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보물 제6호 원종대사 탑비 귀부 및 이수
▲ 귀부 및 이수 보물 제6호 원종대사 탑비 귀부 및 이수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경기도 여주군 북내면 상교리에 있는 사적 제382호 고달사지. 혜목산 기슭에 자리한 고달사지는 그동안 몇 번의 발굴과 정비작업으로 인해, 주변 정리가 되어 있다. 이 고달사는 처음에는 '봉황암'이라는 이름으로 신라 경덕왕 23년인 764년에 창건이 되었다. 고려시대에는 왕실의 비호를 받는 절로, 광종 1년인 950년에는 원감국사가 중건을 했다.

고종 20년인 1233년에는 혜진대사가 주지로 취임을 했고, 원종 1년인 1260년에는 절을 크게 확장을 했다. 실제로 고달사지의 발굴조사에서도 남아있는 절터자리를 보면, 3차에 걸쳐 절을 중창한 흔적이 남아있다. 이 고달사는 임진왜란 때에 병화를 입은 것으로 보인다. 눈이 덜 녹은 고달사지. 그 안쪽 한편에는 보물 제6호인 원종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가 남아있다. 탑비는 없이 귀부 위에 이수만 얹힌 모습이다.

귀부의 얼굴은 힘이 넘치고 역동적이다
▲ 얼굴 귀부의 얼굴은 힘이 넘치고 역동적이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왕방울 눈과 바람이 쏟아쟈 나올 듯한 콧구멍
▲ 콧구멍 왕방울 눈과 바람이 쏟아쟈 나올 듯한 콧구멍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부릅뜬 눈과 바람이 날 것 같은 콧구멍

보물 제6호인 고달사지 원종대사 탑비의 귀부와 이수. 원종대사는 신라 경문왕 9년인 859년에 태어났다. 90세인 고려 광종 9년인 958년에 인근 원주의 거돈사에서 입적을 하였으며, 광종은 그의 시호를 '원종'이라 하고 탑 이름을 '혜진'이라고 할 정도로 극진한 대우를 하였다. 몸돌은 깨어져 딴 곳으로 옮겼으며, 비 몸돌에는 가문과 출생, 행적 등이 적혀있다.

몇 번이나 들른 고달사지다. 그러나 갈 때마다 이 귀부를 보면 딴 곳으로 발길을 옮기지 못한다. 이렇게 이 귀부에 마음이 가는 것은 귀부의 모습 때문이다. 문화재를 바라보는 사람들마다 그 느낌이 다르겠지만, 난 이 귀부를 볼 때마다 알 수 없는 힘을 느낀다. 마치 금방이라도 땅을 박차고 앞으로 내딛을 것만 같은 발. 격동적인 발은 발톱까지 사실적으로 표현을 하였다.

옆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표호를 하고 앞으로 튀어나갈 듯하다
▲ 측면 옆모습을 보면 금방이라도 표호를 하고 앞으로 튀어나갈 듯하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갈 듯하다
▲ 발 땅을 박차고 앞으로 튀어나갈 듯하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역동적인 발과 이중으로 표현한 귀갑문
▲ 귀깁문 역동적인 발과 이중으로 표현한 귀갑문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그러나 이 귀부에서 가장 눈이 가는 것은 바로 귀부의 머리이다. 눈을 부릅떠 정면을 바라보고 있는 귀부의 왕방울 눈을 보면, 무섭다기보다 친근감이 먼저 앞선다. 아마도 그 눈이 세상의 모든 악한 기운을 소멸시키는 것은 아닌지. 커다랗게 뚫린 콧구멍에서는 금방이라도 바람이 쏟아져 나올 듯하다.

길지 않은 목이 몸체에 달라붙은 듯 표현을 해, 이 귀부의 힘을 더 느끼게 만든다. 마치 강인한 역사의 모습을 느끼게 한다. 등에는 이중의 귀갑문이 정연하게 조각이 되어있다. 그 육각형의 귀갑문이 중앙으로 가면 한 단계 높게 조각을 하였다. 소용돌이치는 구름 위에 비를 올려놓을 수 있도록, 비좌를 돌출시켜 조각하였다.

이수에 조각된 용. 압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 용 이수에 조각된 용. 압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머릿돌인 이수의 측면. 용이 감고 올라가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 측면 머릿돌인 이수의 측면. 용이 감고 올라가는 모습이 역동적이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이수의 용은 금방이라도 날아오를 듯

귀부의 머릿돌인 이수의 형태는 직사각형에 가깝다. 앞면의 한쪽이 떨어져 나가 한 옆에 따로 보관을 해 놓았다. 이 이수는 입체감을 강조한 구름과 용무늬가 생동감이 넘친다. 금방이라도 이수를 벗어나 승천을 할 것만 같다. 앞면의 용은 좌우로 밖을 향하고 있으며, 입에는 여의주를 물고 있다. 뒤편쪽의 용은 안을 향하고 있어, 앞뒤의 용이 다르다. 옆면을 보면 비늘이 선명한 용의 몸체가 뒤틀려 감아 올라간다. 사실적으로 표현한 이 이수의 밑면에는 연꽃을 두르고 1단의 층급을 두었다.

이수에는 혜목산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다
▲ 비명 이수에는 혜목산 고달사지 원종대사탑비 라는 글이 음각되어 있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이수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이 옆에 있다
▲ 조각 이수에서 떨어져 나간 조각이 옆에 있다
ⓒ 하주성

관련사진보기


통일신라 말에서 고려 초기로 넘어가면서 조성이 된 고달사지 원종대사 탑비의 귀부 및 이수. 탑비에 기록된 비문에 의하면 975년에 조성이 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원종대사가 입적한 후 8년이 지나서 세워진 것이다. 이 귀부와 이수의 형태는 인근 원주의 거돈사지 등에서 발견되는 원공대사의 승묘탑비 귀부와는 또 다른 형태를 보여준다. 같은 시기의 탑에서 보이는 또 다른 점을 발견할 수 있는 문화재답사. 그래서 고달사지의 귀부는 늘 발길을 붙잡는가 보다.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다음 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고달사지, #원종대사, #탑비, #귀부 및 이수, #보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