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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4일(화)

나이 마흔이 넘으면서 이상하게 병원 출입이 잦았다. 위가 아파서, 장에 문제가 있는 것 같아서, 무슨 큰 병에라도 걸린 것처럼 몸이 피곤해서 병원을 찾았다. 그때마다 의사들 하는 말이 하나같았다. 운동 부족이라고. 운동이 부족해서 몸에 이상이 생긴 거니까 틈틈이 운동을 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나중에 진짜 큰 병이 올 수도 있다고 했다. 더구나 나이가 있어서 더 위험하다며 운동을 결코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고 알려 주었다.

참 고마웠다. 하지만 운동이라니,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때까지 내 평생 운동이라곤, 어려서 동네 아이들한텐 두들겨 맞고 엄마 성화에 못 이겨 합기도 도장 한 달 다닌 것 하고, 마누라 등쌀에 못 이겨 동네 헬스장 한 달 다니고 그만둔 게 전부다. 내 성격에 뛰고 차고 던지고 들고 하는 이런 것들 딱 질색이다. 그런데 운동을 하라니, 대체 무슨 운동을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도 없었을 뿐더러 선뜻 맘이 내키지도 않았다.

운동하고 담 쌓고 산 내가 '자출족'이 되기까지

여행을 떠나기 전 연습 삼아 달려본 한강 자전거도로.
 여행을 떠나기 전 연습 삼아 달려본 한강 자전거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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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다 떠올린 게 자전거다. 자전거라면 한 번 맘을 붙여볼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고 나서도 자전거 안장에 엉덩이를 올려놓기까지는 또 꽤 오랜 시간이 걸렸다. 마침내 아침저녁으로 거울 앞에 설 때마다 하루가 다르게 배가 나오는 걸 보고 결단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따로 시간을 내서 운동을 하는 게 쉬운 일이 아니어서 자전거 출퇴근을 감행했다. 그게 벌써 4년 전 이야기다.

결코 수월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운동 한 번 제대로 해본 적이 없어 그냥 서 있는 것도 힘든 판에 자전거라니. 그걸 타고 동네 고갯길을 오르내리는 게 보통 고역이 아니었다. 게다가 자전거를 타고 도로 위에 올라서면 마치 사자 우리에라도 들어간 것처럼 무시무시했다. 자칫 잘못하면 사고를 당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래도 그때 바로 다음날로 자전거 출퇴근을 때려치우지 않은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자전거 출퇴근을 그만둘 수 없었던 데도 다 이유가 있다. 사실은 도로 위에서 자동차들과 몸싸움을 벌이는 것보다 병원 문턱을 넘나드는 게 더 무서웠다. 운동을 싫어하는 사람들에게 꼭 한 번 권해보고 싶은 게 있다. 대장내시경이다. 그거 한 번 받아보고 나면, 어떻게 해서든 병원에 가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는 방법을 궁리하지 않을 수 없게 된다. 너 이래도 운동하지 않을래, 뭐 그런 경험을 하게 된다는 얘기다. 이런 얘기를 하면 대장내시경이 어때서, 하고 궁금해 하는 분들 있다. 알고 가면 재미없다. 대장 비우고, 머릿속까지 말끔히 비우고 가야 하늘이 두 쪽이 나는 충격을 받을 수 있다.

그렇게 해서 평일 자전거출퇴근에 이어, 주말엔 자전거여행을 떠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하루도 힘들었다. 한강 자전거도로를 타고 40㎞를 달리는 데 하루 8시간이 걸렸다. 해질 무렵 파김치가 돼서 다리를 질질 끌며 돌아왔다. 그날의 여행이 그저 몸이 고된 걸로만 끝났다면, 더 이상 자전거를 타고 여행을 떠나야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날 처음 시도한 자전거여행으로 세상엔 내가 알지 못하는 또 다른 세상이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내 인생 처음 맛보는 황홀한 경험이었다.

2년 전 1㎞도 걷지 않았는데, 15일 동안 1700여㎞ 달렸다

뚝섬
 뚝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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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전거 출퇴근을 시작한 지 10개월 만에 장거리여행을 떠났다. 5일 일정으로 한반도 육지 최남단 땅끝까지 내려가는 여행이었다. 이 여행은 실패로 끝났다. 장거리 여행을 감당하기에는 체력이 너무 약했고, 사전 지식과 준비도 부족했다. 결국 3일이 지나, 무릎 통증으로 더 이상 페달을 밟을 수 없는 지경이 돼서 다시 집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길에 있는 동안엔 참 행복했다. 그 단 3일만으로도 나는 내 평생 결코 잊을 수 없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돌아왔다.

그러고 나서 다시 1년이 지난 날, 국도를 따라 도는 전국일주 여행에 나섰다. 1년 전에 실패로 끝났던 일로 해서, 과연 전국일주 여행이 가능할지 많은 걱정과 우려가 있었다. 그런데도 땅끝을 찍고, 부산을 돌아, 강릉을 거쳐 대관령을 넘어서 무사히 집으로 돌아왔다. 꼬박 15일이 걸렸다. 그때 달린 거리가 총 1700여㎞다. 하루 100㎞ 이상을 달렸다. 결과를 보고, 나 자신도 무척 놀랐다. 2년 전의 나는 1㎞도 걸어 다니지 않았다. 그런 인간이 2년이 지나 15일 동안 1700여㎞를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닌 게 대수롭게 여길 일은 아니었다. 내겐 엄청나게 큰 변화였다.

그 후로는 우리나라 해안선을 따라 도는 자전거 전국일주를 꿈꿨다. 해안선 여행은 우리나라를 한 바퀴 도는 자전거 전국일주 코스 중에 최장거리 코스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상 더 긴 거리는 없다. 그리고 해안선 여행은 그 어떤 여행길하고도 비교할 수 없이 빼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자전거여행을 하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 번 도전해보고 싶은 여행이다. 하지만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우리나라 해안선 길이는 총 5620km다. 그나마 1910년 이후 간척과 도로 공사 등으로 일부 해안선을 곧게 편 결과 1900㎞나 줄어든 거리다. 이 해안선을 자전거가 갈 수 있는 길로만 따로 재어보자면 약 4000㎞가 나온다. '리'로 환산하면 1만 리나 되는 거리다. 이것도 순수하게 해안선에서 가장 가까운 길을 달렸을 때의 얘기지, 해안선 주변의 마을이나 관광지를 이리저리 돌아다닐 때는 그 거리가 예상 밖으로 더 길게 늘어날 수 있다.

뚝섬 유원지 풍경
 뚝섬 유원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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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이면 쉰, 늦지 않았다 고로 달린다

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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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이 아무리 굴뚝같아도 선뜻 마음을 정하기 힘든 여행이다. 하루 100㎞씩 쉬지 않고 달린다고 해도 꽉 찬 40일. 자전거여행 중에 발생하는 이러저러한 변수를 고려하면, 인간이 쇳덩어리가 아닌 이상 적어도 50일 이상은 걸리는 여행이다. 사실 시간을 내는 것조차 쉽지가 않다. 이런 저런 조건을 다 따지자면 막상 떠나기 어렵다.

내 나이 이제 내년이면 쉰이다. 늙어가는 걸 문자 그대로 피부로 느낀다. 더 늦기 전에 떠난다. 내 나이 스무 살 때 자전거여행을 시작했다면, 지금쯤은 세계여행을 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하지만 지금도 늦지 않았다. 다행히 자전거여행 경험이 있어 온갖 장비를 새로 구비하는 것 외에, 두 달간 지속되는 여행을 준비하는 데 특별히 큰 어려움을 겪지는 않았다.

앞으로 길 위에서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나 자신도 잘 모른다. 다양한 사건들이 기다리고 있을 게 분명하다. 자전거여행에는 여러 가지 위험한 요소들이 도사리고 있다.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과 맞닥뜨리게 되어 있다.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잘 헤쳐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믿지만, 여행을 앞둔 오늘 밤 살짝 긴장이 되는 것 또한 숨기기 어렵다.

여행기는 가능하면 그날 있었던 일은 바로 그날 밤 정리해서 올릴 예정이다. 도착 지점에서 전원을 공급받기 어렵다거나, 너무 늦은 밤 여행을 마치게 돼서 글을 쓰기 힘든 형편이 아니라면, 큰 무리가 없을 듯싶다.

완주가 목표의 전부는 아니다. 완주와 더불어 여행지에서 마주치게 되는 풍경과 여행 중에 발생하는 다양한 사건들을 이 글을 읽는 독자들에게 생생하게 전달하는 것 역시 중요한 목표 중에 하나다. 같이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마음으로 끝까지 죽 지켜봐 주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현재의 내 몸무게 66kg, 짐은 줄이고 줄여서 총 15kg이다. 짐에는 노트북, 카메라, 텐트 등이 들어 있다. 텐트를 가져가기는 하지만, 그것은 일종의 비상용이고 실제 잠자리로는 주로 민박이나 여관을 이용할 예정이다. 옷가지는 여름과 가을 옷 위주로 준비했다. 11월 이후 기온이 급격히 떨어지는 게 조금 걱정이다. 내 나름 대책이 전혀 없는 건 아니다. 내일(15일)은 서울 길음동 집을 떠나 강화도로 들어선 다음 해가 지기 전 적당한 거리에 위치해 있는 마을에서 1박을 할 예정이다.


태그:#자전거여행, #한강, #뚝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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