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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은 여행에서 돌아올 때 서로 맹약한 규약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행선물을 사오지 않는 것입니다. 특히 해외 여행시 귀국이 임박하면 가족과 지인들에게 작은 기념품이라도 하나씩 사다주어야한다는 부담을 갖게 마련입니다. 그래서 출국시 인천공항의 면세점을 기웃거리거나 귀국시 하루 혹은 반나절을 선물을 사기위해 쇼핑센터를 순례하는데 시간을 할애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 기념품이라는 것이 시간과 비용의 지불에도 불구하고 크게 쓸모가 없다는 것입니다. 받을 때는 기분이 좋을지언정 결국 집안에서 굴러다니다 결국에는 버려지기 일쑤인 것이지요.

그 기념품들이 대부분 중국에서 OEM으로 조악하게 생산된 것들이고 다른 공산품들도 선물을 받는 사람의 기호와 치수를 맞추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여행시 여행지에서 엽서를 보내는 것으로 선물을 대신한다는 것을 약속한 것입니다.

대신 선물구매에 대한 부담 없이 현지의 문화를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보고, 듣고, 느껴서 귀국 후 그 얘기를 재미나게 들려주는 것입니다. 만약 선물 살 돈의 여유가 남았다면 현지의 토속 음식을 하나라도 맛보라,는 것이 우리가족 여행의 부칙입니다. 들고 오는 대신 체험하고 가볍게 오라는 것이 모든 기준의 원칙입니다.

이 약속은 비교적 잘 지켜져서 저의 장거리 여행에서도 골동품 같은 소장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면 사지 않습니다. 장시간 아프리카나 유럽을 여행하면서도 집이나 지인들께 엽서를 몇 번 보냈을 뿐입니다.

2009년 초 아프리카 Lesotho를 여행하면서 집으로 보낸 엽서.
 2009년 초 아프리카 Lesotho를 여행하면서 집으로 보낸 엽서.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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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욕심나는 것이 있다면 가족 모두가 사용할 수 있는 소비재로 한정합니다.

첫째딸 나리가 오키나와국제연극제에 참가 후 귀국할 때 수저받침으로 사용되는 망둥이 도기 몇 마리, 에든버러 연극제에 참가하고 귀국할 때 허브차 한 봉지 사온 게 다 였습니다.

둘째딸이 오키나와에서 사온 도기 망둥이 수저받침 6개와 영국에서 사온 위터드 오브 첼시(Whittard of chelsea)의 100g 허브티 한 봉지.
 둘째딸이 오키나와에서 사온 도기 망둥이 수저받침 6개와 영국에서 사온 위터드 오브 첼시(Whittard of chelsea)의 100g 허브티 한 봉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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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의 지인인 노윤구PD께서 일전에 저의 둘째딸 주리에 관한 글 끝에 이런 덧글을 달았습니다.

"차암~~선생님은 가지고 계신 게 참으로 많으십니다...^^ 사모님도, 나리, 주리, 영대도……. 정말 부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저는 이 글을 읽고 저를 뒤돌아봤습니다.

"건전한 생각을 가지고 그것을 실천하는 가족보다 더 귀중한 것이 무엇일까?"

그러니 사람이 재산이라는 노PD의 말을 부정할 것도 아니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6년째 보관하고 있는 주리의 선물이 생각났습니다. 그것은 두 롤의 두루마리 휴지입니다.

우즈베키스탄의 휴지는 휴지심이 없어서 휴지걸이에 걸 수가 없다.
 우즈베키스탄의 휴지는 휴지심이 없어서 휴지걸이에 걸 수가 없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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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는 고등학교 2학년 때인 지난 2006년 12월, '꿈과 사람 속으로'라는 청소년 해외봉사단원으로 우즈베키스탄을 방문했습니다. 그리고 타슈켄트의 영락재활원에서 중앙아시아의 고아들을 체류기간 동안 돌보고 한국의 문화를 전하는 봉사활동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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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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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안수

그리고 귀국에 임박해 일행들과 함께 타슈켄트의 재래시장을 방문했습니다. 주리는 '선물은 사오지 않는다'는 가족끼리의 약속이 생각났는지 선물 살 생각은 하지 않고 단지 중앙아시아의 시장 풍경만 살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타슈켄트에서 사용한 화장지 두 롤을 샀습니다.

그리고 귀국 후 그 화장지 두 롤을 귀국 선물로 가족들에게 내 놓았습니다. 화장지 심도 없어서 휴지걸이에 걸 수도 없었습니다. 가족 모두는 의아해서 물었습니다.

"웬 화장지?"
"내가 그곳에서 사용했던 화장지와 같은 것이야. 부드러운 우리 화장지와는 달리 까칠해서 사용하기가 겁나. 내가 어릴 적에 시골 할머니집에서 사용하던 것과 비슷해. 가족들도 한 번 사용해 보라고……."

'우리의 거친 과거를 잊지 말자'는 말을 주리대신 무언으로 웅변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두루마리 휴지
 '우리의 거친 과거를 잊지 말자'는 말을 주리대신 무언으로 웅변하고 있는 우즈베키스탄의 두루마리 휴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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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리는 자신의 생각을 에둘러 말했지만 그의 의도를 눈치 챌 수 있었습니다. 그녀는 가족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내가 지금 갔다 온 우즈베키스탄은 내가 어릴 적 시골에서 경험한 환경보다도 못 사는 곳이야. 지금은 우리나라가 이렇게 잘살게 되었지만, 지금의 황량한 타슈켄트처럼 못살던 때도 있었어. 가족들아, 그때를 잊지 말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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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주리

저는 주리의 의도대로 한 롤은 사용하고, 한 롤은 지금까지 보관하고 있습니다. 혹 저의 아들, 딸들이 과거를 잊고 시간과 재물을 헛되이 쓰는 경우가 발생하면 그 때 죽비를 휘두르는 대신 주리가 사온 우즈베키스탄의 이 까칠한 휴지를 내놓을 예정입니다.

중앙아시아 노천 시장의 노변 행상에게서 산 휴지 두 롤이 저희 집으로 와서 '가난했던 과거를 잊지 말고 현재를 낭비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모티프원의 죽비가 되었다.
 중앙아시아 노천 시장의 노변 행상에게서 산 휴지 두 롤이 저희 집으로 와서 '가난했던 과거를 잊지 말고 현재를 낭비하지 말라'고 일갈하는 모티프원의 죽비가 되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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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모티프원의 블로그 www.travelog.co.kr 에도 포스팅됩니다.



태그:#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이주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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