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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관에서 1권부터 빌려봤다. 마지막권을 읽고나서 중간에 분실되어 빠뜨린 책이 있어 다시 찾아 읽었다. 그책이 페스트였다. 아마도 지구상의 책 중에서 가장 많은 마리수의 쥐가 등장하는 책일 것이다. 카뮈를 보내면서 한장 찍어놨다.
▲ 알베르 카뮈 도서관에서 1권부터 빌려봤다. 마지막권을 읽고나서 중간에 분실되어 빠뜨린 책이 있어 다시 찾아 읽었다. 그책이 페스트였다. 아마도 지구상의 책 중에서 가장 많은 마리수의 쥐가 등장하는 책일 것이다. 카뮈를 보내면서 한장 찍어놨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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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려 1년여 동안 내 침대 머리맡을 지켜주던 남자가 있었다. 이제 그 남자와 당분간 작별해야 한다. 그는 알베르 카뮈다. 그동안 긴긴 불면의 밤을 이 남자의 20권짜리 전집을 읽으며 견뎠다. 정신과적 치료에 의지하던 이 무시무시한 불면증에서 벗어나기 위해, 병원을 과감하게 끊고 버티기로 작정하면서 읽기 시작한 게 바로 카뮈다.  

카뮈는 도합 스무 권 분량의 작품을 25년에 걸쳐 집필했고 그것을 불문학자 김화영 선생이 20여 년 동안 번역했다. 그것을 내가 아껴가며 읽는 데 약 1년의 시간이 소요됐다. 침대 머리맡에 알베르 카뮈를 두고 잠 못 드는 밤마다 조금씩 읽었던 것이다. 적막한 겨울밤 카뮈의 '결혼'을 읽다 보면 날이 밝아오고, 고개를 돌려 보면 현실의 내 남자가 저만치서 머리가 벗겨진 채 코를 '드르릉 드르릉' 골며 달게 자고 있었다. 실로 '부조리'했다.

"엄마. 엄마는 왜 똑같은 책만 계속해서 읽어요? 이 책만 벌써 몇 달 동안 읽고 있잖아요."
"하하, 이거 같은 책 아니야. 겉표지만 같고 내용은 다른 각 스무 권인 걸."
"아, 이제 알겠다. 그러니까 내가 어려서 읽은 메이플스토리처럼 이것도 시리즈군요. 나는 그것도 모르고, 엄마가 책 한 권을 갖고 보고 또 보고 그런 줄 알았어요."
"엄마 불면증을 견디게 도와준 책이야. 엄마 불면증에 시달리는데 달래준 이 사람은 알베르 카뮈라는 작가고 또 엄마를 우울증에 안 걸리게 해준 남자들도 있어. 성석제, 구효서, 윤대녕. 엄마한테는 정신과 의사들보다 더 고마운 사람들이거든."
"당신은 주로 잘생긴 남자들만 좋아하잖아. 카뮈도 그렇고 성석제 등도 그렇고. 칫."

남편이 불만이라는 듯이 한마디 던졌다. 책 표지에는 훈남 카뮈가 멋있게 담배를 물고 있다.

"성석제는 한 장 한 장 읽는 것이 아까워. 나한테는 너무 고마운 사람이지. 그런데 밤엔 못 읽어. 너무 재밌어서 잠이 다 달아나거든. 성석제를 밤에 읽으면 미친 사람처럼 혼자 막 웃게 된다니까. 성석제 소설에는 가끔 작가 자신이 투영된 자전적인 소설들이 있는데 거기엔 주인공 이름은 항상 '성 억제'야, 그를 낳은 아버지 성함은 '성 배출'이고."   

잠이 안 와서 우울증인가 싶었는데, 병원비에 '울컥'

이들 작가들에게 의지하기 전에 내 불면증은 정신과적 치료에 많이 의지하고 있었다. 처음 신경정신과 문을 두드리기까지는 큰 용기가 필요했다. 신경정신과 환자들에게 갖는 선입견을 나 또한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끝내 스스로 신경정신과를 찾을 만큼 내 불면증은 치명적이고 그로 인한 고통은 절박했다. 막상 주변 시선을 무시하고 병원을 찾으면서는 이 고질적인 불면증에서 어느 정도 벗어나게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생겼다.

텔레비전 같은 데서 본, 여러 갈래 줄로 연결된 정밀한 기계가 사람 머리를 통해 뇌 속을 진단하던 장면들을 떠올리면서 나도 그런 세밀한 진찰을 받고 나면 이 지긋지긋한 불면증에서 벗어날 거라 믿었다. 불면의 원인을 규명하게 되고 또 치료 방법도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러나 난생 처음 마주하는 신경정신과 진료실은 감기 진찰보다 더 단순하고 허술했다. 몇 마디 형식적인 질문을 던지고 수면제 처방을 내리는 것이 어렵게 병원을 찾아온 불면증 환자에게 정신과 의사가 취하는 의료행위의 전부였다.

"선생님, 혹시 우울증 때문 아닐까요? 잠이 안 오면서 거의 매일 기분이 가라앉고 우울하고 그렇거든요."
"아닙니다. 제 소견으로는 환자분께서는 그저 심한 불면증 증상만 갖고 있지, 우울증 단계는 아닌데요. 우울증이면 증상이 이렇지 않아요."

우울증은 절대 아닌 것 같다는 확신에 찬 의사의 소견에도 불구하고 나는 너무 마음이 답답하고 또 우울했다. 우울증도 아닌데 늘 우울하고 잠이 안 오고 의욕이 없다면 더 심각한 것이 아닌가.

"저는 정말 기분이 몹시 우울하거든요. 거의 날마다."
"본인 기분이 정 그렇다면 간단한 우울증 테스트 한 번 해봅시다."

이윽고 옆방으로 들어가 나는 간단한 우울증 테스트를 받았다. 여러 줄이 연결된 무슨 기계를 내 머리가 아닌 손과 발에 붙이고 기계를 작동하기 시작했는데 5분 가량 움직임 없이 기다리면 결과가 나온다고 했다. 계기판이 '찌지직' 움직이면서 화면에 이상한 곡선이 계속해서 그려지고 결과가 완료되었다.

검사 결과 나는 역시 우울증이 아닌 것으로 판명되었다. 우울증은 아니므로 수면제 몇 알을 처방받는 초진비와 '우울증이 아니라는' 진단 한 줄을 받기 위해 받았던 테스트 비용을 합쳐서 병원비가 십만 원 가까이 청구되었다. 우울증도 아니고 특별한 치료방법도 없다는 처방 한 마디를 받는 대가로 그렇게 큰 돈을 썼다는 후회가 밀려들었다. 병원 문을 나서는데 진짜 우울증이 걸리는 것 같았다.

신경정신과 의사의 기름진 웃음에 병원을 나오다

그 후로 병원을 몇 군데 더 다녔다. 수면제 처방이 아닌, 불면증을 제대로 고쳐줄 유능한 의사를 만나기 위해서 병원들을 전전했다. 마지막으로 찾은 병원도 역시 깔끔하고 환자가 많았다. 그동안 다닌 신경정신과 병원들마다 환자들로 넘쳐났는데 그 병원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리고 그 우울하고 쇠약한 환자들 사이에서 나 같은 불면증 환자는 환자 취급도 안했다.

그 병원 의사는 자신을 나타내기를 무척 좋아하는 성격인 모양이었다. 벽에는 온통 지역의 이름 없는 신문에 실린 원장 자신의 온화한 얼굴과 클리닉 상담 내용이 스크랩되어 있었고 그 위에는 지방 방송국에 전문가 패널로 인터뷰를 하던 당시 환하게 웃는 얼굴이 확대되어 코팅되어 있었다.

그러나 매스컴에 자주 등장했다는 의사도 진료내용은 부실했다. 간단한 상담 몇 마디에 수면제 열 알을 처방해 주는 것도 똑같았다. 더군다나 다른 병원에 비해 환자 대기 수가 꽉 차게 밀린 이유로 상담시간은 늘 쫓기고 형식적이었다.

몇 분간의 의사 상담을 위해 아침부터 나와서 환자 대기실의 우울하고 쇠약한 환자들 틈에 앉아 환하게 웃고 있는 원장의 벽보 스크랩을 지겹도록 보고 있는 일은 견디기 힘들었다. 벽에 도배된, 지역의 이름 없는 신문에 실린 해당 병원의사의 얼굴이 너무 기름지고 지나치게 환하게 웃는다는 느낌을 떨칠 수가 없던 날, 나는 대기실 문을 박차고 나와 버렸다.

그 후로 다시는 불면증을 이유로 병원을 찾지 않았다. 대신 잠 안 오는 밤, 스무권에 달하는 알베르 카뮈 전집을 차례대로 내 침대로 끌어들였다. 나는 '부조리'한 병원 치료 대신 카뮈의 '실존주의'에 의존했다. 내 머리맡을 지난 1년 동안 지켜준 알베르 카뮈는 마흔 여섯의 나이에 교통사고로 죽었다. 딱 지금의 내 나이다.

잠 못 자는 밤, 갈증을 풀어준 '소금과 빵'

알베르 카뮈를 만나기 전, 신경정신과를 드나들기 전에는, 밤이면 줄곧 혼자 동네를 헤맸다. 밤에도 불야성을 이루는 대학가 주변 주택가는 불면증 환자에게는 흥미로운 환경이었다. 불면의 고통이 너무 가혹한 날이면 생맥주를 마셨다. 밤늦은 시간 여자 혼자 출입하기 맞춤한 한적하고 조용한 호프집을 발굴했던 것인데 술집 이름이 '소금과 빵'이었다. 늘 손님이 없어서 조용하고 좋았는데 여주인에겐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언니, 혹시 독일 시인 잉게보르그 바하만의 시에서 따온 이름인가요? '소금과 빵'."
"워메, 바하만을 다 알아부러야? 처음이다, 잉게보르크 바하만을 아는 사람은. 생긴 것은 그렇게 안 생겼는디 세상에 바하만을 다 알아야. 야! 진짜 반갑다. 인제부터 동생은 안주 시키지마. 술값만 받고 안주는 무조건 공짜여."

호프집 '소금과 빵' 언니랑은 그렇게 잉게보르크 바하만 때문에 친해졌고 나는 주인의 전폭적인 편애를 받았다. 늘 손님이 없었기 때문에 내가 편애를 받는다는 기준을 비교할 수는 없었지만 술집 주인이, 주문한 양 외에 술을 연거푸 따라주면서 갖가지 안주를 챙겨주는 것이 특별한 대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스물두어 살 무렵 사서 봤던 잉게보르크 바하만의 시집 덕을 마흔 중반에 이렇게 톡톡히 보게 될 줄이야.

대학가 주변에 아늑한 호프집을 개업할 당시만 해도 여 주인은 젊은 지성과 더불어 문학을 이야기하고 시를 이야기 하고 싶은 순박한 포부로 가득했다. 위자료 전액을 털어 호프집을 냈을 당시 그녀는 가난하고 배고팠으나 시를 이야기 하고 문학을 이야기 하던 자신의 학창시절을 떠올렸을 것이다.

그러나 최고의 지성들이 모인다는 대학가의 현실은 바하만은커녕 신동엽도, 김수영도, 기형도도 모르는 젊은이들이 태반이라고 한탄했다. 개업 1년여 만에 비로소 절대 '생기기는 그렇게 안 생긴' 아줌마 하나가 바하만을 알고 지상의 낯선 자 보들레르까지 읊을 수 있다니 이 척박한 환경에서 외롭게 1년을 고전한 보람이 있었다고 감격해 마지않았다.

잠 안 오는 밤, '소금과 빵'에서 갈증을 풀었다. 공짜 안주에 따르는 약간의 노역이 있었는데 주인 언니의 새로운 사랑 이야기를 밤새 들어줘야 한다는 것이 조금은 지루하고 답답했다. 그러는 와중에 장차 당면한 현실은 가혹해서 '소금과 빵'은 그 주인에게 결코 원만한 빵을 공급하지 못했다. 문학은 결코 밥을 주지 않는다. 궁핍한 재정은 자연스럽게 언니의 새로운 사랑을 떠나가게 만들었고 그것은 언니의 일상을 견디게 하는 한 줌 소금의  결여였다.

"내가 요즘 생각이 많다. 이걸 계속해야 될지."
"아닌 게 아니라 언니. 즈 뗌므, 위 러브, 다뉴브 사이에서 '소금과 빵'은 너무 무겁고 좀 거시기 해."
"근디 나도 나지만 나 이 동네 뜨면 너 어쩌냐. 계속 그렇게 잠 못 자고."

다소 불온하고 음험하고 일순 달콤한 '너'

잉게보르크 바하만이 경고했듯이 '노래는 끝났다'. '이윽고 짐은 너무나 커지고 우리는 추락했다'. 추락하는 자매에겐 날개가 없었다. '소금과 빵'이 폐업하고 정신과 치료도 전혀 효과를 거두지 못하고 불면증은 내게 기어이 친숙한 지병으로 정착했다.

알베르 카뮈의 '칼리굴라'와 '오해'와 '독일인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 새벽을 할애해주면서 이 고질적인 지병과 타협했다. 카뮈마저 떠났지만 다행히 불면증 환자에게 여름이라는 계절은 한결 견디기에 수월하다. 불면증이라는 정신과적 질환은 밤을 앓는 속성으로 인해 다소 불온하고 음험하고 일순 달콤하다.

불면증 환자는 숙명적으로 쉬이 감기지 못하는 눈을 갖고 있다. 늘 깨어 있으되 한밤중의 그 컴컴하고 은밀하고 서늘한 사적 행위들을 목도한다. 취업전문 학원과 고시텔과 음식점이 밀집되어 있는 동네에서 괴롭고 방황하는 젊은이들의 울부짖음과 자학행위를 목도하는 것은 괴롭고 버겁지만 그것이 내게 위안이 된다는 것은 불면증 환자의 잔인한 이기심이다.

컴컴한 '행복마트' 처마 밑에서는 한시도 헤어지기 싫은 커플들이 두 시간이 넘도록 껴안은 채 결속되어 있는데 그 옆으로는 '야! 니미럴' 대상 없는 고함을 허공에 지르며 비틀거리는 청년이 '뉴 리빙고시텔' 쪽으로 가고 있다. 저 멀리 '날카로운 곡선' 독서실 앞에서는 폐지를 줍는 고물수집 아저씨가 불편한 한쪽 다리를 절며 수레를 밀고 오고 있다.

이제 날이 밝기 직전 쓰레기 투기를 목적으로 슬금슬금 나올 할머니들을 보게 될 것이다. 그분들은 자신들의 흔적을 짐작할 수 있는 일말의 단서도 남기지 않기 위해 되도록 먼  곳까지 와서 쓰레기를 끼워 넣는다. 폐쇄회로 카메라를 공교롭게 통과한 그분들은 한 불면증 환자가 범법 장면을 고스란히 지켜보고 있는 줄은 꿈에도 모른 채 종종걸음으로 왔던 길을 되짚어 가신다. 한여름 밤이 너무 짧다.


태그:#불면증 , #여름, #젊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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