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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3일 가을이 비켜가고 있는 주말, 속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법주사를 찾았다. 주차장에서 차를 세우고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딛는 순간 코끝부터 전해오는 향기가 너무 진해서 정신이 몽롱해지는 기분이다. 향긋한 자연의 내음이 몸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뼈 속까지 전해지도록 숨을 크게 들이마셔 본다.

법주사로 가는 오리숲길
 법주사로 가는 오리숲길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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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로 들어가는 길은 호젓한 숲길이 이어진다. 외로움이 밀려오는 가을, 혼자만의 고독을 만끽하기에도, 연인과 손을 잡고 걷기에도 너무나 좋은 길이다. 그 이름은 오리숲, 나무 사이로 오리들이 뒤뚱거리며 줄지어 걸어 다닐 것 같은 이름이지만, 그래서 붙여진 것은 아니다. 숲길의 길이가 총 5리 정도 된다고 해서 오리숲이다. 어떻게 붙여졌건 간에 왠지 앙증맞고 귀여운 이름이다. 스산한 가을 풍경과는 어울리지 않지만 봄이 되면 어울리는 이름이 될지도 모르겠다.

길가로는 참나무, 소나무 등의 다양한 나무들이 키재기를 하며 하늘을 뒤덮어 터널을 이루고, 떨어져 수북이 쌓인 낙엽 위에 벤치는 나의 발걸음을 잡아끈다. 따뜻한 커피 한잔을 삼키며 책 한 권 읽고 싶어지는 풍경에 아쉬움만 더해진다.

법주사로 들어서는 일주문
 법주사로 들어서는 일주문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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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표소에서 입장료 3000원을 내고 표를 끊은 후, 다시 이어지는 숲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새 일주문에 맞닿는다. 일주문 위에 붙어 있는 현판의 문구가 눈에 들어온다. '호서제일가람(湖西第一伽藍)'. 가람은 스님들이 수행하는 곳이란 뜻으로, 호서지방 즉 충청도지방의 제일가는 사찰이라는 뜻이다. 그 뒤쪽으로 전서체로 쓰인 다른 문구가 적힌 현판이 걸려 있다. '속리산대법주사(俗離山大法住寺)', 세속과의 이별을 하고 부처님과 머무는 사찰이라는 의미이다.

특별히 종교를 두고 있지는 않지만 절이라는 곳은 나에게 언제나 속세의 때를 씻어낼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을 주는 곳이니 특별히 법주사에 국한된 것만은 아니다. 처음 찾은 이곳에서 나는 또 어떤 휴식 같은 시간을 얻어갈 수 있을까 기대를 하며 일주문을 들어선다.

그림자를 길게 드리우고 늘어선 나무들, 그 사이를 비집고 들어오는 은은한 햇살.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니 달아나려는 가을을 붙잡고 있는 노란 잎사귀들이 바닥에서 뒹구는 낙엽들과 대조적인 풍경을 보인다. 이미 가버린 줄 알았는데 붙잡아두었구나 생각하니 그것들이 더욱 예뻐 보인다.

사적 및 명승 제4호로 지정된 법주사에는 여느 사찰과 마찬가지로 국가적 재산으로 분류되는 것들이 여러 개 남아 있다. 그 중 정문을 들어서기 전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것이 충북 유형문화재 제71호인 벽암대사비로서 법주사를 중창한 벽암대사를 기리기 위한 돌비석이다. 그 옆을 지키고 있는 속리산사실기비는 속리산이 명산이라는 것과 세조가 이곳에 다녀갔다는 사실을 기록하고 있으며, 충북 유형문화재 제167호로 지정되었다.

법주사의 전경
 법주사의 전경
ⓒ 최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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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주사는 신라 진흥왕 14년 삼국통일을 기원하기 위해 건립된 후 혜공왕 12년에 이르러 금동미륵삼존불상을 갖추고 법상종의 3대 가람으로 발전해왔으나 임진왜란 때 화재로 소실되었다. 이에 조선 인조 2년 사명대사와 벽암대사가 다시 증축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十자형으로 배치된 형태로 규모는 큰 편이며, 속리산이 경내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법주사의 정문인 '금강문'을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길을 잡아끄는 것은 정면에 바로 보이는 전나무 두 그루이다. 절을 지키고 있는 사천왕상을 모신 천왕문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 있는 모습이 마치 거대한 수문장처럼 든든하다.

입구의 왼쪽으로는 당간지주가 하늘 높이 솟아 있다. 당간지주는 솟대와 같은 기능을 하는 것으로 깃발을 꽂아 종파를 표시하기도 하며 멀리서 보았을 때도 신성구역임을 나타낼 수 있도록 표시하는 용도로도 사용된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다른 사찰에서는 본 적이 없는 모습이라 다소 생소하다 싶었는데, 알고 보니 고종 3년 때 국가재정을 마련하기 위해 사찰의 금속물들을 수거한 이유 때문이었다. 법주사의 당간지주는 순종 당시 원래의 모양 그대로 복원되어 지금까지 남아 있다.

법주사 석연지
 법주사 석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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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간지주의 뒤쪽으로는 국보 제64호로 지정된 석연지가 있다. 돌을 깎아 만든 조그만 연못으로 그 모양이 비석과 비슷하여 흔히 일컫는 연못을 생각한다면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다. 더러운 흙탕물에서도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지만 더러움에 물들지 않는 연꽃을 형상화하여 불교의 윤회적인 교리를 우회적으로 나타내고 있다.

법주사를 굽어보고 있는 금동미륵불상
 법주사를 굽어보고 있는 금동미륵불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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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생각일 수도 있지만 누군가 법주사를 찾는다면 후일 법주사의 이미지로 가장 먼저 떠올릴 만한 것은 바로 금동미륵대불인 것 같다. 법주사의 왼쪽 중앙에서 경내를 굽어보고 있는 거대한 금빛의 불상이 바로 그것이다. 금동미륵대불은 수차례 옷을 갈아입은 기구한 사연이 있다. 신라 혜공왕 12년에 처음 만들어진 불상은 고종 9년 때 당백전 화폐 주
조를 위한 구실로 몰수된다.

이후 1939년 주지스님이 후원을 받아 시멘트 불상을 조성하다가 6.25동란의 이유로 중단되고, 1963년 당시 주지스님이 박정희 장군과 이방자 여사의 시주를 받아 완성시킨다. 1986년 이는 해체되었다가 4년 뒤인 1990년 청동불로 다시 조성되며 2002년 금동미륵대불회향대법회를 계기로 본래의 금동미륵부처님으로 돌아오게 된다.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갖은 사건을 겪어내며 다시 돌아온 금동미륵대불이야말로 앞으로 법주사의 상징이 되지 않을까 싶다.

법주사 팔상전, 현존하는 유일한 목조탑이다.
 법주사 팔상전, 현존하는 유일한 목조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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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동미륵대불의 시선이 닿는 곳, 천왕문을 통과하면 바로 보이는 5층짜리 건물 역시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보물이다. 팔상전이라는 이름은 내부 기둥사이 4면에 석가여래의 일생을 8장의 그림으로 나타낸 팔상도가 모셔져있어 붙여진 것으로 현재 국내 모든 목조탑들이 화재로 소실되고 유일하게 남아 있는 건축물이다. 유일이라는 것에 그 가치가 되새겨져서인지 오래돼서 벗겨진 단청무늬까지도 소중하게 여겨진다. 오랫동안 이겨냈을 세월을 생각하니 가슴이 뭉클해져서 팔상전 주변을 서성이며 한동안 발걸음을 떼지 못한다.

법주사 대웅전에는 3신불이 모셔져있다.
 법주사 대웅전에는 3신불이 모셔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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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밖에도 국보 제5호로 지정된 쌍사자석등을 비롯하여 보물로 지정된 철확, 원통보전, 희견보살상, 사천왕석등을 경내 곳곳에서 살펴볼 수 있다. 또한 가장 안쪽에 자리 잡은 대웅보전은 보물 제915호로 지정되었으며 안쪽에는 세분의 불상이 모셔져 있다. 각기 다른 포즈로 앉아있는 3신불은 실내 안존불로서는 국내 최대의 불상이라고 하니 그 모습 또한 놓치지 말아야 한다.

마지막으로 경내를 둘러보고 나오는길 수정암쪽으로 잠시 길을 틀어 돌에 새겨진 불상을 찾아보자. 두 개의 크고 작은 불상이 서로 마주 보고 있으니 그 중 큰 것은 마래여래의상으로 보물 제216호로 지정된 문화재이다.

덧붙이는 글 | http://dandyjihye.blog.me/140118524073 개인블로그에 게재된 글입니다.



태그:#속리산, #법주사, #오리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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