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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중들의 눈빛이 맑게 빛나고 있다. 마치 자신의 일인양 감정을 몰입하는 이, 열심히 무언가 받아 적는 이, 시종일관 웃음기를 가지고 경청하는 이, 보통의 강연이라고는 생각하기 힘든 생동감 넘치는 분위기이다.

난 그 자리에 관객이 아닌 이로 그들을 지켜봤다. 그렇다고 무대에 올라선 주인공도 아니었다. 마치 소설 속 3인칭 전지적 작가 시점에서 그들의 내면을 훑어 보고있는 듯했다. 내가 만든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감동하고, 반응하는 순간이었다.

지난 5월 21일, 고용노동부 '으라차차차 Cheer up 청춘' 강연콘서트는 초보 기획자인 내게, 단순한 업무경험을 넘어 또 다른 도전과 꿈을 심어준 손꼽히는 '특종'이었다.

이 행사는 취업과 경쟁에 지친 청년들을 위해 정부 부처가 처음으로 시도하는 '강연과 무대예술이 결합한' 신개념 퍼포먼스였다. 청년들에게 힘을 줄 수 있는 연사들의 생동감 넘치는 강연과 또래 청년들의 신나는 공연이 포함돼 있었지만 딱딱한 정부부처의 이미지 때문에 쉽지 않은 과제였다. 하지만, 나는 결국 이 프로젝트를 1000여 명 이상의 관객이 함께 호흡하는 자리로 만들며 성공적으로 마칠 수 있었다.

사실 과거에 난 무대 아래에서 위를 보는 것보다, 무대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 보는 것을 좋아하던 이였다. 또 그러기 위해 노력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 그 때의 나는 강연콘서트 현장에서 느꼈던 이 충족감과 만족감과는 조금은 다른 짜릿한 희열을 사랑했다. 

6년간의 랩퍼 활동을 접고 들어간 회사... 양복도 구두도 불편했다

나만 잔뜩 얼어있는 모습. 가사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우측)의 첫 공연.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나만 잔뜩 얼어있는 모습. 가사를 머릿속으로 생각하고 있는 중이다. 필자(우측)의 첫 공연. 긴장한 모습이 역력하다
ⓒ 마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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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겨울 홍대 앞, 50명 남짓 들어갈만한 조그마한 클럽 무대에 서 있던 나는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도 못하고 얼어있던 초짜 MC였다. 멋도 모르고 되는대로 부딪혀 처음으로 공연을 열고, 첫 공연 첫 곡부터 잔뜩 긴장해 맡은 파트를 통째로 날려 먹은 아마추어였던 나. 모든 것이 순조롭진 않았지만 무언가를 잔뜩 기대하는 눈빛과 평가하는 눈으로 바라보던 시선들을 보며 '첫 공연을 이렇게 망칠 순 없다'는 생각에 수백 번도 넘게 외웠던 가사를 자동으로 뱉어냈다. 얼마 후 관중들의 야유는 박수로 바뀌었고 난 사람의 마음을 흔들어 놓는 이 직업을 정말 좋아하게 되었다. 

그렇게 6년여의 시간 동안 무대 위에서 가수의 꿈을 키워나갔다. 사실 노래 만들고 연습하는 사이 아르바이트를 하며 무대에 올라갈 돈을 버는 일은 지루하고 따분했지만, 무대에 올라 사람들 앞에서 공연을 하면 그동안의 모든 지루함이 감쪽같이 없어졌다. 내가 만든 세상, 내가 주인공인 세상을 사람들에게 보여주는 일은 너무 재미있어서 평생 동안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무대위에 서 있는 필자
 무대위에 서 있는 필자
ⓒ 마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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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사람은 상황에 따라 변하는 동물이라 했던가. 영화 <봄날은 간다>를 보며 "어떻게 사랑이 변하니?"라는 유지태의 말에 나도 공감했지만, 20대 후반에 들어섰을 때, 많은 것들이 내가 좋아해온 일을 하지 못하게 가로막기 시작했다.

앨범을 내고 1년간의 활동 후 수익을 계산해 보니 내 연봉은 3만1800원이었다. 결국 나는 홍대의 많은 인디 가수들이 그러하듯, 진심으로 좋아하는 무대를 잠시 접어두고, '직장인'으로서의 출발을 결심하게 되었다. 현실에 타협한 것이 부끄럽진 않았지만, 더는 무대에 오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꽤 오랜 시간 힘들어 했다.

그 후, 많은 졸업생들과 마찬가지로 구직 활동을 하고, 학원을 다니며 1년여간 내 나름 '평탄한' 삶을 살아왔다. 그러던 중 기왕 회사생활을 한다면, 나와 남에게 좀 더 도움이 되고 의미 있는 일을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유브레인' 이라는 공공영역 홍보 회사에 입사하게 되었다.

입사 뒤 펼쳐진 회사생활은 새로운 배움의 연속이었다. 책상 앞에 앉아 일을 한다는 것이 내게 조금은 답답한 일임을 부정할 수 없었다. 내가 적응해야 하는 것에는 문서작성 요령뿐만이 아니라, 몸에 딱 맞는 바지와 불편한 구두도 있었다.

무대위에서 다시 '꿈'꿀 수 있는 기회를 얻다

  5월 21일 '으라차차차 Cheer up 청춘' 강연콘서트 무대
 5월 21일 '으라차차차 Cheer up 청춘' 강연콘서트 무대
ⓒ 마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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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지내오던 5월의 어느날, 회사원으로서의 내 삶을 변화시킬 사건을 맞이하게 된다. 바로 앞서 말한 '으라차차차 cheer up 청춘 강연콘서트'이다.

처음 이 행사를 시작한다 했을 땐, 여느 프로모션 행사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머릿속에 있는 것들을 구상해 보고서를 작성하면, 알아서 진행될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행사 날짜가 조금씩 다가오면서 이런 생각들은 완전히 사라졌다. 행사 모객 활동, 연사 섭외와 각종 세부사항 조율, 무대 및 시나리오 구상, 행사에 사용될 각종 홍보물 제작, 대행업체와의 커뮤니케이션 등 기획자로서 해야 할 일들에 나는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졌다.

하지만 몸이 아무리 바빠도 이상하게 기분은 좋았다. 비록 예전처럼 무대 위에 서는 주인공은 아니지만, 무대라는 것에 다시금 가까이 갈 수 있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마치 내가 무대에 서는 주인공처럼, 많은 사람이 올까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가슴 졸이던 순간엔 수 년전의 기분을 다시 느끼는 것 같았다. 

드디어 D-day. 노력의 결실을 보여줄 날이 밝았다. 사실 나는 일을 하러 가는 것뿐인데, 소풍가기 전날 잠 못 드는 초등학생처럼 좀처럼 눈을 감지 못했다. 그리고 행사 당일 계획처럼 완성된 무대를 본 난 가슴속에서부터 뿌듯함을 느꼈다. 내 삶의 무대가 홍대 클럽의 작은 무대에서 큰 무대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무대 아래서 분주히 움직이는 와중에도 관객들의 표정을 수시로 살펴보았다. 강의를 경청하고 공연을 즐기는 사람들의 얼굴이 보였다. 한 사람 한 사람의 감동을 만드는 이는 무대 위의 연사들이었지만, 이 감동을 한 곳에 모으는 일은 내가 한 것이었다. 책 안의 주인공이 아닌, 책을 쓴 필자가 된 기분이었다. 이 기분은 무대 위에서 느꼈던 짜릿한 기분과는 또 다른, 뿌듯함이었다.

강연콘서트 관객 모습
 강연콘서트 관객 모습
ⓒ 마상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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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
 공연을 즐기는 관객들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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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과 뒤풀이가 모두 끝나고 난 후 가진 혼자만의 시간. 집 앞 대문 앞에 앉아서 나의 '꿈' 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신기하게도 꿈을 꾸는 자는 방법이 어떻든, 다시금 꿈을 이루어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는 것 같았다.

더불어 이번 프로젝트를 계기로, 나를 비롯한 많은 청년들이 자신의 '꿈'을 설정하고 이루어 나가는 데에 조금은 좁은 시야를 가지고 있지 않나하는 생각도 해보게 되었다. 자신이 원하는 직업만, 바라는 것만 이루려 한다면 쉽게 좌절하고 실망하게 될 위험이 높아지지 않을까? 좀 더 우리 안에서 찾아낼 수 있는 또 다른 기회, 외부의 기회요인을 유연한 사고로 받아들이는 지혜, 얻은 것들을 자신의 꿈과 연결시켜 살을 붙여나갈 줄 아는 태도, 이런 것들이 이 시대를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스펙'이 아닐까 싶다.

덧붙이는 글 | '2010 나만의 특종' 응모글입니다.



태그:#무대, #청년, #꿈, #스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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