을 통해 부동산 비용을 30~40% 절감했다. 스마트워크 개념에는 사옥 내 좌석 점유나 일터 배치 구조의 변화도 포함되기 때문이다. 기존 사옥의 자기 자리를 줄이고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는 협업 공간을 확보하는 것이다.

MS사도 1인당 점유 공간이 4평에서 2.5평으로 줄었지만 협업 공간의 확보로 직원들은 오히려 넓어졌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고 정 연구원은 소개했다. KT의 경우에 따르면, 기존 넒은 공간을 점유했던 임원의 사무 공간도 4평 이하로 축소하고, 발생하는 여유 공간을 직원들의 협업 공간으로 탈바꿈시켰다.  

실제로 추진해 본 결과는 대체로 만족적인 것이었다고 발표자들은 밝혔다. 네덜란드의 MS사와 한국의 KT 사례 모두 공통적으로, 처음에는 비용이 들어가고 또한 직원들의 관성에 따른 저항과 거부감이 크지만, 일단 적용했을 때 만족도는 2, 3개월 만에 드러났다고 한다.

정책 추진도 스마트하게 - 도전하고 유연하게

권기재 KT 추진팀장은 새로운 변화를 혁신할 때 일단 경험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스마크워크, 그 정신을 잘 고수한다면 실행 과정에서부터 획일적으로 적용하는 방식이 아니라 유연하게 이렇게도 해 보고 저렇게도 해 보는 방식으로 똑똑하게 시행해 볼 수 있는 사안이겠다.

다만 박지순 교수의 지적처럼, 법 문제에 있어서는 신중하고 사려 깊은 법 제도 마련이 요청된다. 사무실 밖 노동과 관련해 노동법에 규정된 사업장에 대한 법 적용을 어디까지 할 것인가의 문제, 사고가 생겼을 때 어디까지 산재로 적용할 것이냐의 문제를 법으로 정비하는 것은 중요한 사회적 관심사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상근직 근로자가 어떻게 규정될 것인지, 프리랜서와 구별되는 것인지, 이런 문제들을 법적으로 어떻게 규정할 것인지가 앞으로의 과제라 지적했다.

점심비, 교통비 등을 어떻게 할 것인지도 중요한 쟁점이 될 수 있다. 그런 것들을 일일이 법적으로 규정하는 게 또 만만치 않은 작업이겠다. 그러고 보니 이왕 스마트워크를 할 거면 그것을 추진하는 전반적인 과정 전체가 정말 스마트하게, 즉 똑똑하고 유연하고 멋있게 해 갈 수 있는 방안과 선례들이 많이 나오기를 희망해 본다.

발표자들이 공통되게 짚고 있는 장점은 창의성과 생산성을 향상시키는 데 적합하다는 것이다. 성석함 방통위 전략팀장은 "노동 시간은 긴데 효율성 낮은 한국 노동 현실을 극복하고 선진국형 노동 현실로 들어가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하지만 발표를 들으면서 환영할 만한 그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가장 크게 우려가 되는 점은 이런 것이다. 그러한 새로운 문화를 일터의 주요 구조로 촉진한다고 할 때(촉진법 제정 준비 중) 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들을 관련 책임자들이 과연 얼마나 책임 있고 능력 있게 해결해 갈 수 있을까 하는 점이다. 틀과 제도만 가져와 거기다 맞지도 않는 각 일터의 현실을 무리하게 끼어 맞추려다 더 신경 쓸 일과 부작용만 많아지는 것은 아닐까.

제도 속에 사람 있다

오 대표는 "일터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일하는가가 우리 삶의 행복지수와 큰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 <오마이뉴스> 오연호 대표 오 대표는 "일터에서 얼마나 행복하게 일하는가가 우리 삶의 행복지수와 큰 연관성이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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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한 우려를 차단할 수 있는 좋은 실마리를 정병주 연구원이 발표한 네덜란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네덜란드가 스마트워크를 펼쳐간 핵심은 실질적으로 부딪친 문제(교통 정체로 인하 업무 장애)를 유연하게 해결해 가는 데 있었다. 바로 그 중심에 사람에 대한 고려가 있었던 것이다. 오연호 <오마이뉴스> 대표도 제도를 추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그 속에 있는 사람들과 그들과 관계된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가"의 문제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만일 스마트워크를 각 사업장, 각 일이 처해 있는 구체적인 상황과 그 속의 사람들이 실제로 당면해 있는 문제에 대한 진심어린 고려의 바탕 위에서 말 그대로 똑똑하고 유연하게 적용한다면, 한국의 노동 문화를 혁신하고 삶의 질을 더욱 향상시키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즉, 스마트워크를 하는데 방식은 또 스마트하지 못하고, 사람 좋게 하자고 만든 틀과 제도에 묶여 사람 희생시키는 바보 같은 스마트워크를 하고 있지는 말아야 하겠다는 것이다. 그 속에 있는 사람을 진정으로 생각한다면, 복잡할 수 있는 법적 문제도 각 회사의 정황과 현실에 맞게 유연하게 적용하면 되는 것이다. 거기에 정부가 적극적으로 지원한다면 보다 나은 노동 현실을 창조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 


태그:#스마트워크, #노동, #직업, #정책, #스마트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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