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길어올리기>

<달빛길어올리기> ⓒ 황홍선

 

경쾌한 예고편, 첫 번째 디지털 작업, 임권택 감독의 새로운 시도?

임권택 감독님의 100번째 작품, 그리고 처음, <달빛 길어올리기>. 이 영화의 예고편을 처음 접했을 때 무척 놀랬다. 굉장히 경쾌한 리듬으로 코미디에 가까운 예고편은 이전 임권택 감독님 작품과는 완전히 달랐다. 자신의 101번째 작품임 동시에 최초의 디지털 작업이기도 한데, 그런 의미에서 이전 작품과는 괴를 달리하는 새로운 시작의 선언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숨이 멎을 정도의 아름다움

하지만 본편에 들어서는 임권택 감독님은 임권택 감독이었다. 예고편만큼의 소란스러움은 없고 더 조용하며 더 진지하며 더 한국적이게 영화를 만드셨다.

<달빛 길어올리기>의 한지 복원 사업을 위해 오늘도 불출주야 밤낮없이 열심히 근무에 최선을 다하는 공무원의 이야기다. 이렇다 할 극적 요소는 없다. 한지 작업을 위해 장인을 만나고 그 속에서 한지의 우수성을 조용히 감상한다. 어떻게 보면 극영화로 가장한 다큐멘터리 같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주인공 필용(박중훈)과 아내 효경(예지원)의 에피소드를 축으로 서사적인 측면도 부각되지만 한지에 대한 임권택 감독님의 사랑에는 미치지 못한다.

 

전주국제영화제가 기획했고 전주시가 후원한 영화답게 영화는 "전주"를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그린다. 흡사 우리의 전주는 당신의 서울보다 아름답다고 할까? 한지의 본고장 전주의 프라이드를 바탕으로, 한옥마을, 각종 공예품, 심지어 의미 없는 논두렁이까지, 기가 막힌 영상으로 담아낸다. 진정 길어 오른 것은 달빛이 아니라 전주가 아니었는가 싶을 정도로. 

물론 이런 점이 고지식해 보이지만 영화가 담아내는 영상은 예술이다. 정말 모든 것을 잘 담아내 관객이 실제로 촬영하고 싶다는 욕구까지 불러일으킨다. 극중 다큐멘터리 감독으로 나오는 지원(강수연)에 동일시하여 영화가 담아내는 한지, 공예품의 아름다운 접사는 탄성을 자아낸다. <트랜스포머>의 변신이나 <아바타> 3D만이 영상충격이 아니다. 소박하지만 <달빛 길어올리기>가 전하는 우리의 미 또한 한국영화만의 영상충격이었다.

 

이런 장면을 보면서 새삼 임권택 감독님께 고개를 숙인다. 확실히 장면이 보여주는 임팩트는 단순히 소품으로 전락한 것이 아니다. 혼이 담겨있고 진심이 들어있다. 영화 전개상 국비지원이라는 말이 자주 나오는데, <달빛 길어올리기>야 말로 국비지원해서 만들어야 할 작품이라고 생각이 든다. 그만큼 영화는 전주의 아름다움과 한지의 우수성을 숨이 멎을 정도로 담았다.

 

 블록버스터들의 화려한 영상은 탄성을 자아낼 것이다. 하지만 <달빛길어올리기>의 유려한 영상은 나오는 탄성마저 집어삼킬 정도다

블록버스터들의 화려한 영상은 탄성을 자아낼 것이다. 하지만 <달빛길어올리기>의 유려한 영상은 나오는 탄성마저 집어삼킬 정도다 ⓒ 전주국제영화제(제작), 전주국제영화제(배급)

한지의 우수성을 위해 놓친 것

 

하지만 <달빛 길어올리기>는 이런 아름다움을 담아내기 위해 많은 것을 잃었다. 일단 한지의 우수성을 위해 영화의 구조를 갉아 먹는다. 앞에서 말한 것처럼 <달빛 길어올리기>의 서사는 단조롭다. 아니 서사자체가 없다고 봐도 무관하다. 한지 복원 사업을 위해 실랑이를 벌이는 몇몇 에피소드와 주인공 필용과 효경의 고향 찾기를 제외하고는 모든 게 다큐멘터리다.

 

실제 한지 장인이나 인간문화재분들을 찾아가 그들의 문화 사랑을 듣고 한지의 우수성을 고대로 담는 게 영화의 일이다. 오히려 이 순간에 영화적 허구가 들어가는 게 어색해 보일정도다. 또한 그들이 이야기하는 것 또한 설교적이다. '우리한지가 우수하다. 그래서 우리는 반드시 알아야 한다' 같은. 그러나 영화가 주고자 하는 교훈과 관객이 원하는 흥미가 일치하지 않아 상당한 간극이 벌어진다.

 

또한 영화의 홍보마케팅이기도 했던 유명 인사들의 까메오는 도를 지나칠 정도로 남발한다. 물론 이들의 등장으로 영화의 품격은 높아지고 사회적 의미는 깊어졌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극중 연기자들과 차이나는 목소리 톤과 어색한 연기는 극의 균열을 만든다.

 

게다가 까메오 출연진들은 영화상에서 중요한 이야기를 담당지만, 어색하고, 오히려 극의 중심이 되어야 할 극중 배우의 씬들은 의미 없는 이미지의 남발이다. 까메오 배우들로 이미 되풀이 된 한지의 우수성을 주연배우 박중훈, 예지원, 강수연씨한테까지 듣는 건 어떻게 보면 지루한 수업의 연속이다.

 

 영화는 오히려 주인공들이 만나는 문화인들이 메인이 되고 주연들이 사족이 되는 오류를 범한다  한지의 우수성만을 위해 극적장치가 막혀버린것이다.

영화는 오히려 주인공들이 만나는 문화인들이 메인이 되고 주연들이 사족이 되는 오류를 범한다 한지의 우수성만을 위해 극적장치가 막혀버린것이다. ⓒ 전주국제영화제(제작), 전주국제영화제(배급)

영화를 보면 이런 생각이 든다. 너무 한국적인 것을 보여주려는 임권택 감독님의 부담감이 아닌지. 영화를 보면 분명 한지의 우수성에 대해 알게 되고, 그것에 대한 감독님의 마음을 이해하나, 관객들은 국영방송의 다큐멘터리를 대형 스크린에서까지 굳이 다시 보고 싶지는 않을 것이다.

 

"웰 메이드"는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와 영화적 흥미가 일치할 때 도달할 수 있다. 분명 <달빛 길어올리기>는 근래 나온 한국영화 중 가장 교훈적인 메시지가 있다. 그러나 영화적 흥미도는 가장 낮다. 메시지와 영화적 흥미 무엇이 더 중요한지는 감독의 판단이지만, 상업영화에서 어느 정도 관객이 바라는 영화적 흥미는 지켜야 한다고 본다. 달빛은 길어 올릴지 모르겠으나 정작 관객의 공감은 길어 올리지 못한 것 같아 아쉽다.

어쩜 자신의 손으로 한국의 미를 담아보고자 하는 임권택 감독님의 마음을 전적으로 존중하고 존경하나, 스스로가 만든 어떤 한국적(?) 부담감을 이제는 덜어내시고, 한국 문화사절단 임권택이 아닌 감독 임권택 감독님으로 다음 작품을 뵐 수 있으면 좋겠다는 무례하지만(T.T) 진심을 담아 적는다.

2011.03.22 15:30 ⓒ 2011 OhmyNew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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