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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판결 11번째 이야기이다.
① 술 마시고 차량 시동 걸면 음주운전?
② 너무 늦은 자수는 자수가 아니었음을
③ 돈으로 매를 사고 팔 수는 없다

[판결 1] 사람의 의지에 따라 차를 움직여야 '운전'

노상에 주차돼 있는 차량들. (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으며, 엄지뉴스에 전송된 사진입니다.)
 노상에 주차돼 있는 차량들. (이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관련 없으며, 엄지뉴스에 전송된 사진입니다.)
ⓒ 엄지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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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1] A씨(50대 남성)는 집 근처 노상에 자신의 승용차를 세웠다. 이곳은 평소 A씨가 주차공간으로 애용하는 곳이었다. 그는 주차를 한 후 인근 장례식장에 조문을 가게 되었다. 상갓집에서 상당히 많은 양의 술을 마신 그는 새벽 2시경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그런데 그는 집으로 곧장 가지 않고 자신의 차에 올라서 시동을 걸었다. 잠시 후 차는 40㎝가량 후진하는가 싶더니 바로 뒤에 주차된 차량의 앞범퍼와 부딪치고 말았다. 검사는 A씨를 도로교통법상 음주운전 혐의로 기소하였다. 하지만 법원은 무죄라고 판단했다.

어떻게 된 일일까. 차근차근 따져보자.

우선 법부터 본다. 도로교통법(44조 1항)에 따르면 "누구든지 술에 취한 상태에서 자동차 등을 운전하여서는 아니된다." 법에서 금지하는 음주운전의 기준은 혈중알코올 농도 0.05% 이상이다. 음주운전은 사고를 내지 않더라도 최고 징역 3년 또는 벌금 1천만 원으로 처벌된다. 당시 A씨의 혈중알코올 농도는 0.189%로 만취상태였으니 검찰로서는 당연히 죗값을 치러야 한다고 본 것이다. 

하지만 이 사건을 맡은 수원지법 안산지원은 '음주운전'에서 '운전'을 따로 떼어 주의 깊게 살폈다. 법조문 상으로 운전이란 "도로에서 차를 그 본래의 사용방법에 따라 사용하는 것"을 말한다. 법원은 자동차를 움직이겠다는 의도나 의지(고의)가 있어야만 운전에 해당한다고 판시해왔다.

"(법에서 말하는) 운전의 개념은 그 규정의 내용에 비추어 목적적 요소를 포함하는 것이므로 고의의 운전행위만을 의미하고 자동차 안에 있는 사람의 의지나 관여 없이 자동차가 움직인 경우에는 운전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자동차를 움직이게 할 의도 없이 다른 목적을 위하여 시동을 걸었는데, 실수로 기어 등을 건드렸거나 또는 불안전한 주차상태나 도로여건 등으로 인하여 자동차가 움직이게 된 경우는 운전에 해당하지 아니한다." (대법원 2004도1109 판결 등)

법원은 A씨의 승용차가 후진하면서 다른 승용차를 들이받은 사실은 인정했다. 하지만 ▲주차장소가 평소 A씨가 주차장소로 사용하던 곳이고 ▲차를 주차하고 장례식장을 방문하여 술을 마신 후 귀가하다가 운전석에 탑승하였던 점 ▲사고 당시 A씨가 차에서 자고 있었던 점에 주목했다.

법원은 "A씨가 승용차를 운전할 의도 없이 휴식을 취하면서 음악감상을 위해 시동을 걸고 기어를 중립에서 주차로 조작하려다 실수로 후진하였을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며 무죄로 결론내렸다. 술김에 차 시동을 걸었다가 법정에 서게 던 A씨는 식겁했을 것이다. 한편 검사는 판결에 불복, 항소하였으니 재판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애당초 빌미를 제공하지 않으려면 술을 마신 후에는 아예 운전석에 오르지 말아야 한다. 술을 마신 후 아파트 단지 내에서 잠깐 차를 옮겼다가 음주운전으로 처벌된 사례도 있다. 판례에 따르면 공영주차장, 아파트 단지 내 통행로, 아파트 구내 노상 주차장 등도 음주단속 대상이 되는 '도로'로 보기 때문이다. 술 마신 다음에는 차를 빼달라는 요청을 받더라도 직접 운전대를 잡아서는 안 된다. 

[판결 2] 너무 늦은 자수는 자수가 아니었음을...

경찰의 검문검색 장면(자료사진).
 경찰의 검문검색 장면(자료사진).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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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례 2] 오랫동안 장사를 했던 B씨(60대 여성)는 결국 빚더미에 안게 되었다. 카드와 사채로 돌려막기를 하며 살아왔으나 빚이 수억 원에 이르자 이마저 힘들어졌다. 그러자 B씨는 주변 사람들에게 사업자금이 필요하다고 속여 5억 원이 넘는 돈을 마련한 후 외국으로 도피해 버렸다. 

10년이 지나 국내에 다시 들어온 그는 결국 사기죄 등으로 1심과 2심에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하지만 그는 억울하다며 대법원에 상고했다. 자신은 동생에게 자수의사를 밝혔고, 자신을 체포하러 온 경찰에게 자수하겠다는 말까지 했는데도 양형에 참작이 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며칠 전 대마초 흡연 혐의로 수배 중이던 연기자 박아무개씨가 경찰에 자수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자수는 어떤 의미이고, 언제 어떻게 해야 할까.

자수는 범인이 스스로 수사기관에 대하여 자기의 범죄 사실을 신고하여 수사와 소추를 구하는 의사표시이다. 고소와 고발이 남을 처벌해달라는 의사를 담고 있다면 자수는 자기를 단죄해달라는 뜻으로 볼 수 있다. 

중요한 점은 자수는 ▲수사기관에 해야 하고 ▲자발적으로 해야 한다는 점이다. 자수의 시기에는 제한이 없다. 지명수배 중에도 할 수 있지만 최소한 체포 전에는 해야 한다. 방식도 경찰에 출석하거나 전화로 자수 의사를 밝히는 것도 가능하다. 

B씨의 경우는 어떨까. 수사기관이 아닌 동생에게는 자수를 할 수가 없다. 또한 체포되는 순간에 경찰에 자수 의사를 밝힌 것은 너무 늦었다. 자수라고 보기 어렵다는 말이다. 

만일 자수를 했다면 재판에서 반드시 형을 깎아 주어야 할까. 그렇지는 않다.

[형법 52조]
① 죄를 범한 후 수사책임이 있는 관서에 자수한 때에는 그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법에서 "할 수 있다"는 말은 "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뜻도 담고 있다. 자수를 하더라도 형을 깎거나 면제해주는 것은 법원의 재량이다. 대법원은 지난달 13일 "B씨가 자수했다고 보기 어렵고, 설령 자수했더라도 반드시 형을 깎아주어야 하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B씨의 상고를 기각했다.

한편 자수와 구별할 용어로 자복(自服)과 자백이 있다. 자복은 반의사불벌죄에서 피해자에게 범죄를 고백하는 것을 말한다. 이때도 자수와 같이 형을 감경 또는 면제할 수 있다.

자백은 피고인(또는 피의자)이 범죄사실의 전부 또는 일부를 인정하는 것을 말한다. 수사기관의 신문 과정에서 범죄사실을 인정하는 진술을 하는 것도 자수가 아니라 자백에 해당한다고 대법원은 판시한 적이 있다.

[판결 3] "야구방망이 폭행, 우월적 지위 이용한 사적 보복"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지난해 12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물의를 일으킨 최철원 전 M&M 대표가 지난해 12월 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서울지방경찰청에서 소환 조사를 받기 위해 청사로 들어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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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말 '야구방망이 폭행' 사건으로 세상에 충격을 주었던 최철원(M&M 전 대표)씨의 1심 재판이 끝이 났다. 최씨는 피해자인 화물노동자 유홍준씨가 회사에 적절한 보상을 요구하자 작년 10월 유씨를 불러 2천만 원을 주는 대가로 직원들을 도열시킨 채 야구방망이로 엉덩이를 때리는 등 무차별 폭행을 하였다. 유씨가 고통을 호소하며 용서를 빌기까지 하였으나 폭행은 멈추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은 8일 "최씨가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여 우월적인 지위와 다수인을 내세운 사적 보복"으로 규정하고 폭력행위 등 처벌에 관한 법률위반(집단 흉기 등 폭행)을 적용, 징역 1년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판결에 따르면 최씨의 범죄 사실은 2가지가 더 있다. 먼저 횡령이다. 폭행 현장에서 그가 맷값으로 지불한 2천만 원(자기앞수표 1천만원권 2장)은 회사의 돈이었다. 법원은 회삿돈을 임의로 지출한 행위를 업무상 횡령으로 보았다.

둘째 또 다른 야구방망이 사건이다. 그는 2006년 층간 소음에 항의하던 이웃집에 쳐들어갔다. 손에는 야구방망이를 들고 옆에는 운전기사와 직원 등을 대동한 상태였다. 그는 항의한 남자에게 위세를 보이고 목을 조르기까지 하였다.

법원은 2건의 폭행 사건에 대해 "최씨가 위험한 물건을 사용하는 성행, 우월적인 지위와 다수를 내세운 사적 보복이라는 범행 자체의 성격을 고려할 때 책임에 상응하는 형의 선고가 불가피하다"며 실형선고 이유를 밝혔다.

야구방망이가 등장하고 주변에 심복들이 동행한다. 어쩐지 낯설지가 않다. 어쨌거나 이 판결은 "세상은 돈으로 사고 팔 수 없는 것도 있다"는 평범한 사실을 깨우쳐 준 사건이었다.

상대방 승낙만 받으면 폭행도 무죄?
피해자의 승낙이 갖추어야 할 법률적 요건
만일 상대방의 승낙을 받았다면 야구방망이 폭행은 죄가 되지 않을까. 피해자의 승낙을 얻은 행동은 무죄인가.

형법 제24조 (피해자의 승낙)
처분할 수 있는 자의 승낙에 의하여 그 법익을 훼손한 행위는 법률에 특별한 규정이 없는 한 벌하지 아니한다.

피해자의 승낙도 ▲처분할 수 있는 자가 승낙해야 하고 ▲법률에 (처벌한다는) 특별한 규정이 없어야 처벌을 면한다. 대표적인 예는 물건의 주인이 가져가도 좋다고 허락하였거나 집 주인이 초대를 한 경우 등이다. 이때는 당연히 절도나 주거침입죄가 성립되지 않는다.  

승낙을 얻어도 죄가 되는 경우도 있다. 먼저 살인이다. 형법 252조(촉탁, 승낙에 의한 살인 등)는 승낙을 얻어서 살인을 하면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되어 있다. 낙태 역시 임산부의 승낙을 얻더라도 처벌 대상이다. 또한 13세 미만의 아동을 대상으로 한 성범죄는 승낙이나 동의를 얻었더라도 강간이나 강제추행으로 처벌받는다. 아동에게는 성인과 같은 성적자기결정을 할 능력이 없다고 본 것이다.

최근 대법원 판례에 따르면 피해자의 승낙이 갖추어야 할 요건이 2가지 더 나온다. ▲개인적 법익을 훼손하는 경우여야 하고 ▲윤리적·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반하는 것이 아니어야 한다.

여기서 가장 문제가 되는 것이 폭행(또는 상해)이다.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동료에게 상해를 가한 사건에서 법원은 "교통사고를 가장하여 보험금을 편취할 목적으로 상해를 가하였다면 피해자의 승낙이 있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위법한 목적에 이용한 것이므로 위법성이 조각된다고 할 수 없다"고 판단하였다.

이 외에도 병역면제 처분을 받기 위해 다른 사람의 신체를 훼손하거나 개인끼리 격투를 하는 경우도 예외 없이 유죄로 처벌되었다. 법원이 폭행(상해)에 대해 위법성이 없다고 인정한 대표적인 사례는 의사의 치료행위, 권투나 격투기 등 스포츠에서 발생한 상해 정도이다.

정리하자면 이렇다. 피해자의 승낙을 얻었을 때 처벌할 수 없는 범죄는 재산이나 명예, 신체 등 개인적 법익과 관련된 죄만 해당한다. 그것도 도덕적으로 사회상규에 어긋나서는 안 된다.


태그:#최철원, #야구방망이, #음주운전, #자수, #자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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