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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민속박물관 옆에 있는 추억의 거리
 국립민속박물관 옆에 있는 추억의 거리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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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서울에 이런 곳이 있었네?'

경복궁을 둘러보고 민속박물관 쪽으로 퇴장을 하는데 추억의 거리라는 것이 눈에 들어온다. 아주 작은 규모지만, 고층 빌딩으로 둘러싸인 서울에 추억을 되새길만한 거리가 있다는 것이 반갑다. 그 시대를 살았던 어르신들에게는 추억을 곱씹을 수 있고, 90년 이후에 태어났던 세대에게는 새로운 세계를 경험할 수 있다는 점에서 참 매력적인 장소다.

추억의 거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은하 사진관
 추억의 거리 입구를 지키고 있는 은하 사진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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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와서 보세요."

경복궁을 둘러보고 민속박물관 쪽으로 퇴장을 하다가 만난 추억의 거리, 그 입구에 있는 사진관 앞을 기웃거리는데 한 아주머니가 말을 건넨다. 사실 들어가도 되는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그 한 마디가 고마워 냉큼 안으로 들어간다. 옛날 시골의 어느 사진관을 재연해놓은 모습이 인상적이다. 영화 '미술관 옆 동물원'에서 남자주인공이 운영을 했던 사진관이 문득 떠오른다. 구석구석에 전시된 빛바랜 사진들, 한 쪽 귀퉁이에 잘 정리된 조명 기구들이 정겹게 다가온다. 디지털 카메라가 보급이 되고 이제는 흔히 볼 수 없는 필름 카메라도 전시되어 있어 추억을 되새기게 만든다.

사진관에는 시대극에서나 볼 수 있는 교복이 준비되어 있어 누구나 입어보고 사진을 찍을 수도 있다. 아주머니의 권유에 교복을 입어보고 싶지만, 혼자 방문한 곳이라 선뜻 엄두를 낼 수 없다. 그저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볼 수 있는 소품들을 만지작거리며 대리만족을 느끼는 수밖에. 다음에 다시 오게 되면 꼭 입고 기념사진을 남기겠다고 다짐하며 그곳을 나온다.

추억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좋은 소리사
 추억의 음악이 흘러나오는 좋은 소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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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관을 나와 골목길로 들어서는데, 어딘가에서 흘러나오는 옛 가요가 발길을 잡는다. 언제 들어도 익숙한 심수봉의 노래다. 음악이 흘러나오는 곳에 레코드 가게가 있다. 먹을만큼 먹은 나이임에도 나는 여전히 아이돌에 열광한다. 풋풋한 외모와 현란한 춤동작에 시선을 뺏기는 것은 어릴때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하지만 그들의 노래는 언제나 수명이 짧다. 오랫동안 진득하게 들어도 질리지 않는 노래는 모두 90년대 이전의 노래들이다. TV가요 프로그램을 보면서 눈이 즐거운 요즘, 라디오를 들으며 귀가 즐거웠던 어린 시절이 그리워질 때도 있다.

레코드 가게는 들어갈 수 없어 밖에서 들여다보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 큼직한 카세트, 한 쪽에 진열된 LP판들, 손 때 묻은 턴테이블등 추억의 소품들이 눈빛을 반짝이게 한다.

레코드 가게 한 쪽 구석을 메꾸고 있는 LP판들
 레코드 가게 한 쪽 구석을 메꾸고 있는 LP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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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나의 아빠는 음악광이셨다. 집에는 LP판들이 수두룩하게 쌓여 있었고, 매일 아침 음악과 함께 하루가 시작되었다. 윤수일, 조용필, 이미자등은 지금도 생각나지만, 이제는 기억조차 희미해진 이름들도 있다. 아빠는 나에게 LP판을 재생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고, 그것을 배우며 신기해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아빠는 어린 나에게 필름 카메라의 조작법을 알려주기도 했었다. 머리가 크고 너무 멀어져버린 아빠지만, 카메라와 MP3를 항상 소지하고 다니는 나를 보면 그분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은 것은 확실하다. 역시 피는 못 속이는 건가?

추억의 만화책이 진열되어 있는 고바우 만화방
 추억의 만화책이 진열되어 있는 고바우 만화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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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코드 가게 옆에는 만화방이 자리잡고 있다. 흘러나오는 음악을 들으며 만화책을 읽을 수 있다니, 이보다 더 좋은 위치가 있을까 싶다. 추억의 거리에 있는 상점들은 사진관과 다방을 제외하고는 모두 막아져 있다. 도난이나 파손에 대한 우려때문에 그런 것 같다. 하지만 큰 규모가 아니라 밖에서도 충분히 내부를 둘러볼 수 있으니 크게 아쉬워할 필요는 없다.

아빠가 음악과 사진을 좋아하셨듯이 나의 엄마는 만화책과 영화를 좋아하셨다. 내가 초등학교 4학년때부터 음식점을 운영하셨던 엄마는 퇴근하실 때면 만화책이나 비디오 테잎을 한 아름 안고 들어오셨다. 그리고는 밤이 깊도록 그것들과 시간을 보내셨다. 나 역시 엄마 옆에서 만화책을 뒤적거리기도 했었는데, 이곳에 진열된 만화책은 어떻게 익숙한 것이 한 권도 없다.

그러고보니 내가 20살이 된 이후로 만화책이나 영화를 즐기는 엄마를 뵌 적이 없는 것 같다. 관심이라는 것이 쉽게 없어지지는 않을텐데, 사는 것이 점점 버거워져서 그런 여유를 찾지 못하시는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매번 생각만 하고 실천은 못하고 있는 일 중 하나, 다음에 집에 내려가게 되면 엄마랑 팔짱 끼고 영화관을 찾아야겠다. 노안이 와서 이제 만화책 보기는 힘드실테니 말이다.

옛날 어른들의 약속 장소였던 다방
 옛날 어른들의 약속 장소였던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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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의 브랜드를 내 건 커피 전문점들이 우후죽순으로 생겨나고 있다. 몇 발자국에 하나씩 보이는 것이 커피 전문점일 정도로 말이다. 서울에서는 이제 찾아볼 수 없지만, 작은 시골마을에는 아직도 다방이 존재한다. 잘못된 배달 문화가 생겨나면서 다방은 자연스럽게 퇴폐 업소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하지만, 그 이전에 다방은 우리 윗 세대의 어르신들의 일반적인 만남의 장소였다. 즐길거리가 많이 부족했던 옛날에는 다방에서 지인들을 만나 차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 유일한 낙이었을지도 모른다.

나에게도 다방에서의 추억은 있다. 나의 추억이자 부모님의 추억일 수도 있다. 자꾸만 부모님을 들먹이게 되는 이유는 그분들에게 의존해서 생활할 수 밖에 없었던 아주 어린 시절의 추억들이기 때문이다. 이번 추억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다. 초등학교도 다니기 전으로 기억되는 것으로 봐서 정말 어렴풋하게 기억되는 시절이다.

아빠가 친구분들과 약속을 하셨고, 그 장소는 어김없이 다방이었다. 아빠를 따라 약속장소에 나가 요구르트 몇 개를 잘 먹고 돌아온 나는 그날 밤 사단을 만들었다. 눈치 없게도 쪼르르 엄마에게 고자질을 한 것이다. 아빠 친구 이야기는 쏙 빼놓고 이모랑 놀고 왔다고 했으니 지금 생각해보면 엄마가 충분히 오해할만했다. 어렸으니까 용서가 되는 실수, 지금도 가끔 그 이야기를 꺼내 놓으며 웃고는 한다.

추억의 거리 다방은 들어가서 직접 체험해볼 수 있다. 커피를 타주는 예쁜 언니는 없지만 커피 자판기가 설치되어 있다. 커피 한 잔 뽑아놓고 뮤직박스에서 닭살 멘트를 날려주는 장발의 쭌이 오빠를 상상하며 여유를 부려보는 것도 나름대로 재미있는 경험이 될 것 같다.

오랜만에 보는 수동 펌프식 수도
 오랜만에 보는 수동 펌프식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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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 뒤쪽으로 걸음을 옮기니 펌프식 수돗가가 눈에 들어온다. 학창시절 방학이 되면 벌교에 살고 있는 시골 고모댁에서 몇일을 지내곤 했었다. 그럴 때마다 펌프질을 해서 물을 받아내는 것이 여간 재미있었던 게 아니다. 오랜만에 보는 풍경이 옛 추억들을 새록 새록 떠올리게 만든다.

소박하지만, 향수에 젖게 만드는 추억의 거리
 소박하지만, 향수에 젖게 만드는 추억의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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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추억의 거리에는 장터국밥집, 화개 이발관 등 70~80년대를 떠올리는 상점들이 자리잡고 있다. 하루 종일 사람들을 실어 날랐을 전차의 한 모형도 전시가 되어 있어 눈길을 끈다. 저녁 6시, 문을 닫을 시간이 다가오자 관리인들은 정리를 하기 시작한다. 덕분에 후반부에 와서는 미처 천천히 둘러보며 사진을 찍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창고 분위기가 나는 활자 인쇄소와 연자 방앗간을 둘러보며 추억의 거리를 나섰다.

국립 민속 박물관과 그 옆에 자리하고 있는 추억의 거리는 무료 입장이 가능하다. 경복궁역 5번출구로 나가 경복궁 담길을 따라 걷다보면 만날 수 있다. 입장료 3,000원을 내면 광화문으로 입장을 해서 경복궁까지 둘러볼 수 있다. 도심 속 옛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추억의 거리, 가족들이나 친구들과 찾아도 좋고 연인과의 데이트 코스로도 손색이 없을 것 같다. 은하 사진관에 들러 옛날 교복을 입고 기념 사진을 남기는 것은 빼놓지 말자.

덧붙이는 글 | 이 글을 블로그에 중복 게재된 글입니다. http://dandyjihye.blog.me



태그:#추억의 거리, #국립민속박물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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