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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생광(1904~1985) I '명성황후(1983)' 종이에 채색 200×300cm 이영미술관 소장(왼쪽). 손장섭 I '조선총독부'(1984). 안중근 I '국가안위노심초사' 1910. 전수천 I '영원한 혹성들' 합판에 유채와 강철 1991(맨 오른쪽). 전수천 작품은 근대사를 대표하는 인물의 얼굴을 강철 원으로 형상화했다
 박생광(1904~1985) I '명성황후(1983)' 종이에 채색 200×300cm 이영미술관 소장(왼쪽). 손장섭 I '조선총독부'(1984). 안중근 I '국가안위노심초사' 1910. 전수천 I '영원한 혹성들' 합판에 유채와 강철 1991(맨 오른쪽). 전수천 작품은 근대사를 대표하는 인물의 얼굴을 강철 원으로 형상화했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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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미술관 리움은 2011년 첫 전시로 '코리안 랩소디-역사와 기억의 몽타주'전을 6월 5일까지 연다. 격동과 시련의 역사 속에 핀 한국미술 100년 우리역사와 그 속에 숨겨진 기억을 자유로운 음악형식인 랩소디음악처럼 들려준다.

이번 전은 1부(1층 블랙박스갤러리)와 2부(지하1층 그라운드갤러리)로 나뉜다. 1부에서는 '근대의 표상'이라는 제목으로 한말부터 근대사까지(1876-1945)를, 2부에서는 '낯선 희망'이라는 제목으로 현대사(1946-2001)를 선보인다.

근현대 대표작은 물론 역사를 불러와 기억을 상기시키는 다큐사진과 영상, 애국지사들이 남긴 글과 그림, 노일전쟁과 청일전쟁 당시 조선과 관련된 사건을 다룬 우키요에(다색목판화) 그리고 70년대 실험예술 등 80여점 자료가 형식에 구애 없이 차이와 상충되는 점을 비교하여 보는 방식으로 전시된다.

한일 간 역사의 시각차는 너무 크다
 
우타카와 쿠니마츠 I '조선사건왕성후궁도' 종이에 목판 34.5×71cm 1882. 남주현 소장
 우타카와 쿠니마츠 I '조선사건왕성후궁도' 종이에 목판 34.5×71cm 1882. 남주현 소장
ⓒ 삼성미술관 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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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전시장에 들어가면 명성황후의 비통한 최후를 장엄하게 그린 박생광의 역사화 '명성황후(1983)'가 보인다. 그리고 같은 주제를 다룬 일본 우키요에(다색목판화)코너도 있다. 우키요에 명치시대(1868-1890)에 대량복사가 가능해 국정홍보용으로 많이 쓰였다.

그런데 같은 인물을 두고 역사의 시각차는 너무나 크다. 조선에서는 명성황후가 일본에 의해 시해당한 것으로 봤지만 당시 일본에서는 대원군이 명성황후를 죽인 걸로 둔갑시켰다. 역사란 이렇게 관점과 상황에 따라 왜곡되고 굴절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역사를 보는 두 가지 눈, 인내천과 왕내천
 
이종구 I '국토-오지리에서' 부대에 아크릴물감과 콜라주 200×170cm 1988. 국립현대미술관소장
 이종구 I '국토-오지리에서' 부대에 아크릴물감과 콜라주 200×170cm 1988. 국립현대미술관소장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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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를 보는 두 가지 관점이 있다. 하나는 백성이 하늘이라는 '인내천'과 왕(군주)이 주인이라는 '왕내천', 서용선의 '동학농민운동(아래 슬라이드사진)'이나 80년대 한국미술사의 걸작인 이종구의 '국토연작'은 인내천이라는 역사관에 바탕을 둔 작품이다.

동학 이전에도 '민심이 천심이다'라는 말은 있었다. 다만 구전으로 전해지다 조선이 망하면서 동학에서 이를 개념화한 말이 바로 '인내천'이다. 지구상에 이런 인권사상이나 민본사상이 없다. 인내천을 요즘말로 바꾸면 "국민이 대통령이다"가 되리라.

산업화와 민주화의 날줄과 씨줄
 
'야간가투 행진하는 시위대와 대치경찰' 1987(사진다큐자료). '도로정비 사업하는 마을주민들' 1972(사진다큐자료)
 '야간가투 행진하는 시위대와 대치경찰' 1987(사진다큐자료). '도로정비 사업하는 마을주민들' 1972(사진다큐자료)
ⓒ 삼성미술관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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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세계사에 유래가 없을 정도로 가장 빠르게 민주화와 산업화 이룩했다. 영국의 민주화를 마그나 카르타(대헌장)에서 시작된다고 본다면 800년이 걸린 셈이다. 산업화도 200년이 더 될 것이다. 우리는 압축된 민주화와 산업화를 하다 보니 그 기반이 약하고 시행착오도 많았다. 하지만 그걸 어느 정도 이뤄냈다.

영남은 산업화의 역군으로 호남은 민주화의 열사로 공이 크다. 여공 등을 비롯한 수많은 노동자의 희생이 있어 산업화가 되었고 많은 학생 등 민주투사의 죽음으로 민주화를 이뤘다. 그 과정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다큐사진은 이를 실감나게 보여준다.

50년대 안보논리와 60년대 평화통일 충돌
 
변영원 I '반공여혼' 77.58×114.3cm 1952. 피카소의 입체파 풍으로 반공을 강조한 작품
 변영원 I '반공여혼' 77.58×114.3cm 1952. 피카소의 입체파 풍으로 반공을 강조한 작품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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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 50년대 6․25 후 반공이데올로기가 고착이 되었고 60년대 4월혁명 후 생긴 통일지향 세력 간에 갈등이 컸다. 독재를 식민시대의 연장으로 보는 이도 있었고 민주주의가 경제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었다. 국가보안법이 악용되어 선의의 통일운동까지 고초를 당했다.

분단과 통일의 문제에서 특히 80년대 이분적인 흑백논리에 빠졌다. 선에도 악이 있고, 악에도 선이 있다는 '화이부동' 정신을 살릴 공간이 없었다. 90년대에 동구권이 무너지면서 민주와 통일은 선이고 독재와 분단은 악이라고 뚜렷한 구분이 크게 동요되기도 했다.

1960-70년대 한국실험미술 태동

다큐멘터리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중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제작
 다큐멘터리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중 '비닐우산과 촛불이 있는 해프닝(1967)'.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제작
ⓒ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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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전시에서 압권은 단연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가 기획한 1960-70년대 한국의 행위예술 영상자료다. 우리는 빛바랜 몇 장의 신문기사에 겨우 그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있지만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것이었다.

정찬승과 정강자 같은 행위예술가가 혜성처럼 나타났다. 1967년 무(無)동인의 짧지만 강력한 선언 "우리의 작업을 실험/ 무에서 출발/ 창조만을 위한 행동이다"는 인상적이다.

1967년 12월11일 '비닐우산과 촛불 해프닝'을 계기로 실험미술운동이 본격화되었다. 우산과 촛불은 성기를 메타포한 것이다. 그런 배경에는 격변의 세계사와 관련이 있다. 68년 달 착륙, 68혁명, 이브 클랭의 누드해프닝과 존 케이지와 백남준의 활동 등이 그것이다.

정찬승은 "나는 있지만 진정한 나를 찾을 수 없다"고 항변했고, 강국진과 정강자 등은 68년 "한국미술(문화보따라장사)의 죽음"을 선언했다. 69년 김구림은 최초의 전위영화 '1/24분의 의미'를 발표했고, 70년 '피아노 위에 정사'는 백남준 기획으로 선보인다. 74년 성능경의 신문오리기, 75년 이건용의 건빵 먹기도 등도 볼 수 있다.

한국인 정체성 찾기: 기억상실증과 새 역사창조
 
서도호 I '유니폼 들 자화상 들 나의 39년 인생' 직물, 섬유유리 합성수지, 스테인리스 스틸, 옷걸이 바퀴 169×254×56cm 2006(앞). 신학철 I '한국근대사-종합' 1982-1983(뒤 왼쪽). 변혁시대를 조망한 작품
 서도호 I '유니폼 들 자화상 들 나의 39년 인생' 직물, 섬유유리 합성수지, 스테인리스 스틸, 옷걸이 바퀴 169×254×56cm 2006(앞). 신학철 I '한국근대사-종합' 1982-1983(뒤 왼쪽). 변혁시대를 조망한 작품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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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정체성을 물으려면 다시 50년대로 돌아가야 한다. 전후 극빈국인 한국은 미국의 물질문화에 매료되어 미국을 선망한다. 60년대 우리는 사회문화적으로 미국의 종속국이 되었다. 그런 혼돈 속에 70년대 탈춤연구 등을 통해 문화정체성을 되찾으려 했다. 80년대 한국사를 제대로 배운 386세대들은 민중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정체성을 가진다.

그런 와중에 민중미술이 일어났고 오윤 같은 천재작가가 나타났다. 그러나 일찍 요절했다. 하지만 신학철은 '한국근대사' 같은 걸작을 남겼다. 민중미술은 즉흥적 현실대응에 급급해 신명을 예술적 완성도로 끌어올리지 못했다고 비난받기도 했다.

서도호는 유치원시절 입었던 교복부터, 교련복, 군복, 민방위복까지 우리가 뭘 입고 살았는지 옷의 변천사를 통해 시대정신을 읽어내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되묻는다. 이는 개인사적 경험을 토대로 문화인류학적으로 접근한 탁월한 작품이다.

80-90년대 문자에서 영상으로, 남성에서 여성으로
 
윤석남 I '어머니Ⅱ-딸과 아들' 230×500×220cm 1993. 윤석남은 제1세대 페미니즘 작가다
 윤석남 I '어머니Ⅱ-딸과 아들' 230×500×220cm 1993. 윤석남은 제1세대 페미니즘 작가다
ⓒ 김형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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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년대 신군부는 우민화정책으로 3S(섹스, 스포츠, 스크린)와 컬러TV를 들고 나왔다. 긴 민주화투쟁 끝에 88올림픽을 거치면서 해외여행도 자유화되었다. 한국사회가 처음으로 국제사회에 데뷔했다. 87항쟁 때 연세대생 이한열이 시위하다 최루탄 맞아 피 흘리는 작품 하나가 세상을 바꿔 이미지의 위력을 깨닫게 해줬다.

90년대 들어와 포스트모더니즘이 일어나기 시작했고 민중의 끝자리에서 여성을 발견한다. 그러면서 가부장사회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높아진다. 이분법적 흑백논리에서 벗어나 다원사회로 나아간다. 그리고 2000년대 인터넷, 디지털, 모바일사회가 된다.

랩소디형식으로 역사와 기억을 몽타주하다

조덕현 I '리플렉션 리플렉션(reflection)' 캔버스에 콘테와 연필 철제구조물 거울 247×154×200cm 2011. 작가소장
 조덕현 I '리플렉션 리플렉션(reflection)' 캔버스에 콘테와 연필 철제구조물 거울 247×154×200cm 2011. 작가소장
ⓒ 삼성미술관리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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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으로 조덕현의 2011년 작품을 소개한다. 1930년대 신여성과 당시의 모습으로 분장한 딸을 같이 놓아 우리에게 역사란 무엇이며 세대교체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재고하게 한다.

이번 전은 한국미술 100년을, 앞에서 언급한 대로 자유로운 랩소디형식을 몽타주기법으로 담았다 할 수 있다. 하여간 삼성미술관 리움은 이번을 계기로 대중친화적 전시에 시동을 걸었다. 앞으로 더 차별화되고 비전을 제시하는 전시를 보여주길 기대해본다.

ⓒ 김형순 삼성미술관리움

덧붙이는 글 | 삼성미술관 리움 www.leeum.org 관람료 일반: 7000원, 초중고: 4000원 문의 02)2014-6900



태그:#한국미술100년, #삼성미술관리움, #박생광, #한국근현대미술연구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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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중 현대미술을 대중과 다양하게 접촉시키려는 매치메이커. 현대미술과 관련된 전시나 뉴스 취재. 최근에는 백남준 작품세계를 주로 다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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