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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이건희 회장을 영접하러 나온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지난 10월 30일 이건희 회장을 영접하러 나온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 이진영씨 촬영/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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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0월 30일 오후 4시 10분께.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이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활동을 마치고 김포공항을 통해 귀국했다. 이날 이건희 회장은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에게 '젊은 인재론'을 재차 언급했다.

"(리더는) 21세기니까 새로운 문화에 적응을 빨리 잘해야 하고. 그러니까 젊은 사람이 맞지. 나이 많은 사람은 안 맞지."

삼성그룹의 연말 정기인사를 앞두고 나온 이 회장의 발언은 삼성그룹의 세대교체를 시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큰 관심을 받았다. 하지만 이날 입국장에서 일어났던 '작은 사건들'은 이 회장의 발언에 묻히고 말았다.

시위용 피켓, 이건희 회장 입국 10여 분 전에 사라져

이건희 회장의 귀국이 임박한 김포공항 국제선 입국장. 두 사람이 이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한 사람은 지난 2월 삼성생명 유배당 계약자들이 제기한 '배당금 10조원 지급 소송'에 참여하고 있는 윤상복씨이고, 다른 한 사람은 '삼성 핸드폰 폭발 사고'를 놓고 삼성전자와 '명예훼손 맞고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진영씨였다.

당시 입국장 앞에는 이건희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과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 이학수 삼성전자 고문 등 삼성전자 수뇌부가 이 회장을 마중 나와 있었다. 삼성 에스원 소속으로 보이는 직원 여러 명도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고 한다.

윤상복씨는 삼성생명 강제퇴직자로서 삼성생명 유배당 계약 피해자라고 주장하는 윤병목씨로부터 받은 7개의 시위용 피켓을 가지고 있었다. 7개의 피켓에는 '삼성생명 상장으로 인한 유배당 계약자들의 피해를 보상하라' 등의 요구가 적혀 있었다.

'서울지검이 명예훼손 무혐의 결정했다 삼성생명은 98년 강제퇴직 퇴직금 상계 사죄하라!'
'삼성생명 계약자는 이건희 일가의 봉이냐? 주식상장으로 남은 차익 계약자에게 배분하라.'

그런데 이건희 회장이 입국하기 10여 분 전, 입국장 출구 옆 승객용 의자 옆에 보관해두었던 시위용 피켓이 갑자기 사라졌다.

당시 시위용 피켓을 보관하고 있던 윤상복씨는 "윤병목씨가 교회에 가야 한다고 나더러 공항으로 나오라고 해서 갔다"며 "공항에 있던 이진영씨로부터 피켓을 건네받아 보관하고 있다가 잠깐 졸았는데 그 사이에 피켓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윤씨는 "내가 공항에 가기 전에 신장투석을 했다"며 "투석을 하면 피곤해서 잠이 쏟아진다"고 덧붙였다.

이진영씨는 "공항 종합상황실에서는 '피켓이 CCTV 사각지대로 빠져나간 것 같다'고 했다"며 "우리끼리 '어떻게 이 회장이 입국하기 직전에 피켓이 사라질 수 있나, CCTV 사각지대로 빠져나갔다면 전문가들이 한 것 아니냐'는 얘기를 주고받았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이씨는 "윤상복 할아버지께서 몸이 안 좋아서 잠깐 졸았는데 거기 주변을 누군가 배회하고 있었다"며 "'피켓이 돈 되는 것도 아닌데 무슨 일 있겠나' 싶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고 말했다.

자신이 제작한 시위용 피켓을 도난당한 윤병목씨는 결국 지난 1일 강서경찰서에 진정서를 제출했다. 윤씨는 이건희 회장이 빠져나간 직후인 오후 4시 30분께 입국장에 도착했다.

윤씨는 "입국장에 도착해서 피켓을 도난당한 현장 주변을 찾아보았지만 찾지 못했다"며 "그래서 김포공항 상황실에 CCTV 확인을 요청해 1시간 넘게 확인했지만 피켓을 훔쳐간 장면은 나오지 않았다"고 말했다.

지난 10월 30일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이건희 회장을 기다리고 있는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과 이재용 부사장.
 지난 10월 30일 김포공항 입국장에서 이건희 회장을 기다리고 있는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과 이재용 부사장.
ⓒ 이진영씨 촬영/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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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제압당했지만 말을 걸어온 기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이렇게 시위용 피켓이 감쪽같이 사라진 직후 이건희 회장이 입국장으로 걸어나왔다. 윤상복씨는 시위용 피켓 없이 "이건희 회장은 삼성생명 사건(상장에 따른 배당급 지급건)을 빨리 해결하라"고 외쳤다. 순간 이 회장의 눈길이 윤씨쪽으로 향했다.

하지만 누군가 윤씨의 입을 막은 뒤 그를 끌고 갔다. 윤씨는 "내가 이건희 회장한테 소리치자 어떤 젊은 사람들이 내 입을 막은 뒤 나를 번쩍 들어 50미터 정도 끌고 갔다"며 "자신들은 공항 직원들이라고 주장했지만 삼성 직원인 것 같았다"고 주장했다.

이진영씨도 마찬가지였다. 그는 '소비자 탄압하는 삼성전자 규탄한다'고 적은 스케치북 피켓을 들고 서 있었다. 하지만 윤상복씨의 경우처럼 '누군가' 그를 덮쳤다. 그는 자신을 덮친 사람이 '삼성 에스원' 직원이라고 주장했다.

이씨는 "이건희 회장이 나오기에 스케치북 피켓을 들고 있으면서 사진을 찍었는데 삼성 에스원 경호원들이 와서 나를 덮쳤다"며 "이 회장에게 위해를 가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이렇게 제압할 필요가 있는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이씨는 "이건희 회장에게 피켓을 보여주고 사건을 원만하게 해결하고 싶은 마음이었다"며 "하지만 말도 못 붙이게 윤상복 할아버지의 입을 틀어막고 나를 바로 제압해버렸다"고 말했다.

이씨는 이 회장의 입국 시각에 맞추어 시위를 준비한 이유와 관련해 "나는 삼성에 특별한 악의를 가지고 있지 않고 삼성과 원만하게 일을 끝내고 싶다"며 "하지만 어느 누구도 책임지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오너인 이건희 회장에게 피해자 문제를 환기시키기 위해 이렇게 나올 수밖에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씨를 더욱 씁쓸하게 만든 것은 '언론의 무관심'이었다. 그가 이런 말을 툭 내뱉었다.

"공항 입국장에 많은 기자들이 나와 있었다. 하지만 윤상복 할아버지와 내가 그렇게 제압당했는데도 우리에게 말을 걸어온 기자들은 한 명도 없었다. 뭐하러 여기 왔는지, 왜 제압을 당했는지 물어보지도 않더라."

'삼성 핸드폰 폭발 사고'를 놓고 삼성전자와 '명예훼손 맞고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진영씨가 제압당하기 전에 찍은 이건희 회장의 입국 장면. 오른쪽은 영접하러 나온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삼성 핸드폰 폭발 사고'를 놓고 삼성전자와 '명예훼손 맞고소' 전쟁을 치르고 있는 이진영씨가 제압당하기 전에 찍은 이건희 회장의 입국 장면. 오른쪽은 영접하러 나온 이 회장의 장남 이재용 삼성전자 부사장.
ⓒ 이진영씨 촬영/삼성일반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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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이건희, #윤병목, #윤상복, #이진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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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0년 전남 강진 출생. 조대부고-고려대 국문과. 월간 <사회평론 길>과 <말>거쳐 현재 <오마이뉴스> 기자. 한국인터넷기자상과 한국기자협회 이달의 기자상(2회) 수상. 저서 : <검사와 스폰서><시민을 고소하는 나라><한 조각의 진실><표창원, 보수의 품격><대한민국 진보 어디로 가는가><국세청은 정의로운가><나의 MB 재산 답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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