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리카는 나쁜 년이다."

 

하버드대학교에 다니는 마크(제시 아이젠버그)는 여자친구와 헤어지고 자신의 블로그에 그녀에 대한 불만을 토로한다.

 

이에 그치지 않고 그는 이별에 대한 앙갚음으로 여자기숙사 홈페이지를 해킹, 이른바 '이상형월드컵'과도 같은 페이스매치(face match)사이트를 만들어 새벽 네 시에 서버를 다운시킨다.

 

10대 로맨스소설의 한 장면 같은 이 에피소드는 지난 18일 국내 개봉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The Social Network)>의 도입부다.

 

컴퓨터에 집중하는 마크 하버드대 재학생 마크는 컴퓨터 천재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개인블로그에 불만을 토로, 그에 더해 여자기숙사 사이트를 해킹해 페이스 매칭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 컴퓨터에 집중하는 마크 하버드대 재학생 마크는 컴퓨터 천재다. 여자친구와 헤어진 후 개인블로그에 불만을 토로, 그에 더해 여자기숙사 사이트를 해킹해 페이스 매칭 사이트를 만들고 있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페이스북' 창립자, 하버드 천재 실화 다뤄

 

현재 세계 최연소 자수성가형 억만장자인 페이스북 창립자 마크 주커버그의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

 

학교 사이트를 해킹한 죄로 근신 조치되고, 이후 모든 여학생들에게 공공의 적이 되어버린 마크. 한편 그의 재능을 알아본 윈클보스 형제는 그들이 기획 중인 '하버드 커넥션' 사이트 제작을 마크에게 의뢰한다.

 

흔쾌히 제안을 수락한 마크. 그러나 그는 이후 친구 왈도 세브린(앤드류 가필드)의 도움을 받아 하버드 커넥션과 유사한, 아니 좀 더 확장한 격인 인맥 사이트 '페이스 북(Face Book)'을 만들어 나란히 CEO, CFO 입지를 굳힌다.

 

이후 음원 공유 프로그램 '냅스터'의 창시자인 숀 파커(저스틴 팀버레이크)가 가세, 페이스북은 전 세계로 뻗어나가며 5억 명 이상의 사람들이 사이트 안에서 온라인친구를 찾고 기업가치는 58조 원으로 치솟으며 승승장구한다.

 

여기까지 보면 별 문제 없는 젊은 인터넷 천재의 성공스토리 같지만, 영화 중간 중간 끼어드는 법정신을 통해서도 알 수 있듯 영화는 현재 마크가 두 개의 소송에 휘말려 있음을 알려준다.

 

하나는 윈클보스 형제의 "그는 우리 아이디어를 훔쳤다"는 주장에 의해 고소된 건이며, 또 다른 하나는 절친인 왈도가 소송을 제기한 것.

 

영화는 페이스북 탄생 스토리를 창립자인 마크 주커버그와 얽혀 있는 두 가지 소송과 맞물려 그려낸다.

 

천재들의 대화란 이런 것?

 

<소셜 네트워크>는 자칫 시기성을 강조한 트렌디한 영화 혹은 지루한 법정 영화로만 그려질 수도 있는 소재의 영화다.

 

그러나 영화의 '속도감'이 영화의 매력을 더욱 살려준다.

 

속도감 넘치는 영화의 분위기를 자아내는 것 중 하나는 인터넷이라는 스피디한 소재 자체와 그에 걸맞는 연출, 그리고 영화 전반에 걸쳐 도드라지는 인물들의 빠른 대사처리다.

 

세계 최연소 억만장자로 거듭난 천재와 그 배경에 하버드대학이 있다는 것을 명시하기라도 하듯, 극작가 아론 소킨에 의한 대사처리는 평균치보다 한 발 앞서는 느낌으로 짧은 탄성이 터져 나올 법한 대사를 영화 전반에 배치하며 속도감을 자아낸다.

 

이를테면 학교 보안을 뚫고 해킹해 서버를 다운시킨 죄로 학생회에 끌려간 마크가 교직원들에게 오히려 "나에게 고마워해야 할 것"이라며, 그 이유로 "내 덕에 학교 사이트 보안이 취약한 걸 알았으니까"라고 하는 식이다.

 

혹은 마크를 향한 숀 파커의 자문자답 식 대화도 이에 해당한다.

"백만 달러보다 더 멋진 게 뭔지 알아?" "……." "바로 '억 만 달러'야."

 

한편 단시간에 개발해 엄청난 인기를 끌게 된 관계 맺기 사이트를 개발해놓고 그에 따른 긍정·부정적 여러 가지 과제들에 대해, 또 소송해결을 위한 자리에서 시종일관 별 일 아니라는 듯 무표정한 표정연기로 천재 캐릭터를 극대화 한 제시 아이젠버그의 연기도 영화의 완성도에 한 몫 한다.

 

영화 포스터 실제 '페이스북' 창립 스토리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 > 포스터 한 컷.

▲ 영화 포스터 실제 '페이스북' 창립 스토리를 다룬 영화 <소셜 네트워크 > 포스터 한 컷.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지금 우리는…

 

영화 제목이 아닌 용어로써의 '소셜 네트워크(social network)'는 웹상에서 개인 혹은 집단이 하나의 데이터 접합점인 노드(node)가 되어 서로간의 관계에 의해 만들어지는 구조를 뜻한다. 또한, 웹이라는 무궁무진한 공간 자체의 특성과 수많은 노드와 그로인한 다양한 관계로 계산적인 접근이 매우 어렵고 복잡한 웹 사이언스 연구 분야 중 하나이기도 하다.

 

지금 우리는 몇 밤 자고일어나면 세계 각지에 흩어진 굴지의 네트워크 통신사들이 제각기 업그레이드 된 각종 신제품을 출시, 우리에게 매력적인 각종 미디어 광고를 들이밀며 소비를 유혹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아이폰, 블랙베리, 갤럭시S 등 다양한 스마트폰을 통해서는 각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원하는 정보를 손쉽게 활용할 수 있으며, 다양한 책을 무게 걱정 없이 어디서나 얇은 LCD화면을 통해 볼 수 있고, 클릭 한 번으로 지구 반대편에 머물고 있는 친구와 소통할 수 있는 게 자연스러운 모습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단면이다.

 

디지털 혁명을 넘어서 이제는 이른바 '스마트'한 세상에서 각종 '스마트'한 기기들을 활용하며 '스마트'한 삶을 즐기고 있는 우리.

 

이런 시대성을 굳이 감안하지 않더라도 제목 그대로에서 드러나는 소재도 명확한 <소셜 네트워크>는 분명 시류에도 딱 맞는 '핫'한 영화다.

 

그러나 영화를 좀 더 들여다보면 마냥 '핫'하지만은 않다.

 

자신감의 발로인가 싶을 정도로 무작정 던져놓은 듯한 영화 제목 '소셜 네트워크'.

영화를 보면 시대성에 맞는, 또한 시대적 오류와도 같은 진정한 '사회적 관계'에 대한 고찰을 시도했다는 점에서 그 네이밍 스토리를 짐작할 수 있다.

 

사적인 영역에서 시작한 페이스북

 

영화를 통해 우리는 세계 각국의 네티즌을 이어주는 다국적 광범위한 온라인 인맥사이트, 페이스북의 기원이 떠나버린 여자친구에 대한 괴로움이라는 지극히 사적인 관계에 대한 고민에서 출발했음을 알 수 있다.

 

더불어 하버드 컴퓨터 인재라는, 이른바 특권층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 그리고 주변에 대한 관심을 원하는 인간 개인적 욕망의 발현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나 인간관계에 대한 갈증을 인터넷을 무대로 풀어내려는 데서 문제가 발생한다.

 

전 세계 5억 명과 친구관계를 맺을 수 있는 방대한 온라인 인맥 사이트의 창립자가, 가장 친한 친구 왈도에게 소송을 당하는 등 주변사람들을 하나 둘 잃어가는 이야기는 아이러니다.

 

그러니까 실제 사례를 기반으로 한 영화 <소셜 네트워크>는 이 시대 소통의 부재를 말하고,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에 대한 진실성을 어디서 찾을 것인가에 대한 성찰을 현대인들에게 권하는 것이다.

 

소송에 휘말린 억만장자 방대한 인맥사이트를 만든 마크는 정작 절친에게 고소 당하며 주변인들을 잃는 등, 현실 속 개인의 관계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 소송에 휘말린 억만장자 방대한 인맥사이트를 만든 마크는 정작 절친에게 고소 당하며 주변인들을 잃는 등, 현실 속 개인의 관계에서 불안정한 모습을 보인다. ⓒ 한국소니픽쳐스릴리징브에나비스타영화(주)

"친구 신청합니다"

 

영화 말미, 소송을 둘러싸고 변호사를 대동한 피고와 원고 양측의 대담이 끝나고, 한 신참 변호사는 마크에게 인간적인 관심을 보이며 그를 위로하고 떠난다.

 

마크는 룸에 홀로 남겨진 채 노트북을 통해 자신이 만든 페이스북을 통해 그녀의 페이지를 찾아내고 잠시 고민한 후 그녀에게 '친구 신청'을 한다. 그러나 마크 자신이 만든 사이트에서 정식으로 '친구'라는 '관계'가 맺어지는 것은 상대가 '친구 요청 수락'을 해야 가능한 것.

 

영화의 마지막 신은 이렇다.

 

신참 변호사에게 친구신청을 한 마크는 곧바로 친구 관계가 '수락'이 되었는지 확인한다.

무표정한 얼굴로 눈길을 모니터에 고정한 채 검지 손가락만을 몇 초에 한 번꼴로 까딱이며 말이다.

 

이를 통해 영화는 우리에게 묻는다.

 

이른바 '스마트'한 세상에 사는 우리들은 과연, 진정 '스마트 피플'일까, 하고 말이다.

2010.11.24 10:11 ⓒ 2010 OhmyNews
소셜 네트워크 THE SOCIAL NETWORK 데이빗 핀처 페이스북 마크 주커버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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