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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잠자리 이슬과 실잠자리

해질녘 논두렁을 걷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행복한 하루를 마감하고 있다는 이야깁니다. 물론, 매일 그곳에서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죄송한 말입니다만, 도시에서 살아가면서  꽉 막힌 도로 위에 갇혀있거나 복사열 지글거리는 거리에 서있거나, 낮 동안 달궈진 푹푹 찌는 집에서 열대야로 잠을 설치던 사람이 논두렁에 서있다면 분명 특별한 날일 것입니다.

 

보슬보슬 비가 내리던 날 저녁, 일액현상으로 이슬방울을 내어놓기 시작하는 시간에 나는 벼를 바라보며 논두렁을 걷고 있었습니다. 나에겐 특별한 날, 특별한 시간이었습니다.

 

푸른 빛을 더해가는 벼는 이파리마다 송글송글 이슬방울을 내어 놓기 시작했습니다.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이 아니라, 제 몸에 있는 물기를 스스로 배출하는 것입니다. 논에 물이 자작자작하면 바람이 없는 날 해질녘 쉽게 볼 수 있는 풍경입니다.

 

모기와 파리 그들 조차도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다

논에는 수많은 생명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스르르 물뱀이 사람의 걸음소리에 놀라 논으로 미끄러지듯 사라집니다. 그리고, 이파리를 꽉 붙잡고 모기와 파리도 앉아 있습니다. 세상에, 그곳에선 그것들조차도 아름답네요. 그들조차도 모델이 되네요.

 

그런데 이렇게 평화로운 논을 바라보면서도 마음이 편안하지는 못합니다. 우리는 쌀재고량이 남아 돌아 고민을 하고 있는데, 또다른 곳에서는 쌀이 없어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이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논두렁을 거닐다가 돌아와 사나흘 되었을 때에는 남아도는 쌀을 처리하는 방안으로 가축용 사료로 만들겠다는 정부의 방침이 보도되었습니다. 참으로 황당하더군요. 이게 과연 만물의 영장이라는 사람들인가 싶은 생각이 들더군요.

 

모기와 파리, 혐오곤충에 들어가지요. 그런데 아마도 사람만큼 자연에게 혐오스러운 존재는 또 있을까 싶습니다.

 

벼 초록의 논, 이슬방울

벼가 자라는 논, 저 논이 건강하게 존재할 수 있을 때 이 나라의 미래도 건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 논이 하나 둘 사라지게 되면 이 나라의 미래는 흔들릴 수밖에 없습니다. 지금이야 흥청망청 가축용 사료로 사용하겠다고들 하지만, 그렇게 쌀을 수입해 대고, 피땀 흘려 거둔 곡식을 가축용 사료로 만든다면 누가 신명나게 농사를 짓겠습니까?

 

농사를 짓고 싶어도 논이 없어서 농사를 짓지 못하는 시대 혹은 논이 있어도 농사지을 사람이 없는 시대가 오면 어찌하려고 이러나 모르겠습니다.

 

거미줄 살아있는 논

그냥 논두렁에만 서면 기분이 좋아야 하는데, 오늘도 내가 발자국 소리를 들려주었구나 신명이 나야 하는데 우울합니다. 그래도 오랜만에 가지는 특별한 시간을 우울함에 빼앗기지 않으려고 마음을 다잡아 봅니다.

 

요즘 논에는 농약을 많이 쳐서 이런 거미줄을 보기도 쉽지 않습니다. 물론, 유기농을 하시는 분들의 논에서는 흔한 풍경이겠지요. 이렇게 아침이면 거미줄이 이슬방울을 달고 출렁이는 그런 논, 추수를 마친 뒤 밑둥만 남은 벼포기 사이사이 거미줄이 융단이 깔린듯 하얗게 출렁이는 그런 논은 이제 추억 속에만 남아있어야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풀잎과 비이슬 이슬방울 속에 맺힌 꽃

그냥 스쳐지나가도 아무 일 없는, 보지 못해도 아무 상관이 없는, 그러나 스쳐지나가지 않고, 볼 수 있으면 상관이 있는 그런 세상입니다. 나에겐, 그 작은 세상이 보여주는 잔잔한 모습들이 큰 물결로 다가옵니다.

 

파리, 모기 나도 싫어합니다. 아마도 처음 그들을 보면서 아름답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모기 한 마리가 종아리를 물자 이내 손바닥을 들어 죽일 듯이 내려치지만, 그때의 마음은 진심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답게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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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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