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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종대가람, 장흥 보림사.
 선종대가람, 장흥 보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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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남 장흥으로 향한다. 천년고찰 보림사가 있는 가지산을 오르려 한다. 입추가 지났지만 아직도 여름 불볕더위는 여전히 위력적이다. 남해안을 가로지르는 국도 2호선을 따라간다. 보성을 지나 장동면으로 빠져 나와 839번 지방도를 따라 들어간다. 길은 삼거리를 만나고 보림사 5㎞를 알려준다.

장흥댐 상류를 구불구불 따라가다 보면 보림사 일주문이 나온다. 일주문을 지나 동부도전에서 산행을 시작한다. 가지산은 510m 정도로 높지 않은 산이다. 날씨가 더운 여름에 가볍게 오르기 좋을 것 같아 선택한 산이다.

보물 제155호로 지정된 동부도와 부도전의 부도들
 보물 제155호로 지정된 동부도와 부도전의 부도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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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길을 오르기 전에 몇 기의 부도가 모여 있는 부도전을 구경한다. 팔각원당형 부도들이 상륜부를 그대로 남긴 채 한 여름 햇살을 받고 있다. 보물 155호로 지정된 동부도는 크기가 3.6m로 상당히 크다. 다소 조형미는 떨어지지만 상륜부가 그대로 살아있어 더욱 높게 보인다.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비자나무림

산길로 들어선다. 보림사 뒤편으로 400년생 비자나무 600여 그루가 자생하는 비자나무 군락지가 있다. 비자나무림 사이로 1.2㎞ 비자림 숲길이 있는데, 이 숲은 '제10회 아름다운 숲 전국대회' '천년의 숲'부분에서 어울림상을 수상했다. 비자나무는 침엽수로 정원수로 많이 심는 주목과 닮았다. 서늘한 기운이 나오는 비자나무 숲길은 여름과 잘 어울린다.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장흥 보림사 비자나무림
 아름다운 숲으로 선정된 장흥 보림사 비자나무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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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망이 좋은 곳에 우뚝 선 바위. 망원석
 전망이 좋은 곳에 우뚝 선 바위. 망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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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자나무 숲 갈림길에서 정상까지 1.1㎞를 알려준다. 낮은 산이지만 숲이 우거져서 산길은 햇볕을 가린다. 쉬엄쉬엄 올라간다. 습기를 잔뜩 머금은 숲길은 땀이 솟아난다. 전망 좋은 곳에 바위가 하늘을 보고 섰다. 예부터 이곳에서 멀리 내려다본다고 해서 망원석(望遠石)이라고 불린 바위다. 바위에 앉아 땀을 식히고 간다.

산길은 정상을 500m 더 가라고 알려주더니 가파르게 올라간다. 땀범벅에 거친 숨을 쉬면서 올라가다보니 하늘로 뾰족하게 선 커다란 바위가 보인다. 정상이다. 맞은편 산에서부터 바람이 시원하게 불어온다. 경치가 좋다. 빙 둘러 산들이 넘실거리며 흘러간다.

가지산 정상. 510m로 높은 산은 아니라도 시원한 경치를 보여준다.
 가지산 정상. 510m로 높은 산은 아니라도 시원한 경치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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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 표지석은 바위사이에 작게 세웠다. 정상 경관을 훼손하지 않아서 좋다. 대부분 산들이 정상에 커다란 표지석을 세워놓는데, 그러면 정상보다 표지석이 높은 경우도 있다. 굴러온 돌이 정상이 되는 경우다. 내려가는 길은 반대편으로 잡았다. 보림사까지 1.7㎞.

선종 최초 사찰인 가지산 보림사

보림사는 산속에 있지만 계곡 바로 옆 평평한 곳에 있어 반듯한 담이 절집을 나누고 있다. 마치 남원 실상사와 같은 분위기다. 절집으로 들어서는 문에는 가지산보림사(迦智山寶林寺)라는 세로로 쓴 현판을 달고, 문 이름은 외부에서 보호한다는 외호문(外護門)이라고 작게 달았다. 그 위로 선종대가람(禪宗大伽藍)이라고 써 놓았다.

보림사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 절집 대문인 외호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있다.
 보림사 절집으로 들어가는 길. 절집 대문인 외호문을 지나면 천왕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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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지산 보림사는 너무나 익숙한 절집이다. 학창시절 국사 시간에 꼭 외워야 하는 절집이었다. 신라 말기에 개창한 선종의 아홉 개 산문인 선종9산. 시험문제에도 잘 나온다. 선종9산이 아닌 것은? 요즘은 국사를 안 배워도 된다니….

보림사는 우리나라에 선종이 가장 먼저 들어온 절이다. 서기 759년 원표대덕(元表大德)이 터를 잡아 가지사라 하다가, 체징선사(體澄禪師, 804-880)가 가지산문의 선풍을 크게 떨친 곳이다. 헌강왕은 사호(寺號)를 보림사로 함과 동시에 동국 선종 종찰(東國禪宗宗刹)로 인정해 주었다. 그러나 한국전쟁 때 외호문과 천왕문을 남기고 모두 불타버렸다. 현재의 절집은 1982년부터 복원하기 시작하여 옛 모습을 찾아가고 있다.

나무로 깎은 사천왕상, 돌을 다듬은 삼층석탑, 그리고 철로 녹인 비로자나불

외호문 지나 천왕문이 있다. 천왕문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사천왕상이 모셔져 있다. 임진왜란 전인 중종 10년(1515년)에 나무로 깎아 만든 사천왕상으로 보물 1251호로 지정되었다. 대부분 절에는 소조 사천왕상인데 비해 나무로 깎아서인지 사천왕상의 얼굴이 온화하게 보인다.

국보 제117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44호인 보림사 삼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51호인 보림사 목조 사천왕상.
 국보 제117호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국보 제44호인 보림사 삼층석탑 및 석등, 보물 제1251호인 보림사 목조 사천왕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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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림사 삼층석탑 상륜부. 삼층석탑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보주마다 구름문양으로 장식을 해서 아름다움을 더했다.
 보림사 삼층석탑 상륜부. 삼층석탑 원형이 그대로 남아있으며, 보주마다 구름문양으로 장식을 해서 아름다움을 더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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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왕문을 지나면 국보 제44호로 지정된 너무나 아름다운 삼층석탑이 두기 서있다. 두 석탑 사이에 석등도 있다. 신라 경문왕 10년(870)에 세워진 삼층석탑은 규모가 크지 않지만 상륜부가 그대로 남아있을 뿐만 아니라, 훼손된 부분이 거의 없어 삼층석탑의 원형을 그대로 보여준다. 거기다 상륜부의 조각된 구름문양은 단순하면서도 살아서 꿈틀거리는 느낌이 들 정도다.

삼층석탑 바로 뒤로 대적광전이 있다. 대적광전에는 철로 만든 부처님을 모셨다. 이 철불은 헌강왕 2년(858년)에 조성된 불상으로 국보 제117호로 지정된 철조비로자나불이다. 부처님의 까만 모습에서 엄숙한 분위기가 배어나온다.

절은 커다란 마당을 사이에 두고 2층 지붕을 한 대웅전이 있다. 건물은 크고 웅장하지만 내부에 모셔진 부처님은 건물규모에 비해 작다. 아마 대적광전이 따로 있어 크게 만들 필요가 없었을 지도 모르겠다.

부도탑 몸돌에 새겨진 부조는 살아서 움직이는 듯

대웅전 뒤로 또 하나의 부도가 보인다. 계단을 올라가면 탑비가 있다. 보물 158호로 지정된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다. 보조(普照)선사는 선종 최초의 사찰인 보림사를 개창한 체징(體澄)에게 헌강왕이 내린 시호다. 탑비에 새겨진 한자 글씨는 천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 선명하다. 섬세하게 쓰인 작은 글씨는 나름 아름다움을 준다.

보물 제158호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 보물 제157호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 보조선사는 선종9산을 최초로 개창한 체징선사의 시호다.
 보물 제158호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비, 보물 제157호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 보조선사는 선종9산을 최초로 개창한 체징선사의 시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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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조선사창성탑에 새겨진 신장상과 구름문양. 섬세한 조각솜씨가 그대로 살아있다.
 보조선사창성탑에 새겨진 신장상과 구름문양. 섬세한 조각솜씨가 그대로 살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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탑비 위에는 부도가 서있다. 보물 157호로 지정된 보림사 보조선사창성탑이다. 부도탑은 여기저기 깨지고 기단부는 훼손이 심하다. 옥개석의 비례미도 조금 덜하지만, 몸돌과 기단석에 새겨진 조각은 아름다움을 그대로 남기고 있다.

기단부 구름문양은 조각을 깊게 하여 힘찬 느낌을 주며, 팔각형 기단부의 배흘림 부드러운 곡선은 석공의 노련한 솜씨가 잔뜩 묻어난다. 몸돌에 양각으로 새긴 신장상과 문고리 문양은 너무나 정교해서 가벼운 전율이 느껴질 정도다.

예전에는 엄청난 규모의 절집이었지만 지금은 불타버린 절집에 커다란 건물만 복원해 놓았다. 커다란 마당이 조금 썰렁한 느낌이다. 절을 뒤로한다. 탑과 부도의 아름다움이 쉽게 가시지 않는다.

보림사 경내에 핀 루드베키아.
 보림사 경내에 핀 루드베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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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 바로 앞으로 흐르는 봉덕계곡으로 내려간다. 발목정도 깊이로 흘러가는 계곡에 발을 담근다. 산행피로가 물에 흘러내린다. 해는 서산으로 기우는데 더위는 아직 가시지 않는다. 여름은 끝나가지만 아직 여름을 보내지 않은 사람들이 물놀이를 즐기고 있다. 더운 여름에 짜증도 많이 났지만 막상 여름이 끝나간다고 생각하니 아쉬워지려고 한다.

덧붙이는 글 | 8월 22일 풍경입니다.



태그:#보림사, #가지산, #삼층석탑, #장흥, #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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