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기사에는 영화의 줄거리가 들어있습니다.

그래, 다들 이유가 있다. 의사인 남편도, 직장 다니는 딸도, 삼수생인 아들도 다 그럴만한 사정이 있다. 바쁘고 자기 앞가림하기도 벅차니까. 하루 스물네 시간 누군가 곁에서 지켜야 하는 치매 어머니(할머니)는 당연히 전업주부인 아내 차지고 엄마 몫이다.

그런데 아무리 봐주고 싶어도 이 사람들 너무하다. 자기밖에 모르는 자식들이야 철없다 치고, 남편을 보자. 어머니가 며느리 아닌 다른 사람과는 잘 지내지 못한다 해도 어떻게 의사인 남편이 저렇게 치매가 심한 어머니를 전적으로 아내에게만 맡겨놓을 수 있을까.

하루도 조용할 날 없는 집안을 들고 나는 식구들의 얼굴은 구겨져 있다. 가족을 위해 밥과 청소를 하고 된장, 고추장을 담그며 어떻게든 기분을 풀어주려고 애쓰는 사람은 어깨에 그 무거운 짐을 홀로 지고 있는 아내(엄마)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포스터

▲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포스터 ⓒ (주)수필름


식구들은 서로를 모른다. 아빠가 얼마나 힘들게 병원 월급을 받고 있는지, 치매 환자와 온종일 씨름하는 엄마의 몸과 마음이 어떤 상태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는다. 유부남과 연애를 하는 딸에 대해서도, 여자 친구가 임신한 줄 알고 걱정이 태산인 아들에 대해서도 알지 못한다. 만나서 차분하게 이야기할 여유도 없다. 다들 신경이 날카로워 마주치면 목소리부터 높인다.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그러다 엄마가, 아내가 병이 났다. 가망이 없는 중병이다.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충격 속에서 식구들은 그제야 소중한 사람에게 눈을 돌린다. 그러면서 후회한다. '병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아내와 엄마와 누나가 이렇게 소중하고 필요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이렇게 마지막이 빨리 올 줄 조금만 일찍 알았더라면.'

환자인 인희(배종옥)는 50대 초반이다. 어려서 부모님을 잃었고 하나 있는 남동생은 천하 망종이다. 결혼을 반대했던 시어머니(김지영) 밑에서 모진 시집살이를 하면서 아들과 딸을 낳았다. 인희는 15년째 치매 시어머니의 수발을 들고 있다. 의사인 남편(김갑수)은 의료사고로 병원 문을 닫고 다른 병원에서 일한다.

몸도 마음도 힘들지만, 천성이 밝고 상냥하다. 그러다가 덜컥 병이 났다. 처음에는 남편과 동료 의사들이 병의 상태를 숨긴다. 가망이 없어 수술조차 하지 못한다는 것을 본인에게 알리지 않는다. 

흔히 환자가 충격을 받을까 봐, 지레 포기할까 봐 상태를 알리지 않는 게 낫다고들 한다. 그러나 병의 진행 과정과 앞으로의 치료 계획을 당사자가 모른다는 것이 타당한 일일까? 그런다고 환자가 끝까지 모를 수 있을까?

워낙 고령이거나 환자가 알기를 원치 않을 경우는 신중하게 결정해야 하지만 대부분 환자가 정확하게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되면 치료에 좀 더 협조적이고 마지막을 준비하는 과정에도 도움이 된다. 의사나 가족이 무언가를 숨기고 있다고 생각하면 환자는 그들을 불신하게 되고, 인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인 죽음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할 수도 있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죽음을 앞둔 엄마와 이를 알게 된 딸

▲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죽음을 앞둔 엄마와 이를 알게 된 딸 ⓒ (주)수필름


수술이 잘됐다고 들은 인희는 병세가 전혀 좋아지지 않고 몸이 점점 더 많이 아픈 게 이상하다. 급기야 피를 토하며 자신의 상태를 알게 된다. 딸이 먼저 알고 다음은 아들, 남동생은 더 나중에 알게 된다. 알게 되는 순간 그들은 울음을 터트리고 지금까지와는 다른 사람이 된다.

이렇게 죽음은 사람을 바꿔놓는다. 당사자도, 주위 사람들도. 그러나 너무 늦다.   

<사전 돌봄 계획> 죽음을 준비하는 현명한 과정

인희는 자신이 떠날 것을 대비해 차근차근 준비에 들어간다. 남편 역시 아내가 머잖아 떠날 것을 알고 짓고 있는 새집에서 아내가 마지막을 보낼 수 있도록 공사를 서두른다. 남편이 병세를 예측할 수 있는 의사이기에 가능했던 것 같다. 대부분 환자나 가족은 서로 슬퍼하고 좌절하며 우왕좌왕하다 아까운 시간을 다 보내기 마련이다.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 좀 더 많은 시간을 같이 하고 마지막을 함께 준비하지 못한 것을 가슴 치며 후회하게 된다.

그래서 <사전 돌봄 계획(Advance Care Planning)>이 필요하다. 사전 돌봄 계획은 스스로 의사결정을 할 수 없을 때 시행하게 될 가능성이 있는 치료에 대해 의식이 있을 때 사전 계획하는 과정이다. 병이 발생했을 때는 거부감이 있을 수 있으므로 젊고 건강할 때 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다.

내용을 보면, 대체로 아래와 같은 것들을 작성하게 된다.

- 주변 정리에 관련된 개인적인 선택(재정적 문제, 법적인 문제, 유산, 장기기증, 매장 혹은 화장, 장례절차, 후견인 지정, 가족들을 위한 유언 등)
- 돌봄 제공자 선택, 대리인 선정
- 환경 조성(임종 직전 병원 혹은 집 등의 환경, 집에서 임종할 때 증상 조절 방법 등)
- 육체적 증상 등 앞으로 일어날 여러 가지 상황(심폐소생술, 인공호흡기, 기관절개술, 인공영양 및 수액 공급, 진통제 사용 등)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법적으로 뒷받침되지 않고 있으나, 의료진과 가족이 최대한 환자 자신의 의사를 반영하려는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사전 돌봄 계획을 포함해 인생을 중간 점검하고 삶의 우선순위를 정리해 보는 일에 도움이 되는 것은 바로 <죽음준비교육>이다. 인생을 돌아보며 소중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을 정리하고, 품위 있고 존엄한 죽음을 맞기 위한 준비를 하는 것이다. 자신이 떠난 후 장례식과 장묘 방법까지 조목조목 살펴보면서 유언장을 작성해 보는 것도 효과적이다.

죽음준비는 죽음을 준비하는 것으로 끝이 아니다. 삶을 다시 조망하며 제대로 잘 살아가는 길이 과연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마지막으로 아들 곁에 누워 잠이 든 엄마

▲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마지막으로 아들 곁에 누워 잠이 든 엄마 ⓒ (주)수필름


너무 젊은 나이, 아직 뒷바라지가 필요한 아이들, 치매 시어머니. 인희는 마지막까지 걱정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도 아이들과 작별인사를 할 수 있고 모처럼 남편과 오붓한 시간을 보내며 지난날들을 추억할 수 있어 다행이다. 

마당 나무 밑에 뿌려달라는 부탁대로 인희는 세상을 떠난 후에도 한 줌의 재로 가족들 곁에 있다. 묘비 대신 세운 나무판에 새겨진 시는 한없이 다정하고 슬프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 너도 그렇다" -나태주 <풀꽃>

영화 속 치매 할머니의 모습과 행동에 웃음을 터뜨리는 관객들이 있었지만 나는 웃지 못했다. 직접 수발하는 인희는 시어머니를 귀엽게 여기기도 했지만 나는 그러지 못했다. 노인복지 현장에서 치매 어르신을 돌보는 가족과 다른 사회복지사들의 어려움을 너무도 많이 봐왔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이 영화는 죽음을 이야기하고 있지만, 치매에 걸린 부모님과 함께 사는 일이 어떤 건지, 가족들이 무엇을 어떻게 함께해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영화로 분류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덧붙이는 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한국, 2011)> (감독 : 민규동 / 출연 : 배종옥, 김갑수, 김지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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