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한재에서 내려다 본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해수욕장 끝이 원자력발전소 건설 예정 부지로 지정된 곳. 그곳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이 아름다운 고장에도 일정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재에서 내려다 본 삼척시 맹방해수욕장. 해수욕장 끝이 원자력발전소 건설 예정 부지로 지정된 곳. 그곳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면, 이 아름다운 고장에도 일정한 영향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원자력발전소를 지역 내에 유치하는 문제를 놓고 삼척시민들의 여론이 찬반으로 엇갈려 밑바닥에서부터 심하게 요동치고 있다. 일본 대지진 이후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연쇄적으로 폭발하고 방사능이 유출되는 일련의 과정을 보면서, 대지진이 일어나기 이전에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데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시민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유보' 혹은 '반대' 여론으로 기울고 있다.

삼척시민들이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려고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쇠락해가는 지역 경제를 되살리는 데 있다. 원자력발전소가 경제적인 이득을 가져다주는 것은 물론, 석탄산업의 쇠퇴로 인구수가 계속 감소하는 현상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는 데 큰 기대를 걸고 있다.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데 적극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삼척시원자력발전소유치협의회(이하 유치협의회)에서는 지난 2월 25일부터 3월 7일 사이 삼척시 내에 거주하고 있는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찬성 서명을 받은 결과 무려 96.9%에 달하는 시민들이 찬성에 서명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언론 보도를 통해 유치협의회에서 서명을 받는 과정에서 '대리 서명' 등 일부 무리수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나기는 하지만, 삼척시민 상당수가 원자력발전소에 기대를 걸고 있었던 건 부인하기 힘든 사실이다. 그러나 일본에 대지진이 일어난 이후로, 찬성 분위기에도 변화가 일고 있다.

만에 하나 잘못될 경우 후쿠시마에서 보는 것과 같은 대재앙과 마주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데 '자발적으로' 찬성 서명을 했던 사람들조차 지금은 상당히 조심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이런 상황은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직후, "삼척에는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고 있다"고 말했던 유치협의회의 주장과도 사뭇 다르다.

원전 유치 반대 현수막, "혈맹으로 지킨 청정지역 원전유치 중단하라!"고 쓰여 있다. (삼척시 근덕면)
 원전 유치 반대 현수막, "혈맹으로 지킨 청정지역 원전유치 중단하라!"고 쓰여 있다. (삼척시 근덕면)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원전 유치에 찬성했던 사람들 "생각이 바뀌고 있다"

삼척시 중앙시장에서 음식점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확고한 찬성론자였다. 삼척시가 직면한 경제난을 해결하는 데 원자력발전소가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으로 확신하고 발전소 유치에 적극 찬성했다. 그는 "(자신과 마찬가지 이유로) 삼척시민 대다수가 찬성하고 있다"며 "(1998년과는 달리)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져 어디 가서 원전을 유치하는 데 반대한다고 말하기도 힘들다"고 말했다.

삼척은 이미 두 차례 지역 내에 핵 관련 시설이 들어서는 것은 막아낸 적이 있다. 1998년에도 지역에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으나 대다수 시민이 반대해 발전소 건설을 무산시켰다. 그의 말에 따르면 "그때(1998년)는 어디 가서 찬성 의견을 내놓기가 어려웠는데 지금은 상황이 바뀌어 대부분 원전에 찬성하는 분위기"라는 것이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한 이후, 그의 확고한 생각에도 변화가 생겼다. "이전에 원전 유치에 찬성하셨는데 지금도 찬성하느냐"는 질문에 그는 다소 침울한 목소리로 "지금은 별다른 생각이 없다"고 말했다. 답변이 조금 모호해서 "원전 유치에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 알고 싶다"고 했더니, "찬성도 반대도 아니다"라며 "(원전을 유치하는 문제를) 좀 더 생각을 해봐야겠다"고 말했다. 이전에 원자력발전소가 필요하다고 강하게 역설하던 모습과는 많이 달랐다.

삼척 시내에서 스튜디오를 운영하고 있는 B씨는 A씨보다는 더 전향적이었다. B씨 역시 원자력발전소가 지역에 큰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으며, 통장이 찬성 서명을 받으러 왔을 때 적극 찬성에 동의했다. 그러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하고 사람들이 방사능에 노출되는 것을 보면서 "그런 일들이 내게도 일어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 힘들게 됐다"며 "다시 생각을 해볼 필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일본 같이 뛰어나고 꼼꼼한 기술력을 가지고도 막아내지 못한 걸 우리가 쉽게 장담하기 힘들다"며 "(아무리 대비를 잘한다 해도) 자연의 위력 앞에 속수무책으로 무너질 수도 있다"는 우려를 나타냈다. 그는 결국 "원자력발전소로 인해 자신이 피해를 입을 수도 있다는 생각에 이전과는 생각이 많이 달라졌다"고 말했다.

그는 또 자신과 같이 "이번에 생각이 바뀐 사람들이 주변에 20∼30%는 될 것"이라면서 앞으로 시간이 지나면서 "반대 의견으로 기우는 사람들이 더 늘어날 것"으로 내다봤다. 그는 덧붙여 예전에는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데 찬성 의견이 대부분이었지만, 만약에 지금 이 시점에서 주민투표를 실시하게 되면 찬성과 반대가 서로 비등한 결과를 보일 수도 있다는 의견도 밝혔다.

원전 유치 찬성 현수막, "뭉치면 삼척부자! 흩어지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쓰여 있다. (삼척시 정라동)
 원전 유치 찬성 현수막, "뭉치면 삼척부자! 흩어지면 말짱 도루묵"이라고 쓰여 있다. (삼척시 정라동)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후쿠시마 원전 사고? "삼척 원전 유치에 별 영향 없다"

일본 대지진 이후 지역에 원자력발전소가 들어서는 것에 우려를 나타내는 사람들이 점차 늘고 있는 것에 반해, 일본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고와는 무관하게 찬성 의견을 고수하는 사람들 또한 여전히 많은 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들 사이에는 일본에서 일어난 사고가 똑같이 한국에서도 일어난다고 볼 수 없고, 변변한 기업 하나 들어서 있지 않는 삼척으로선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삼척 시내에서 자전거수리점을 하는 C씨는 쓸데없는 걸 물으려 다닌다는 듯이 인상을 찌푸리며 "대지진이 나고 나서 말들이 많은데 한국과 일본은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주장을 펼쳤다. "일본에서 일어난 것과 같은 지진과 쓰나미가 한국에서 일어날 리가 없다"며 별걱정을 다하고 있다는 투로 말했다. 그는 찬성 서명 운동이 벌어질 당시 "길거리에서 찬성 서명을 했고, 찬성에는 여전히 변함이 없다"고 말했다.

삼척시가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게 될 경우 발전소를 건설하게 될 일부 부지로 알려진 근덕면 덕산리의 한 주민 역시 찬성 의견에 조금도 변화가 없었다. 그는 "보상을 받게 된다고 해서 주민들 대부분 찬성에 서명했고, (일본 대지진 이후에도) 지금도 여전히 찬성한다"고 말했다. 덕산리 덕산해수욕장에서 횟집을 운영하고 있는 주민 역시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찬성에는 생각이 바뀌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문제를 둘러싸고 주민들의 찬반 의견이 심하게 엇갈리는 가운데 이처럼 밑바닥에서부터 시민들의 생각이 크게 변화할 조짐이 일고 있는 것과 달리, 원자력발전소를 지역에 반드시 유치해야 하는 '관계자'들의 생각에는 아무런 동요도 일고 있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

시민들 사이에 반대 의견이 눈에 띄게 확산되고 있는 것을 애써 외면하거나, 일본 대지진이 발생하기 이전에 받아놓은 '원자력발전소 유치 찬성 서명부'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며 시민들 사이에 여전히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자는 의견이 압도적이라는 말만을 되풀이하고 있다.

덕산해수욕장 '덕산지구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 이 안내판에는 해안이 5미터 가량 높이까지 침수됐을 경우까지만 대피처 등을 안내하고 있다.
 덕산해수욕장 '덕산지구 지진해일 대피 안내판'. 이 안내판에는 해안이 5미터 가량 높이까지 침수됐을 경우까지만 대피처 등을 안내하고 있다.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엄기영 "유치 찬성" 발언에, "밑바닥 민심 모른다" 비판

이런 무책임한 태도는 심지어 엄기영 한나라당 강원도 도지사 예비후보에게서도 그대로 나타난다. 그는 지난 17일 강원도청 기자실을 찾은 자리에서 "삼척 시민들의 95.9%(사실은 96.9%)가 원전 유치에 찬성하고 있다"는 말을 한 데 이어, 22일 강원도의 한 지역방송에서도 같은 말을 되풀이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원전을 유치해 낙후된 경제와 일자리, 투자를 일으키려는 열망을 들었다"며 원자력발전소 유치에 찬성하는 의견을 밝혔다.

그의 발언은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국내에 가동 중인 원자력발전소들의 안정성 또한 의문시되고 있는데다가, 지역 내에 새로운 원전을 건설하려고 하는 데 삼척시민들이 심히 동요하고 있는 상황에서 나온 것이어서 그 배경이 의심스럽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역 민심을 제대로 읽고 있지 않다는 비판도 있다.

원자력발전소는 발전소를 건설하는 데서 문제가 끝나지 않는다. 발전소를 가동하는 과정에서, 그리고 가동이 끝난 상태에서도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엄청난 문제를 남긴다. 에너지를 생산하고 난 뒤의 방사능 물질을 폐기하는 데도 엄청난 난관이 따른다. 그저 콘크리트와 납으로 덮어씌워 땅속이나 바닷속에 버리는 수밖에 없는데, 방사능이 흘러나올 가능성은 여전하다. 일부 방사능 물질들은 수천 년 수만 년이 흐른다 해도 없어지지 않는다.

원자력은 당장 쓸 때는 좋을지 몰라도 쓰고 나서는 처치 곤란한 에너지다. 그 문제를 해결하는 데 어떤 대가를 치러야 하는지 어느 정도의 비용을 지불해야 하는지 아무도 모른다. 17일 엄기영 예비후보가 한 말처럼 단지 "돈을 더 들여서라도 안전성을 최우선으로 한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일본 대지진에서 인간이 자연재해 앞에 얼마나 위약한지 여실히 증명됐다. 일본 이와테현의 미야코시는 오랜 세월 여러 차례 쓰나미를 겪었다. 그러고 나서 두 번 다시 똑같은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 수십 년에 걸쳐 해안에 높이 10m의 거대한 방조제(전장 2.5km)를 쌓아 대비했다. 당시 10m 이상의 쓰나미는 오지 않을 것으로 예측했던 것이다.

미야코시의 시민들은 그동안 이 방조제를 난공불락의 요새라며 자신들이 쌓은 위업을 자랑스러워했다. 그러나 이번에 몰아닥친 쓰나미는 이 방조제를 넘어 도시를 간단히 휩쓸어 버렸다. 이번에 들이닥친 쓰나미는 최대 높이가 15m였다.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던 일이다. 이처럼 지구상에는 인간이 대처하기 힘든 자연재해가 발생할 가능성이 항상 존재한다.

원자력 선진국가로 알려진 일본에서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는 것을 목격하고도, 그것을 그냥 남의 일 보듯이 초연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한 번 사고를 일으킨 원자력발전소가 통제불능 상태에 빠졌다. 그래서 삼척 시민들은 말한다. 한때 원자력발전소를 유치하는 데 적극 찬성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이 지금은 "좀더 신중하게 생각해야겠다"고 말하고 있다.

한편, 한국지질자원연구원의 지헌철 박사는 23일 '한반도 지진과 원자력 안전'을 주제로 한 포럼에서 "한반도의 역사적 지진 기록이나 지체 구조 등으로 미뤄볼 때 규모 6.5 이상의 지진이 발생할 가능성이 충분하다"는 주장을 펼쳤다. 국내 원자력발전소들의 내진 설계는 규모 6.5에 맞춰져 있다.

삼척항의 한가로운 풍경.
 삼척항의 한가로운 풍경.
ⓒ 성낙선

관련사진보기



태그:#일본 대지진, #삼척, #원자력발전소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이전댓글보기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