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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데 고양이 목에 줄이 단단히 조여져 무척 답답한 모습니다. 먹이를 어지간히 포식하고 난 후 느슨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 목을 단단한 줄이 조이고 있는 고양이 사진상으로는 잘 보이지 않는데 고양이 목에 줄이 단단히 조여져 무척 답답한 모습니다. 먹이를 어지간히 포식하고 난 후 느슨하게 휴식을 취하고 있다.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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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 부근을 어슬렁거리는 고양이 중 한 녀석 목에 답답한 줄이 매여 있는 것을 본 지는 오래되었다. 몸이 커가면서 목줄은 더욱더 피부를 옥죄어 가는데 끊긴 줄의 일부를 땅에 질질 끌면서 다니는 것이 더욱 답답해 보였다. 줄을 맸던 흔적으로 보아 유기된 것으로 보이는데 녀석은 그 처지에 임신한 짝까지 거느리고 다녔다.

한시바삐 목줄을 제거해 주고 싶은데 그러려면 우선 녀석을 잡아야 했다. 남편은 아무래도 혼자 힘으로는 어렵겠다면서 관련단체에 도움을 요청하기로 했다. 우리는 그때 TV에서 보았던 동물보호프로그램 같은 데서 보았던 극적이고 훈훈한 동물구출작전 같은 장면을 상상했던 것도 같다.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보고 119에, 구청에, 여기저기 전화를 걸어 문의한 결과 드디어 지역의 동물보호소 한 곳과  어렵게 연결이 되었다. 우리가 기대했던 유기고양이 보호협회 같은 곳들은 하나같이 서울지역에 한정되어 있었고 우리가 도움을 요청할 수 있는 곳은 동물보호소 한 곳이었다. 그런데 그곳도 형편상 파견 나올 인력은 없는 실정이고 대신 고양이를 잡을 수 있는 철망을 일정기간 대여해 주는 것이 자신들이 취할 수 있는 조치의 전부라고 설명했다.

"TV 같은데 보면 더러 위험에 처한 동물들 구해주기도 하고 그러던데 우린 그런 곳이 전혀 없단 말입니까?"
"그건 서울에 해당되는 경우고 우리 지역은 아직 그런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습니다. 죄송합니다."

하는 수 없이 유일한 해결책으로 전남대학교 수의과 대학 옆에 있는 동물보호소로 고양이 잡는 철망을 빌리러 갔다. 망이라야 거의 사과박스 크기만 한 철로 된 망에 안쪽엔 고양이를 유인하기 위한 먹이를 걸어 놓는 고리가 솟아 있고 거기를 건드리는 순간 철망의 문이 닫히게 되어 있는, 단순한 구조였다. 협회 관계자로부터 간단한 사용설명서와 함께 일주일간의 말미를 얻은 남편은 의기양양했다.

"일주일까지 갈 게 뭐 있어. 난 반나절이면 충분해."

그런 남편에게 보호소 사람은 야생고양이를 포획하는 일이 그리 만만치 않다면서 막상 잡았다 해도 목줄을 끊기가 여의치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을 주지시켰다. 만약 그럴 경우, 생포한 망 채로 사무실로 가져오면 끊는 일은 전문가인 자신들이 도와줄 수 있다고 했다.

"일단 잡았으면 딱 제압해서 목줄을 툭 끊으면 되지. 뭘 번거롭게 고양이를 싣고 왔다 갔다 한다는 거야?"

남편은 고양이 포획에 대한 강한 자신감을 드러냈다. 

길냥이 포획작전... 소시지 기부로 동참한 독서실 커플

그날 밤부터 우리 가족은 고양이가 자주 출몰하는 골목 한쪽에 덫을 놓고 문제의 고양이가 걸려들기만 기다렸다. 철망 안에 싱싱한 생선토막을 전시해 놓았고 쓸데없는 경계심에 대한 우려로 우린 조금 떨어진 위치에서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기로 했다. 남편은 걸려들기만 하면 곧바로 다음 행동에 들어가기 위해 한 손에 가위를 들고 대기했는데 그토록 탐나는 먹이를 보고도 입맛만 다실 뿐 고양이는 좀처럼 망 안으로 들어갈 기미를 보이지 않았다.

녀석을 덫으로 유인하기 위해 망 주변에 미끼로 던져주는 생선 토막은 냉큼 채가면서도 정작 안쪽에 걸려 있는 크고 싱싱한 생선 쪽으로 다가가는 일만큼은 극도로 자제하는 눈치였다.

그렇지만 우리 주변에는 먹음직스런 생선을 노리는 고양이들이 많이 몰려들었다. 날마다 동네 쓰레기통을 뒤져서 연명하던 녀석들에게 날것으로 던져주는 싱싱한 꽁치토막들은 엄청난 호사였다.

우리가 노리는 녀석은 흰색과 검은색이 반반씩 섞인 한 마리인데 녀석이 온 동네 친구들을 끌고 와서 만찬을 즐기는 바람에 준비한 그 많은 생선은 금방 동이나 버렸다. 온식구가 하품을 하면서 기다리기를 몇 시간, 새벽이 되었고 더 이상 던져 줄 먹이가 없다는 것을 안 녀석들은 미련없이 우리 곁을 떠나 버렸다.

"말이 안 통한다는 게 이렇게 답답하구만. 올가미 같은 목줄 잘라주겠다는데 이렇게 날을 세우고 의심을 하니 안타까울 노릇이야." 

다음날 밤부터는 인근 독서실에서 취업시험을 준비 중인 남녀 한 쌍이 우리의 동물사랑 활동에 동참했다. 예쁜 여학생의 동참으로 남편은 더욱 신바람이 났고 딸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보였다. 여학생은 남자친구와 자신이 독서실에 주전부리로 사 놓은 참치 캔과 소시지등을 아낌없이 들고 나와 녀석들의 환심을 샀다. 임신한 암고양이는 모처럼 제대로 된 먹이로 포식을 했고 덩치가 어마어마하게 크고 색깔이 유난히 까만 녀석도 달콤한 먹이 앞에선 순한 몸짓으로 다가와 친근감을 표시했다. 얼룩무늬의 앙증맞은 녀석도 큰 고양이들 틈새에서 요령껏 먹이를 채갔다.

우리 아이들은 고추맛 좋아하는데...

이런 철망을 앞에 두고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목에 줄을 달고 다니는 문제의 고양이가 걸려들어서 우리가 구조의 손길을 펼칠수 있기를
▲ 고양이를 잡는 철망 이런 철망을 앞에 두고 우리는 하염없이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목에 줄을 달고 다니는 문제의 고양이가 걸려들어서 우리가 구조의 손길을 펼칠수 있기를
ⓒ 정미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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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내 철망 문이 덜커덩 내려지고 한 놈이 걸려들었는데 순진한 얼룩무늬 녀석이었다.놀라 발버둥치는 녀석을 꺼내주면서 우리는 일말의 가능성을 보았다. 그런 식으로 다른 고양이들도 걸려들고 곧 풀어주기를 반복했는데 안타깝게도 목줄을 달고 있는 녀석만 절대 걸려들지 않았다.

"흐흐, 그래 갖고 잡을 수 있겠어요? 녀석 눈치만 발달해서 이젠 더 어려워지겠네요."

배달을 가던 '행복마트' 사장님이 오토바이를 잠시 멈추고 염려 섞인 참견을 헀다. 우리 모습이 한심해 보이는 눈치였다. 그날 밤도 소시지 두 개를 사 들고 온 독서실 커플과 우리 가족이 앉아 막연하게 먹이만 낭비하고 있었던 것이다.

"김 사장 웃지만 말고 김 사장도 한턱 쏘아. 우린 그동안 얘들한테 쏟아 부은 공력이 장난 아냐. 우리 딸만 해도 아까운 용돈 털어서 소시지를 몇 개나 산줄 알아? 각자 조금씩 각출하자구."
"나 지금 배달 밀려 바빠요. 헤헤."

사람 좋은 행복마트 사장님은 우리 몰골이 우스워 죽겠다는 표정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가버렸다. 덫에 걸렸다 풀어나는 녀석들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동물들의 경계심은 더욱 커져가고 입맛은 갈수록 고급화되어 가는데 우리가 준비한 먹이 내용은 점점 부실해져 갔다.

"가능성은 없어 보이는데 우선 이거라도 먹여보세요."

배달을 마친 행복마트 사장님이 어느새 참치 캔 두 개를 들고 나타났다.

"와! 오랜만에 참치 캔이다. 얘들은 고추 맛 좋아하는데 이건 그냥 후레쉬네요. 그렇지만 아저씨 너무 감사합니다."

딸아이와 독서실 커플은 행복마트 사장님으로부터 기부 받은 귀한 참치 캔 두 개를 극도로 아껴가며 목줄 고양이를 향해 신중하게 던졌다. 이제 더 이상 먹이를 낭비할 여유가 없고 문제의 녀석을 겨냥하여 주는데 풍찬노숙을 함께 하는 야생 고양이들의 의리는 돈독했다. 녀석들은 골고루 돌아가며 먹이를 나눠 먹었다.

반나절이면 된다더니... 음식물쓰레기통 뒤지기 시작한 남편

"어이쿠, 좋은 일 하시네요."

일주일이 다 되어 갈 무렵 쪼그려 앉은 우리 일행 사이로 독서실 '날카로운 곡선' 사장이 끼어 앉았다. 독서실을 운영하며 목사가 되기 위한 수업을 받고 있는 그는 의외로 고양이들 내력은 물론 생태환경에 대하여 많은 것을 알고 있었다. 이 골목을 둘러싸고 벌어진 다른 고양이 세력들과의 암투와 그 전전세대의 고양이들 족보까지 훤히 꿰고 있었다.

"그러니까 얘들이 부모 세대를 몰아내고 이 골목을 장악한 지 한 일 년 돼가나 봅니다. 지금은 가끔씩 이 덩치 큰 녀석과 이 반반씩 색깔이 섞인 놈이 살벌하게 싸우곤 하죠. 저 임신한 암컷을 덩치 녀석이 자꾸 넘보거든요. 가까스로 위계질서가 잡히긴 했는데 요즘도 가끔씩 동네가 떠나가라 싸워대요.

미련을 못 버리고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고 있는 거죠. 저 얼룩무늬 놈은 원래 저쪽 '빛고을 횟집' 골목을 거점으로 서식하는 무리들과 한패인데 가끔씩 이쪽으로 원정을 와서 어울리더라고요. 자식, 순하고 예쁘다고 다른녀석들이 봐주나 봐요, 사람으로 치면 미인계 같은 거죠."

"그럼 얘네들 형제끼리 결혼하고 또 삼촌뻘 되는 놈이 조카 짝을 넘보고 그런단 말이야? 자식들 이거 엄청 문란하네."
"뭐 그런 셈이죠. 헤헤, 개나 고양이 같은 동물들 세상에선 흔한 일이에요."

그는 목사지망생답게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에서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제1 아내와 여종에게서 몇 명을 낳고' 하는 식으로 녀석들의 족보를 한참 열거하다가 갑자기 일어서 가버렸다.

"이봐, '날카로운 곡선!' 그냥 가버리면 어떡해. 얘들하고 친분이 있는 자네가 좀 잡도록 도와줘야지."
"에이 형님도. 내가 걔네들 형편 빠삭하게 꿰고 있는 건 워낙 오래 봐와서 그런 거고 그건 별개 문제죠. 저, 동물 다루는 재주 없습니다. 아님 진즉 잡아서 홀가분하게 해 줬지 여태 보고 있었겠습니까. 제가 좀 바빠서요. 그럼 이만."

길양이 한 마리의 사소한 고통보다는 길 잃은 어린 양들을 구하기 위한 소명으로 늘 바쁜 그는 장황한 고양이들의 주변설명만 남기고 떠나 버렸다.

약속했던 일주일이 임박했는데 끝내 목줄을 맨 고양이 포획에는 실패했다. 반나절이면 충분하다고 큰소리쳤는데 멀쩡한 생선과 그 많은 참치 캔과 소시지만 고양이들한테 약탈당하듯 먹여 주고 목적을 이루지 못한 남편의 실망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약속한 일주일이 되던 날 풀 죽은 목소리로 동물보호소에 전화를 걸어 며칠만 더 말미를 달라고 사정했다. 협회에선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순순히 좋도록 하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금 밤마다 지능이 높은 고양이와의 지루한 심리전이 계속되었다. 기세가 팍 꺾인 남편은 더 이상 합법적인 먹이를 조달할 수 없어 고양이 대신 직접  음식물 쓰레기통을 뒤져  간신히 상한 생선과 내장 따위를 건져 내어 미끼로 걸어 놓았다.

"난 망치로 잡는디"... '길냥이' 사냥꾼과의 살벌한 대화

"어? 그런 요긴한 물건이 있구만이. 어디서 샀소 이런 건? 나는 쭉~ 망치로 잡는디." 

철망 앞에 쭈그리고 앉아 고양이와 눈을 맞춘 채 걸려주기를 애걸하다시피 하고 있는 남편 앞으로 오토바이를 몰고 가던 나이 든 아저씨 한 분이 부쩍 관심을 나타내며 다가왔다.

"동물보호소에서 잠시 빌렸는데요. 잠깐, 어르신은 망치로 고양이를 잡으신다고요? 그럼 위험하잖아요."
"망치로 탁 쌔리는 것이 기중 빨러. 야! 근디 이런 기발한 기계가 있으면 일허기는 수월허겄네. 피 안보고 말이여이. 근디 동물보호소서 이런 기계를 빌려준다고? 거 이상도 허다. 그나저나 이것으로 여태 몇 마리나 잡았수?"
"열흘 만에 다섯 마리요. 근데 저는 다 필요없고 저기 등은 검고 배는 하얀 놈을 잡아야 해요. 잡아서 녀석 목을 따야 하거든요."

"목은 따서 뭐허게? 아, 요샌 목만 따로 가져간다요? 나는 그냥 '고' 내는 집으로 통째로 넘기는디. 목은 어디 아픈데 좋을까. 것보담 판로가 좋아야제."
"고양이로 고를 내고 판로가 좋아야 하고 그러면, 어르신은 고양이들을 그럴려고 잡으시는 겁니까?"
"하믄. 고내는 집이서도 나한테는 금을 잘쳐줘. 망치로 잡어서 바로 갖고 가니까. 거 이상한 약 같은 거 써서 잡고 또 어디서 깔려 죽고 그런것을 잡었다고 속이고 나는 안 그러거든. 엄청 양심적으로다가 일을 하니까 나는." 
"어르신 그만하세요. 저는 있잖아요 저렇게 목을 꽉 조이고 있는 줄 끊어주려고 잡을려는 거예요."
"하, 거 기계 한번 탐나네. 철물점에서 몇 벌 맞추든가 해야겄어. 망치보다는 낫겄네."
"아이고, 어르신. 그런 말씀하시려거든 어서 가세요. 고양이들이 다 듣고 있잖습니까."
"아이고, 아조 고양이들이 우글우글허네. 모다 잘 먹고 사는가 녀석들이 토실토실허고 털도 좋고."

그러더니 그 어르신은 부릉부릉 오토바이를 세게 몰아 가버렸다.

"여보. 청승맞게 그만 앉아 있고 내일은 철망 그만 반납해. 거 고리에 생선 대가리 매달려 달랑거리는 것도 이젠 보기 흉하니까 치우고.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또 파리는 얼마나 꼬이는데."
"알았어. 딱 이틀만 더 해보고 안 되면 포기할게. 녀석이 커갈수록 목이 더 조여올 텐데 어떡하든 풀어줘야지 보고는 그냥 못 있겠어서 그래."
"나중에 좋은 방법 생기면 그때 해보기로 하고 이번엔 이걸로 끝내. 당신 밤마다 잠 못 자고 쭈그려 앉아 있는 게 며칠째야."
"시골쥐 서울쥐 사는 것이 다르다더니 서울 고양이 시골 고양이 처지가 이렇게 다른가. 똑 같이 위험에 처해서 서울 고양이들은 구조의 손길이 그렇게 다양하더만 이놈은 시골에 사는 죄로 뻔히 눈 뜨고도 구조의 손길 한 번 받아보지 못하니 말이야. 참. 사람 같으면 서울로 위장전입이라도 시키고 싶네. 가엾은 녀석."

그렇지만 고양이 한마리에게 자유를 주고자 머리를 맞댔던 이웃들의 노력을 생각하면 반드시 좋은 방법이 떠오를 것도 같다. 간밤에는 멀리서 우리를 지켜보기만 하던 '뉴 리빙 고시텔' 사장님이 뭔가를 던져주며 목줄이 감긴 고양이를 유인하느라 애를 먹고 있는 모습을 몰래 보았기 때문이다.

만약 그 조용한 '뉴 리빙 고시텔' 사장님이 고양이를 잡아 목줄을 제거하는데 성공한다면 남편은 기뻐할까 허탈해할까 그것을 생각하는 것만으로도 나는 웃음이 나온다.


태그:#이웃, #고양이, #동물보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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