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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MBC본사와 상징 조형물.
 여의도 MBC본사와 상징 조형물.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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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어서는 안 될 일이 일어났다."

지난 2일 MBC 주말 <뉴스데스크> 홍보를 위한 기자간담회에서 마주친 최일구 앵커에게 'MBC 정보 유출 사건'에 대해 묻자 최 앵커가 한 말이다.

삼성 직원이 MBC 내부의 취재 보고, 뉴스 큐시트 등을 볼 수 있는 뉴스시스템에 접속해 정보를 유출했다는 정황이 드러나자 MBC는 충격에 휩싸였다. 언론사에서 생산·취재한 각종 정보가 한데 모이는 뉴스시스템이 그대로 외부에 노출된 것으로, MBC는 이 일로 인해 큰 상처를 입고 있다.

MBC 노조는 지난 1일 발표한 논평에서 "정보가 생명인 언론사의 심장부가 유린되었다"며 분통을 터트린 바 있다. MBC 노조 측 관계자는 "MBC가 명색이 공영방송사인데, 이런 일이 벌어졌다는 것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삼성 '유감' 표시에 MBC 노조 '대대적인 유감' 표명

정보를 털린 MBC가 휘청거리고 있을 때 정보를 턴 쪽인 삼성은 어떤 태도를 보이고 있을까. 지난달 29일 <오마이뉴스>가 정보유출 사실을 단독으로 보도한 이후부터 삼성은 "한 개인의 일일 뿐 조직과는 상관없고, 유출한 정보의 내용을 보고 받은 바가 없다"는 입장을 일관되게 보여 왔다. 또 "MBC를 조직적으로 관리했다면 MBC에서 나온 숱한 오보들을 사전에 막지 않았겠느냐"며 당당했다.

이번 사건에 대한 삼성의 공식 입장 발표는 이인용 삼성그룹 커뮤니케이션팀 부사장이 "삼성은 이번 사안이 회사 차원에서 벌어진 일이 아님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삼성직원이 관련됐다는 점에서 유감"이라고 말한 게 전부다.

삼성의 '유감' 표명에 MBC 노조는 4일 발행한 노조 특보를 통해 대대적인 '유감'을 표시했다.

"백 번 양보해 삼성의 변명대로 그저 직원 한 명이 '호기심'에서 저지른 잘못이라 쳐도 직원을 잘못 관리한 데 대해서 진심어린 사죄부터 하는 게 최소한의 도리가 아닌가. 언론사의 취재 정보와 기사를 훔쳐보는, 군사독재 시절에나 있을 법한 무시무시한 범죄를 저질러 놓고도 이에 대한 반성의 빛은 조금도 찾아볼 수가 없다, 삼성의 오만함이야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지만 사죄 한 마디 하지 않는 뻔뻔함은 어디서 나오는 것인가."

삼성의 태도에 대한 성토에 이어 노조는 "회사에 보고조차 하지 않을 정보를 왜 그 직원이 그렇게 열심히 수집했을까? 정말 알 수 없는 노릇"이라며 찜찜한 뒷맛을 다셨다.

"삼성, MBC 훔쳐보고도 MBC 기사 악의적이라며 성깔"

삼성 태평로 사옥.
 삼성 태평로 사옥.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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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MBC 내부 정보에 대한 외부의 접근은 이전에도 있었다. 그러나 '외부'의 반응은 달랐다. 지난 6월 서울 경찰청 정보과 형사가 MBC 라디오 <세계는 그리고 우리는> 제작팀을 찾아와 그날 방송 될 경찰 인터뷰 기사를 보여 달라고 요구해 물의를 빚은 것.

당시 경찰청 간부는 직접 MBC로 찾아와 사죄 의사를 밝혔다. 이 사건을 언급하며 노조는 "삼성은 기사를 보여 달라고 요구한 정도가 아니라 오랫동안 MBC 뉴스 시스템을 훔쳐봤는데도 MBC 기사가 악의적이었다며 성깔을 부리고 있다"고 맹비난했다. 삼성이 '개인의 일일 뿐'이라며 입을 닦아서는 안 된다는 일침이다.

삼성의 태도 뿐 아니라 이러한 삼성에 대한 김재철 MBC 사장의 침묵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김 사장은 2일 발표한 입장문을 통해 "사원들이 취재한 정보가 안전하게 관리되고, 안심하고 일할 수 있는 터전을 만들어줘야 할 책임을 지고 있는 사장으로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A4 한 장 분량의 입장문 그 어디에도 '삼성'이라는 단어는 등장하지 않았다. "앞으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정보 시스템의 보안과 인력 체계를 재점검하겠다"는 자기 다짐만이 있었다.

이에 대해 MBC 노조는 "삼성을 향해 엄중하게 경고하고 책임을 물어도 모자랄 판인데 현 경영진이 꿀 먹은 벙어리처럼 침묵하고 있는 것을 참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노조는 삼성의 뻔뻔함 뒤엔 MBC 사장이 존재한다고 날을 세웠다. "권력과 자본 앞에서 한없이 약해지는 MBC 사장의 모습이 삼성을 안하무인의 괴물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이다. 노조는 "더 이상 MBC와 MBC 구성원들의 자존심에 먹칠을 하지 말고 공영방송 MBC를 유린한 삼성의 파렴치함을 단죄하라"고 촉구했다.

삼성 "조사 결과에 따라 방문해 사과할 수 있다"

삼성을 향한 노조의 비판에 대해 삼성 측 관계자는 4일 <오마이뉴스>와 한 통화에서 "이인용 팀장 발언의 전후맥락을 보면 메시지를 찾을 수 있지 않느냐"며 "사과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후에 조사 결과가 나오면 직접 방문해서 사과를 할 수도 있고, 기존에 했던 유감 표시로 대신할 수도 있고, 메일 등으로도 사과 표시를 할 수도 있지 않겠느냐"며 "아직 조사 중에 있으니 그 정도로 유감을 표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삼성의 자체 조사에 대해서 이 관계자는 "조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고 있다"며 "조사에는 다소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관계자는 "MBC에선 삼성경제연구소의 IP가 뉴스시스템에 접속한 결과가 있다고 하는데, 삼성에서 조직적으로 시켰다면 IP가 다 남을 것을 뻔히 아는 상황에서 그렇게 허술하게 접속했겠느냐"고 말했다.

다시 한 번 '개인적인 차원'임을 강조한 것이다. 만일 MBC 기자가 삼성의 내부게시판을 훔쳐봤다고 해도 삼성은 '개인적인 일일 뿐'이라는 입장을 고수했을까, 의문이다.


태그:#MBC, #내부 정보 유출, #삼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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