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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롯데월드 지하상가에서 1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다 쫓겨난 안달옥씨가 자신의 옛 가게 앞에 서 있다.
 2일 오후 롯데월드 지하상가에서 15년 동안 가게를 운영하다 쫓겨난 안달옥씨가 자신의 옛 가게 앞에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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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가게에서 쫓겨난 안달옥씨는 옆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자신의 가게에서 쫓겨난 안달옥씨는 옆 가게에서 아르바이트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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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일 오후 안달옥(60)씨는 서울 송파구 잠실동 롯데월드 지하상가에 있는 '장터'라는 이름의 음식점 앞에 섰다. 60㎡ 크기의 가게는 영어로 '롯데월드 쇼핑몰'이라고 쓰인 펼침막으로 가려졌고, 문고리는 자물쇠로 채워져 있었다. 안씨는 "15년 동안 운영해 온 내 가게였지만, 한 달 전 롯데월드의 강제철거로 쫓겨났다"고 말했다.

그 날은 지난달 3일이다. 오전 8시께 가게 앞에서 안씨는 큰 충격을 받았다. 롯데월드가 가게 안에 있던 집기를 모두 가져간 뒤, 문을 잠가놓았기 때문이다. 인근 계단 앞에 식재료 더미만 쌓여있었다. 그는 눈물을 머금고 식재료를 모두 버렸다. 이날 안씨의 부인은 쓰러졌다.

안씨는 1995년 이곳에 가게를 열었다. 권리금만 2억 원으로, 당시 인근 아파트 2채를 살 수 있는 돈이었다. 1997년에는 롯데월드의 요구로, 7000만 원을 들여 구조 변경(리모델링)에 돈을 쏟았다. 하지만 강제철거로 그 돈은 모두 날리게 됐다.

그는 현재 옆집 가게에서 아내와 함께 아르바이트를 하며 생계를 유지하고 있다. 주문을 받고 손님이 남긴 빈 그릇을 치우고 식탁을 닦는 게 그의 일이다. 안씨는 "롯데월드는 영세상인의 생존권을 박탈해갔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새롭게 꾸밀 예정이니 나가라" - "쫓겨나면 전 재산 잃는 것"

롯데월드 지하상가 상인들은 요즘 눈물과 한숨으로 지낸다. 언제 내쫓길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롯데월드는 지하상가를 새롭게 꾸며 롯데쇼핑에 임대해준다는 이유로 상인 50여명을 내쫓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대하는 22명의 상인들은 비상대책위원회를 만들고 롯데와 법적 공방을 벌이고 있다.

상인들은 쫓겨나게 되면 그동안 투자한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합쳐 수억 원을 잃게 된다. 상인들은 롯데월드에 공사 기간 중 대체 매장을 마련해주고, 공사 이후에는 재입점을 시켜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롯데월드는 이를 거부하고 있다. 경제적 손실을 보상해준다는 말도 없다. 롯데월드가 이처럼 단호한 이유는 '제소전 화해' 조항 때문이다.

제소전 화해는 민사상 다툼이 일어날 경우, 당사자들끼리 미리 합의한 조항을 법원 판결에 준해 따르는 절차를 의미한다. 롯데월드는 지난 2009년 재계약을 추진하면서, 임대차 계약을 중도에 해지할 수 있고, 상인들은 어떠한 금전적 청구도 하지 못한다는 내용의 제소전 화해 조항을 요구했다.

김성협 비상대책위원회 사무장은 "롯데월드가 제소전 화해 조항을 넣지 않으면 재계약을 해주지 않겠다고 압박했다, 힘없는 상인들은 여기에 응할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상인들은 롯데월드를 믿었다. 하지만 돌아온 것은 매장에서 나가라는 요구였다. 안씨를 비롯한 4명의 상인들은 2009년 12월까지 가게를 내놓으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에 상인들은 롯데월드를 상대로 제소전 화해 무효 소송을 냈다. 지난해 9월 1심에서는 승소했지만, 4월 2심에서는 패소했다. 이들이 곧바로 대법원에 상고했지만, 롯데월드가 안씨의 가게에서 모든 집기를 가져가는 것을 막지 못했다. 

나머지 상인들도 2010년 12월까지 가게를 비워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이미 강제집행 예고 통지서를 받았다. 이들은 지난 4월 롯데월드를 상대로 제소전 화해 무효 소송과 강제집행정지 신청을 법원에 냈다. 롯데월드는 합의로 문제를 해결하기는커녕, 명도 소송으로 맞불을 놨다.

"상생 외치던 롯데, 뒤로는 상인들 쫓아내"

상인들은 가게에서 쫓겨나면,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합쳐 수억 원을 날리게 된다. 사진은 정희석씨의 가게
 상인들은 가게에서 쫓겨나면,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합쳐 수억 원을 날리게 된다. 사진은 정희석씨의 가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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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데월드 지하상가에서 99㎡ 규모의 돈가스점을 운영하는 정희석(33)씨는 2007년 어머니를 대신해 가게를 운영했다. 당시 롯데월드는 고객 사망 사고로 인해 6개월간 문을 열지 않았다. 또한 인근 아파트 재건축이 진행 중이었다. 그는 "손님이 거의 없었다"며 "700만 원인 월 임대료와 관리비를 내는 것도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당시 많은 상인들이 지하상가를 떠나려 했지만, 롯데월드는 월 임대료를 안 받겠다며 상인들을 붙잡기도 했다. 그는 "미래를 보고 2008년 4월 대출금 9000만 원을 들여 리모델링하는 등 투자해 지금껏 장사를 해왔다"며 "이제 장사가 잘 되려고 하는데, 롯데월드에서 갑자기 나가라고 해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정씨는 아직 대출금을 한 푼도 갚지 못했다. 현재 걸려 있는 소송에 패해 쫓겨나면 리모델링 비용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다. 앞으로가 더 막막하다. 인근 잠실·신천동에서 같은 규모의 가게를 열기 위해서는 보증금을 제외하고, 권리금과 인테리어 비용을 합쳐 3억 원가량이 필요하다. 이 돈을 마련할 길은 없다.

그는 "지난해 11월 결혼한 아내와 4월에 태어난 아이만 생각하면, 눈물이 난다"며 "대기업 롯데가 상생을 외치면서 이렇게 영세 상인들을 짓밟을 수 있느냐, '계속 장사하게 해달라', '같이 살자'는 게 무리한 요구냐"고 말했다.

박주현(35)씨는 그동안 롯데월드의 부당한 요구에 분통을 터트렸다. "롯데월드는 수백 만 원의 임대료에 매달 22만 원의 주차 관리비를 걷어갔지만 정작 내 차를 주차할 수 없었고, 한식당을 하는 나에게 커피숍을 하라고 요구하기도 했다"며 "이제는 아예 내쫓으려고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상인은 "1997년 롯데월드가 상인들에게 지정업체를 통한 리모델링을 요구했다, 3.3㎡당 200만 원이면 가능한 리모델링을 600만 원을 내고 해야 했다"며 "롯데월드는 당시 입점할 상인들이 얼마든지 있다고 위협했고, 상인들은 울며 겨자 먹기로 막대한 돈을 들였다"고 전했다. 

김성협 사무장은 "세계 6위 유통기업이라고 자랑하는 롯데는 잠실 지역에 123층짜리 초고층 빌딩을 짓고 롯데타운을 만들기로 했다, 막대한 이익을 얻게 된다"며 "그런데 뒤로는 상인들을 내쫓고 있다, 상인들의 생존권을 박탈하면 제2의 용산 참사가 일어날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한편, 롯데월드 관계자는 "현재 소송중인 사안으로 구체적인 입장을 밝히기가 곤란하다, 계약서대로 진행한다는 게 롯데월드의 입장"이라며 "상인들이 요구하는 사안에 대해서는 정해진 바 없다"고 밝혔다.

롯데월드 지하상가에서 쫓겨나게 되는 상인들이 3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롯데월드 지하상가에서 쫓겨나게 되는 상인들이 3일 오후 서울 소공동 롯데백화점 본점 앞에서 대책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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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롯데월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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