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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주에도 2011년 1월 3일 눈이 내리기 시작하더니 엄청나게 많이 내려 10cm이상 내렸다고 한다. 밤새 내린 눈으로 교통과 도심 주변은 온통 눈으로 뒤 덮였다. 거리 주변을 일부 정리하고 눈을 치운 후, 눈 덮힌 가까운 거리의 유적지들을 사진에 담으려고 둘러보았다.

 

노동 노서고분군

노동동 노서동 일대의 고분으로 노동동 고분군은 금령총, 식리총과 아직 발굴되지 않은 큰 고분 봉황대(鳳凰臺)가 있다. 맞은편 노서 고분군에는 서봉총과 마총, 쌍상총 등이 있다. 이곳은 아직 도심인데도 그대로 눈이 덮여 있다.

 

도심이라도 경주에는 갑작스런 눈으로 차가 안 다니다 보니 사람들의 발걸음 드물다. 조용하고 주변에는 아무도 없다. 조금 길을 걸어 건너편에 대릉원 후문으로 들어 갔다.

 

 눈 덮힌 대릉원

 

천마총(天馬塚)은 경주 황남동 고분 제155호 무덤이라고 하며 1973년 발굴하여 금관, 팔찌 등 많은 귀중한 유품들과 함께 천마 그림이 발견되어 천마총이라 한다.

 

신라최대 왕릉으로 추정되는 황남대총은 금관을 비롯해 5만 8천여 점의 유물이 출토된 최대의 쌍분으로 대릉원에서 가장 눈에 들어온다.

 

첨성대

 

신라시대의 천문관측대로, 천체의 움직임을 관찰하던 경주 첨성대는 받침대 역할을 하는 기단부위에 술병 모양의 원통부를 올리고 맨 위에 정자형의 정상부를 얹은 모습으로 네모난 출입구가 정면에 있으며 신라시대 궁궐터인 월성이 주변에 있다.

 

계림은 경주 김씨의 시조인 김알지가 태어난 곳이라는 전설을 간직한 숲이다. 원래 신라를 건국할 때부터 있던 숲으로, 시림이라고 하던 것을 알지가 태어난 뒤로 계림이라 하였다.

 

탈해왕 4년(60)에 왕이 금성 서쪽 시림 숲 사이에서 닭 우는 소리가 들리고 온통 환한 빛으로 가득하여, 날이 밝은 후 신하를 보내어 살피도록 하였다. 신하가 시림에 이르러 보니 금으로 된 조그만 궤짝이 나뭇가지에 걸려있고 흰 닭이 그 아래에 울고 있어 돌아와 고하니, 왕이 즉시 시림으로 가서 궤짝을 열어 보았다.

 

그 속에는 총명하게 생긴 사내 아이가 있었고, 왕은 하늘에서 보낸 아이라 하여 태자로 삼았다. 아기라는 뜻의 알지라는 이름을 주고 금궤에서 나왔으므로 성을 김씨라 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하는 숲이다.

 

월성은 신라 궁궐이 있었던 도성이다. 성의 모양이 반달처럼 생겼다하여 반월성·신월성이라고도 하며, 왕이 계신 성이라 하여 재성(在城)이라고도 한다. 월성내에 석빙고도 눈으로 덮혔다.

 

경주 임해전지(안압지)는 통일신라시대 별궁 안에 있던 것으로, 그 안에는 임해전을 비롯한 여러 부속 건물과 정원이 있었다. 다른 부속건물들과 함께 왕자가 거처하는 동궁으로 사용되면서, 나라의 경사가 있을 때나 귀한 손님을 맞을 때 이곳에서 연회를 베풀었다고 한다. 신라 경순왕이 왕건을 초청하여 잔치를 베풀었던 곳이기도 하다.

 

문무왕 14년(674)에 큰 연못을 파고 못 가운데에 3개의 섬과 못의 북·동쪽으로 12봉우리의 산을 만들었으며, 여기에 아름다운 꽃과 나무를 심고 진귀한 새와 짐승을 길렀다고 한다.

 

비교적 경주 도심에서 가까운 유적들도 이런데 외곽의 불국사와 다른 유적지들의 설경은 더 아름다울 것이다. 차가 다닌다면 삼릉의 유명한 입구 소나무 숲과 아직 그대로일 인적이 드문 유적지들을 한번 둘러보고 싶었는데···. 아쉽지만 경주의 아름다운 설경을 제대로 구경한 것을 다행으로 생각한다. 현지 경주 사람들만이 현장에서 바라볼 수 있는 특혜아닌 특혜를 누린 하루였다.

덧붙이는 글 | 현장 답사 1월 4일


태그:#천마총, #경주 눈, #경주유적, #첨성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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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문화유적을 찾아 답사를 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구석진 곳에 우리문화를 찾아서 알리고 문화관련 행사를 좀 더 대중에게 보급하고자 하며 앞으로 우리문화재의 소중함을 일깨워 나아가려고 합니다. 괌심분야는 역사유적, 석조조형물과 민속,고건축물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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