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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월에서 단종의 숨결을 흠씬 느끼고 다시 제천이다. 제천 구경을 간단히 하고 숙박을 하기 위해서 돌아왔다. 제천역 관사에 숙박 예약을 해 놓은 것이다. '내일로플러스'라고, 내일로티켓을 특정 역에서 끊으면 받을 수 있는 혜택이 있는데 내가 발권한 단양역에서는 제천역과 단양역 관사에 각각 1박씩 묵을 수 있는 혜택을 제공하고 있다.

내일로 티켓이 인기를 끌면서 역마다 티켓 판매 경쟁이 붙어서, 직원용 숙소나 쓰지 않던 관사를 고쳐 내일로 여행객들이 쓸 수 있도록 하는 곳이 많다. 숙박 외에도 각 역별로 인근 관광지와 제휴한 할인쿠폰쿠폰이나 소정의 기념품 등을 제공하고 있어 내일로 유저들로서는 경비도 아끼고 새로운 추억을 만들 수 있는 기회가 된다. (각 역별 내일로플러스 혜택 - 네이버 기차여행카페 바이트레인 http://cafe.naver.com/hkct)

해도 적당히 졌고, 나는 미리 봐둔 31번 버스에 올라 의림지로 향했다.

우리나라 최고(最古) 수리시설 의림지의 야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라는 의림지의 야경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라는 의림지의 야경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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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진흥왕 때 우륵에 의해 처음 축조되었고, 고려시대 박의림 현감, 세종 때 정인지 등에 의해 여러 번 정비되어온 의림지. 김제의 벽골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 중 하나다. 예로부터 농업용수 공급에 중요한 역할을 했고 지금도 제천 지역 농경지에 물을 대주고 있는 고마운 녀석이다.

호반의 둘레는 1.8km로 30분 정도면 다 둘러볼 수 있다. 밤인데도 산책 나온 주민들이 많았다. 과거 농사에 중추적인 역할을 하던 의림지는 이제 지역 주민의 쉼터이자 명승지의 기능이 주가 되었다.

산책로를 따라 느리게 걸으며 하루의 여정을 마무리 해본다. 너무나 완벽한 날이었다는 생각에 흐뭇하다. 처음으로 혼자서 떠난 본격 전국일주 여행. 우리 사회에서는 도무지 혼자서 무언가를 하기가 힘들다. 혼자 밥 먹기, 혼자 영화보기, 혼자 여행가기… 음식 1인분은 팔지 않는 식당도 많고 티켓부스의 직원은 당연하다는 듯 "두 장이시죠?"라고 되묻는다.

특히나 젊은 여자에게는 제약이 심한데 "청승맞아 보인다, 외롭거나 심심하다, 뻘쭘하다, 위험하다" 등등의 이유 때문이다. 이러한 제약을 피하기 위해서, 내 주변만 해도 편의점 샌드위치로 허기를 달랠지언정 혼자서는 절대로 밥을 안 먹는 친구들이 많고, 단지 주말에 혼자서는 심심하다는 이유만으로 마음에도 없는 연애를 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청승맞고 쓸쓸한 여자로 보일 위험을 감수하고 휘적휘적 홀로 떠난 내 여정은 그 어떤 좋은 친구와 함께한 여행보다 즐거웠다. 나 자신과 세계가 온전하게 만날 수 있는 시간이었기 때문이다. 친구들과의 수다에 여념이 없다보면 때때로 잊고마는 나 자신은 물론 그리고 매 순간 거치는 장소와 사람들의 매력을 놓치지 않고 느낄 수 있었다.

특히 누구랑 같이 있을 때는 상대방의 기분을 신경쓰느라 온 정신을 뺏겨 버리는 나같은 A형으로서는 오로지 스스로에게만 집중할 수 있는 이런 시간이 몹시 필요하고 또 소중하다. 때론 외롭고 청승맞아 보일지라도.

혼자 떠나는 여행의 매력, 자신 그리고 세계와 마주치기

 제천 역전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만난 아주머니, 아저씨들.
 제천 역전시장에서 막걸리를 마시다 만난 아주머니, 아저씨들.
ⓒ 박솔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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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귀한 것은 동행이 없기 때문에 만날 수 있는 수많은 인연들이다. 의림지를 둘러보고 역전으로 되돌아 간 나는 미리 봐두었던 역전시장에 들어가 막걸리를 사먹었다. 열 시가 다 된 시간에도 문을 연 유일한 가게. 커다란 사발에 가득 담아 김치와 함께 주는 게 단돈 천 원이다.

자리에 앉자마자 옆자리의 아저씨가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말을 거신다. 학생이 혼자 여행 온 거냐며, 어디서 왔냐며… 아저씨들은 특히 내가 혼자 다니는 것이 궁금하신 모양이다. 혼자 다니는 젊은 여자는 늘 이렇게 주목을 받는다. 드시던 불고기를 한 접시 덜어 내게 나눠주신다.

"위험하게 왜 혼자 다녀?"
"혼자 다니는 게 더 좋을 수가 있어요. 친구들이랑 같이 다닐 때도 재밌지만, 그 재미가 웃고 떠드는 재미라면 혼자 다닐 때는 좀 더 구경을 제대로 할 수 있달까요?"
"그래도 혼자 다니면 외롭잖어~ 특히 밤에 잘 때. 안 그려?"
"아이구, 그래도 혼자 다니니까 이렇게 모르는 사람이랑 이야기도 하고 하는 거지. 친구랑 같이 있었음 둘이만 떠드느라 정신 없지, 새로운 인연을 만나겠어?"
"에이, 그래도 누구랑 같이 다니는게 낫어~"

연신 잔을 부딪혀가며 유쾌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확실히, 혼자 여행하는 재미와 자유란 이런 것이다. 맛난 칡막걸리에, 그리고 우연이 주선한 마주침에 조금씩 취기가 오른다. 그런데 옆자리 아저씨의 왕방울만한 눈동자가 물기를 머금고 나를 본다.

"그래도, 조심해서 다녀야 혀… 사고는 언제 어떻게 날지 모르는 거야.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건… 우리 아들이 한 서른쯤 됐을 건데, 살아 있었으면… 내 말 무슨 말인지 알겄지?"

갑작스레 슬픈 이야기에 뭐라 대꾸를 할지 몰라 "아…" 하고 멍한 표정만 지었다. 다행히도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곧 분위기를 무마시켜 주었고, 다시 재미난 이야기들이 시작되었다. 아저씨들은 젊은 시절 천안에서 서울까지랬나, 사박 오일 만이랬나 걸어갔던 무용담을 풀어놨고 가게 주인 할아버지까지 합세해 6·25 이후의 신산했던 삶을 말했다.

천 원짜리 잔술이나마 얻어 마시고 "조심해서 여행 잘 하라"는 당부를 뒤로한 채 숙소에 들었다. 나처럼 혼자 다니는 내일로 여행자 한 명과 같이 자게 됐다. 나는 술기운에 붉어진 얼굴로 신나게 여행 이야기를 떠들어댔다. 내일 영월에 간다는 그이에게 먼저 다녀온 소감을 전하고 며칠 전 다녀왔다는 순천은 어땠는지 들었다. 유럽의 유스호스텔이 이런 느낌이겠지. 혼자서 제멋대로 돌아다니다 들어와 정보를 나누고 외롭지 않게 밤을 함께하고… 흡족한 미소를 지으며 이내 깊은 잠에 빠졌다.

덧붙이는 글 | 더 많은 사진과 정보는 기자의 블로그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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