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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로 한국은행을 떠나는 이성태 총재
 31일로 한국은행을 떠나는 이성태 총재
ⓒ 오마이뉴스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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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태 한국은행 총재가 31일 떠났다. 지난 참여정부 때 임명된 이후 현 정부 들어서 이른바 '매파'로 분류됐던 그였다. 정부의 노골적인 환율개입을 비롯해 성장주도의 재정정책에 대해, 중앙은행 총재로서 소신있는 정책을 펼쳤다는 것이 시장의 대체적인 평가였다.

이 총재의 경제 정책에 대한 소신 발언과 일관성있는 통화정책을 두고, 국내외 시장 참여자들은 현 정부 경제팀 수장들 가운데 가장 높은 신뢰를 나타내기도 했다.

물론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지고 난후 최근 경기 회복과정에서 출구전략을 선제적으로 추진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그는 이같은 비판을 의식한 듯 이번달 마지막 금융통화위원회를 마치고 "통화정책은 소신으로만 할 수 없는 것"이라고 토로하기도 했다. 그는 또 "중앙은행 사람들도 그냥 사람일 뿐"이라는 말도 남겼다.

"출구전략 짜고,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인정해줘야"

31일 이 총재는 공식적으로 40년 넘는 한은 생활을 마감했다. 이날 오후에 한국은행에서 열린 이임식에서 그는 지난 4년 총재 재임기간 동안에 대한 소회와 평가, 앞으로 중앙은행이 해나가야 할 과제에 대해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내비쳤다.

특히 그는 금융위기를 빠르게 극복했지만, 향후 한국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기 위해서 한국은행이 추진해야 할 과제 4가지를 꼽기도 했다.

우선, 지난해 하반기부터 논란이 돼 왔던 중앙은행의 금리인상을 통한 출구전략 문제. 이 총재는 "경제위기 대응 차원에서 도입, 추진됐던 금융 완화 조치들을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정상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두번째는 가계부채 문제. 그는 이미 오래전부터 시중의 낮은 금리와 이에 따른 주택대출증가 등으로 인한 가계 빚 문제에 대해 경고해 왔다. 그는 이날 "과도한 가계부채는 금융불안 요인이 될수 있을 뿐 아니라 성장잠재력 확충을 어렵게 하는 등 실물경제에도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세번째는 금융위기 이후 미국과 영국 등 선진국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는 금융질서 개편에 대한 대응이다. 그는 "이같은 국제금융질서 개편 논의를 예의 주시하면서,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역할을 재정립해야 한다"고 밝혔다.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0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이성태 한국은행장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사를 하고 있다.
 지난 1월 5일 오후 서울 을지로 롯데호텔에서 열린 '2010년 범금융기관 신년인사회'에서 이성태 한국은행장과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인사를 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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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그가 강조한 것은 중앙은행의 독립성이다. 그는 "중앙은행의 위상,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한자성어를 인용했다. '화이부동'은 <논어>에 나오는 말로 남과 사이좋게 지내더라도, 의(義)를 굽혀가며 좇지는 아니한다는 뜻이다. 한마디로 남들과 잘 지내더라도 자신의 중심과 원칙을 잃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 총재는 "정부와 중앙은행은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 나가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해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 등 현 정부 경제수장들의 '금리인하 요구' 등 노골적인 통화정책 간섭에 대한 비판인 셈이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고뇌와 번민"

이 총재는 또 지난 4년간의 통화정책을 평가하면서 "총재 재직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고뇌와 번민을 거듭한 날도 적지 않았다"고 소회를 밝히기도 했다.

그는 참여정부 말기 불었던 부동산 광풍에 대해, "자산가격 불안,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유동성 관리를 강화했다"고 말했다. 이같은 정책으로 시장에서의 통화가 확장되는 것을 억제하고, 주택가격의 버블 형성을 막는 데 노력했다는 것이다.

리먼사태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에 대해서는 "기준금리 사상 최저수준으로 인하하고, 원화와 외화의 유동성을 확대 공급하는 등 금융시장 안정과 실물경제 회복을 위해 주력했다"면서 "당시 경제상황이 어느때보다 불확실하고, 한국은행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매우 높아 정책수행에 큰 부담을 느끼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이 총재는 "금융위기 대응조치의 정상화 등 한국은행의 당면 과제들을 생각할때, 한은 임직원에게 무거운 짐을 지워 놓고 훌쩍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성태 한국은행총재 이임사 전문
친애하는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

오늘 저는 40여년을 몸담아 왔던 한국은행을 떠나면서 여러분과 작별의 인사를 나누기 위해 이 자리에 섰습니다. 여러분과 헤어지게 되어 무척 섭섭하지만,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던 한국은행에서 총재의 지위에까지 올라 소임을 무사히 마치게 된 것은 큰 기쁨이자 영광이 아닐 수 없습니다.

먼저 이 자리를 빌려 그동안 저를 이끌어 주셨던 선배님들, 지난 4년 총재 재임기간 동안 성심을 다해 도와주신 임직원 여러분, 그리고 주위에서 격려와 성원을 보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총재로 재직하는 동안 글로벌 금융위기 등으로 고뇌와 번민을 거듭한 날도 적지 않았지만 긍지와 보람이 컸던 것도 사실입니다. 특히 최근 우리 경제가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에서 다른 나라보다 빨리 벗어나고 있는 데는 통화정책이 큰 기여를 한 것으로 자부합니다. 하지만 금융위기 대응조치의 정상화 등 한국은행의 당면 과제들을 생각할 때 임직원 여러분께 무거운 짐을 지워 놓고 훌쩍 떠나는 것 같아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다행히 탁월한 식견과 높은 경륜을 가지신 김중수 총재께서 새로 한국은행을 이끌게 되어 떠나는 저의 마음 속 부담을 한층 덜게 되었습니다.

한은 가족 여러분!

저는 총재로 취임할 당시 통화정책의 일관성을 유지하고 적시성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말씀드린 바 있으며 이를 위해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그동안 여러분의 적극적인 관심과 호응에 힘입어 각 부서의 조사․정책 역량이 크게 확충되는 등 통화정책이 효과적으로 수행될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는 데 상당한 성과가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4년간의 통화정책 기조를 되돌아 보면 전반부와 후반부가 확연히 구분됩니다. 전반부에는 자산가격 불안, 인플레이션 기대심리 확산 등을 방지하기 위해 기준금리를 인상하고 유동성 관리를 강화하였습니다. 이러한 정책은 경제주체들의 레버리지 확대와 주택가격의 버블 형성을 억제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우리 경제가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의 충격을 견디어 내는 데 도움이 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리먼사태 이후에는 기준금리를 사상 최저 수준으로 인하하고 원화․외화 유동성을 확대 공급하는 등 금융․외환시장의 안정과 실물경제의 회복을 도모하는 데 주력하였습니다. 당시 경제상황이 어느 때보다 불확실하고 한국은행에 대한 국민의 기대가 매우 높아 정책수행에 큰 부담을 느끼기도 하였지만 이후 경제상황이 점차 호전되고 그간의 정책이 긍정적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은 다행한 일이라 하겠습니다.

총재 재임기간 중 정책운영 체계 등에 있어서도 여러 가지 변화와 발전이 있었습니다. 통화정책의 효율성과 시장의 자율성을 제고할 수 있는 방향으로 통화정책 운영체계를 전면 개편하였습니다. 물가안정목표의 대상지표를 일반 국민에게 친숙한 소비자물가지수로 변경하고, 통화정책이 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신축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물가목표 운영방식도 개선하였습니다. 지급결제 환경변화에 맞추어 혼합형 결제시스템인 신한은금융망을 구축하였으며 새로운 고액권인 오만원권을 발행하였습니다.

조직경영 개선을 위해서도 꾸준히 노력하였습니다. 직무가치와 성과를 중시하는 인사․급여제도를 도입하고 외부전문가 채용을 확대하였습니다. 다만 인사적체 문제 등을 풀어나가는 데 있어서는 여러분의 기대에 미치지 못했음을 잘 알고 있으며 이 점에 대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한은 가족 여러분!

우리나라는 국내외에서 이번 금융위기를 모범적으로 극복한 사례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경제가 지속가능한 성장을 이루어 나가기 위해서는 앞으로도 추진해야 할 과제가 많습니다.

먼저 위기대응 차원에서 도입․추진되었던 금융완화 조치들을 경제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점진적으로 정상화시켜 나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음으로 과도한 가계부채는 금융불안 요인이 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성장잠재력 확충을 어렵게 하는 등 실물경제에도 큰 부담을 줄 수 있는 만큼 경계를 늦추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최근 활발하게 전개되고 있는 국제금융질서 개편 논의를 예의 주시하면서 보다 바람직한 방향으로 중앙은행의 금융안정 역할을 재정립해 나가야 할 것입니다.

아울러 중앙은행의 위상, 특히 정부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진지한 고민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와 관련하여서는 화이부동(和而不同)이라는 옛 성현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정부와 중앙은행은 국가경제 발전이라는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서로 긴밀하게 협력하면서도 각자에게 주어진 고유 역할이 서로 다르다는 점을 인정하고 존중해 나가면 좋겠습니다.

한은 가족 여러분!

앞으로는 세상의 변화 속도가 더욱 빨라지고 경제의 불확실성도 훨씬 높아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은행이 통화정책을 효과적으로 수행하고 나아가 국민들로부터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어느 조직보다도 우수한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여러분 각자가 미래를 내다보는 혜안을 기르고 능동적이고 창의적인 자세로 앞날을 개척해 나가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와 함께 임직원 개개인의 역량이 조직의 힘으로 결집될 수 있도록 조직 운영방식을 꾸준히 개선해 나가야 하겠습니다.

끝으로 물가안정을 목적으로 하는 중앙은행의 정책성과가 오랜 시간이 지난 후에 평가받듯이 한국은행에 몸담고 있는 여러분도 먼 장래를 내다보면서 의연하게 직장생활을 하실 것을 당부드립니다. 어렵고 힘든 일도 있겠지만 하루하루를 충실히 살아간다면 틀림없이 기대 이상의 좋은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입니다.

친애하는 한국은행 가족 여러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그간 제가 총재로서의 소임을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애써주신 여러분께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앞으로 새로 취임하시는 김중수 총재와 함께 한국은행이 더욱 발전할 것을 기원하며 여러분 모두 항상 건강하시고 가정에 행복이 충만하기를 바랍니다.

한국은행을 떠나더라도 후배 여러분에 대한 사랑과 신뢰는 변치 않을 것이며 여러분과의 오랜 인연을 소중히 간직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계십시오.



태그:#이성태, #한국은행, #독립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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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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