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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삼년만에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실 터이니 진주남강 빨래가라
진주남강 빨래가니 산도 좋고 물도 좋아
우당탕탕 빨래 하는데 난데없는 말굽소리
고개들어 힐끗보니 하늘같은 갓을 쓰고
구름같은 말을 타고서 못본듯이 지나더라
흰빨래는 희게 빨고 검은 빨래 검게 빨아
집이라고 돌아와 보니 사랑방이 소요하다
시어머니 하시는 말씀 얘야 아가 며늘아가
진주낭군 오시었으니 사랑방에 나가봐라
사랑방에 나가보니 온갖가지 안주에다
기생첩을 옆에 끼고서 권주가를 부르더라
이것을 본 며늘아가 못본듯이 물러 나와
아홉가지 약을 먹고서 목매달아 죽었더라
이 말 들은 진주낭군 버선발로 뛰어 나와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화류정은 삼년이고 본댁정은 백년인데
내 이럴 줄 왜 몰랐던가 사랑 사랑 내 사랑아
너는 죽어 꽃이 되고 나는 죽어 나비 되어
푸른 청산 찾아 가서 천년 만년 살고 지고 어화둥둥 내사랑
-진주낭군가(작자미상)

진주의 몰락한 양반가문으로 시집을 간 새댁. 유랑하며 방탕한 생활을 즐기다 오랜만에 집으로 돌아 온다는 낭군의 소식이 들려온다. 새댁의 마음도 모르는 시어머니의 성화에 남강에 나가 시려운 손을 호호불어가며 빨랫방망이를 두들기는데, 보고도 모른 척하는지 낭군은 그냥 지나친다. 그래도 낭군생각에 부랴부랴 달려오니 그 잘난 낭군은 기생을 옆에 끼고 화색이 만발하여 권주가를 부르니...

'진주난봉가'를 편곡하여 다시부른 가수 서유석
▲ 서유석 '진주난봉가'를 편곡하여 다시부른 가수 서유석
ⓒ 서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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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도 담도 없는 집에서 시집살이 3년만에 목을 메고 죽었다는 슬픈 이야기가 주제인 이 노래는, 모진 시집살이의 고통과 슬픔을 달래며 우리의 할머니들이 부르던 '진주낭군가'이다. 입에서 입으로 전해 내려온 만큼 작자도 알 수 없고 언제 불려졌는지 알려져있지 않다.

진주뿐만 아니라 부녀자들의 애환을 담은 구슬픈 곡으로 언제 어디서나 불려졌던 이 구전가요는 민요풍의 가사에 새롭게 곡을 붙여 가수 서유석이 다시 불렀다. 이후 서유석의 '진주난봉가'는 '타박네'와 함께 한국적 가락과 포크적 서정을 조화시킨 불세출의 명곡이 되었다. 이밖에 양희은의 '고무줄놀이' '서울로가는길' 등 수십여 년 전부터 소외된 이들의 슬픔과 고난을 감동적으로 노래하며 우리와 함께 했던 구전가요는 무궁무진하다.

소외된 이들의 슬픔과 고난 노래하는 구전가요

구전가요는 상류층이 향유하는 예술음악에 비해 오랜 세월 구전되어 막연한 시련과 막연한 인생 여정의 암시로 작용했을뿐만 아니라 건강한 정서 회복에 큰 역할을 했다. 몇년 전 가수 태진아는 '사랑은 아무나 하나'라는 곡을 발표하여 크게 히트하였다. 물론 그곡은 '교도소'에서 많이 불렸다는 구전가요 '영자송'을 기초로 편곡을 한 곡이었다. 한때 저작권 소송에 휘말렸지만 "구전가요의 단순한 수정, 증감은 2차적 저작물로 볼 수 없다"는 판결로 마무리 되었다. 하지만 판결 따위는 관심에 없다. 누가 불렀든 그냥 불러서 기분만 좋으면 되는 거니까.

구전가요는 지금까지 민중의 애환을 담아 수많은 사람들이 불렀고 지금까지도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 1970년대말 구전가요는 지금까지 민중의 애환을 담아 수많은 사람들이 불렀고 지금까지도 그 생명을 유지하고 있다.
ⓒ 김학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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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부터 바른생활을 실천하고 계시는 독자나 모범생은 이 창을 닫기 바란다.

영자야 내 딸년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자알 있느냐?
서울에 있는 이 아빠는 사장님이 아니란다
(이하 '추임새' 부분은 가사심의 관계상 생략)
서울에 있는 이 아빠는 사장님이 아니라서
광화문하고도 한폭판에서 싹싹닦는 청소부란다. (추임새)

영자야 내 동생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자알 있느냐?
군대에 있는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란다.(추임새)
군대에 있는 이 오빠는 장교가 아니라서
38선 하고도 철책선에서 빡빡기는 군바리란다.(추임새)

영자야 내 동생아
몸 성히 성히 성히 자알 있느냐?
서울에 있는 이 언니는 여대생이 아니란다.(추임새)
서울에 있는 이 언니는 여대생이 아니라서
청계천 하고도 지하공장서 뺑이치는 공순이란다.(코러스)
-'영자송' 중에서

알고 있는 가사와 약간 다를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구전가요의 가사는 구전의 특성상 지역과 동네의 특성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영자야 내딸년아 몸 성히 성히 잘있느냐~!"

80년대와 90년대초까지 대학시절을 보낸 이라면 이 노래를 불러보지 않았거나 들어보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영자송'으로 대표되는 구전가요들은 도시의 불빛속에서 자신의 한줄기 빛을 찾지 못하던 민중들의 절망을 담은 노래였다. 대학생들도 소주에 새우깡을 옆에 놓고 "성냥공장 아가씨'와 함께 어우러져 '셋트'로 부르던 곡이었다. 분명한 사실은 이런 노래들을 수많은 사람들이 불렀고 지금까지도 그 생명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인천의 성냥공장 성냥공장 아가씨
하루에 한갑 두갑 일주일에 열두갑
치마 밑에 숨겨 놓고 정문을 나서다~
(가사심의 관계상 이하생략, 참고로 2절은 '설탕공장')
-'성냥공장 아가씨'중에서 일부

영화 '젓가락'이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젓가락'은 구전가요를 소재로 모성애를 애잔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구전가요가 그리운 이들에게는 반가운 영화이다.
▲ 영화 '젓가락' 영화 '젓가락'이 4월 개봉을 앞두고 있다. '젓가락'은 구전가요를 소재로 모성애를 애잔하게 그려낸 작품으로 구전가요가 그리운 이들에게는 반가운 영화이다.
ⓒ 젓가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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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전가요가 정식노래로 다시 만들어져 빛을 본 경우는 이밖에 여러 곡이 더 있다. '세상은 요지경'이라는 노래는 부녀자들이 흥얼거렸던 대표적인 구전곡으로 93년 가수 신신애가 다시 불러 폭발적인 사랑을 받았으며, '내이름은 순이'라는 곡은 월남파병 당시 너무나 유명했던 대표적인 군대의 구전곡을 91년 가수 금진호가 취입하여 공전의 대히트를 기록했다.

70~80년대를 수놓았던 불후의 명곡 

지금까지 나온 노래들을 아직도 모른다면 모범적인 학창시절을 보냈을 것이라 확신한다.(아니, 아직도 창을 닫지 않고 있다니!) 댄스곡에 익숙한 신세대와 젊은층(?)을 위해서 한곡을 더 소개한다. 아마도 이 노래를 보면 어린시절이 먼저 떠오르리라.

신데렐라는 어려서 부모님을 잃고요
계모와 언니들에게 구박을 받았더래요
싸바싸바 알싸바
얼마나 울었을까요
싸바싸바 알싸바
천구백팔십오년도
-'신데렐라' 고무줄송

가사중의 '신데렐라'와 '계모'라는 두 단어만으로도 가슴을 후벼 파고 들며, 짧지만 찡한 애절함을 그대로 전해준다. 이 노래는 여자 아이들이 고무줄 놀이를 할 때 불렀던 애국가 다음 가는 '국민노래'이다. 노래에 맞춰 고무줄놀이를 하는 틈을 비집고 사내들은 고무줄을 끊고 도망을 하고, 여자아이들은 울면서 선생님께 일러바치고 그러면 우리들은 열나게 맞고...

구전가요와 함께 한 노동자와 군인들

70년대 노동자의 노래는 구전된 가요에 가사를 바꾸거나 대중가요에 가사를 바꾼 일명 '노가바'(노래가사 바꿔 부르기)형태로 만들어지고 불렸다. 지금도 술자리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아! 미운 사람'도 구전가요에 가사만 바꾼 '노가바'였다.

노래를 못하면 장사를 못 가요 아~ 미운 사람
장사를 가~도 아들을 못 나요 아~ 미운 사람
아들은 나아도 X자를 나아요 아~ 미운 사람
-'아, 미운사람'중에서

구전군가의 종류와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해병대.
▲ 해병대 구전군가의 종류와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해병대.
ⓒ 해병전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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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대라는 집단에도 구전되는 군가가 있었다. 특히 일명 '사가'(私歌)라 불리는 구전군가의 종류와 방대한 양을 자랑하는 곳은 뭐니뭐니 해도 해병대. 군대의 사가는 군인들 사이에서 만들어져 구전되기도 하고, 기성 대중가요에 가사를 개사해서 불리기도 했다. 가사의 내용도 군대생활의 애환을 담고 있다. 부모가족과 애인에 대한 그리움, 힘든 군대생활, 사회의 그리움, 성적욕망, 군인의 자부심 등... 역시 직설적인 성적 표현과 폭력적 가사가 혐오감을 유발시킨다는 이유로 금지되기도 했다.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편지를 쓰고요
흘러가는 물결 그늘아래 춤을 춥니다
처녀 열아홉살 아름다운 꿈속의 아이러브유
라이 라이 라이 라이 차차차
라이 라이 라이 라이 차차차
당신만이 그리워서 키스를 하고요
당신만이 그리워서 꿈이라도 꿉니다

오늘은 어디가서 깽판을 놓고
내일은 어디가서 신세를 지나
우리는 해병대  R.O.K.M.C
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
때리고 부시고 마시고 조져라
헤이빠빠리빠  헤이빠빠리빠
-일명 '곤조가'

해병대 출신이 아닌 경우, 생소할 수도 있으니 육해공군 출신 모두가 알고 있는 친근한(?)곡을 소개한다. 

하늘이 울어야만 사나이도 운다던데
그 까짓 마음변한 여자 때문에
청춘이 만리같은 새파란 사나이가
울기는 왜 울어 왜 운단 말이냐
이 못난 친구야

외롭고 괴로울 때 동기밖에 없다는데
산넘고 물건너 머나먼 타향에서
기어이 제대하여 고향에 갈 사나이가
울기는 왜 울어 왜 운단 말이냐
이 못난 친구야

엄마가 보고플 때 엄마사진 꺼내놓고
엄마얼굴 보고나면 눈물이 납니다.
어머니 내 어머니 사랑하는 내 어머니
보고도 싶어요 울고도 싶어요
사랑하는 내 어머니

당신이 그리울 때 당신사진 꺼내놓고
당신얼굴 보고나면 눈물이 납니다.
사랑하는 내 사람아 보고픈 내 사람아
잊지는 말아요 잊지는 말아요
사랑하는 내 사람아
-'원통불루스' (원래의 제목은 '원통 블루스'인데, 여기서 지칭하는 '원통'은 강원지역의 지명이름인지 '원통함' 말하는 것인지는 확실하지 않다)

MBC가 제작·방영한 군인 대상 프로그램이다.
▲ 우정의무대 MBC가 제작·방영한 군인 대상 프로그램이다.
ⓒ MB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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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노래는 한때 MBC의 '우정의무대'라는 프로그램의 마지막 무대 시그널송으로 널리 알려진 곡이다. 부모와 극적으로 상봉하는 장면에서 뜨거운 눈물을 쏟아내며 구슬프게 흘러나오던 그 노래. 힘든 군생활을 눈물로 참아내며 버틴 것은 이 노래의 힘이 아니었겠는가?

군대의 구전가요 중에서는 별의별 이유로 금지곡이 된 경우도 있다. 휴가를 나온 한 군인이 고무신을 거꾸로 갈아신은 여자때문에 군대에 복귀해서 이 곡을 만들고 자살했다는 소문(?)으로 금지곡이 되었던 '천일맹세'의 가사는 비통한 군인의 마음을 그대로 대변하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못하겠지만 내 동갑 여자
얼굴은 귀엽이 눈은 맑아서 사랑한 여자
스무해 가는 겨울 눈길 걸으며
난생 처음 너만을 사랑한다고
이듬해 깎은 머리 나라를 위해
무엇보다 슬픈 건 너와의 헤어짐
무정한 기차 떠나갈 때에
울며 손 놓던 너의 모습
기다리겠다던 너의 맹세
믿고 또 믿고 참고 또 참아
제대의 그날이 눈앞에 어리네
뚜루루르르 뚜루루르르르
기다림의 시간은 끝이 났건만
너는 도대체 누구 때문에
넌 도대체 무엇 때문에
사랑도 잃고 사람 버리고
난 돌아왔건만 넌 남의 여자
-'천일맹세'

온 국민의 희망의 원천이자 에너지였던 구전가요

우리의 일상생활에서나 군대에서나 어디든지 우리의 애환과 함께해 온 구전가요. 곡조와 가사가 시시하다고 생각하지 말라. 가벼운 언어로 유희적 세태 풍자에 그쳤다고 치부하지 말라. 세련되고 화려한 면은 덜하지만 그 대신 토속적이고 인간적인 면모는 그 어느 명곡에 견주랴.

시작은 흥얼거렸던 잡가에 불과했을지라도 전후(戰後) 세대의 순수한 감정을 표현하며 민중음악의 전반적 수준을 한 단계 올리는데 기여한 곡으로 평가하는데 굳이 토를 달 필요는 없을 것이다.

구전가요, 대한민국 민중음악의 '절대무상'이리라. 이 곡들은 이제 우리에게 부담이나 짐이 아니라, 우리들이 살아가는 에너지이고 우리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남겨줄 수 있는 소중한 우리들의 자산이 아니겠는가?

날 때부터 고아는 아니었다
내 죄 아닌 내 죄로 태어나
들풀처럼 버려진 이 한 목숨
가시밭길 헤치며 살았다

상처뿐인 내 청춘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입니까 누구의 잘못인가요

배고플 땐 주먹을 깨물었고
서러울 땐 눈물을 삼켰다
의리로서 맺어진 우리 사이
목숨까지 바치며 살았다

상처뿐인 내 청춘 피눈물 장마
아 누구의 잘못입니까 누구의 잘못인가요
-'고아'


태그:#구전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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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가는 이야기를 기존 언론들이 다루지 않는 독자적인 시각에서 누구나 공감하고 웃을수 있게 재미있게 써보려고 합니다. 오마이뉴스에서 가장 재미있는(?) 기사, 저에게 맡겨주세요~^^ '10만인클럽'으로 오마이뉴스를 응원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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