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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심했다. 글쓰기 아마추어들이 작정하고 덤볐다. <오마이스쿨> '세상과 소통하는 생활․취재글쓰기(광주)'를 듣는 수강생들이 '지리산 둘레길' 취재에 나섰다. 둘레길은 지리산 둘레 300km를 걷는 도보길로, 현재는 남원시 주천에서 산청군 수철까지 70여km가 열려있다. 개통된 지 이제 갓 3년 됐지만, 올레길과 더불어 전국에 걷기 열풍을 주도하고 있다. 둘레길 기획 제 1부는 시범구간으로 지정돼 둘레길이 생긴 이래 가장 많은 변화를 겪은 매동마을에 돋보기를 들이댔고 2부에서는 매동~금계구간을 다뤘다.... 기자 주

이층집 민박 옥상에서 본 마을 모습이다. 매동마을은 울창한 송림을 뒤로 두르고 남쪽을 향해 포근하게 자리를 잡았다.
▲ 매동마을 전경 이층집 민박 옥상에서 본 마을 모습이다. 매동마을은 울창한 송림을 뒤로 두르고 남쪽을 향해 포근하게 자리를 잡았다.
ⓒ 윤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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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4월 지리산 둘레길 시범구간이 열렸다. 첫 걸음은 전북 남원시 산내면 대정리 매동마을에서 시작됐다. 매동은 50여 가구 110여 명이 사는 작은 마을이다. 매화를 닮았다 하여 지어진 마을 이름처럼 그때부터 매동은 매화꽃 피듯 큰 변화를 겪었다.

지리산 둘레길이 세인들에게 알려지면서 매동도 덩달아 유명해졌다. 정선태 녹색농촌체험마을 사무장은 "지리산 둘레길 시범구간이 열린 후 3년 동안 마을을 거쳐 간 방문객이 50만을 넘어섰다"고 말했다. 하루에 마을 주민의 네 배가 넘는 450명이 다녀간 셈이다.

"민박을 해서 마을이 말끔해졌어"

그냥 지나는 행인도 있었지만, 둘레꾼들의 마을 방문이 잦아지면서 민박도 자연스럽게 활성화됐다.

"하루에 많게는 100명이 넘는 외지인이 마음에서 잠을 잔당께. 지금은 마을에서 민박을 하지 않는 집이 십여 집이 안돼."

매동에서 민박을 하는 한 주민(59)이 어림잡아 내놓은 셈만 봐도 매동은 민박촌이 됐다. 마을이장 곽판개(64)씨 역시 "마을에는 팔십이 넘어 홀로 생활하는 할머니까지 민박을 할 수 있는 집은 모두 손님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골목마다 입구에 놓인 민박집 안내판
▲ 민박집 안내판 골목마다 입구에 놓인 민박집 안내판
ⓒ 윤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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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에 늘어가면서 마을환경에도 변화가 생겼다. 매동 입구와 마을 안 골목 골목에는 민박을 알리는 기둥이 있다. 기둥에는 위치에 따라 순서를 달리한 화살표가 넓은 활엽수 잎처럼 붙어있다. '고사리할머니', '지리산 친구들' 등 초록바탕에 검정색 필기체로 민박집명이 손님들을 정감있게 반긴다. 그 아랫줄에는 주인 이름과 전화번호가 빨간 단풍잎과 함께 적혀 있다. 집 앞에는 민박을 알리는 산 모양의 문패가 걸려있다. 방문객들이 원하는 민박집을 쉽게 찾도록 설치한 안내판이다. 안내기둥과 안내판이 만들어지면서 매동은 거대한 민박촌의 면모를 곁으로 드러냈다.

매동마을 민박집은 통상 살던 집을 활용했다. 그러나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었다. 올해 민박을 시작한 한 주민 역시 시설 및 설치기준을 갖추기 위해서 자그마한 투자를 했다.

"각 방마다 소화기를 비치하고 경보기를 설치했어. 하루 저녁 편안하게 주무시고 가시게끔 손을 봤어. 화장실도 좌변기를 양변기로 개조했지."

소방안전기준을 맞춘 덕에 남원시로부터 영업신고증도 교부 받았다.

새로 지은 민박집도 몇 채 눈에 띈다. 마을 뒷길에 오르면 조립식 주택 5채가 눈에 띈다. 감나무와 대나무 사이로 밝은 황토색 벽면에 밤색 타일지붕을 한 건물들인데, 민박업을 위해 단장을 한 것이다. 

"마을 환경이 깨끗해지고. 스스로 청소도 하고 집수리를 해가지고. 말끔히 해서 살고. 민박이 없었으면 아직까지 뒤떨어져 있을 거여."

이장 곽판개씨는 이런 마을 변화를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매동의 외적인 변화는 둘레길이 열리기 이전부터 시작됐다. 매동마을은 2005년에 녹색농촌체험마을을 유치하고 마을에 목기체험관을 설치했다. 체험관을 찾는 방문객의 편의를 위해 마을공동기금 3천만 원을 마련해 마을 논 300여 평을 매입하고 아스콘 포장의 주차장도 설치했다. 마을 입구에 직행버스 정류장을 설치한 것도 그 무렵이었다. 마을 대표들이 인근의 일성콘도에 드는 1년 손님의 월별이용 현황을 파악한 자료로 설득해 가능해진 일이었다.

이런 노력은 둘레길이 열릴 것을 예상하지 못한 채 진행됐지만, 전 이장을 맡았던 이길춘(67)씨는 그런 마을의 변화가 둘레길을 불러왔다고 말했다.

"주차장이 있었기 때문에 둘레길이 생긴 거여. 시범코스로 해 가지고. 차를 가져다 놔야 사람들이 갈 거 아녀. 그리고 직행버스가 서지니까 교통이 좋고. 그런 조건에 매동이 맞춤이었지."

분명한 것은 '준비된 매동'이 둘레길 시범구간으로 지정되면서 큰 변화를 겪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농산물과 된장 고추장까지 판매

매동마을 담벼락에는 어린이들이 벽화놀이를 통해 그린 그림이 있다.
▲ 마을 벽화 매동마을 담벼락에는 어린이들이 벽화놀이를 통해 그린 그림이 있다.
ⓒ 윤종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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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박집의 활성화는 매동 마을의 농가수입에도 변화를 가져왔다. 정선태 사무장은 "민박이 활성화되면서 일부 주민들은 년간 1천만 원에서 3천만 원까지 농외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말했다. 이 수입은 예전엔 없었던 '블루오션'이다. 민박으로 인한 소득은 손님의 수에 따라 차이가 있다. 태양초민박을 운영하는 구남이씨는 지난 4월에 민박을 시작했다.

"그동안 딸이 있어서 못 했어. 딸을 시집보내고 옆에 두 집을 설득해서 같이 시작했어. 그런데 아직까지 한 주도 안 쉬었어."

일주일에 방값으로 3만 원씩 두 팀을 받으면 12만 원이다. 음식 값은 4인 가족이라면, 한끼 5천 원씩 저녁과 아침 두 번을 제공했을 때 8만 원이다. 휴가철이 아닌데도 일주일에 20만 원의 수입이 가능하고, 월 80만 원의 소득을 얻는다. 계절 따라 차이는 있겠지만 이렇게 매주 방 2개에 손님을 받는다면 년 1천만원 수입이 가능하다는 계산이다.

매동의 농가수입변화에는 농산물 판매도 한몫했다. 매동은 전통적으로 고추, 감자, 고구마 등 밭농사를 주로 해왔다. 둘레길 이전에는 산과 밭에서 얻은 특산품을 가까운 인월장이나 농협을 통해 판매했다.

그러나 둘레길이 열리고 나서는 특산품 판매가 수월해졌다. 매동은 추진위원회를 통해 특산품을 공동판매한다. 마을 홈페이지에는 마시는 감식초, 곶감, 한봉꿀, 유정란, 청정쌀 등이 구매객의 연락을 기다린다. 고사리를 포함한 산채나물은 민박집이나 체험관에서도 판매한다. 이쯤되니 굳이 인월장까지 가지 않아도 대부분의 농산물을 팔 수 있다.

농산물은 또한 민박집에서 내놓은 식사에 주요 반찬으로도 둔갑한다. 민박 주인이 직접 담은 된장과 고추장을 맛본 둘레꾼들은 그 맛에 취해 음식을 사 가기도 한다. 이층집 민박이 단골이라는 김혜란씨 역시 "지난 2년 동안 김치와 산나물을 매동마을에서 구입해 먹었다"고 했다.

이층집 민박 주인 표철임씨는 "민박으로 매동에서 생산된 산채나물, 토종굴 같은 특산품이 다 판매된다고 봐야 한다"며 "마을 전체로 봤을 때 1년에 1억 이상의 소득이 더 늘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민박 손님을 받을수록 내가 젊어지더라고"

매동마을은 민박촌으로 탈바꿈하면서 마을 주민들은 새로운 관리 시스템을 구성했다. 관광버스로 찾아오는 단체손님과 인터넷 홈페이지로 신청하는 방문객의 효율적인 배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민박집 예약 창구를 일원화하고 있다. 매동마을은 민박예약을 녹색농촌체험마을추진위원회에서 인터넷 홈페이지(maedong.org)와 전화(063-636-6355)로 받는다. 추진위는 예약 받은 손님을 민박집에 차례대로 배정해준다. 이처럼 손님을 배정받은 민박집에서는 민박요금 10%와 특산품 판매대금 10%을 마을 공동기금으로 적립한다. 이런 노력을 이장 곽판개씨는 매동이 더욱 발전하기 위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한 달에 한 집 다섯 번 오는 것보다 다섯 집이 한 번 가도록 서로 도와가면 하자, 그렇게 운영하고 있어. 마을도 홍보하고 더 많은 소득을 얻기 위해 공동 화장실을 마련한다든가 하는 공동투자를 하려면 돈이 필요하니까 공동기금을 마련하지."

3년 남짓한 기간 동안 매동을 둘러싼 변화는 동네와 농산물 판매에만 있지 않았다. 주요한 것은 마을 사람들 스스로의 변화였다. 그 변화는 둘레꾼들과의 교감에서 비롯됐다.  

"다녀간 사람들이 고맙다고 사진을 찍어가지고는 보내고. 자나 깨나 전화를 해싸. 막걸리 생각나서 여름에 한번 꼭 갈끼라. 그래 오니라. 전화 한마디 고맙고 책임이 무겁더랑게."

"땅만 보고 신토불이로 살아왔다"는 구남이씨는 민박 손님들에게 고마움을 전했다. 거기엔 민박집을 운영하면서 겪는 육체적 고단함을 넘어서는 만족이 있었다. 

"민박 손님이 오시면 내가 한 번 더 씻고. 그러니까 손님을 받을수록 내가 젊어지더라고. 왜냐하면 멋진 양반들하고 대화를 하니까. 그래서 말도 할지도 모르는데 인자 새 말도 잘 혀. 내가 많이 변화가 됐어요. 우물 속에서 살다가 먼 거리를 보니까. 그래서 그렇게 만족이라."

매동 마을 역시 여느 농촌처럼 예순이 되어도 막내축에 들 만큼 노인 인구가 많은 동네다. 그 동네에 둘레꾼들이 머물면서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이다. 

둘레길 출발지의 이점, 차츰 사라져

둘레길은 이처럼 매동마을에 큰 변화를 주었지만 그 변화가 긍정적으로만 귀결되는 것은 아니다. 변화가 큰 만큼 해결해야 할 과제 또한 발생하고 있다.

그 중에 한 가지는 민박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자 마련한 예약 시스템에 있다. 마을 입장에서는 민박 손님을 한꺼번에 받아 민박집에 순차적으로 배정하면 좋지만, 이는 소비자 입장에서는 불만을 가질 만한 방법이다.

"오후 4시나 되면 찾아오는 손님을 배정하는데, 그 집이 손님 맘에 안 들면 안 잔다고 할 것 아냐. 돈 주고 잠서 어쩔 수없이 그 사람이 배당해 주는 데로 자야한다 그 말 아니요. 그래서 그것 때문에 불평불만이 많았지."

초기부터 민박을 운영한 한 주민의 말처럼 손님들에게 조용히 따라 달라고 하기엔 무리가 있어 보였다. 민박을 운영하는 집과 운영하지 않는 집간에도 이견이 발생하고 있다. 민박집을 운영하지 않는 한 주민은 민박으로 인한 피해를 호소했다.

"민박해 돈 벌어 가지고 저를 줍니까? 피해만 안 나게 해줘. 그럼 난 말 안해. 그리 안해요?"

민박을 하지 않는 주민들 가운데는 "집을 개조하기 힘들"어 그런 경우가 많기 때문에 이런 갈등은 하루 아침에 정리되기엔 쉽지 않아 보였다. 여기에 간혹 소음이나 하수배출, 쓰레기, 주차공간 문제가 확대되면 갈등이 커지기도 한다. 

매동마을이 해결해야 할 또다른 과제는 둘레길의 특성에서 비롯되는 문제다. 둘레길은 전북, 전남, 경남 3개도와 남원, 구례, 하동, 산청, 함양 5개 시군, 80여개 마을을 잇는 300여km 도보길이다. 현재 남원시 주천에서 산청군 수철까지 70여km가 열려 있지만, 이제 매동마을은 더 이상 둘레길의 시작이 아니다. 출발역이 아니라 간이역이 되었다. 그만큼 출발역으로 누렸던 '프리미엄'이 사라지고 있다. 

현재 열린 5개 구간만 해도 각 구간마다 산아래 마을에서 민박을 운영한다. 매동에서 20분 거리인 장항마을에도 10여 가정에서 민박을 운영한다. 둘레길이 모두 열린다면 80여개 마을 모든 곳에 민박집이 생기지 않는다고 장담하지 못한다.

이런 과제는 정선태 사무장을 포함한 매동마을 주민들 역시 잘 알고 있다.

"처음에 둘레길 찾아다닐 때는 민박이라는 것이 없었어요. 무조건 둘레길 하면 매동 1차. 전부 다 산행하시는 분들이 우리 마을을 찾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여기저기 민박집이 생겨 손님이 떨어질까 걱정입니다."

그러나 그 과제를 앞에 두면 고민은 현재형일 뿐이다. 그 답이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매동마을 주민들이 그동안 서로 돕고 살아온 전통의 힘을 자랑했다. 이장 곽판개씨는 "정월에는 동네 전주민이 나와서 어르신께 '합동세배'를 하고 초상 때는 마을주민이 상가집에서 일을 봐주는 '합동제'를 지낸다"고 말했다. 구남이씨는 "옆집에서 손님을 받으면 반찬을 무진장 갔다 줬어. 음식을 잘해서 손님도 먹고 나눠먹는 것이 제일 부러웠어"라며 나누고 살던 때를 떠올렸다. 

"막 한가족 같이 가고나면 서운하드만, 그러믄 인자 저 문 앞에 바래주고 있어 그러믄 그 양반이 뒤를 돌아보는 기라. 아이고 좋은 일 있것소. 잘 살고~ 잉."

둘레꾼들의 발길을 이끌었던 이런 정들이, 매동의 변화를 계속 유지시켜 줄 수 있을지, 지금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노력'은 매동마을 주민들의 몫이고 '선택'은 둘레꾼들이 한다는 점이다.


태그:#매동마을 변화, #지리산 둘레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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