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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이 하면 떠오르는 말, '냄새 난다', '초라하다', '죽음'...

언젠가 한 학교 선생님이 '늙은이'라는 단어를 주면서 떠오르는 것들을 학생들에게 적어 보라고 했더니, '냄새 난다, 초라하다, 불쌍하다, 가난하다, 주름, 굽은 허리, 흰 머리, 죽음' 등의 단어가 나왔다는 글을 본 적이 있다.

나도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없는 평범한 사람인지 나이 드신 분들을 보면 비슷한 단어들이 떠오른다. 다른 노인들보다 좀 풍족하고 편안히 노후를 보내고 계신다는 것만 제외하면 내 부모 또한 칠순이 다 되어가는 노인인데 말이다.

이런 마음이 무의식에 자리하고 있어서일까? 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에 선뜻 손이 가지 않았다. 생생하고 밝게 살아가는 사람들 얘기도 아니고 굳이 노인 이야기를 시간 내어 읽을 마음이 들지 않았다는 것이 솔직한 심경이다.

그러나 왠지 한편으로는 구석에 놓인 이 책이 그야말로 노인들의 처량한 모습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무도 그들의 이야기는 들으려 하지 않고 가치 없으며 오래 묵은 퀴퀴한 것이라 여기는 세상에서 저자는 독거노인 열 두 명의 이야기를 듣는다.

"내쫓기지만 않아도, 끼니 걱정만 안 해도 여한이 없어"  

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책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 오마이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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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거노인들에게 가장 무서운 것은 가난이나 배고픔이 아니라 '외로움'이라는 사실. 책을 통해 독자는 노인들의 마음에 더 가까이 다가서게 된다. 손에 책을 든 순간 난 노인들의 세계를 진정으로 들여다보게 되었다. 그냥 지나칠 뻔한 그들의 세상은 결코 구질하지도, 칙칙하지도 않았다.

자식이 있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혼자 살고 있는 노인, 어쩌다 보니 자식들도 여의고 배우자도 세상을 떠나 혼자 살고 계신 분 등 책에 나온 노인들은 모두 독거노인들이다. 모두 햇볕 잘 드는 방이 아니라도 좋으니 내쫓기지만 않아도 좋고, 하루 세끼 끼니 걱정만 하지 않아도 여한이 없겠다는 힘든 상황에 놓여 있다.

"해마다 겨울이 되면 독거노인이 홀로 죽음을 맞은 후 며칠이 지나서야 시신이 발견되었다는 가슴 아픈 보도가 빠지지 않고 들려온다. 잊을 만하면 들려오는 독거노인들의 외로운 죽음. 그때마다 언론들은 다투어 독거노인 정책을 비판하고 주변의 무관심을 질타하는 척 호들갑을 떨곤 하지만 정작 독거노인들의 고독사를 예방할 대책은 나오지 않고 있다."

저자는 이런 노인들을 만나보고서 이들의 외로운 삶과 고독한 죽음은 내 부모 세대의 모습이며 훗날 내 모습일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다. 아무도 관심 두지 않는 소외된 계층이 되어버린 독거노인들을 들춰서 관심을 유도하려는 마음이다.

책에는 이혼한 남편과 다른 여자 사이에 난 자식이 호적에 오르는 바람에 생활보호대상자에 등록되지 않아 고생하는 할머니 얘기가 있다. 현행법에는 자식이 있으면 노인 복지 수급자가 될 수 없다고 한다.

서류만 보지 말고, 실정을 파악해 지원해야

하지만 형편상 자기들 살기에 바빠서 나이든 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용직 노동자로 하루하루 공사장을 따라 다니며 돈을 벌어야 하는 아들, 가난을 대물림하다 보니 역시 가난하여 부모를 모시지 못하는 자식, 장애아를 돌보느라 나이 든 부모와 떨어져 사는 자식 등이 그들이다.

이런 자식을 둔 분들 중에는 거동이 불편하고 일자리가 전혀 없어 생계가 막막한 분들도 많다. 서류상으로 독거노인을 정하고 생활비를 수급하는 게 아니라 외국처럼 주민자치센터의 사회복지사들이 직접 방문하여 생활 실정을 파악하고 생활비와 도우미 서비스를 지원하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어떤 할아버지는 아내가 세상을 떠난 후 20년 동안 라면으로 끼니를 때우셨다. 가부장적 제도에서 남자가 주방에 드나들지 못하던 시절을 사신 분이라 요리하는 방법을 제대로 몰라 라면이 편하다고 말씀하신다. 몸은 건강하셔서 폐지 수집으로 생계를 이어 나가고 있는데 이런 분들에게는 적절한 식사를 도와줄 가사 도우미를 지원해주는 정책이 필요하다.

"지금도 마음은 청춘이야. 노가다든 경비든 맡겨만 주면 잘할 자신이 있지. 젊은이들보다 부지런하고 꼼꼼하게 할 자신이야 있지만 요즘 젊은이들도 놀고 있는데 우리 같은 늙은이를 누가 쓰겠어. 아무리 젊어서 기술이 좋았어도 늙으면 그걸 써 먹을 데가 없어."

지금 우리나라의 현실을 가장 잘 반영한 말씀이 아닌가 싶다.

옛날만 하더라도 부모님을 모시고 살아 동네에 홀로 사는 늙은이가 없었는데, 도시화 산업화로 노인들은 점점 세상에서 소외되고 있다.

이불 뒤집어쓰고 부른 "아들아, 내 아들아!"

책의 어떤 할머니는 아들 둘이 외국에 나가 살고 혼자가 되셨는데, 소극적인 성격이라 밖에 나가시질 못하고 집에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아들 이름을 크게 불러본다고 한다. '아들아, 아들아! 내 아들아!' 이렇게 불렀다는 얘기에 괜히 코끝이 시큰해졌다. 할머니의 외로움이 가슴 깊이 전해진다.

독거노인들에게는 경제적인 지원도 필요하지만 심리적인 안정감을 줄 수 있는 말벗 도우미도 필요하단 생각이 든다. 노인들의 우울증도 심각한 상황인데 작년만하더라도 노인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우가 몇 번이나 방송에 나온 적이 있다.

점점 노인 인구는 늘어가는데 예전처럼 부모를 봉양하는 가정은 줄어든다. 한마디로 노인만으로 구성된 가정의 수가 늘어가는 게 지금의 현실이다. 이런 상황이라면 나 또한 언젠가는 혼자 사는 늙은이가 될 수 있다는 말이다.

우리가 진정으로 살기 좋은 나라의 모습을 꿈꾸고 있다면 무엇보다 노인 복지에 대한 현실적이고 실천적인 방안이 필요하다. 경제 지원은 물론이고 노인들의 생활에 직접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도우미 제도가 정착한다면, 더 이상 외롭고 쓸쓸하게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노인들이 없지 않을까.


나 같은 늙은이 찾아와줘서 고마워 - 독거노인 열두 명의 인생을 듣다

김혜원 지음, 권우성.남소연.유성호 사진, 오마이북(2011)


태그:#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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