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제 모습이 도둑놈 같나요?"

요즘 저녁에 한강에 나가보면 가로등 주변으로 벌레들이 많이 모여듭니다
▲ 저녁 벌레들의 공격을 막기 위한 완전 무장 요즘 저녁에 한강에 나가보면 가로등 주변으로 벌레들이 많이 모여듭니다
ⓒ 박승일

관련사진보기


"그런 것 같기도 합니다."

주말(19일) 저녁에 운동하러 자전거를 타고 한강에 가려다 생긴 일입니다. 일주일에 한두 번은 가급적 한강에 나가 운동을 하려고 노력중입니다. 이날도 여느 때와 같이 자전거를 탈 준비를 단단히 하고 나서려던 참이었습니다.

요즘 한강변에는 저녁이면 벌레들이 굉장히 많습니다. 평소 벌레를 싫어하는 저는 해가 없는 저녁이라도 가급적 피부 노출을 안 하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모자에 두건을 쓰고 긴팔 옷을 입습니다. 거기에 안경도 큰 뿔테 안경을 착용합니다. 그래야 벌레들의 공격을 막아낼 수 있습니다.

그렇게 준비를 끝내고 자전거를 베란다에서 출입구 쪽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뒷바퀴 바람이 몽땅 빠진 걸 알았습니다. '어휴, 이걸 어쩌지?'라는 짧은 생각을 하고 하던 일을 그대로 진행했습니다. 왜냐면 준비를 단단히 한 수고가 아까웠기 때문이죠.

전 개포동 대모산 입구역 근처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습니다. 평소에도 자전거 바람이 빠지거나 이상이 있으면 대청역 근처에 자전거 수리 점을 종종 이용하곤 했었습니다. 그래서 뒷바퀴는 살짝 들고 앞바퀴만을 이용해 걸어가고 있던 중이었습니다. 그냥 걸어도 십여 분은 걸어야 하는 거리였는데 자전거를 끌고 걷다보니 힘도 들고 시간도 많이 걸렸습니다.

그렇게 반쯤 왔을 때였습니다. 제 옆으로 순찰차 한대가 경광등을 켜고 지나가는 것이었습니다. 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고 걷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잠시 후 앞쪽을 보니 조금 전 지나던 순찰차가 50여m 앞쪽에 비상등을 켜고 멈춰 있는 것 아니겠습니까. 그때까지만 해도 제게 닥쳐올 불행을 저는 전혀 알지 못했습니다.

제가 순찰차 근처까지 다다랐을 때였습니다. 순찰차에서 한 경찰관이 갑자기 내리더니 제게 다가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건넨 한마디는 "안녕하세요, 왜 자전거가 고장 났나요?"였습니다. 그는 말을 하면서 제 자전거 뒷바퀴 쪽을 유심히 쳐다봤습니다. 순간 제 자전거 뒷바퀴에 채워져 있는 자물쇠 때문에 '경찰이 나를 자전거 도둑으로 오해할 수도 있겠구나'란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의 정확한 해명이 필요했습니다. 저는 "예, 자전거 뒷바퀴 바람이 모두 빠져 버려서요, 그래서 대청역 근처 자전거 수리점까지 끌고 가고 있는 중인데요, 제가 조금 수상해 보였나 봅니다"라며 살짝 미소를 지었습니다.(운전을 하다 음주단속 현장을 지날 때도 전 한 번도 경찰관이라고 이야기한 적이 없었습니다. 그냥 측정하고 지나가면 되지, 굳이 경찰인 것을 밝힐 필요를 못 느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날도 그랬습니다.)

그 경찰관은 저를 어느 정도 믿어주는 눈치였습니다. "요즘 자전거 비싸죠? 그래서 그런지 도난신고가 꽤 많이 들어오더라고요. 이 자전거는 얼마나 하죠?"라고 물었습니다. 저는 '아직도 저를 믿지 못하고 계시는 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명확하게 말을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작년에 사촌형으로부터 선물을 받았어요. 물론 형이 타던 거였고요. 한강에서 자전거를 같이 타는 친구들이 여러 명 있는데 통화해서 바꿔드릴까요? 아니면 사촌형을 전화 연결해 드릴 수도 있고요."

그제야 그 경찰관은 제 말을 믿어주는 듯했습니다. 그는 "아, 아닙니다. 실례했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습니다. 제가 "필요하시면 제 인적사항과 전화번호를 드릴 수 있는데요"라고 말하자 그는 아니라고 손을 흔들며 그냥 차에 탔습니다.

제게 황당한 경험을 만들어준 순찰차는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했습니다
▲ 순찰차 제게 황당한 경험을 만들어준 순찰차는 어디론가 바쁘게 이동했습니다
ⓒ 박승일

관련사진보기


전 웃음이 나기도 하고 조금은 창피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리 기분 나쁘지 않은 유쾌한 상황이었습니다. 힘들게 걸어왔던 길에 조금 쉴 수 있었던 시간쯤으로 생각하고 목적지로 향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그렇게 고생해서 자전거 수리점까지 왔는데 문이 닫혀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때는 조금 힘이 빠졌습니다. 그렇게 다시 아파트로 돌아오는 길에 혹시나 하고 경비실에 들러 자전거펌프가 있는지 물었습니다. 다행스럽게도 있었고 자전거에 공기를 주입하고 한강으로 향했습니다(어렵게 도움을 주신 경비실 아저씨께도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습니다. 혹시 주변을 지나다 자전거 바퀴에 공기가 빠지면 개포주공 9단지 경비실에 가세요. 친절하게 빌려줍니다).

그렇게 힘들게 고생해 한강에 도착했습니다. 보통 전 양재천 주변을 조금 타다가 청담대교 밑쪽으로 해서 영동대교, 성수대교, 동호대교, 한남대교 쪽까지 갔다가 돌아옵니다. 그리고 주변 벤치에서 30여분 휴식을 취하며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돌아옵니다. 보통 오후 10시쯤 나가서 오전 1시쯤 돌아옵니다.

휴대전화를 이용해 촬영한 사진
▲ 영동대교 야경 휴대전화를 이용해 촬영한 사진
ⓒ 박승일

관련사진보기


혹시 주변에서 저를 보시더라도 도둑놈은 아니라는 것을 믿어주세요. 아니 전 경찰관이니 어려운 일이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하면 힘껏 도와 드리겠습니다.

어제의 경험은 조금은 황당하고 당황스러운 경험이기도 했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했습니다. 요즘 경찰은 이래저래 안 좋은 소식들이 많습니다. 어떤 일이든 경찰이 잘못한 일이 있으면 질책 받고 비난받아 마땅합니다. 그러나 제가 경험한 일처럼 겉으로 보이는 모습만으로 불신과 오해 그리고 과장과 왜곡돼 경찰의 사기가 떨어지는 일은 없었으면 합니다.

지금 이 시간에도 자신의 위치에서 묵묵히 고생하고 있는 많은 경찰관들에게 격려와 응원을 보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끝으로 저를 끝까지 믿어주신 경찰관 분께도 감사의 말씀을 늦었지만 전하고 싶네요. 


태그:#경찰, #박승일, #야간운동, #한강, #자전거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서울지방경찰청에 근무하고 있으며, 우리 이웃의 훈훈한 이야기를 쓰고 싶은 현직 경찰관입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