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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중국의 한의학(통칭 중의학)을 견학하기 위해 북경을 방문했다. 북경중의약대학교 부속 국의당(國醫堂)이라는 중의병원에서 중의학 교수들이 환자 진료하는 모습을 참관했다. 제일 먼저 들른 진료실은 침과 뜸을 주로 시술하는 침구과였다. 다양한 환자가 교수 앞을 거쳐갔다. 안면마비, 중풍 후유증, 두통, 여드름, 비만 등등. 60대가 넘어 보이는 아주머니 한 분이 들어오셨다.

 

"어디가 아파요?"

"선생님 만나려고 멀리서 왔어요. 제가 안 아픈 데가 없는데요. 15년 전에 팔이 안 올라갔는데, 그게 림프절인가가 커졌다고 의사가 그러더라구요. 그때 치료를 받긴 받았는데…."

 

대화 중간 중간 통역이 면담 내용을 들려주었다. 오늘 아픈 곳을 물어보는데, 15년 전 이야기를 하다니. 15년의 세월을 뛰어넘어 지금까지 오려면 얼마나 걸리려나. 나로도 보건지소에서 환자분들을 진료하던 추억이 새록 솟아났다. 10명 중 1명 꼴로 대화를 길게 끄는 환자분들이 계셨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안 아픈 곳이 없다는 말로 시작이다. 기억력이 어찌나 좋으신지, 부위마다 아프기 시작한 날도 기억한다. 어느 병원을 갔고 며칠간 치료, 입원을 했으며 효과가 없어서 또 어떤 병원을 갔는지 얘기를 듣다보면 날이 저물어 가는 기분이었다. 이른바 건강염려증 환자들이었다.

 

대화는 아직도 진행 중이었다. "아. 그러셨구나. 거기가 아프셨네요"라면서 교수가 침상으로 가자는 손짓을 했다. 손짓을 느꼈는지, 못 느꼈는지 환자는 여전히 아픈 곳을 설명하기 바빴다. 멋쩍은 웃음을 날리는 중의학 교수.

 

<의학면담>이라는 책이 있다. 의사가 환자와 면담을 할 때의 요령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된 책이다. 이런 대목이 있다. '베컴'과 '프랭클'이 내과의사와 환자의 면담을 비디오 촬영한 결과 69%에서 면담시작 18초 이내에 의사가 환자의 말을 가로막았다고 한다. 또 면담의 77%에서 환자가 의사를 방문한 이유를 충분히 말하도록 가만히 내버려 두질 않는단다. 중간에 가로막지 않으면 면담시간이 무의미하게 길어질 것을 걱정한 까닭이다.

 

하지만 환자가 진단에 필요한 정보를 모두 말하는데 생각보다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는 게 책의 요지. 보통 첫 말을 마치는 데 걸리는 시간이 60초라고 한다. 75% 이상의 의사나 한의사는 그 시간을 참지 못하고 20초 이내에 말을 끊는다. 중간에 끊겨서 부족한 진료 정보를 다시 그러모으는데 곱절의 시간이 필요하다.

 

대화는 끊기지 않고 계속 되었다. 교수가 말을 가로막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주머니가 지갑에서 주섬주섬 50위안을 꺼냈다. 우리 돈으로 만 원 좀 못 되는 돈이다. 웃으면서 뭔가를 얘기하는 교수. 조심스러운 얼굴이었다가 환하게 펴지는 아주머니. 통역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50위안 밖에 돈이 없대요. 이대로 수납대에 가면 150위안을 낼 수 밖에 없대요. 그러니까 교수님이 침 값을 안 받겠다 하네요."

 

사정을 듣다보니 걱정이 되었나 보다. 50위안 주면 차비는 남아있느냐고 교수가 물었다. 차비는 있다는 아주머니 말에 미소를 지었다. 산시(山西)성에서 왔다는 아주머니. 북경에서 500km 떨어진 곳에서 기차를 타고 오며 걱정에 휩싸였을 아주머니가 머릿속에 그려졌다. 북경까지 와서 치료도 못 받으면 어쩌나 하는 근심 걱정. 15년 인생을 넋두리처럼 늘어놓은 것은 그런 절박함에서 비롯된 것이었겠다.

 

침을 맞고 누워있는 아주머니 옆에 가서 서툰 중국어로 물었다. "전머양?(어때요?)" "팅부동(뭔 말인지 못 알아듣겠네)" 대화는 포기하고 슬쩍 환자분의 얼굴을 살폈더니 편안해 보였다. 자글자글한 주름살이 그 순간만큼은 팽팽했다.


태그:#중의학, #한의사, #북경, #중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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