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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청소년들을 위한 공약은 없을까

이제 6·2지방 선거가 채 2주도 남지 않았다. 지금 거리에선 차량에 확성기를 장착한 후보자들과 지지자들이 열심히 선거운동을 하고 있다. 사실 두어 달 전부터 건물마다 예비후보들의 공보물이 나붙기 시작했었다. 지역 언론에서도 예비후보자의 약력과 공약도 전하기 시작했다. 출근길 버스창으로 비치는 후보들의 사진과 공약을 접하다 보니 한가지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저소득층, 재개발등 쟁점이나 이슈가 되는 공약들은 비슷했지만 청소년 공약 관련해선 겨우 무상급식 정도 밖에 없었다.

'저 수많은 공약 중에 왜 청소년들을 위한 공약은 없을까?'

사실 이유는 간단했다. 아직 투표권이 없는 청소년들에게 관심을 쏟을 후보가 몇이나 있을까? 마침 이번달 푸른학교(공부방)의 주제수업(인권)으로 아이들과 무얼 할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잘 됐다 싶었다. 청소년들의 '인권'을 모의 선거를 통해서 그들 스스로 고민하게 해보면 좋겠다 싶었다. 다른 선생님도 좋은 계획이라면서 해보자고 하셨다.

모의 선거를 시작하기전 아이들이 흥미를 갖도록 하기 위해서 주말에 집 근처에 있는 예비 선거물을 사진으로 찍거나 공약이나 구호를 알아오게 했다. 소정의 생필품으로 유혹하면서. 크게 기대를 하지 않았지만 기특하게 학생 두 명이 내 폰으로 사진 전송을 했다. 핸드폰 알이 없어서 전송을 하지 못했다는 한 아이는 월요일에 오자마자 예비후보의 사진을 확인 시켜 줬다.

"선생님, 도대체 누구를 공략하라는 건가요?"

뚫어져라 공약 작성지를 보고 있던 1학년 남학생이 제법 심각한 얼굴로 물었다. 그 학생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처음엔 '이거 왜 해요?' 라거나 '공약'이라는 말의 의미도 몰라서 '도대체 누구를 공략해요?'라면서 대부분 시큰둥한 반응을 보였다.

정치, 환경, 교육, 문화로 영역을 나누어서 학생들에게 공약을 작성하게 했다.
▲ 모의 선거 공약 작성지 정치, 환경, 교육, 문화로 영역을 나누어서 학생들에게 공약을 작성하게 했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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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유와 설득과 협박(?)을 다각적으로 활용하면서 크게 '정치, 환경, 교육, 복지'라는 항목을 정해주고 그 중에서 청소년과 관련된 공약을 만들게 했다. 시큰둥하던 학생들이 모둠별로 짝을 지어서 진행을 해보더니 생각보다 다양한 공약들이 나왔다.

- 황사 대비해 대형 비닐막 치기
- 뇌물 받으면 재산 몰수 하기
- 국회의원 수 20명으로 줄이기
- 학생들에게도 투표권 주기
- 학생들에게 노트북 한대씩 주기
- 두발, 복장 자유롭게 하기
- 교복 머리 규정 자유, 단 염색과 파마는 제외
- 아침독서 시 우유와 빵 지급하기 

때로는 대통령도 지킬 수 없을 것 같은 엉뚱한 공약들도 나왔다. 황당하긴 하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든 공약은 '황사를 대형 비닐로 막겠다'는 공약이었다. 환절기만 되면 지독한 비염에 시달리는 나는 황사를 대형 비닐로 막아 주겠다던 아이에게 벌써 한 표가 기울었다.

공약 모듬지를 작성하게 했다. 아침 독서시 우유와 빵 무상 지금과. 45분 수업을 40분 수업을 단축시킨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3차시 토론 수업을 진행할때 이 공약을 내건 후보와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 공약 모듬지 공약 모듬지를 작성하게 했다. 아침 독서시 우유와 빵 무상 지금과. 45분 수업을 40분 수업을 단축시킨다는 내용이 인상적이다. 3차시 토론 수업을 진행할때 이 공약을 내건 후보와 열띤 토론이 벌어졌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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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마당, 흑진주당, 그리고 올레당을 만들다

모둠별로 정당을 만든 후 후보를 선출하고 직접 선거 포스터도 직접 만들게 했다. 본인들이 사전에 작성한 공약을 나누어 주고서 청소년과 관련된 공약을 세 가지 이상 정하게 했다. 가능하면 현실화될 수 있는 것을 정하게끔 했다. 그런 과정을 거쳐서 모둠별로 나온 후보와, 정당 이름, 그리고 공약은 다음과 같았다.

2차시로 후보자별 선거 포스터를 만들어봤다. 사진까지 붙여 놓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 모의 선거 후보 포스터 2차시로 후보자별 선거 포스터를 만들어봤다. 사진까지 붙여 놓고 보니 제법 그럴듯한 포스터가 만들어졌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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흑진주당, 후보 박OO
구호 : 이쁜 것들만 기억 하냐 박OO도 기억하자!
공약
하나 : 중고생들의 45분 수업을 40분으로 단축
둘 : 첫째 셋째주 토요일을 봉사자의 날로 change
셋 : 저소득층 교복 가격 인하

꼬마당, 후보 김OO
구호 : x
공약
하나 : 청소년, 노인, 아동 인권보장
둘 : 두발 자유화
셋 : 약자는 보호 받을 권리

올레당, 후보 김OO
구호 : KIN HER ~김OO
공약
하나 : 사교육 x
둘 : 신도시 개발 반대
셋 : 나무 심기
넷 : 두발, 복장 자유(심할시 한 달간 청소 or 블랙리스트 등록)
다섯 : 쓰레기 버릴시 벌금 1000만원
여섯 : 아침 독서할 때 항상 우유 빵 지급

100분 토론식 후보자별 토론을 진행하기

후보자별 토론은 평소 즐겨 보는 <100분 토론> 방식을 따랐다. 사회자를 정해야 했는데 고심 끝에 손석희(?) 교수는 내가 맡았다. 이런 식의 수업은 처음 해보는 만큼 사회자의 역할이 본 수업에 큰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었다.

3차시 수업으로 후보자별 공약을 중심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자신들과 관련된 내용이어서인지 산만한 가운데도 질문이 많았다.
▲ 모의선거 3차시-토론 수업 3차시 수업으로 후보자별 공약을 중심으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자신들과 관련된 내용이어서인지 산만한 가운데도 질문이 많았다.
ⓒ 김인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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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다와 토론은 다르다. 수다는 상대방을 향해서 생각나는 대로 말을 하면 되지만 토론은 예상치 못한 상대방의 질문을 받고 그 질문에 가장 합당한 답을 찾아내야 한다. 수다는 즉흥적이지만 토론은 논리적이다. 수다는 상대방을 향해서 반말을 해도 되지만 토론은 존칭을 써야 한다. 수다는 때로 인신공격을 할 수 있지만 토론은 그게 안된다. 물론 토론이 격해지다 보면 삿대질을 하거나 불의의 습격을 받을수도 있다. 수다는 수다스러워야 하고 토론은 토론다워야 한다. 문제는 나는 수다도 토론도 둘다 능하지 않다는 것, 그렇다면 아이들은 어땠을까?  

"흑진주당의 OOO후보에게 질문 있습니다. 먼저 중학생 수업시간을 45분에서 40분으로 줄이자고 하셨는데 그렇게 하더라도 어차피 정해진 수업 양이 있어서 1교시가 더 늘어나야 합니다. 다른 방법이 있나요?"
"그건요. 예전에 우리 학교에서 한번 단축 수업을 해 봤는데 40분 수업을 했지만 그 시간 안에 충분히 정해진 진도를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그것은 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처음엔 진지하게 진행되던 토론이 뒤늦게 참석하는 아이들이 늘어나면서 산만해지기 시작했다. 산만한 가운데서도 후보자들을 향한 아이들(방청객)의 질문은 쇄도했다. 후보자들끼리의 토론보다는 방청객의 질의응답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해야 했다.

사회를 진행하는 나도 곤혹스러웠다. 후보자들의 질문을 듣고 답변을 유도해야 하는데 분위기가 산만하다 보니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거나 아예 못 듣는 경우도 생겼다. 토론 방식을 제대로 이해 하지 못한 B가 손을 들더니 왜 쟤네들(후보자)끼리만 말(?)하냐고 볼멘소리를 하기도 했다.

폐박스로 기표소, 투표함, 투표용지를 만들다

이제는 기표소와 투표함을 만들어야 했다. 마음 같아서는 선관위에 부탁을 해서 투표함과 기표소를 빌려 오고 싶었지만 여러가지 여건으로 인해 현지 조달하기로 했다. 두 선생님들이 열심히 만든 덕분에 생각보다 멋진 투표함과 기표소가 만들어졌다. 투표용지는 두 장 (흰색은 후보자별, 녹색은 비례대표)를 뽑도록 했다. 가능하면 기권표가 나오지 않기 위해서 투표를 실시하기 전 철저하게 교육을 시켰지만 여기저기서 장난스런 얼굴들이 보였다. 개인적 친분이 아니라 철저히 공약과 토론을 중심으로 투표를 하라는 당부도 잊지 않았다.

"선생님, 그거 선거인 명부 확인하는 거죠? 그거 우리가 하면 안돼요?"
"맞아요, 재미 있을 것 같아요. 우리가 하게 해주세요."

1학년 여학생이었다. 처음엔 선생님들이 신분 확인(?)을 하고 투표용지를 나누어 줄 생각이었지만 두 친구가 하겠다고 해서 자리를 양보했다. 그리고 마침내 투표가 시작되었다. 아이들은 떠들다가도 투표할 순서가 되면 진지해졌다. 기표소에서 한참을 망설이는 유권자도 있었다. 예상했던 대로 개표 결과 기권표가 다량 나왔다.

학생들은 좀더 현실적인 방식을 원했다. 어쩌면 그것(컴퓨터 사용시간 늘이기, 휴대폰 사용 등등)이 아이들이 생각하는 '청소년 인권'에 가까운 것인지도 모른다. 본 모의 선거가 그것을 중심으로 진행됐다면 아이들의 호응도는 훨씬 높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그것은 내가 감당할 수 없었다.

처음 모의 선거를 시작했을 때는 단 1회로 정리를 하려고 했었다. 차후 수업에 대한 계획도 없었다. 하지만 막상 수업을 하고 나자 조금 더 깊이 들어 가 보는 것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은 직접 선거 포스터를 만들고 공약도 정하고 구호도 정하면서 새로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것은 아이들뿐만 아니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함께 수업을 진행 했던 나와 다른 선생님도 마찬가지였다.

덧붙이는 글 | 푸른학교(공부방)에서 중학생들과 4차시로 진행한 모의 선거 후기입니다.



태그:#모의 선거, #시의원, #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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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 뉴스 시민기자입니다. 진보적 문학단체 리얼리스트100회원이며 제14회 전태일 문학상(소설) 수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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