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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대와 손가락보호대로 무장한 나의 손목
▲ 손은 소중하다. 아대와 손가락보호대로 무장한 나의 손목
ⓒ 최성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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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한의사가 되기 전, 겨울방학 때 학회 회원들과 함께 중국 연변으로 침 공부를 하러 갔다. 우리가 흔히 볼 수 있는 얇은 침이 아니었다. 거짓말 좀 보태서 송곳 만한 굵기의 '소침도'라는 새로운 침을 배우는 과정이었다. 연변 의과대학에서 강철수 선생님이 교육을 해주셨다. 강의 도중 그 분이 자신의 엄지손가락을 들쳐보이면서 말하셨다.

"이 손가락으로 많은 환자분들을 촉진했습니다."

촉진이라는 것은 눌러서 진찰해본다는 뜻이다.

"그러다가 이 손가락이가 관절염에 걸렸지 뭡니까."
"구부리거나 피면 손가락이 많이 아파요."

'소침도'라는 학문의 특성상 피부 밑에 있는 구조물들을 정확히 알고 있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많이 눌러봐야 하고 그러다 손가락이 관절염에 시달릴 정도로 과부하가 걸리는 것이다.

"그래도 저는 재밌습니다. 진료 하다보면 집에 늦게 갈 때가 많아요. 가끔 아내가 화가 나서 문을 잠가요. 열어줄 때까지 대문 앞에 딱 쪼그려앉아서 별을 보죠. 그러면 낮에 진료했던 환자 생각이 나요. 이게 저의 운명인가 봅니다."

'소침도'에 관해 들었던 말 중에 지금까지 내가 기억하는 유일한 말이다. 그리고 시간은 흘러 한방공중보건의사가 되었다. 모든 것이 생소했다. 환자분들 호칭은 어떻게 할지, 무엇을 물어봐야 할 지도 몰랐다. 면허는 땄지만 진료는 여전히 어려웠다. 시간이 지나면 나아질까 하는 기대에 하루하루 버텨가던 나에게 강철수 선생님이 문득 떠올랐다. 골관절염에 걸릴 때까지 열심히 진료만 하셨던 분. 그 분께 느낀 것은 환자에 대한 열정만은 아니었다.

'의사가 건강해야 환자도 건강해지는 거 아닐까.'

내가 내 몸 하나 관리하지 못하면서 남을 치료한다는 거. 그거 직무유기 아닐까?

"하얗게 불태웠어!"

일본 만화 '허리케인 죠'의 마지막 대사다. 멋진 죽음이었다. 하지만 멋지긴 해도 그렇게짧게 끝내고 싶지는 않았다. 평생 동안 해야 할 직업을 골골대면서 하는 것도 내 성미에 맞지 않다.

한의사에게 손은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 맥도 손으로 짚고, 침도 손으로 놓는다. 손가락 끝에 군살이 박혀서 무뎌져서도 안 되고, 손을 떨어서도 안 된다. 의료행위는 하나의 예술이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에서 나온 연주가 사람들의 마음을 울리듯이, 한의사의 손가락도 다양하게 움직이면서 환자의 몸 속을 울린다.

우선 손목 보호대 한 벌을 샀다. 그리고 손가락 아대도 샀다. 어설픈 걸 샀다가 하루 이틀 지나 못 쓰게 되기도 했다. 결국 모 스포츠 전문업체에서 제작한 손가락 아대를 구입하게 되었다. 확실히 아대를 착용했을 때와 착용하지 않았을 때 느낌이 달랐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았다. 손가락으로 환자를 누르는 건 여전했기 때문이다. 손가락의 부담을 덜어주려고 마사지봉을 하나 샀다. 물론 마사지봉과 손끝의 느낌은 다르다. 그래도 상황에 따라 융통성 있게 응용하면 되는 일이다.

처음 몇달간은 환자분들이 내 손을 보고 많이들 걱정하셨다.

"선상님. 몸 좀 사리소."
"네?"
"우리들 침 놔주느라 손이 다쳤구만."

그럴 때는 웃으면서 사정을 설명한다.

"아, 다친 건 아니구요. 미리 안 다치게 할려구요."
"그럼 지금 다쳐서 손에다 감고 있는 건 아니구만?"

가끔씩 보건지소에 감독 온 보건소 직원분들도 다쳤냐고 물어보는 경우가 있어 똑같은 설명을 해주는 번거로움이 있었다. 이제는 다들 익숙해져서 더 이상 물어보는 분은 없다. 나도 이런 나에게 익숙해졌다. 하지만 아직까지 손목보호대와 손가락 아대를 차고 진료하는 의사는 나 외에 본 적은 없다. 내가 유별난 걸까?

예전부터 친구들한테 몸을 좀 사린다고 얘기를 들었다. 허나 세상에서 자기 아픈 것 보다 더 아픈 건 없다. 이런 종류의 몸사림은 좋다. 앞으로도 내 몸을 편하게 하기 위해 고민 할 것이다. 내 몸이 편해야 남들도 편할 테니까.


태그:#공중보건의, #나로도, #손가락보호대, #아대, #한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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