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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으로부터 13년 전만 해도 기자는 집에서 등·하교하는 학생이었기에 아버지의 모습을 늘 뵐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침, 저녁 시간 다 합해 두 시간이 고작. 기자는 학교생활로 조금 바빴고, 아버지는 농사일로 주말도 없이 늘 바쁘셨다.

 

농번기엔 꼭두새벽부터 나가셔서 논두렁에 물을 대셔야 했고, 모내기와 벼 타작 시기가 되면 저녁 시간을 훌쩍 넘긴 시간에나 들어오실 수 있었다. 수확시기가 지난 철에도 바쁘기는 마찬가지. 겨울 내 아궁이를 지필 장작용 나무를 구하러 다니시거나 이듬해 지을 농사거리로 분주히 움직이셨다. 여기에 더해, 어머니께서는 부업거리를 어디선가 받아오셔서 별반 차이는 없으셨다. 결국, 아버지와 나눌 수 있는 대화도 한정된 분위기였다.

 

어머니와 달리 멀게만 느껴졌던 아버지

 

매끼를 담당해야만 하는 어머니와는 그나마 좀 더 긴 시간을 마주앉아 있을 수 있어 다행이었다. 아버지와 다르게 좀 더 깊고 다양한 대화를 나누며 '어머니의 자식을 위한 모습'과 함께 '어머니의 사생활'이랄까, 그런 모습을 조금은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알게 모르게 아버지와 달리 어머니가 좀 더 가깝게 느껴졌던 것도 사실이다.

 

대학과 직장을 위한 타지 생활이 이어지면서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은 더욱 깊어져만 갔다. 기자와 같은 마음이었을까. 아버지 또한 일 년에 한두 번 딸을 보게 되는 날이면 지금껏 볼 수 없었던 미소를 보여주시며 반겨주셨다.

 

손마디가 굵어지고 더욱 거칠어진 손으로 내 손을 놓칠세라 꼭 잡으시던 아버지, 추운 겨울엔 손이 꽁꽁 얼었다며 두 손을 비벼가며 녹여주시던 아버지……. 아버지는 너무도 자상한 분이셨다.

 

그런 아버지께서는 딸에 대한 사랑을 말로 표현하는 대신, 기자가 혼인신고를 통해 호적을 옮기던 날, 어머니 앞에서 한 번도 보이시지 않던 눈물을 흘리셨다고 들었다. 그때가 아버지 연세로 예순을 일 년 앞두던 해인 걸로 기억한다.

 

어릴 적, 강하고 엄격했던 아버지는 연세가 드실수록, 자식들이 결혼해서 하나둘 떠날수록 부드럽고, 자상해져 가신다. 그리고 한편으론 예전의 아버지와 다른 약한 모습을 보이신다.

 

그 모습들을 떠올리며 가슴 아파하던 어느 날, 기자는 목마른 그리움으로 아버지를 찾기 시작했다. 

 

하지만 다시 아이 둘을 연이어 낳아 기르면서 그나마 전화로 종종 아버지의 자상한 목소리를, 목이 멜 듯 들을 수 있었던 것도 점차 횟수가 줄어가고 있다. 그러면서 불현듯 불안감도 스며들기 시작했다. 물론 어머니도 예외는 아니다. 앞으로 길게 사셔 봤자 40년이기 때문이다. 이 안타까운 마음을, 더는 만들어서는 아니 될 그리움을 어찌 해결할 방법은 없을까.

 

30년 동안 몰랐던 아버지의 모습, 3초 만에 알게 돼

 

그러는 찰라, 알게 된 아버지의 중학교 동창 모임! 그렇다. 아버지와 전화 통화를 하며 알게 된 것이다. 간간이 동창들과 멀리 여행도 다녀오신다는 말씀에 여유를 조금씩 찾아가시는 것 같아 마음도 한결 편해졌다.

 

게다가 인터넷을 이용하실 줄 아는 친구분께서 인터넷에 사진도 올리시곤 한다고 말씀하셨다. 인터넷을 전혀 모르시던 아버지가 하셨던 말씀이기에, 기자는 전화 통화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버지께서 졸업하신 초등학교를 포털 사이트를 통해 검색에 들어갔다. 카페 주소를 찾아내는 데는 3초도 걸리지 않았다.

 

카페에는 많진 않지만, 사진들이 등록돼 있었다. 하나씩 클릭해가며, 아버지의 모습이 담긴 사진들을 찾았다. 사진 속 아버지는 동창들과 상기된 얼굴로 술도 함께 나누시고, 목청껏 노래도 부르고 계셨다. 또 안 본 사이, 많이 늙으셨는데다 그 어깨가 지쳐 보이기도 해 속상하다.

 

이는 기자의 아버지뿐만은 아니다. 사진 속 다른 누군가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의 모습을 뵈니 모두의 어깨가 그동안 자식들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해왔으리라는 생각에 가슴이 뭉클해진다.

 

아버지의 추억을 전해준 고마운 사람들

 

30년 동안 알지 못했던 아버지의 모습들이다. 기억 속에 오래도록 담아두고 싶은 마음에 기자는 사진을 저장했고, 앨범에 담아냈다. 이는 아버지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은, 그리움을 달래기 위한 마음이기도 했다. 그리고 또 다른 한편으론, 앞으로 부모님께 좋은 추억거리를 만들어 드려야겠다는 다짐이기도 했다.

 

문득 세상이 고마워진다. 비록 멀리 계셔도, 함께하는 시간이 잦진 않아도, 이렇게나마 아버지를 뵐 수 있게 해 준 이 세상, 그리고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감사해진다.


태그:#풍각중학교 13기 동창모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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