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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신년기획기사'를 써보겠느냐는 고마운 제안이 와서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신년 인사를 전하고자 이 글을 씁니다.

연평도 포격의 후유증으로, 예산안 날치기라는 실망스런 국회정치로, 또 계속 퍼져가기만 하는 구제역으로 힘겨운 한국이나, 여전한 불황과 높은 실업률에다 총격사건까지 벌어져 우울한 미국이나, 새해맞이가 별로 희망차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올해 한국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은 신년 덕담은 보통사람들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안보를 누릴 수 있는 문화와 정치력을 준비하자는 것입니다. 진정한 의미에서의 안보란 간략히 말해서 사람들이 전쟁과 폭력의 위협, 실업, 배고픔과 두려움에서 자유로우며, 행복과 평화를 누리는 상태를 말합니다.

작년에 지방선거를 앞두고 천안함 사건이 벌어졌고 한나라당에서는 과거에 언제나 그랬듯이 "안보 위기"를 선거에 이용하려 했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지요. 한나라당에게 안보란, 자체권력의 안보이자 사람들을 지속적이고 항구한 두려움에 가두어두는 상태에 불과한 것입니다.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들은 쉽게 조종하고 통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엄청난 환경파괴사업인 4대강 개발 사업은 많은 시민들의 반대와 저항에도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고, 한미FTA는 재협상을 통해 미국에 더욱 많이 양보하는 내용으로 타결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이 한국의 보통사람들의 안보를 위협하는 것이지요.

안보는 국가와 정부만의 영역 아닙니다

2009년 3월 10일 오후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2009년 3월 10일 오후 경기도 포천 영평 미8군 로드리게스 사격장에서 한미연합전시증원 연습인 '키 리졸브' 연습에 참가한 한-미 해병대가 시가전 훈련을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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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있는 대학교는 설 연휴가 끝나면 바로 봄학기를 시작하는데 저는 이번 학기에 '아시아와 미국의 안보'라는 강의를 처음으로 하고 있습니다. 첫 주에 학생들은 "아시아 지도자들이 안보와 관련하여 어떤 행동을 하는지 배우기 위해" 또는 "북한으로 인한 미국의 안보 위협에 대해 알고 싶어서" 또는 "아시아 안보를 위한 미국 정부의 역할에 대해 공부하려고" 이 강의를 수강한다고 말했습니다.

이런 모든 의견에는 하나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아시아인들과 아시아 국가들은 주권을 가진 다양한 주체가 아니라 막연히 뭉뚱그려진, 미국 정부의 이익과 기획을 추구하기 위한 정책과 통제의 대상이라는 것입니다.

미국 학생들은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원에 이르기까지 '안보'란 개념은 마치 전 세계에서 미국만이 혼자 정의할 권리가 있는 듯 배워왔습니다. 또한 '안보'와 '국가안보'란 개념을 동일시하도록 조건화되어서 '안보'라 하면 국가를 안전하게 방어하고 존중한다는 뜻, 즉 거대하고 강력한 군대를 갖추고 있다는 뜻으로 통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런 구식 안보의 개념을 다시 정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책을 만드는 사람들이 안보를 이렇게만 생각한다면 군비경쟁과 전 지구적 불평등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미국의 안보학은 사실상 미 제국의 체제를 영속시키기 위해 존재하며, 미 제국의 존재와 정책이 세계인들에게 과연 좋은 것인가 하는 질문조차도 허용하지 않습니다.

안보는 국가와 정부만의 영역이 아니며, 군대는 안보를 유지하는 가장 좋은 수단도 유일한 수단도 아니란 것은 조금만 생각해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보나 현재 일어나고 있는 사건들을 보나 각국 정부나 군대는 오히려 불안과 위험을 증가시키기도 합니다. 저는 학생들에게 안보를 국가가 아닌 인간의 안보, 인류 대다수의 해방, 공동체, 문화, 정체성 등과 관련하여 상상해보자고 제안합니다.

국가보안법에 인간의 안보는 없어

2009년 10월 31일 간디학교 학생들이 진주시내에서 이 학교 최보경 교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기소에 항의하며 국가보안법 폐지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2009년 10월 31일 간디학교 학생들이 진주시내에서 이 학교 최보경 교사의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기소에 항의하며 국가보안법 폐지 선전전을 벌이고 있다.
ⓒ 윤성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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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한국의 경우를 다시 생각해봅시다. 남한과 미국 정부는 1948년 이후 한반도의 '안보'를 위해 공동으로 노력해왔습니다. 한국 전쟁의 끔찍한 참상을 차치하고라도, 미국의 정책이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왔던가요? 남북한 간의 이해와 화합을 증진했던가요? 역사적으로 한반도 '안보' 정책보다 더 비참하게 실패한 미국의 정책은 팔레스타인과 중동의 안보정책뿐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대한민국 정부도 한반도 안보정책의 실패에 큰 책임이 있습니다. 일제 때의 '치안유지법'을 따라, 미국의 지지 하에, 1948년에 제정한 국가보안법만 보아도 그렇습니다. 남북한 정부 간의 합리적인 대화에 대한 의지가 처음부터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이지요. 1980년에는 반공법과 통합되어 더욱 강력한 법으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국가보안법에는 다음과 같은 조항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 반국가단체의 구성 : 반 국가 단체를 구성하거나 이에 가입한 자는 다음의 구별에 따라 처벌한다.(3조 1항)
● 찬양 고무 : 제3항에 규정된 단체의 구성원으로서 사회질서의 혼란을 조성할 우려가 있는 사항에 관하여 허위 사실을 날조, 유포 또는 사실을 왜곡하여 전파한 자는 2년 이상의 유기 징역에 처한다.(7조 4항)
● 불고지 : 제3조 내지 제9조의 죄를 범한 자라는 점을 알면서 수사기관 또는 정보기관에 고지하지 아니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10조)

아마 독자 여러분은 국가보안법이 언론 자유를 통제하는 도구로 활용되었음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은 국가의 이익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지 국민의 안전을 위한 법이 아니란 것입니다. 다시 말해 국가가 신경에 거슬리는 사람들을 감옥에 가두고 무거운 벌금을 매기거나 사형집행까지 하여 사람들을 불안하고 불편하고 불행하게 할 수 있는 법이란 것입니다. 국가보안법에 인간의 안보는 없습니다.

보통 한국사람의 안보는 보통 한국사람만이 지킬 수 있어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코코'가 한복 차림으로 <진보집권플랜> 앞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우리 집에서 기르는 강아지 '코코'가 한복 차림으로 <진보집권플랜> 앞에서 포즈를 취했습니다.
ⓒ 데니스 하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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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정부는 미국과의 관계에 모든 것을 건 듯한 모습을 계속 보여줍니다. 북한과의 관계는 계속 나빠지기만 했고 최근 타결된 한미FTA에서는 미국의 일방적인 요구를 한없이 수용하는 듯했습니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안보 우산' 속에 들어가기만 하면 만사형통인 듯 북한과의 대립과 갈등을 부추기는 한편 오로지 미국에 기대려고만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안보 우산'이란 개념 자체가 '미 제국의 이익'이란 한 가지 전제와 한 가지 이해관계에 기초한 것이기에 한반도에 살고 있는 대다수 사람들에게는 조금도 안전장치가 되지 못하며 오히려 불길한 위험이기도 합니다.

보통 한국사람들의 안보는 보통 한국사람들만이 지킬 수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와 날치기 국회가 '국가안보'를 부르짖으며 보통사람들의 삶을 파괴하는 정책을 몰아붙이고 있어도, 올해는 중요한 전환기가 될 것 같습니다.

<오마이뉴스>의 대표인 오연호 기자님과 조국 교수님의 <진보집권플랜>이나 문성근님의 '유쾌한 백만 민란' 프로젝트에서 저는 이 전환의 싹을 보고 있습니다. 1987년 유월항쟁을 직접 목격한 저는 한국의 평범한 시민들에게 영감을 받습니다. 한국 사람들이 못하면 누가 하겠습니까?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오.

덧붙이는 글 | 데니스 하트 기자는 미국 피츠버그 대학의 동양학센터 부소장이며 이 학교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습니다.



태그:#안보, #평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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