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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문화예술회관 브람스 음악 현수막이 보입니다.
▲ 울산문화예술회관 브람스 음악 현수막이 보입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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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일 수요일 오전 11시 KBS1 라디오에서 진행하는 러브클래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KBS1 라디오는 하루종일 클래식 음악만 틀어 주는 곳입니다. 그리고 대부분 시간에는 서울 방송을 틀어주는데, 러브클래식은 울산 방송국에서 내보내는 것이었습니다. 차분한 목소리의 여성분이 진행하는 방송이었는데, 방송중 사회자는 말했습니다.

"#1019번으로 문자 주세요. 그러면 오는 7월 8일 울산문화예술회관 대공연장에서 공연하는 브람스 음악을 관람할 수 있게 공연티켓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저는 그 말을 듣자마자 2매를 신청했습니다. 답문이 오기를 공연 날 조금 일찍가서 티켓 받아 입장하면 된다고 했습니다. 저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친구와 8일 금요일 오후 7시 50분까지 가서 표를 받아 들어갔습니다. 자리에 따라 1만 원, 7천 원, 5천 원 입장료가 정해져 있었는데 저와 친구는 선물로 받아 무료입장 하는 것이나 같았습니다. 공연장 안에는 이미 수많은 남녀노소가 앉아서 음악이 연주 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정확히 오후 8시 공연이 시작되었습니다. 울산교향악단 단원이 모두 나오고 지휘자가 나와 인사를 했습니다. 모두 70여명의 악단 단원들이 자기 파트에 줄지어 앉아 연주 준비를 했습니다.

여는 음악으로 생상스의 죽음의 무도가 연주되었습니다. 두 번째로 바르톡의 비올라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협주곡이 연주되었고 15분 휴식 후 브람스 교향곡 2번 전 악장을 연주했습니다. 연주가 시작되었고 70여 교향악단 남녀단원이 내는 음률, 지휘자의 지휘에 따라 움직여지고 이어지는 각종 악기들의 소리가 감미로웠습니다. 오랜 세월 연습로 단련된 악기 연주자들. 그들도 악기를 연주하는 노동자로 먹고 살지만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랑은 다른 방식으로 살아갈 것입니다.

연주를 따라가다보면 나도 모르게 그 음률과 하나가 되어 흘러가는 듯한 느낌을 받게 됩니다. 악기마다 음색과 음향이 달라서 모든 악기가 내는 소리가 감미롭기만 했습니다. 두텁고 묵직한 소리를 내는 튜바에서부터 호른 소리가 다르고 바이올린, 비올라, 첼로 소리가 달랐습니다. 가끔 올망졸망 들러오는 경쾌한 타악기 소리까지 여러 악기들이 어우러져 내 마음을 붕 뜨게 만들었습니다. 저는 연주를 듣는 중에 하룻동안 쌓인 피로가 말끔히 풀리는 거 같았습니다.

제가 언제부터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어려선 전깃불도 없는 산속에 포장집 짓고 살아서 음악을 들을 기회가 전혀 없었습니다. 국민학교 등교 때 스피커에서 들려오는 동요와 중학교 가서 음악 시간에 피아노 반주의 가곡을 배우기는 했지만 감흥은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음악은 저의 관심 밖이었던 것입니다.

제 귀에 음악이 들려오기 시작한 것은 중학교를 마치면서입니다. 처음부터 클래식 음악에 대해 알았던 건 아닙니다. 음악은 대중음악부터 접하게 됩니다. 당시 조용필이라는 가수가 떠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서민들이 쓰는 말로 그 가수에게 저는 뿅 가버렸습니다. 어느날부터 그 가수의 노래에 심취 했습니다. 독특한 음색과 독특한 창법의 노래는 감성지수가 높은 저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브람스  브람스 교향곡 중 2번 전곡을 연주 했습니다.
▲ 브람스 브람스 교향곡 중 2번 전곡을 연주 했습니다.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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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도 그처럼 멋진 가수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고 급기야 그를 흉내내려고 무진 애를 쓰게 됩니다. 그가 나오는 잡지나 음반은 모두 사모았습니다. 듣고 듣고 또 들어도 질리지 않았습니다. 노래 노자도 모르던 것이 산속에 작은 카세트 하나 들고 올라가 그의 노래를 틀어 놓고 같이 따라 불렀습니다. 그의 음량이 높아서 높은 음을 낼 때는 따라 부를 수 없었습니다. 기침이 나오고 헛구역질이 나오기까지 했습니다. 그래도 계속 따라 불렀습니다.

저는 학교 다닐 때 공부도 못했고 외우는 것은 더더욱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조용필 노래는 달달 잘도 외워졌습니다. 그는 작사와 작곡도 했습니다. 저도 그를 따라 한다며 작사, 작곡법에 대해 공부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처음엔 어떻게 하는지 전혀 몰랐습니다. 그래서 시작법 책을 있는 대로 사모으고 가사 쓰는 법을 터득할 때까지 공부하고 또 했습니다. 국어 점수가 10점, 20점이 고작이었습니다. 그런 제가 시쓰기에 대해 공부 하려니 머리에 쥐가 날 지경이었습니다. 그래도 계속 공부했습니다. 시작법이 어려워 초등학교 교과서에 나오는 동요, 동시에 대해 읽고 쓰고를 반복했습니다.

4, 4 음절. 어느날 그것이 보이기 시작 했습니다. 모든 동요나 시가 음률이란 게 있었고 그래야 노래로도 만들어 질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것입니다. 대단한 발견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것을 알고나니 얼마나 기쁘던지요. 옹달샘이란 동요가 있습니다.

"깊은 산속 옹달샘 누가와서 먹나요. 새벽에 토끼가 눈비비고 일어나 세수하러 왔다가 물만먹고 가지요"

저는 그 노래 음절에 맞게 생각나는 표현을 갖다 붙이는 연습을 많이 했습니다. 계속 연습하다보니 어떤 느낌이 오면 자연스레 글이 만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글쓰기가 점점 재밌어 졌습니다. 음악도 마찬가지 였습니다. 음악 음자도 모르던 제가 작곡에 대해 공부하려니 이거야 원 소앞에 경읽기가 따로 없었습니다. 처음에 음표를 봤을 땐 흔히 말하는 콩나물 대가리가 나열된 것처럼 보였습니다.

저는 처음부터 다시 시작했습니다. 국민학생 음악 교과서를 구해서 음악 이론에 대해 공부 했습니다. 처음엔 음표 앞에 붙은 #(샵)이나 b(플랫)에 대해 이해를 못했습니다. 가장조 나장조가 어떻게 생겨나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장조가 뭐고 단조가 뭔지도 몰랐습니다. 학교 다닐 때 다 배우긴 했으나 이해 못하고 그냥 세월만 흐른 것이었습니다. 초등학교 교과서부터 찬찬히 다시 훑어 보니 음표, 음정, 박자가 뭔지 알게 되더군요. #이 많을수록 거친 음색이 되고 b이 많아 질수록 부드러운 음색이 된다는 것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곡을 만들 때 그냥 만들어 지는게 아니라 감정이나 기분, 분위기에 따라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단조 음악은 온화하거나 슬픈 분위기 낼 때 주로 사용하고 장조 음악은 경쾌하거나 발랄한 음악에 주로 사용되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작곡 하려면 악기 하나쯤은 다룰 줄 알아야 한다해서 기타 교습소에 가서 기타도 배웠습니다. 도레미 음이 인식되고 화음의 흐름이 이해되자 작곡 습작을 진행시켰습니다. 하지만 노래가 되는지 안되는지는 몰랐습니다.

20대 초반 가출을 했습니다. 가수로 성공하겠노라고 무작정 울산에서 서울로 올라 갔습니다. 외삼촌네가 서울 있는데 얼마쯤 머물다 눈치보여 나왔습니다. 오갈 데 없어 영등포역 근처 한 식당에 취직했습니다. 알아보니 주변에 작곡 사무실이 있었습니다. 당시 식당 월급 10만 원 받았는데 그 중 8만 원을 노래 배우는데 들었습니다. 아침부터 저녁 9시 넘을 때까지 식당에서 일하고 9시 넘어 1시간 가량 작곡 선생에게 노래를 배웠습니다.

그런 생활이 지속되다보니 몸도 피곤하고 힘들었습니다. 몸살로 고생한 적도 있었습니다. 발성연습부터 시작한 지 며칠이 지난 후 작곡 선생이 말했습니다.

"작곡하려면 피아노를 칠 줄 알아야 하니 피아노를 배워라."

그 작곡가 선생은 저에게 노래는 어느정도 하니 피아노를 배우라고 했습니다. 서울 가기 전 기타를 배워 만든 곡을 몇 곡 들고가서 보였습니다. 작곡 선생은 노래만 하면 돈이 많이드니 노래를 많이 만들어 보라 했습니다. 작곡가로 나서다 보면 노래 취입도 가능하다 했습니다. 그래서 그때부터 노래가 아닌 피아노 연습에 돌입했습니다. 바이엘 손가락 연습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6개월 정도 흘렀습니다. 이중 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물설고 낯설은 곳에서 고생하며 이럴 필요 있나 싶었습니다. 혼자 몰래 눈물도 여러번 흘렸습니다.

'이왕 피아노 공부 하려면 집에 가서 직장 구해 다니며 본격적으로 공부해보자.'

집 나간 지 6개월이 흐른 후 저는 다시 집으로 돌아 왔습니다. 부모님은 고생만 하다 얼굴이 반쪽이 되어 돌아온 아들을 혼내지 않고 잘 돌아 왔다고 했습니다. 어머니 얼굴을 보니 눈물만 났습니다. 고생한 어머니에게 잘해 드려야겠다는 생각이 그때부터 들었습니다. 저는 직장을 구했고 피아노 학원에 다녔습니다. 그곳은 서울대 음대를 나온 선생님이 계셨습니다. 발표회 때 빗방울전주곡이란 곡을 연주했는데 참 듣기 좋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우연히 길을 가다 들려오는 음악소리. 빠바바밤~. 묵직하고 웅장한 그 소리에 발길을 멈추고 끝까지 들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뿅 가버렸습니다. 뭐 저런 음악이 다 있노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길거리 음반가게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는데 들어가서 지금 나온 음악이 무슨 음악이냐고 물어보니 베토벤의 교향곡 5번 운명이라 하였습니다. 운명교향곡?

그 음악을 들은 후 제 음악 취향의 운명도 바뀌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왕 공부하는거 클래식에 대해 공부해 보자는 생각이 들었고 처음 접하고 감동받은 운명의 작곡자에 대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베토벤에 대한 위인전을 사보았습니다. 1700년대 독일 태생 작곡가로 클래식계에선 위대한 작곡가로 이름이 나 있었습니다. 그 외에도 바하나 헨델과 같은 클래식의 아버지라 불리우는 작곡가부터 하이든, 모차르트, 슈베르트, 슈만, 베를리오즈, 바그너.

다양한  클래식 작곡가 부류에 대해 공부했습니다. 수많은 클래식 음악을 듣고 배우다보니 이제 대중가요에 대해 관심이 멀어졌습니다. 대중음악은 온통 사랑과 이별타령뿐이었습니다. 대중음악이 3분짜리 단편극이라면 클래식은 장편극과도 같은 것으로 여겨지게 되었습니다. 대중음악이 얕은 물이라면 클래식 음악은 깊은 물과도 같이 느껴졌습니다. 요즘은 대중음악은 듣지 않고 오직 클래식음악만 듣습니다. 그중에 아직도 베토벤 음악을 많이 좋아하는 편이고 클래식음악이라면 뭐든지 다 좋습니다.

저와 친구는 앵콜 음악으로 헝가리 무곡을 들은 후 다음 연주회에 또 와야겠다는 기약을 남기고 집으로 왔습니다. 이제 클래식 음악은 제 삶의 중요한 위안이 되고 있습니다. 좋은 음악을 듣는 것도 행복이라면 행복이니까요.

울산문화예술회관앞 임시로 꾸며 놓은 멋진 화단.
▲ 울산문화예술회관앞 임시로 꾸며 놓은 멋진 화단.
ⓒ 변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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