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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의 대전제는 모든 시민 혹은 국민이 정치적 주권자로서 평등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시민들 '사이의' 평등이며, 모든 인간이 '시민'으로 인정받지는 않았다. 아테네의 경우에 노예와 여성은 생산 활동과 가사노동을 전담해야 한다는 이유로 오직 성인 남성만이 정치활동에 참여할 수 있도록 했다. 중요한 것은 그러한 차별의 정당성이 아니라 두가지 활동의 병행이 어렵다는 인식이다. (중략)
 

이러한 아테네식 민주주의가 시사해주는 것은 민주주의에서 '물적 토대'가 갖는 의의다.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식'만 가지고 작동하는 제도가 아니다. 그것은 노예적 삶으로부터 해방된 시민을 필요로 한다."

 

민주주의의 두 축, '깨어있는 시민'+'노예적 삶으로부터 해방된 시민'

 

서평가인 이현우(필명 로자)씨가 지난 11월 23일 <경향신문>에 기고한 칼럼입니다.

 

민주주의 역사를 공부하면서 아테네 민주주의나 유럽의 초기 민주주의에서 '시민'의 범주를 재산있고, 교육받는 '남자'만으로 한정한 것은 '오류였다'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현우씨는 새로운 관점을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여성, 노예 등에게 정치활동의 자유가 주어지지 않았던 이유는, '생업'을 책임져야 하는 즉 노예적 삶에 얽매여있는 그들에겐 정치와 생산 활동 두 가지가 불가능했다"는 것이며, 또한 "아테네식 민주주의의 시사점은 '차별의 정당성'이 아니라 '물적 토대'가 갖는 의의"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즉 민주주의는 '깨어있는 시민의식'과 함께 노예적 삶으로부터 해방된 시민을 필요로 한다는 것인데요. 우리가 발딛고 있는 2010년 오늘, 제도로써 민주주의, 과거 투표와 정치행위에 대한 규제는 없어졌지만, 오히려 시민들의 '노예적 삶(?)'은 더욱 가속화되는 것 같습니다.

 

가난한 사람들, 즉 '물적 토대'를 갖추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의무로써 정치행위에 대한 자유가 주어졌지만, '가난의 굴레'에 갇혀 이들에게 정치란 '나랑 상관없는 먼나라 이야기'정도로 치부됩니다. 그들이 '깨어있는 시민'으로 거듭날 수 있는 정책적 지원이 요원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대변해야 할 '힘있는' 치권, 언론을 찾기도 힘듭니다.

 

'얼굴 없는 시민'은 가난하다

 

이를 증명해주는 연구서 및 그를 토대로 쓴 기획기사가 있습니다.

 

<한겨레21>(798호)이 지난 2월 노동가 손낙구씨의 책 <대한민국 정치사회 지도-수도권 편>을 토대로 기획한 기사의 제목은 '얼굴 없는 시민은 가난하다'였습니다. 한국 빈곤계층의 투표행위를 분석하고, 이들의 둥지를 방문하면서 그들이 처한 현실 및 정치, 투표에 대한 의견을 담담하게 쓰고 있습니다.

 

"정치로부터 소외된 계급, 이들은 '얼굴 없는 시민'이고, 어떤 제도권 정당도 이들을 대표하지 않는다"며 "이들 또한 어떤 정당에도 기대를 걸지 않는다. 부유층과 빈곤층의 경제·사회적 양극화가 가속도를 더해갈수록 '정치적 양극화'도 덩달아 심해진다"는 점이죠.

 

'가난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한 이들', 갈수록 팍팍해져가는 그들의 삶의 질은 이번 국회 예산통과과정에서도 나타납니다. 지난 8일 저녁 강행처리된 2011년 예산과 관련, 다양한 분석자료가 보도되고 있는데요, 그 중 눈길을 끄는 뉴스는 <경향신문> 12월 11일 <주요 복지·일자리·친서민 예산 증감현황>입니다.

 

▲ 보육시설 미아용 아동 양육수당 지원 ▲ 영유아 필수예방접종 지원 ▲ 산모 신생아 도우미 지원 ▲ 장애인 연금 ▲ 중증장애인 자립생활 지원 ▲ 장애인 사회활동 지원 ▲ 장애인 아동 지원 ▲ 중소기업 인력유입 인프라 조성 ▲ 소상공인 겨앵력 제고 ▲ 창업보육지원센터 설립 등 예산에 대해선 상임위에서 작게는 7억, 크게는 2700억 원 증액 예정이었으나, 국회 통과된 예산에는 현행유지였습니다.

 

그 외에도 ▲ 방과후 돌봄 서비스 ▲ 아동발달지원계좌 지자체 경상보조 ▲ 일을 통한 빈곤탈출 상담 지원 ▲ 외국인력 콜센터 운영 등 예산도 초기 상임위 심사예산에 비해 아주 소폭 증가했습니다.

 

'얼굴없는 시민'들에게, "하루 세끼 끼니 걱정에 목숨 거는 사람들에게 정치 놀음, 정치인은 역시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더 확인케 해주는 나쁜 결과물입니다.

 

지역언론, '얼굴 없는 시민'에게 관심 좀!

 

증액될 뻔했던, '주민복지, 일자리, 친서민 예산'이 '없던 일'로 된 현실에서, 대부분의 시민들은 '우리 지역의 복지 수혜자들은 괜찮을까?'라며 궁금해 할 것입니다. 그리고 지역 언론을 찾아보겠죠.

 

'얼굴 없는 가난한 시민들을 위한 예산' 규모가 이 정도라면 지역에 거주하는 그들의 삶은 더욱 팍팍할 수밖에 없을텐데요. 축소된 예산으로 인한 지역사회 미치는 영향, 지방자치단체가 마련하는 대책 등에 대해 시민들에게 알려야 하는 것이 지역언론의 몫일 것입니다. 지역언론의 관심은 다른 곳에 있었습니다.

 

복지와 친서민 예산 대부분이 특정 정치인에게 집중되었고, 그 정치인 중에 유난히 언론의 따가운 눈총을 받는 것이 포항을 지역구로 하는 형님 예산입니다. 공정하고 합리적으로 배분되어야 할 시민들의 세금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몇몇 정치인에게 집중된 것은 이명박 대통령의 하반기 정책 운영방안인 '공정한 사회'에도 위배된다는 점입니다.

 

복지, 일자리, 친서민 예산의 '원위치'와 지역사회 및 지방자치단체의 대응에 '무관심'했던 지역언론은, 이 정권의 실세 '형님 이상득 의원'에 대한 여론의 뭇매에 방패막이로 나서고 있습니다.

 

<영남일보>는 지난 13일, 14일 연이어 '형님 예산'에 비판에 반박 주장을 주요하게 보도하고 있습니다. 물론 포항 북구의 이병석 의원과, 김관용 경북도지사의 주장을 지면에 반영한 것이지만, 기간 '형님 예산'의 실체에 대해 거의 보도하지 않다가, 이들의 해명만을 주요하게 보도한 것은 '공정한'정보제공의 원칙에도 어긋납니다. 또한 <영남일보>는 여기에 덧붙여 13일 <사설 : '형님 예산' 매도는 정치적 공세 불과>를 통해 이병석 의원 및 김관용 도지사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습니다.

 

사회 주요이슈에 대해 언론이 공론의 장을 만들어주는 것은 당연한 의무라고 본다면, '형님예산'을 둘러싼 정치권 관계자들의 논쟁은 조금 더 지켜봐야 합니다.

 

하지만 <영남일보>가 하나 놓친 것이 있습니다. <영남일보>는 '형님예산'에 대한 적극적 방어만큼 신경써야 할 부분이 '복지, 일자리, 친서민 예산' 원위치로 인한 지역사회 피해 또한 함께 관심가져야 할텐데요. <영남일보>는 이에 대한 관심은 보이지 않고 있습니다.

 

국민을 소외시키는 '정치', 언론도 힘 보내나?

 

최근 열심히 읽고 있는 책이 <촘스키처럼 생각하는 법>(말과 글을 단련하고 숫자 언어 미디어의 거짓으로부터 나를 지키는 기술)/노르망 바야르종 지음/강주언 옮김 (갈라파코스)입니다.

 

5장 미디어편에 보면 "미디어의 행태와 그들이 민주적인 삶에 끼치는 영향에 대해 근심하는 데는 근본적으로 다른 이유가 있다.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 제도적 기관들이 민주주의를 이상한 방향으로 생각하는 경향을 띤다는 사실이 그것이다. 그런 기관들은 국민에게 정보를 제공하는 것 보다 국민을 소외시키는 편이 낫다고 주장한다. 달리 말하면, 국민을 정치적인 삶의 주체가 아니라 방관자로 만들어야 한다는 뜻이다. 이런 이유에서도 우리는 미디어 보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정치는 국민을 소외시키는 편이 낫다고 주장하고, 언론은 이에 부합한다면 우리네 민주주의는 오히려 과거 아테네나 유럽보다 더 후퇴할 수 있다는 점이죠. 이런 현상을 증폭시키는 언론에 대해 '시민들이 미디어 보도를 비판적으로 분석하는 안목을 키워야' 거꾸로 가는 민주주의 시계를 되돌릴 수 있다는 의미일 것입니다.

 

'힘있는 자에 대한 방어', '사회적 이슈에 대한 공방'도 중요할텐데요, '얼굴 없는 시민', '노예적 삶의 구렁텅이로 한없이 추락하는 그들의 삶에 대해서도 누군가는 목소리 내줘야 하지 않을까요?

덧붙이는 글 | 이기사는  미디어오늘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 평화뉴스 <미디어창>에 (12월 14일) 기고한 글입니다. 


태그:#형님 예산, #민주주의, #얼굴없는 시민, #영남일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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