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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그냥 용역 아줌마야. 사람 취급도 못 받는다. 이마에 '용역'이라고 붙인 것도 아닌데, 용역이라고 그렇게 무시한다."

서울 동작구청(구청장 문충실)에서 청소 일을 처음 시작했다는 A씨의 말이다. 최근 홍익대학교에서 불거져 사회적 논란이 된 청소노동자의 열악한 근무 환경 문제는 A씨에게도 해당됐다. 청소노동자들의 과중한 업무와 낮은 임금의 문제는 대학뿐 아니라 공공기관인 구청도 마찬가지였다.

동작구청은 지난달 24일부터 28일까지 5일 동안 <오마이뉴스>가 실시한 서울시 25개 구청 청소노동자 실태조사에서 가장 환경이 열악한 곳으로 나타났다(관련기사). 동작구청 청소노동자들은 최저임금에 못 미치는 월급과 담당 이외 구역까지 청소해야 하는 과도한 노동에 시달리고 있었다.

게다가 구청에서 새로운 용역업체를 선정했지만 고용승계가 이뤄지지 않아 일자리를 완전히 잃을 처지에 놓여 있다. '구청계의 홍익대학교'라 할 만하다.

난방기구조차 없는 가건물 휴게실에서 식사

1980년에 지어진 동작구청 청사는 노후되어 다른 구청에 비해 청소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 동작구청 전경 사진 1980년에 지어진 동작구청 청사는 노후되어 다른 구청에 비해 청소하기 힘든 단점이 있다.
ⓒ 성낙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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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된 동작구청 건물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느껴졌다. 구청직원들에게 청소노동자 휴게실을 물었지만 아는 직원이 없었다. 청소를 담당한 기능직 공무원을 만나서야 용역업체 소속 청소노동자들이 이용하는 휴게실 위치를 겨우 알 수 있었다.

동작구청의 청소노동자는 두 부류로 나뉜다. 4명은 기능직 공무원, 2명은 두비환경에서 파견한 용역업체 직원이다. 6명이 지하 2층, 지상 5층 규모의 구청 건물을 청소한다.

휴게실이 있는 옥상까지는 낡은 계단을 한참 올라야 했다. 동작구 전경이 한 눈에 들어왔지만, 휴게실은 보이지 않았다. 창고 몇 개를 지나쳐, 흰색 가건물로 된 휴게실을 찾았다.

기자가 방문했을 때, A씨와 B씨가 휴게실에서 점심을 먹고 있었다. 3평 남짓 되는 휴게실에는 낡은 담요 2장만 있을 뿐, 난로 같은 난방기구는 보이지 않았다. 연일 계속되는 강추위가 물러가고 바깥의 기온이 올라갔다지만 휴게실 안은 여전히 쌀쌀했다.

한평생 가정주부로 살아온 A씨는 남편 사업이 실패하면서 청소 일을 시작했고, 동작구청 건물에서 청소한 지 한 달이 지났다. 그의 동료인 B씨는 이곳에서 일한 지 1년 됐다. 두 사람 모두 동작구청이 계약을 맺은 두비환경이라는 용역업체에 소속돼 있다.

새벽 6시 30분에 출근하면 두 사람은 화장실부터 청소를 시작한다. 7개 화장실에 대·소변기를 닦고, 쓰레기통을 비우고, 바닥을 닦으면 2시간이 금방 지나간다. 다음은 지하 1층 계단과 복도, 1층 현관 로비와 유리를 청소한다. 이들이 하루에 청소하는 면적은 약 661제곱미터(200평)가 넘는다.

게다가 동작구청 건물은 지은 지 30년이 넘었기 때문에 손이 많이 간다. 최근 청사를 신축한 구청에서는 한 번 하면 끝날 청소도 동작구청은 세 번 이상 꼼꼼히 해야 한다. 지저분한 곳이 있으면 그냥 넘어갈 수 없다. 

B씨는 "일도 힘들지만, 관리반장(기능직 공무원)의 잔소리도 견디기 힘들다"고 말했다. 동작구청 청소업무 특성상 오전 8시까지 화장실 청소를 끝내기 쉽지 않다. 그런데도 관리반장은 출근하는 길에 "계단은 구청의 얼굴인데, 계단부터 청소해야지 왜 안 하냐"라며 "맡은 일을 제대로 하라"고 혼을 냈다고 한다.

B씨는 또 "건물 청소를 하는 기능직 공무원들도 업무가 많지만, 우리가 그들보다 두 배는 더 많이 일한다"고 말했다.

2010년 용역업체를 선정할 당시 '과업지시서'에는 화장실 청소는 하루에 3번, 복도와 계단은 하루에 3번 이상 쓸고 닦아야 하며, 현관 입구 유리문, 민원 봉사실, 지적과 종합상황실 등은 매일 1회 이상 청소하고, 더러울 경우 수시로 청소하게 되어 있다. 또한 '필요할 때 각종 행사 청소까지 해야 한다'고 명시돼 있다.

여성 청소노동자들이 하기에는 어려운 일도 많았다. A씨는 그런 처지를 토로했다.

"변기 뚫는 일을 할 때 가장 곤욕스럽다. 대변이 넘치거나, 얼굴이나 옷에 튀면 속이 뒤집혀 밥도 못 먹는다. 남자들도 집에 가면 아내가 있을 텐데, 자기 아내가 직장에 나와 저런 일을 한다고 생각하면 어떻게 시키겠냐?"

동작구청 본관 옥상에 있는 청소노동자 휴게실 사진. 3평짜리 좁은 휴게실에는 보온용품은 이불이 전부였다.
▲ 동작구청 청소노동자 휴게실 동작구청 본관 옥상에 있는 청소노동자 휴게실 사진. 3평짜리 좁은 휴게실에는 보온용품은 이불이 전부였다.
ⓒ 구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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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도 못 받던 청소일마저 해고위기에 놓여

이렇게 고되게 일하지만 월급은 최저임금에도 미치지 못한다. 오전 6시 반부터 오후 2시 반까지 8시간 일을 해서 A씨가 받는 돈은 88만 원. 4대 보험과 식비를 빼면 B씨 손에 주어지는 돈은 75만 원이다. 임금이 적은 것은 알지만, 이 일마저 못 하면 생활이 안 되기 때문에 일을 할 수 밖에 없다.

청소용역을 위탁받은 '두비환경' 관계자에 따르면, 구청에서 업체로 지급되는 액수는 매달 278만 원, A씨와 B씨의 임금을 주고 나면 100만원 정도가 남는다. 관리비 명목으로 1명당 50만 원을 용역업체에서 가져가는 셈이다.

반면, 청소 담당 기능직 공무원들은 기본적인 업무가 같지만 임금은 훨씬 높다. 같은 일을 해도 3배 정도 더 받는다. 2011년 기준 8급 기능직 공무원 15호봉의 임금은 212만8000원이다.

B씨는 "일은 엄청 빡시게 시키면서, 임금은 엄청 짜게 준다"며 "같은 일을 해도 기능직 공무원들은 여기 직원이니까 임금을 더 많이 받는다. 화나지만 어쩔 수 없다"고 말했다.

"2월 말까지 일하고 잘릴 것 같다. 일한 지 한 달밖에 안 됐는데, 일자리를 잃게 생겼다. 내가 벌면 안 되는 상황이라 청소 일을 시작했다. 이 일마저 안 하면 먹고살 것이 없다. 생계가 걱정이다."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용역인원을 6명으로 명시해놨다. 새로운 업체가 용역인원 6명을 고용하면, 기존에 있던 2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은 계약해지가 불가피해 보인다.
▲ 동작구청 2011년 용역 전자입찰 공고 사진에서 알 수 있듯이, 용역인원을 6명으로 명시해놨다. 새로운 업체가 용역인원 6명을 고용하면, 기존에 있던 2명의 용역업체 직원들은 계약해지가 불가피해 보인다.
ⓒ 동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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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작구청은 3월 1일부로 기존에 구청 건물을 청소했던 기능직 공무원들의 업무를 다른 곳으로 배정하고, 청소업무를 전적으로 용역업체에 위탁할 예정이다. 새로 선정된 용역업체가 6명의 청소노동자를 고용해 입찰할 경우 A씨와 B씨의 고용승계는 불확실해진다.

동작구청 청사관리를 맡고 있는 해당 주무관은 "3월 1일부터 시행될 예정이며, 곧 업체입찰 공고를 낼 예정"이라며 "고용승계 여부는 용역업체의 인사권한이기 때문에 구청 쪽에서는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용역업체 청소노동자들이 기능직 공무원 보다 "두 배는 더 많이 일한다"는 주장에 대해 유 주무관은 "기능직 공무원이 더 오래 일하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비슷하다"며 "누구나 자기가 하는 일이 더 힘들게 느끼기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한, "6명의 청소노동자가 구청건물 전체를 청소하기에는 업무가 많지 않느냐"는 질문에는 "청소협회에서 정한 청소구역을 초과하지 않았기 때문에 문제없다"고 말했다.

청사 청소업무를 담당했던 기능직 공무원은 "걸레만 잡으면 무시하는 사람들이 많다"며 "18년 동안 구청 청소를 했는데 이제 불법주차단속이나 다른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현재 상황에서 용역업체가 바뀌어도, 청소노동자들의 처우는 개선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동작구청의 2011년 용역업체 입찰 공고문에는 입찰예정금액은 작년에 비해 약 5배 증가했지만, 용역인원이 6명으로 늘었다. 용역업체가 임금을 지불하기 때문에 이들의 임금이 얼마만큼 상승할지는 알 수 없다. 또한 공고문에 용역인원을 6명으로 명시했기 때문에 노씨와 박씨의 경우 계약해지가 불가피해 보인다.

취재를 마치고 내려가는 길에 1층에서 A씨를 다시 만났다. 그는 고무장갑을 끼고, 쓰레기봉투와 청소도구를 들고 애써 기자를 외면하고 지나갔다. 그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가득했다.

덧붙이는 글 | 구태우 기자는 <오마이뉴스> 13기 인턴기자 입니다.



태그:#홍익대, #청소노동자, #동작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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