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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取중眞담]은 <오마이뉴스> 상근기자들이 취재과정에서 겪은 후일담이나 비화, 에피소드 등을 자유로운 방식으로 돌아가면서 쓰는 코너입니다. <편집자말>

지난 12월 중순에는 특별해 보이는 두 가지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다. 지난 20일 한명숙 전 국무총리에게 돈을 줬다고 진술했던 건설업자가 법정에 나와 진술을 뒤집은 데 이어, 지난 24일에는 천신일 세중나모 회장이 결국 구속기소됐다. 

 

20일 진술번복 상황이 벌어지기 전까지만 해도 검찰은 기세등등했다. 이미 참여정부 실세였던 한 전 총리를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기소한 상태였고, 'MB친구'이자 '후원자'인 천 회장도 알선수재 혐의 등으로 구속기소할 계획이었기 때문이다.

 

검찰로서는 이렇게 죽은 권력뿐만 아니라 살아 있는 권력에까지 칼을 들이댐으로써 '무사공평하고 독립된 검찰'의 위상을 확보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20일 진술번복 상황이 벌어지면서 분위기는 급반전됐다. 게다가 이후 구속기소한 천 회장 관련 수사도 '부실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흔들리는 특수1부의 위상... 한명숙-천신일 수사 모두 '문제' 있다

 

한 전 총리와 천 회장을 기소한 곳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부장검사 이동열)이다. '한명숙 수사'가 진행되고 있을 즈음, 한 트위터 사용자는 이렇게 폐부를 찌르는 글을 남겼다. 

 

"한명숙 총리를 수사하고 기소한 것이 속칭 떡검이라고 하지 마세요. 그냥 검찰이라고도 하지 마세요. 정확히 말하면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이동열 부장검사와 그 밑의 검사'라 하세요. 떡검이니 검찰이니 하면 그 뒤에 숨는 겁니다."(mbcpdcho)

 

서울중앙지검에는 특수1·2·3부가 있는데, 특수1부는 특수부의 선임부서다. 특수부에 소속된 검사들은 전국 검사들 중에서 가장 수사력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래서 검사들이 가장 선망하는 부서이기도 하다.  

 

특수1부는 보통 대형 비리의혹에 대한 실체적 진실 규명이 필요한 사건을 수사한다. '강남 도곡동 땅 실소유주', '효성그룹 비자금', '대우조선해양 계열․협력사 비리', '스테이트월셔골프장 인허가 비리' 등이 모두 특수1부에서 수사했거나 현재 수사 중인 사건들이다.

 

그런 '특별함' 때문에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은 대검 중수부장 등과 함께 검찰의 핵심 보직으로 꼽힌다. 지난 2007년 대선 정국을 뒤흔들었던 'BBK사건' 특별수사팀 주임검사도 특수1부장이었다. 현재는 공주지청장과 대검 범죄정보담당관을 지낸 이동열 검사가 특수1부장을 맡고 있다. 

 

그런데 특수1부의 위상이 급격하게 흔들리고 있다. 특히 지난 20일 한 전 총리에게 불법 정치자금을 줬다는 한만호 전 한신건영 대표가 법정에서 기존진술을 뒤집어 버린 '사건'이 결정타였다. 게다가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수사했던 한 전 총리의 '5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조차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다.

 

검찰에게 '무죄판결'이란 '실패한 수사'를 뜻한다. 특수2부는 '무죄판결', 뒤이어 특수1부는 '진술번복'이라는 사태에 직면하면서 검찰조직 전체가 깊은 상처를 입었다. '한명숙 트라우마'라는 단어까지 등장할 정도다. 두 사건은 모두 검찰이 독점하고 있는 '수사권-기소권'의 행사에 문제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게다가 살아 있는 권력의 최측근인 천 회장 관련수사는 '부실하다'는 평가를 받았다. 천 회장을 알선수재 혐의(47억 원)로 구속기소하긴 했지만 '남상태 대우조선해양 사장 연임 로비 의혹'은 아예 수사하지도 않았다. 자연스럽게 정·관계 로비 의혹'과 '영부인 연루의혹'은 수사선상에서 사라졌다.

 

특수1부는 천 회장 사건을 '개인비리'로 종결함으로써 '권력형 비리'로 비화되는 것을 막았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심재륜의 '수사10결'을 기억하라... "칼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자신도 다친다"

 

검찰 안팎에서는 "서울지검에서 수사하는 정치색 짙은 사건들의 결과가 MB정부 검찰의 색깔을 드러낸다"는 말이 나돈다. 특히 대형비리의혹 등을 파헤쳐야 하는 특수1부의 수사결과는 '정치검찰'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풍향계로 인식된다. '특수부-중수부'는 검찰과 정치권력의 '거래'가 발생하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권력에서 주시하고 있는 사건의 경우 '서울중앙지검 특수부장→3차장→지검장→검찰총장→법무장관→청와대'의 경로로 보고되는 것이 일반 관행이라고 한다. 그런데 현재는 서울중앙지검에서 바로 청와대 민정수석실에 주요사건 수사내용을 직보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일각에서 '노환균(서울중앙지검장)-권재진(청와대 민정수석) 라인'을 지목한다.

 

그런데 눈여겨봐야 할 사실은 '노환균-권재인 라인'은 특별수사통이 아니라는 점이다. 노환균 지검장과 권재진 수석은 모두 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특히 노 지검장은 대검 공안부장을 지내기 전에 창원지검 공안부장과 대검 공안1과장을 지냈을 정도로 자타가 공인하는 '공안수사통'이다. 이 때문에 '원칙'을 지켜야 할 특별수사가 권력의 입김에 따라 심하게 뒤틀리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특별수사의 원칙은 혐의를 입증할 증거를 다 확보한 뒤 소환조사하거나 기소해야 하고, 정치권력 등 외부의 입김을 단호하게 물리쳐야 한다는 것이다. 특수1부는 한명숙 수사에서는 전자를, 천신일 수사에서는 후자를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한명숙-천신일' 수사는 여전히 '정치검찰'은 가깝고 '독립검찰'은 아주 멀다는 '현실'을 일깨워준다. 

 

대검 차장을 지낸 김승규 전 법무부 장관은 지난 2005년 1월 <신동아>와 한 인터뷰에서 '한명숙 수사'의 결과를 예언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

 

"중요한 사건에서 증거법상 무리한 기소를 하면 법정에서 무죄가 나오게 마련입니다. 그러면 검찰조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무너지죠. 기소할 때는 요란했는데 재판에서 무죄가 나오다니…. 특별수사일수록 재판에서 반드시 유죄판결이 나올 수 있게 확실한 증거를 확보한 후에 기소해야 합니다." 

 

심재륜 전 부산고검장은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과 대검 중수부장을 모두 지냈다. 그가 언젠가 "권력의 입맛에도 맞고, 국민으로부터 신뢰도 받는 검찰은 있을 수 없다"고 일갈했다. 이렇게 특수1부, 아니 검찰이 가야 할 길을 선명하게 제시한 그는 지난해 <검찰동우회보>에 '수사 10결'이라는 글을 기고해 화제가 됐다. 

 

'칼은 찌르되 비틀지는 마라 / 피의자의 굴복 대신 승복을 받아내라 / 끈질긴 수사도 좋지만 외통수는 금물이다 / 상사를 결코 적으로 만들지 마라 / 수사하다 곁가지를 치지 마라 / 독이 든 범죄정보는 피하라 / 실패하는 수사는 하지 마라 / 수사는 종합예술이다. 절차탁마하라 / 언론과의 관계는 불가근불가원하라 / 칼엔 눈이 없다. 잘못 쓰면 자신도 다친다' 

 

여전히 대형비리 의혹들을 파헤치고 있는 특수1부가 세밑에 새겨들어야 할 금과옥조들이다. 특수1부가 앞서 언급한 원칙들을 지켜지 않는다면, 대검 중수부 폐지는 물론이고 '특수부 축소-형사부 강화'라는 주장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태그:#특수1부, #한명숙, #천신일, #심재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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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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