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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외교에 심각한 적신호가 계속 켜지고 있다.

우선 중국과의 관계다. 천안함 사건에 대한 갈등이 구조화되면서 한중 수교 이후 유례없는 갈등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의 국제전문 자매지인 <환구시보>는 지난 7일자 1면 머리기사로 한국을 겨냥해 "서해 군사훈련으로 중국에 대한 압력을 망령(妄圖)되이 꾀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신문은 그 전날 사설에서도  한미연합훈련에 대해 "국제사회가 암흑가는 아니지만 원수는 언젠가는 서로 보복하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중국은 잠시 분노를 참겠지만 보복은 시간문제"라고 했다.

중국 관영언론 "보복은 시간문제" 공언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4일 오후 부임인사차 방문한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세종로 정부청사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4일 오후 부임인사차 방문한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를 세종로 정부청사 집무실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 통일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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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서 6월 말에도 중국 매체들은 한국을 일본과 함께 묶어 "경제적으로는 중국이라는 급행열차에 타고자 하면서도 군사적으로는 미국에 의존해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지만 이는 '두 개의 보험'을 든 것이라기보다는 '전략 분열증'과 같다"고 했었다. '한미동맹은 냉전시대 산물'이라는 중국의 공식적 입장이 그대로 반영돼 있다.

한국도 현인택 통일부 장관이 부임 인사를 온 장신썬 주한 중국대사에게 외교결례를 무릅쓰고 '책임있는 대국의 역할'을 강조했고, 언론들도 격한 비판을 쏟아냈다. 송민순 전 외교통상부 장관이 "국가 간의 정상적인 관계에서 보기 어려운, 막말 수준"이라고 평가할 정도다.

G2시대의 한 축인 중국은 우리에게 최대 무역시장이고 최대의 흑자를 주고 있는 나라다. 작년 대중 무역 의존도는 19.6%로 9.7%인 대미 무역의존도의 두 배이고, 수출 의존도는 23.8%로 미국과 일본을 합친 것보다 크다. '보복은 시간문제'라고 공언한 중국으로부터 몰아칠 후폭풍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게 됐다.

러시아, 천안함 조사보고서 미국과 중국에만 전달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선체구조관리 분과위원장인 박정수 해군 준장이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기자협회, PD협회, 전국언론노조 등 3개 언론단체 기자들이 천안함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을 살펴보고 있다.
 천안함 민군 합동조사단의 선체구조관리 분과위원장인 박정수 해군 준장이 29일 오후 경기도 평택 해군 제2함대 사령부에서 열린 천안함 조사결과 설명회에서 기자협회, PD협회, 전국언론노조 등 3개 언론단체 기자들이 천안함 함수와 함미의 절단면을 살펴보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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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안함 사건과 관련해 러시아로부터는 아예 배제를 당했다. 지난 5월 31일부터 6월 7일까지 한국을 방문해 천안함 침몰 사고를 직접 조사했던 러시아 조사단이 작성한 보고서를  전달받지 못한 것이다.

러시아는 천안함 조사결과 요약본을 이달 초 미국과 중국에만 통보하고, 정작 당사자인 우리 정부에는 주지 않았다. 대신 우리 정부는 미국으로부터 이 요약본을 전달받았다. 신각수 외교통상부 제1차관이 이 때문에 콘스탄틴 브누코프 주한 러시아 대사를 외교부로 불러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이미 러시아로부터 따돌림을 당한 상태에서의 뒷북치기였다.

서재정 존스홉킨스대 교수는 이런 상황을 "대북제재 공조를 꾀하려다 러시아의 자체조사를 인정하는 무리수를 뒀다"면서 "(정부가) 일개 국가에게 민군합조단의 조사결과를 부정할 수 있는 레버리지를 통째로 준 것"이라고 지적한다.

이 두 가지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북한을 천안함 공격 주체로 명시해 국제제재를 끌어내려던 계획이 무산된 것과 함께, 이명박 정부의 '천안함 외교 실패'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리비아, 현지 한국기업들까지 '간첩활동' 혐의 조사

리비아에서는 국가정보원 소속 주리비아 한국대사관 직원이 '스파이 혐의'로 '기피인물'(페르소나 논 그라타, persona non grata)이 돼 강제추방당하는 상황까지 벌어졌다. 정부는 이 직원이 북한 정보 및 방위산업 협력 정보 수집 활동을 했는데, 리비아 당국이 오해하고 있다고 하지만, 카다피 리비아 국가원수는 '단교'까지 언급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13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 '영일대군'의 귀환 특사 자격으로 리비아를 방문한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한나라당 이상득 의원이 13일 오후 인천공항으로 입국하고 있다.
ⓒ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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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황의 심각성은 리비아 정부가 현지 진출 한국기업들까지 '간첩활동 혐의'로 조사하고 있다는 데서도 드러난다. 사건 해결을 위해 특사로 리비아를 방문하고 돌아온 이상득 한나라당 의원은 <연합뉴스>에 이와 관련해 "조사과정에서 가볍게 '돈받은 것 없느냐' '대사관에서 너희들에게 정보수집하라는 지시가 있었느냐'는 등의 질의가 있었다고 하더라"고 전했다.

리비아는 우리 기업들이 지난해 31억불, 올해 상반기에 11억불의 건설사업을 수주했고, 현재 18개 국내업체가 199억불(23조 원) 규모의 공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지역에서 두 번째 수출시장으로 지난해 12억불의 수출고를 기록했다.

한국 외교가 이같은 '위기상황'에 빠진 데는, 미국 일변도 외교가 크게 영향을 끼쳤다. 중국과 러시아가 '천안함 사건'에서 보인 태도는 한국이 냉전시대의 '한미일' 3각동맹을 재건하려는 태도를 보인 것에 대한 거부감이 크게 작용했다.

리비아가 이번 사건에 격한 반응을 보이는 것도 한국대사관 정보담당 직원이 리비아의 최고지도자인 카다피 관련 정보를 입수해서 미국에 게 넘긴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랍 언론들은 북한 관련 정보를 수집했다는 한국 해명과 달리, 리비아 정부가 한국인 직원이 리비아 요인에 대한 정보 수집, 카다피 국가원수의 국제원조기구 조사, 카다피 원수의 아들이 운영하는 아랍권 내 조직에 대한 첩보 활동을 한 사실을 파악했다고 보도하고 있다.

리비아의 이같은 판단에는, 이명박 대통령 집권 이후 특히 천안함 사건 이후 한국이 미국과의 관계를 더욱 강화시켜왔던 상황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더욱이 아랍세계는 전통적으로 한국을 확실한 친미국가로 봐 왔고, 노무현 정부의 이라크와 아프간 파병, 이명박 정부의 아프간 재파병으로 이같은 생각이 더 강화돼 왔다.

국책연구기관의 한 관계자는 "대미외교만 잘 되면 된다는 현 정부의 외교기조의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라며 "한미합동훈련을 연말까지 계속하겠다고 하는 것에서도 보이듯이 정부가 이같은 기조를 더욱 강화하겠다는 점에서 중국과 러시아, 특히 중국이 어떻게 대응하고 나설지 우려된다"고 지적했다.


태그:#중국, #한미연합훈련, #러시아, #리비아, #한미동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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