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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는 파주시의 '백선엽 선양비' 건립과 관련해 지난 7일 차창규 사무총장 등 임원들이 직접 이인재 시장을 찾아와 항의면담을 진행했다.
 광복회는 파주시의 '백선엽 선양비' 건립과 관련해 지난 7일 차창규 사무총장 등 임원들이 직접 이인재 시장을 찾아와 항의면담을 진행했다.
ⓒ 광복회 경기도지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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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 파주시가 친일인사이자, 6·25 전쟁 당시 1사단장을 지낸 백선엽(90) 예비역 육군대장의 업적을 기린다며 선양비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일고 있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 등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은 시민대책기구를 만들어 백씨의 선양비 건립 중단을 요구하며 반대운동을 전개하고 있는 반면, 파주시는 이를 강행할 방침이어서 논란은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14일 파주시와 시민단체 등에 따르면 파주시는 6·25전쟁 60주년을 맞아 '백선엽 선양사업'을 추진키로 하고, 3억 원의 예산을 들여 내년 3월까지 문산 임진각 '평화의 종' 옆에 백씨를 포함한 참전용사 선양비를 건립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지난 10월 이인재(50·민주) 시장과 송달영 전 시장을 공동위원장으로 하는 '선양비건립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시안검토를 마쳤다. 파주시는 당초 일부 지역인사들의 제안에 따라 백씨의 동상 건립을 추진했으나 논란이 일자 '참전용사 선양비'로 명칭을 바꾼 것으로 알려졌다. 파주시는 선양비 건립이 완료되면 안보교육장으로 활용할 방침이다.

파주시장 "나라 구한 전쟁영웅"... 대책위 "독립투사 탄압한 친일파"

파주시의 이런 방침은 이 시장의 강한 의지에 따른 것이다. 이 시장은 최근 일부 언론과 인터뷰에서 "백선엽 장군은 6·25 전쟁에서 적의 침략으로부터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며 "후손들에게 나라사랑 정신을 가르칠 수 있는 조형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민족문제연구소·광복회·민주노동당 등 파주지역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은 백씨의 친일행적을 문제 삼아 강력히 반대하고 있다. 백씨는 일제 강점기 '간도특설대'(일명 간도토벌대) 중위 출신으로,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에 올라 있다.

민족문제연구소는 "간도특설대는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독립투사를 잡아들이고, 무자비한 고문과 살육으로 악명 높았던 대표적 일제의 앞잡이 부대"로 규정하고 있다.

이에 따라 파주지역 10여 개 시민사회단체와 정당들은 지난달 24일 '친일인사 백선엽 동상 건립 반대 파주시민대책위원회'(이하 대책위)를 꾸려 반대운동에 나섰다. 대책위에는 광복회·민족문제연구소·민주군인회·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진보신당·민주노총·파주환경운동연합·파주청년회·파주참교육학부모회 등이 참여하고 있다.

경기도 파주시가 친일인사이자, 6.25 전쟁 당시 1사단장을 지낸 백선엽(90) 예비역 육군대장의 업적을 기린다며 선양비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파주시민대책위가 제작 배포하고 있는 시민홍보물.
 경기도 파주시가 친일인사이자, 6.25 전쟁 당시 1사단장을 지낸 백선엽(90) 예비역 육군대장의 업적을 기린다며 선양비 건립을 추진해 논란이 되고 있다. 사진은 파주시민대책위가 제작 배포하고 있는 시민홍보물.
ⓒ 파주시민대책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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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책위는 발족 성명에서 "임진각에 친일인사인 백선엽의 동상을 세우는 것은 시대에 역행하는 반역사적 행위"라며 "이인재 시장은 백선엽의 동상 건립 시도를 즉각 중단하고, 편향된 역사인식으로 시민들의 자존심에 상처를 준 데 대해 사과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대책위는 또 파주시청 앞 등에서 1인 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이슈청원' 코너(http://agora.media.daum.net/petition/view?id=100308)에서도 1만 명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 중이다.

이재희 대책위 집행위원장은 "파주시의 친일인사 선양사업은 역사를 거스르는 행위로, 전면 백지화돼야 한다"며 "참여단체별로 시민홍보전을 강화하면서 파주시의회가 파주시 추경예산에 반영된 관련 사업예산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주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자유로 '백선엽 광고판'도 논란... 안중근 의사와 동격화 의도?

파주시가 자유로에 설치한 백씨의 '찬양 광고판'도 논란거리다. 파주시는 지난달 700여만 원을 들여 자유로 시 경계지점에 '함께 지켜낸 대한민국. 6·25 전쟁영웅 백선엽 장군, 당신을 영원히 잊지 않겠습니다'라는 문구와 백씨의 사진을 담은 대형 광고판을 설치했다.

그러나 이 광고판 뒷면에는 안중근 의사를 등장시켜 그 배경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이 집행위원장은 "독립투사인 안중근 의사와 독립운동가들을 탄압한 간도토벌대 출신의 친일인사를 함께 등장시킨 발상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그는 "문제의 광고판 등장에 많은 시민들이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면서 "백선엽씨를 안중근 의사와 동격화하려는 의도가 아닌지 의심스럽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파주시 총무과 한 관계자는 "백선엽 장군 선양 광고판은 여러 문제가 제기돼 금년 말까지만 유지한 뒤 참전용사 선양 광고판으로 바꿀 계획"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문제에도 이 시장은 선양사업을 강행할 태세다. 그는 최근 북한의 연평도 도발 규탄대회와 월롱파출소 개소식에서 반대단체들을 겨냥해 '내부의 적', '친북좌파', '소수의 망동' 등의 막말을 쏟아내며 "선양사업을 반드시 완수하겠다"고 밝혔다.

파주시도 이를 뒷받침하고 있다. 주민생활과 관계자는 "백선엽 장군을 비롯한 6.25참전용사 선양비 건립 사업은 문화재현상변경신청 결과가 나오면 세부실행계획을 세워 차질 없이 진행하게 될 것"이라며 "현재 전문가들과 모형 등을 협의 중에 있다"고 전했다.

파주시민대책위는 파주시청 앞 등에서 1인 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이슈청원’ 코너에서도 1만명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파주시민대책위는 파주시청 앞 등에서 1인 시위와 서명운동을 벌이는 한편 포털사이트 <다음>의 ‘아고라 이슈청원’ 코너에서도 1만명 온라인 서명운동을 진행하고 있다.
ⓒ 다음 아고라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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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회 "친일 반민족행위자 칭송, 잘못된 가치관 심을 수 있다" 

이에 따라 곳곳에서 비판과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민족문제연구소 고양·파주지부는 성명을 통해 "친일파를 두둔하는 이들의 공통점은 공과 사를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라며 "그 대열에 이인재 시장도 합류해 파주 시민으로서 부끄럽고 치욕스럽다"고 개탄했다.

광복회는 지난 7일 차창규 사무총장 등 임원들이 직접 이 시장을 찾아와 항의했다. 이들은 "친일파 백선엽 선양시설물 설치는 자라나는 세대나 국민들에게 친일 반민족행위자도 칭송 받을 수 있다는 오도된 가치관을 심어줄 수 있다"면서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 이에 대해 이 시장은 "광복회의 의견을 존중하겠다"며 완곡한 입장을 밝힌 것으로 전해졌다.

민주노동당 경기도당도 성명을 내고 "자치단체장으로서 친일파를 제대로 청산하지 못한 뼈아픈 역사를 바로 잡는데 힘을 모아야 함에도 백씨의 친일행적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며 "파주시민의 혈세를 헛되이 쓴다면 좌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파주시의회 역시 눈총을 받고 있다. 다수당인 민주당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백선엽 선양사업'에 대해 침묵하고 있기 때문이다. 일부에선 "무책임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파주시의회 의석은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각각 5석, 민주노동당 1석으로 구성돼 있다.

파주시의회, 민노당 빼고 침묵 눈총..."무책임하다" 비판도

안소희 민주노동당 의원은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그는 "백선엽씨는 간도토벌대 출신의 친일인사인데다, 부패사학의 상징인 인천 선인학원 이사장을 지낸 인물"이라며 "혈세로 이런 인물의 선양비를 세운다는 것은 용납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안 의원은 이어 "파주시 추경예산안에 '백선엽 선양사업비' 3억 원 가운데 2억 원이 반영돼 있다"면서 "17일 추경예산안 심사 때 이 문제를 철저히 짚어 사업비가 파주의 독립운동유적지 보존과 독립운동인사들을 기념하는데 쓰이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현주 민주당 대표의원은 민주당의 입장을 묻자 "한 마디로 '심히 유감'이란 표현을 쓰고 싶다"면서 "개인적으로 백선엽 선양비 건립에 반대하지만, 소속 의원들 사이에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해 이를 정리한 뒤 공식 입장을 밝히겠다"고 말했다.

한편 정부는 6·25전쟁 60돌을 맞는 올해 백씨를 명예원수(5성 장군)로 추대하려다 친일행적 등을 이유로 중단했다. 일부 군 원로들은 "백 장군을 명예원수로 추대하는 것은 광복군을 정신적 뿌리로 하는 국군의 건군 이념을 훼손한다"며 반대한 것으로 알려졌다.

백씨는 1950년 4월 1사단장으로 부임해 6·25전쟁 당시 파주 전선을 지키기 위해 임진각 등지에서 전투를 벌였으며, 1952년 32세의 나이로 육군 참모총장 자리에 올랐다.


태그:#백선엽, #선양비 건립, #친일파, #파주시, #이인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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