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명의 시민기자가 개의 기사를 작성하였습니다. 시민기자 전환하기
구룡포의 아침
 구룡포의 아침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구룡포에서 머문 둘째날(4일) 이른 새벽, 차를 타고 포항시 북구의 내연산에 다녀왔습니다. 6시가 채 안 돼 숙소를 나섰지만 버스를 두 번 갈아타고 산 앞까지 가는 데만 두 시간이 넘게 걸려 등반을 시작한 건 9시가 가까워서였습니다.

이른 아침 위판장에서 갓 잡은 생선을 놓고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이른 아침 위판장에서 갓 잡은 생선을 놓고 경매를 진행하고 있다.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출발 전 구룡포 위판장에선 갓 잡은 생선을 놓고 경매가 한창이었는데 진지한 상인들 틈바구니에서 얼른 사진 한 장을 찍고 물러났습니다. 장대한 바다를 삶의 터전 삼고 매일같이 고되지만 활기찬 아침을 여는 서민들 가운데 '팔자좋은' 여행자 행색으로 서 있으려니 적잖이 송구스러워서였습니다.

내연산 가는 길
 내연산 가는 길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송라면 중산리에 위치한 내연산은 연산폭포, 상생폭포, 관음폭포, 은폭포 등 12폭포와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아찔한 산세가 절경을 이루고, 그 초입에 포항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보경사가 있습니다. 산길엔 사람들 편하라고 나무계단을 설치해뒀는데, 배려가 과해 흙길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운동화가 아닌 샌들 차림에, 심지어 미니스커트를 입은 여자 등산객들도 종종 보였습니다.     

내연산 관음폭포와 그 위로 연산폭포 가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내연산 관음폭포와 그 위로 연산폭포 가는 구름다리가 보인다.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주말을 맞아 막바지 물놀이를 즐기려는 가족 단위나 산악회 소속 사람들이 많이들 왔습니다. 이날 기상청에선 34도를 웃도는 폭염을 예고했지만 푸른 숲이 태양을 가리고 걷는 내내 수려한 장관을 뽐내며 펼쳐지는 계곡 덕분에 더위를 느낄 틈이 없었습니다.

시원스레 흘러 내리는 연산폭포
 시원스레 흘러 내리는 연산폭포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산행한 지 1시간쯤 됐을까, 곧 부서질 듯한 층벽 아래 기이하게 뚫린 구멍 사이로 관음폭포가 나타났습니다. 이곳에서 전혀 뜻하지 않게 벌거벗은 남자의 봉긋한 민궁둥이를 봤는데, 본인은 온몸으로 자연을 즐기고 싶었겠으나 함께 산 오르는 이들도 배려했음 싶었습니다.

피차 민망한 분위기에 좌측 구름다리를 타고 연산폭포로 올라갔습니다. 거대 암석들이 사방을 감싼 아늑한 자리에 또 한 줄기 폭포가 시원스레 흘렀습니다. 배낭을 내려놓고 곁에 가서 앉으니 살갗이 오돌도돌해질 만큼 서늘했습니다. 산속 도량 보현암에서 채워온 감로수에 출발 전 준비한 '밤양갱'을 먹으니 맛이 기가 막혔습니다. 

그런데 이 아름다운 풍경 안에 어김없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사람의 흔적이 보였습니다. 그 하나는 폭포수 주변 암석에 철제 난간과 대못을 박은 흔적이었습니다. 안전사고를 방지할 목적으로 설치했다가 철거한 모양인데 그 상처가 과거 일본인들이 우리 산 곳곳에 심어 넣은 커다란 정과 닮았습니다.

또다른 하나는 물 위에 떠 있는 쓰레기였습니다. 누군가 목을 축이고 버린 생수병이었는데, 이런 종류의 무심함을 저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습니다. 자연 경관 앞에서 감탄을 하면서도 돌아설 땐 보란 듯이 쓰레기를 던져버리고 가는 그 마음을 어찌 해석해야 할까요.

연산폭포 주변 바위에 철제난간을 박은 흔적들
 연산폭포 주변 바위에 철제난간을 박은 흔적들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언짢은 마음으로 구름다리를 빠져나오는데 그 난간 위에 누군가 또 생수병 하나를 버리고 갔습니다. 얌전히 세워둔 모양이 얄밉기 그지 없었습니다. 이때부터 저 먹을 과자 껍질 버리려 들고온 비닐봉지를 배낭에 매달고 보이는 족족 쓰레기를 주웠습니다. 좋은 공기 마시고 좋은 구경 하면서 이 정도 수고를 마다하겠습니까.

하지만 쓰레기들로 비닐봉지가 불룩해질수록 씁쓸한 맘도 커졌습니다. 어쩌다 한 번 와서 남이 버린 쓰레기 치우는 게 억울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을 생명으로 여긴다면 귀하고 고마워서라도 이러지 않을 텐데 그저 즐기고 가면 그만인 놀이터로 생각한다 싶으니 근심이 깊어졌습니다.

유조선이 침몰하거나 독극물과 다름없는 오폐수를 무단투기하는 사례 앞에선 자연을 걱정하는 척 하면서 자기 앉은 자리 정리정돈 하는 근본적인 도리엔 무심하니 답답할 노릇입니다.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들
 사람들이 버리고 간 각종 쓰레기들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산 오른 지 두 시간을 막 넘겼을 때 은폭포 부근 흔들다리에 도착했습니다. 그런데 발을 딛는 순간 아래로 크게 출렁여서 깜짝 놀랐습니다. 자세히 보니 다리 시작 부분에 이음새가 떨어져 위태로운 상황이었습니다. 양쪽의 볼트가 모두 빠져 세로로 연결된 철제선만으로 다리가 지탱되고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어떤 아주머니가 다리 한가운데서 통통 뛰는 것을 보고 얼른 말렸습니다.

다리 상태를 카메라에 담고 이곳에서 하산을 했습니다. 여러가지 이유로 기분이 유쾌하지 않은 탓도 있었고, 그보다 연산폭포 이후부터 급경사와 낙석 위험구간이 많아 안전장비 없이 산을 오르기가 조심스러웠습니다.

산 아래로 내려와 관리사무소 직원에 위험한 다리 상황을 전했더니 바로 10여 일 전에 접합공사를 새로 했다 했습니다. 얘길 듣자하니 여러 번 반복되는 상황에 직원도 짜증이 나는 듯했습니다. 어쨌든 곧 조치를 취하겠단 답변을 듣고 왔는데, 하루에 몇 백 명이 오가는 곳이니 만큼 하루빨리 조치를 취해야겠습니다.

은폭포 지나 얼마지 않아 만난 흔들다리. 연결부분의 볼트가 빠져 발을 딛는 순간 아래로 심하게 출렁였다.
 은폭포 지나 얼마지 않아 만난 흔들다리. 연결부분의 볼트가 빠져 발을 딛는 순간 아래로 심하게 출렁였다.
ⓒ 이명주

관련사진보기


이렇게 해서 네 시간여 산행을 마치고 구룡포로 돌아왔습니다. 모처럼만의 산행이었던지라 차타고 오는 내내 정신없이 졸았습니다. 그리고 인정많은 주인 할머니가 있는 숙소로 돌아오니 집 만큼은 아니더라도 푸근하니 좋습니다. 오늘은 가볍게 맥주 한잔 하고 일찍 쉬어야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네이버와 다음 개인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살아보니 삶은 정말 여행과 같네요. 신비롭고 멋진 고양이 친구와 세 계절에 걸쳐 여행을 하고 지금은 다시 일상에서 여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바닷가 작은 집을 얻어 게스트하우스를 열고 이따금씩 찾아오는 멋진 '영감'과 여행자들을 반깁니다.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