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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물이 흐르는 하천을 만나다

사막에 설치된 풍력발전용 풍차
 사막에 설치된 풍력발전용 풍차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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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르판에서 우루무치까지는 국도 외에 고속도로가 나 있다. 그래서 도로 상태가 더 좋은 편이다. 도로가 좋으니까 우리는 바깥의 경치에 더 주목하게 된다. 가면서 그 너른 들판과 산에서 신기루를 보기도 하고, 무수하게 설치된 풍력발전용 풍차를 보기도 한다. 또 우루무치 시정구(市政區)에 들어가면서부터는, 정말 오랜만에 물이 흐르는 하천을 따라 도로가 나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이 하천이 천산에서 흘러내리는 흑구(黑溝)와 고애자구(高崖子溝)다. 흑구는 흙탕물이 흘러 그런 이름이 붙었고, 고애자구는 높은 절벽 사이를 물이 흘러 그런 이름이 붙었다. 이처럼 하천에 물이 흐르니 그 주변에 자연스럽게 풀이 자라고 있다. 우루무치 방향으로 갈수록 초원이 나타나며, 그곳에서는 농사와 목축이 이루어지고 있었다.

도로와 하천 그리고 산
 도로와 하천 그리고 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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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홍산취자(紅山嘴子) 근방에 이르자 왼쪽으로 큰 호수가 나타난다. 소금호수(鹽湖)다. 길에서 보기는 호수가 아니라 완전 하얀 소금밭이다. 이곳에는 소금을 이용한 화학공업이 발달해서인지, 공장들이 여럿 보인다. 여기를 지나자 다시 초원과 목장들이 이어진다. 한참을 가다 우리 버스는 오랍박(烏拉泊) 근방에서 남쪽으로 이어지는 지방도로 나온다. 이 길은 오십성(烏什城)까지 거의 직선으로 이어진다.

다시 우루무치 근교의 남산풍경구로

오십성에서 우리는 우회전해 탁리향(托里鄕)으로 들어간다. 그런데 이곳에서 잠시 검문을 받는다. 이 지역에 군용 비행장이 있어 통행을 제한한다고 한다. 한국 관광객이라고 하니 통과시켜 준다. 차는 수서구진(水西溝鎭)을 지나 등초구까지 간다. 이 지역 역시 하천이 흐르기 때문에 농사가 가능하다. 밭에 밀과 해바라기가 심어져 있다. 특히 해바라기의 노란색이 뜨거운 태양을 받아 더욱 빛난다.

남산 가는 길의 해바라기
 남산 가는 길의 해바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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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해바라기만 보면, 함형수 시인이 쓴 '해바라기의 비명(碑銘)'이 생각난다. 이 시에는 밀밭 대신 보리밭이 나온다.

나의 무덤 앞에는
그 차가운 빗(碑)돌을 세우지 말라.
나의 무덤 주위에는
그 노오란 해바라기를 심어 달라.

그리고 해바라기의 긴 줄거리 사이로
끝없는 보리밭을 보여 달라.
노오란 해바라기는
늘 태양같이 태양같이 하던
화려한 나의 사랑이라고 생각하라.

푸른 보리밭 사이로
하늘을 쏘는 노고지리가 있거든
아직도 날아오르는
나의 꿈이라고 생각하라.

남산 목장이 좀 더 가까워지니 유채꽃도 보인다. 유채꽃 역시 노란색이다. 그러고 보니 이곳의 꽃들은 우리보다는 조금 늦게 피는 것 같다. 유채꽃밭을 지나 농가 식당에 들어가니 정원을 잘 꾸며놓았다. 이곳의 농가는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영업을 할 수 있다. 그것은 중국정부가 소수민족인 카자크족이 경제적으로 좀 더 나은 삶을 누릴 수 있도록 배려한 조치라고 한다.

양잡기 1
 양잡기 1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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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잡기 2
 양잡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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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잡기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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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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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잡기 4
 양잡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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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이곳 농가식당에서 양 잡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껍질을 완전히 벗긴 양을 갈고리에 매달아 걸고는 부위별로 잘라내는 것이다. 앞다리를 자르고, 몸통의 갈비뼈를 잘라낸다. 그리고는 안에 들어있는 간과 염통 등을 꺼내는 것 같다. 이렇게 몸통을 해체하고는 마지막으로 뒷다리를 자른다. 어릴 때 명절날 돼지 잡는 것을 본 이후 수십 년 만에 보는 진풍경이다.

남산목장의 승마체험

점심을 먹고 찾아간 곳은 남산목장이다. 산비탈에 초원이 있는데, 그곳에 말과 양이 보인다. 카자크족이 이곳에서 양도 키우고 말도 키우고 농사도 지으며 살아간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초원의 일부가 파헤쳐지고 있다. 산 쪽을 바라보니 산 위까지 리프트가 연결되어 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물어보니, 이곳이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사용된다고 한다. 목장이 관광지로 변하고 있는 것이다.

남산목장
 남산목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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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초원이 파헤쳐지는 것도 이곳에 골프장을 짓기 위해서란다. 그렇다면 이곳 남산풍경구가 관광지로 변해간다는 얘기다. 남산목장에서 양과 말이 뛰노는 날도 이제 얼마 남지 않은 것 같다. 중국이 변해가는 속도에 맞춰 신장지방도 변해가고, 산골 마을에도 변화의 바람이 몰아닥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요즘 골프장 광풍과 골프 바람이 상당히 진척되었는데, 중국의 서쪽 변방에서는 이제 시작인 모양이다.

그럼 이곳에 사는 카자크족은 어디로 가야 하는가? 일부는 스키장이나 골프장의 인부로 취직을 하겠지만, 상당수는 더 산속으로 쫓겨 가든지 아니면 도시로 떠나야 할 것이다. 그들이 지금까지 해오던 농업과 목축업은 서서히 사라져갈 것이다. 산업화 시대 이들 일차산업이 쇠퇴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인 듯 생각하다가도, 당하는 사람들을 보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말타기 1
 말타기 1
ⓒ 이상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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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이곳 남산 목장에서 승마체험을 하기로 되어 있다. 말들이 있는 곳으로 가, 각자 지정된 말 위에 오른다. 명사산에서 이미 낙타를 탄 경험이 있어서인지, 부담스러워 하는 사람이 없다. 말은 서서히 초원 쪽으로 움직인다. 말이 너무 빨리 달리지 않게만 하면 별 문제가 없다고 마부가 말한다. 그래서 나는 우스개 소리로 '만만디'를 외쳐 본다.

우리들을 태운 말이 산 쪽으로 조금 올라간다. 그곳에서 위쪽을 올려다보니 푸르고 높은 산이 펼쳐지고, 아래쪽을 내려다보니 광활한 평지가 펼쳐진다. 이곳이 신장위구르자치구에서 농사나 목축을 하기에는 가장 좋은 지역인 것 같다. 우리는 오랜만에 자연을 만끽하며 한가로운 시간을 갖는다. 자연녹지도 많고 덥지도 않으니 자연스럽게 기분이 좋아진다.

말타기 2
 말타기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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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돌아오는 길에는 마부가 짓궂게 장난을 한다. 여자들이 탄 말을 빨리 몰아 깜짝 놀라게 하는 것이다. 여자들이 비명을 지르면서도 즐거워한다. 사실 말을 탄 시간은 30분이 채 안 된다. 그렇지만 이 짧은 체험이 여행의 피로를 잊게 해 준다. 역시 여행에서는 문화유산과 자연유산 못지않게 체험이 중요하다. 말에서 내려 보니 양들은 초원에서 여전히 평화롭게 풀을 뜯고 있다.

파오에서의 차 한 잔

파오 내부
 파오 내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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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을 타고 난 우리는 잠깐 카자크족 파오엘 들른다. 파오 안으로 들어가니 카페트가 깔려있고, 벽도 붉은 계열의 화려한 천으로 꾸며져 있다. 우리는 신발을 벗고 거실로 올라가 상 앞에 앉는다. 상에는 간단하게 다과가 마련되어 있다. 그리고 차가 한 잔 놓여 있다. 양젖과 차를 섞은 것 같다. 차에 찻잎이 불순물처럼 들어있다.

사람들이 맛을 보더니 별로 내켜하지 않는다. 나에게는 그 차가 달지 않은 요구르트 같아 오히려 괜찮게 느껴진다. 농도도 낮아 차처럼 마시기에 좋은 편이다. 내가 차를 마시는 동안 사람들은 가이드를 통해 주인과 대화를 나눈다. 흰 모자를 쓴 주인 양반은 아주 선해 보인다. 원래 파오는 목축을 위해 만들어진 이동식 주택이다. 풀이 자라는 봄부터 가을까지 양을 몰고 다니며 생활하는 거주공간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살림공간이라기보다는 전시공간으로 보인다. 그래서 더 실감이 나지 않는지도 모른다.

파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파오를 배경으로 사진 한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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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일행은 파오 밖으로 나와 파란 천산의 하늘과 상쾌한 공기를 만끽한다. 그동안 둔황과 하미, 선선과 투르판에서 호흡했던 더운 공기와는 사뭇 차이가 난다. 또 초원에는 여러 가지 들꽃들이 만발해 우리의 눈길을 끈다. 라벤더처럼 보라색 꽃도 보이고, 홀씨 상태로 매달린 민들레꽃도 보인다. 우리가 보기에 유목민은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행복한 사람들 같다.

남산목장 체험을 마치고 우리는 우루무치 시내로 향한다. 우루무치, 일주일 만에 다시 그리로 돌아가는 것이다. 우루무치로 가는 길은 하천을 따라 나 있다. 가면서 보니 곳곳에 조각상들이 세워져 있다. 그런데 이들에서 이데올로기성이 느껴진다. 한족이 소수민족을 교화하기 위한 의도가 엿보인다.

그리고 시내가 가까워지면서 차량통행이 늘어난다. 270만 정도의 우루무치 인구는 조만간 300만에 이를 것으로 추정된다. 신장위구르자치구의 경제규모가 점점 커지기 때문이다. 신장지방의 경제적인 역동성은 이번 여행기간 곳곳에서 느낄 수 있었다. 자원의 보고 신장, 중앙아시아 진출의 교두보 우루무치, 그것이 아마 중국으로 하여금 이곳 신장위구르자치구를 포기하지 못하도록 하는지도 모른다.   


태그:#남산풍경구, #초원, #카자크족, #승마체험, #파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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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심분야는 문화입니다. 유럽의 문화와 예술, 국내외 여행기, 우리의 전통문화 등 기사를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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